사람은 연기를 하면서 산다. 아닌 것처럼. 감기 안 걸린 것처럼 재채기를 참고.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티를 내고.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쇼를 한다. 하지만 결국 들킨다.
나는 아직까지 짝사랑을 성공적으로 감춘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 감춘다고 노력해봤지만 결과는 언제나 밝혀졌다. 마치 재채기처럼 참고 참아도, 언젠가 한 번 크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었다.
사랑이 식어갈 때도 식어가는 사랑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랑이 여전히 남아있는 척 노력해봤지만 그건 노력이지 사랑이 아니었다. 차갑게 식은 빵처럼. 먹을 순 있지만 먹고 싶지 않은 그런 모양. 사랑이라는 껍데기는 있지만 알맹이는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사랑을 감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다. 학창 시절엔 부끄러워서. 초등학생 땐 친구들한테 놀림당할까 봐. 중고등학생 땐 거절당할까 봐. 성인이 돼서는 앞으로 보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 감추곤 했다. 마음을 감춰도 몸은 감출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시야에 있는데 안 쳐다볼 수가 없었다. 힐끗힐끗. 티 안 나게 보려 해도 언젠가 들킨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당황해서 고개 돌릴 엄두도 안 났다. 순진하고 순박했다.
대학생 때 한 번은 눈에 콩깍지가 씐 것처럼 한 여학생을 좋아한 적이 있다. 얼마나 그 사랑이 진했는지 잠에서 깨어나면 생각나고, 밥을 먹어도 생각나고, 수업을 들을 때도, 수업이 끝날 때도 언제나 생각났다. 그러다 보니 여학생을 보기 위해 수업 시간표를 찾아보고, 만날 수 있을 기회를 찾아다니곤 했다. 아쉽게도 나는 말 조차 걸지 못했다. 그때 한 여름이었는데 사랑에 빠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계절학기를 들었지만 여학생은 똑똑했는지 계절학기엔 보이질 않았다.
아마 그 여학생은 내가 좋아하는걸 눈치채진 못했겠지만, 단 10초만 내 모습을 봤더라면 내가 얼마나 빠져있는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가끔 수업 때 보는 사람이 완전히 반한 눈빛으로 말을 걸어온다면 누구라도 부담스러울 텐데 나는 그 부담스러움을 감내하고서라도 말 한마디 건네고 싶었다.
사람의 사랑이 이렇게 감추기 힘든 것이라면 도리어 감추지 말고 보여주는 건 어떨까 싶었다.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 가족들에게도 내가 얼마나 그들을 아끼는지 보여주는 건 어떨까 싶었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자주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들이 내가 아낀다는 걸 알아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썸을 타던 연애를 하던(아직 못하고 있지만), 그냥 내 마음을 평이하게 보이려 노력한다. 관심이 있으면 먼저 연락하고, 답장을 하고 싶을 때 칼답하고, 밀당을 위해서 몇 분 시간을 끌지도 않는다. 그냥 솔직하게 대한다.
내가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마음을 잘 감추지 못한다는 걸 안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동공이 커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관심이 있기에 주말엔 뭘 했는지, 요즘 재밌는 건 뭔지 서로 이야기하고, 웃고 떠든다. 좋아하니까 가까우니까 그럴 수 있겠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쓸 대 없는 힘싸움이나 눈치싸움, 밀고 당기기에 조금은 지칠 수 있다. 내 방법이 진리는 아니겠지만 나는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다. 그냥 솔직하게 내가 좋아하는 만큼 언제나 표현하고 싶다. 사랑받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나도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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