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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 21:20
제가 철학적 무언가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결정론에 따른다면 사람은 죄를 짓든 말든 본질적으로는 자유의지가 아니니 무죄 아닌가요?
오히려 사과를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운 것 같은데 이게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풍토랑 무슨 연관이 있는건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20/09/20 21:28
결정론이 유도하는, [그 사람한테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당연히 그 사람이 개선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사과를 받아들인다는건 무죄라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유죄이지만 앞으로 미래에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거라고 믿는것이지요.
20/09/20 21:33
결정론에서는 인간이 변하지 않는걸로 간주하니까 죄를 지은 사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할것이다라고 단정짓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한번이라도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을 믿지 않게 되고 사용하지도 않겠죠. 당연히 사과하든 안하든 소용이 없죠.
20/09/20 21:23
글쓴 분 말이 옳을 지 몰라도 저는 여전히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생각만 듭니다.
반성과 성찰 이후 더 나은 사람이 된 경우를 거의 보기 힘들고 표면적인 사과만으로 상황을 무마하고(그 사과마저도 안 하는 경우가 많음) 똑같은 짓을 계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애초에 반성과 성찰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남에게 사과할만한 일을 안 하기도 하고...
20/09/20 21:32
예전부터 생각한건데, 우리나라는 사과를 하는것도 그리고 사과를 받는것도 서투른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나 사회의 결정을 주도하는 기성세대는 사과를 하면 자기가 지는거라 인식을 하는거 같고 그런 안좋은 관습들이 사회 시스템을 통해 대물림되는 느낌이네요.
20/09/20 21:44
사과를 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우리사회에서는 사과를 하면 지는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사과를 '화해의 제스처'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백'으로 받아들여서, '사과했으니 유죄네'하고 더 당당하게 패는 경향이 있어서... 죄를 지어도 사과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오히려 적반하장하는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 사례도 많죠 뭔가 사과라는 것에 대한 의미 자체가 여타 국가들과 다르게 정립된 거 같아요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20/09/20 21:51
딴나라도 그렇지 않나요? 미국에서 어설프게 암쏘리 했다가 인정한거 취급해서 절대 미안하다고 안 하더라 이런 얘기 들어본 것 같은데
20/09/20 21:52
글쎄요... 제가 만나본 미국인들은 잘못한건 재깍재깍 사과 잘하던데요?
기업 경영이나 법정다툼 말씀이라면 그건 법적인 얘기니 함부로 잘못을 인정하면 안되겠지만, 본문 얘기가 그 얘기는 아니겠죠?
20/09/20 22:10
"제가 만나본" 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얘기라 오히려 안 넣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구요, 제 경험에서 그렇다고 하면 똔똔인가요? 자기가 책임질 것 같은 일 생기면 절대 쏘리 안 하던데..
본문 얘기는 그 얘기가 아닌 게 맞는 것 같은데요, 전 댓글 아케이드님 말씀에 댓글을 단 겁니다. 우리나라가 여타 국가랑 다르다 식으로 얘기하셔서, 어딜 가도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얘기한 미국 사례는 함부로 쏘리 했다가 갑자기 끌려들어가는 소송 같은 것들 때문인데, 기업이나 법정다툼까지 안 가더라도 왕왕 들리는 얘기였거든요.
20/09/20 22:15
제가 경험한 이상의 것을 얘기해 봐야 어디서 줏어들어본 썰에 불과하니까 제 경험을 말씀드린겁니다.
병장오지환 님이 들은 썰에 제가 들은 썰을 보태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20/09/20 21:45
잘못을 사회적 구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것이 진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잘못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낙인을 찍는다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해요. 그런데 진보들은 눈가리고 아웅하고 진영논리만 앞세웁니다. 도덕적 우월감이 비이성적 광기로 변하는 건지 우려됩니다.
20/09/20 21:55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지른 잘못 혹은 실수 이상의 능력과 매력을 지니고 있으면 어차피 사과 여부 혹은 사과의 진정성 여부와 관계없이 사람들이 계속 찾게 되고 비슷한 조건이면 과가 있는 사람이든 회사든 간에 사과를 받아주고 다시금 신뢰를 부여하고 안고 가느니 이전에 과가 없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편해졌지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접촉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대체할 수 있는 누군가를/무언가를 찾는 것이 너무 쉬워졌어요. 그러다 보니 사과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기보다 사과를 받아주는 쪽에서 진지해질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20/09/20 22:10
간단하지 않습니까 사과문 뒤통수가 많고 그 것이 제보되는, 공론화 되기 쉬운 문명수준이기 때문이지요 옛날이랑 다를게 있을까요 다만 통신의 발달로 드러나기 쉬운 시대일..
20/09/20 22:44
전 그 원인은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는 풍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4과 말고 사과를 해야 받아주던가 말던가 하죠;;
20/09/21 01:35
저는 [사과 이후 행보보다, 사과문의 워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중문화]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잘쓴 사과문, 못쓴 사과문으로 많은 게시글이 올라오는데, 사실 사과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건 사과문의 워딩보다는 이후 행보일텐데 시간이 지나도 거기에 관심갖는 사람은 너무 적은 것 같아요.
그러나 전혀 반성의 태도가 보이지 않는 사과도 있다는 점에 공감하기 때문에 무슨 의도로 말씀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20/09/20 23:18
요즘 유행하는 유전자수저론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네요. 노력이 결국 타고난 재능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식의 논리 말이죠.
이 논리가 발전하다 보면,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 또한 타고난 것이지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 또한 성립하죠. 우생학이 21세기에 다시 부활한 느낌이네요. 하지만 이상적인 사회라면 개개인의 모든 능력과 재능이 다 최선일 수는 없고, 각자 자신의 역량에 따라 사회에 공헌하면서 상호간에 이익을 얻어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인데, 과거에 비해서 개인의 성취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풍조가 더 강해진 느낌입니다. 이태백이었나요, "하늘이 나를 낳았으면 나도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라고... 서로 그렇게 좀 이해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이다만 찾다보니 다들 사이다패스가 돼가는 느낌이...
20/09/21 00:59
최근에 덧글로 말씀하셨던 유물론이 점점 대세가 되어간다는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유전자수저론, 외모성격결정론, 환원론, 유물론 다 비슷한 관념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20/09/21 02:24
개인적으로, 인격무시의 시대가 되어가지 않나... 하는 생각도 좀 들어요.
더불어서 인간성, 인권에 대한 마인드도 점점 각박해져 가는 것 같고요. 여기 관련해서는 좀 정돈해서 글로 써보고 싶긴 한데, 정리가 잘 안되네요..;;
20/09/21 12:04
'존엄성'이 설 자리를 점점 잃고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자존감'이란 단어가 채운게 아닌가 싶어요. 이 둘의 차이는 자존감은 스스로의 존엄성에 좀 더 편향된 단어라는 거겠죠.
20/09/21 00:05
예전에 어느 일본인이 연구한 유학 이야기에서 봤던 구절을 누가 피지알에 써 놓으셨던거 같은데
"한국인은 도덕지향적인 성향이 있다." 라고 그러다보니 이번 같은 코로나 사태에는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잘 대처하고 있지만 문제는 지향의 기준점이 과거와 같이 내 주변 평균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얻어지는 '이상적 평균'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서로가 빡빡한 기준으로 옭아매다 보니까 더 그게 심화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남들처럼 평범하고 싶다면 미친듯이 노력하라' 라는 괴상한 현대의 노력 이론이 개인의 생활 태도에도 잣대로 적용돼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사과할거면 애초에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지!' 까지 거슬러올라가면서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소리가 나오게 만들고 뭐 멀리 갈거 있습니까, 여기서도 다들 잘만 그러시던데
20/09/21 03:06
제가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더 유난스럽게 타인때문에 내가 피해받는 걸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과받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싫고 사과할 짓을 왜 헸냐 책망하는 일은 있어도 사과를 받아들이는 건 상대적으로 어려운 거 같아요. 그렇다면 왜 피해받는 걸 두려워할까 를 생각해보면 자기자신을 나약한 존재 또는 자기연민의 자세로 바라보니 쉽사리 포용하려는 마음이 안드는 거 같은데 이게 '한'이란 정서와 연관있는 가 싶지만 그걸 더 구체적으로 연결지어 생각해볼 역사적 지식은 제가 부족하군요 --; 또한 우리나라 '한'은 옆나라 '원'과는 달리 해결의지가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러니 나의 나약함에서 오는 절망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더욱 더 도덕적 잣대를 타인과 스스로 에게 모두 요구하다보니 사과할 상황을 안만들어야 되고 사과할 일이라도 생기면 반 대역죄인이 되는 건가 망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왜 자기자신을 나약한 존재로 상정해야 하는걸까에 대해서도 자연재해가 레알 재난인 옆나라와는 조금 궤를 달리해서 생각해볼 법 한데 그 이상은 제가 게을러서 더 깊이 떠올리진 못했... 귀동냥으로 들은 옆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우리나라 정서라고 평소 생각하던 바가 있어 댓글러분과 글 작성자분 두분의 얘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20/09/21 00:38
글에 논리적으로 이상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네요.
[사람은 환경과 유전자에 완전히 지배받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변할 수 없다면, 당연히 사과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라 하셨는데, 환경과 유전자에 지배받는거랑 변하는거랑 관계없죠;; 환경의 지배를 받으니 환경에 따라 변하는거죠. 변할 수 없는거랑 사과 받아들이는거랑도 관계없죠. 글 보니까 결정론 이야기하며 정신은 이원론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네요.
20/09/21 00:50
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안했는데 말씀하신걸 듣고나니 정말 이상하네요. 말씀하신 반박에 대해 저도 예전에 생각해보고, 아! 이래서 그렇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은 기억도 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그때 결론을 내려놓고나서 그부분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머릿속 논리에서 전제로 깔고 사고를 전개해서 이렇게 쓰인 것 같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다시 한 번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기억이 안나는걸 보면 타당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기억을 못하는건지...
놓친부분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혹 여유가 되신다면 다른 논리적으로 이상하다고 느껴지신 부분도 지적이 가능하실지요? 제가 논리를 더 단단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혹 [결정론 이야기하며 정신은 이원론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네요.] 이 부분의 의미도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지요. 무엇과 무엇의 이원론이라고 제가 보고있다고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20/09/21 00:58
사람은(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세상의 구성요소들의 산출된 계산값에 의해 자유의지 없이 행동하므로(=지배 받으므로) 사과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신거 아닌가요. 죄를 짓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것이니까요.
20/09/21 01:21
예. 말씀하신 부분은 맞습니다. 제가 지금 이상함을 느낀 부분은,
제가 본문에서 '결정론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유도한다' 라고 썼는데, '결정론은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하게 유도한다.'라는 norrell 이야기가 타당하게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norrell 고민해보았는데, '결정론은 사람은 환경에 따라'만' 변한다고 생각하게 유도한다' = '결정론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유도한다' 라는 의미를 의도하고 썻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09/21 01:16
저는 결정론이 자조적 변으로 사용되는 것에 씁쓸함을 느낍니다. 결정론을 개인적으로 차용한다고 해도 자신의 행동을 결정론으로 변호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전제로 우리는 결정론의 진위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실제 결정되어 있다고 가정해도 우리는 주어진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영사기의 필름이 물리적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우리는 영화를 거꾸로 돌려보거나 뒤죽박죽으로 섞어 보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사건의 맥락을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결정론을 차용하여 자신의 면죄를 신청하는 사람은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차용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가치판단 및 사고 능력을 마비시킨 사람'이라고 치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죠. 어쨌든 알 수 없는 미래는 막을 수 없이 계속 밀려오고 자유의지가 없다고 가정한다쳐도 주관은 실존하는 우리 머리 속 레이더입니다. 우리 사고가 실존 세계에 대해 스스로를 속이게 설계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그런 주장 자체가 현재를 주관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 개인의 한계를 증명하는 반문이 될겁니다. 즉 우리는 의식 혹은 사고라고 부를만한 것의 한계로 세상이 결정되어 있든 말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을 타고 났습니다.
20/09/21 01:31
공감합니다. 제가 평소에 '자유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가는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고관의 유용성 때문에 그렇게 믿어야해' 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입니다.
그러나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차용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가치판단 및 사고 능력을 마비시킨 사람'에 대해 왜 부정적인 뉘앙스?의 관점을 갖고계신지 궁금합니다. 신념이나 종교같은 것들도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차용하는 것 아닌가 해서요. 실증주의에 대한 맹신에 대한 비판이 결정론에 대한 반박으로 사용되기도 하구요.
20/09/21 13:47
결정론을 차용하여 자신의 면죄를 신청하는 사람을 가르켜 그리 말하였습니다. 신념이나 종교에 대입한다고 했을 때 저는 타인의 믿음에 별 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믿음으로 타인에게 실제 폭력을 행사하거나 믿음을 침해하려 할 때 저는 폭력성을 느낍니다.
20/09/21 01:47
결정된다는 것이 반드시 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습니다. 결정된다는 것은 어떤 사건/현상/행위도 다른 사건/현상/행위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변화하지 않음만이 아니라 변화함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행위가 결정된다는 것은 행위를 성품과 행위 전까지 행위자가 처해있던 환경에 의해 완전히 설명 (오직 그 행위만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으며 현재의 성품과 앞으로의 (변화된) 성품 역시 행위자가 자유롭게 만들어 낸것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 것이고 결정될 것 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글의 문제의식을 표현하는데 2는 필요 없습니다.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지를 따질 때 결코 결판나지 않을 논쟁으로서의 철학적 수준의 자유의지와 결정론 논쟁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인간과학은 자유의지를 갖춘 주체라는 고전적/근대적 생각이 얼마나 인간을 과대평가한 것인지를 자각해온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자유의지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그리고 결정되어 있는 것이 없으면 자유의지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잘 따질 수는 있습니다. 개개인들에게 그들의 행위의 타자들에 대한 부정적 귀결의 책임을 얼마나 물을 수 있는 지는 사회가 - 가정과 교육과 경제가 - 그 개개인들에게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주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0/09/21 02:01
요즘 몇몇 게임이 옳은(?) 사과의 예를 잘 보여 주고 있죠. 일단 사과문을 공들여 쓰고 유저들에게 재화를 뿌리는 겁니다. 일상 생활이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마찬가지에요. 말이나 인터넷 글로만 때울 게 아니라 실제로 피해를 끼친 사람에게 가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거나(받아 주지 않더라도) 물질적 보상을 한다던가,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진정성을 보여 줘야죠.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잘못이 공론화되기 전에 선 사과를 하는 거겠죠. 별로 본 적은 없는 것 같지만.
20/09/21 04:33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제가 꽤 오랫동안 고민하던 소재라서 반갑네요.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그런 쪽으로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저 나름으로 오래 생각하고 이것저것 읽어보고 내린 결론을 여기에 적어봅니다.
운명론과 결정론은 굉장히 다른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명론은 본인이 아무리 노력한들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상당히 문학적인? 개념이죠. 반면에 결정론은 '전 우주의 입자들과 파동의 현재 상태에 따라서 이후 상태가 결정되는데, 사람의 마음 또한 그런 자연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도의 건조한 개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결정론은 운명론으로 이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보게되는 시험에서 티타늄님께서 치팅을 하거나 하지 않을 선택이 있다고 치죠. 그리고 티타늄님께서는 치팅을 하지 않는다고 치죠. 그 순간 티타늄님께서 치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당시 치팅이 가져올 이득, 티타늄님의 당시 학점에 대한 절박함, 치팅하다 잡힐 경우에 대한 걱정, 그리고 아마 제일 큰 부분으로 티타늄님의 도덕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물이겠지요. 그리고 시간을 백만번 돌려봤자, 같은 상황에 같은 인격이니까 티타늄님은 치팅을 백만번 안하실 겁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티타늄은 매번 같은 선택만을 할 수 있으니 이 사람은 자유로운 선택을 한 것이 아니고 이 사람에게 의지는 없다'라고 말할 이유가 되지 않지요. 님의 인격이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반응한 것이니까요. 오히려 같은 인격인데 같은 상황에서 반대로 선택할 수도 있다면 우리는 오랫 시간 인격을 가다담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결정론적 세계관 속의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라고 누군가가 굳이 주장하려면, 그 사람은 본인이 생각하는 '시간을 되돌릴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의지만 자유로운 것임' 이라는 주장의 근거부터 정확히 제시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까지 그 부분에서 깔끔한 제시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대부분은 norrell 님 말씀처럼 자유의지란 '물질계로부터 독립된 뭔가 멋진 것' 이어야 한다고 막연히 믿기 때문에 결정론을 처음 접할 때 충격을 먹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게다가, 환경과 인격이 상호작용해야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서 범죄자를 교화할 수 있지요. 인격이 환경에 영향받지 않는다면 교화가 가능할 리가 없고, 교육도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20/09/24 07:38
저도 철학 전공은 아니지만 자유의지 관련해서 나름대로 파봤는데, 제가 내린 결론은 그건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결정론과 양립하는 자유의지를, 이제껏 논의되어온 자유의지 담론의 보편적인 틀 안에 있지 않다고 평가하시는 분들이 많죠. 즉, 그거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재정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평가가 실로 타당하다고 봅니다. 결국 결정론... 아니 유물론적 세계에서 존재하는 모든 삼라만상은 주체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발생적인 맥락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일 뿐이라는 거죠. 우리는 객체입니다. 붓다가 말했듯 자아는 허상이구요. 물론 그 허상이 바로 나다!를 시전할 순 있습니다. 허나 그 허상이 주체적이다!를 시전하긴 어렵다는 거죠. 자유의지 담론에서 주체성이란 이원론을 전제해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자연으로부터 100% 독립적인 것은 아닐지 몰라도, 100% 자연과 연속적인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이제껏 논의되어온 자유의지라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걸 바로 자유롭다고 생각하구요. 특정 조건 하에서 반드시 특정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걸 우리는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에서는 책임이 생긴다고 느끼지도 않구요. 기계한테 책임이 있다고 안 그러는 이유죠 그게. 책임이라는 것은, 이제껏 보편적으로 논의되어 온 자유의지 개념을 전제로 하는 인격적 비평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자유'라고 하는 말은 일종의 떡밥에 불과하고, 실상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이 100% 자연과 연속된 행동인가 그 자체라고 봅니다.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어쨌거나 자유라고 느끼지 않거든요. 요컨대 자유라고 하는 보편적인 삘이랑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는 거죠. 즉 우리가 오토마타냐 아니냐 그게 중요하단 거지요. 따라서 '시간을 되돌렸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의지'이긴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자연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독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이원론을 전제하긴 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데닛 같은 사람들이 자유라고 하는 삘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선각자격 위인일 순 있습니다. 결정론과 양립가능한 자유의지 개념이 새로운 비전일 순 있죠(뭐 저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고 보지만). 그러나 그런 자유의지는, 우리가 이제껏 생각해온 그런 자유는 아닐 것입니다.
20/09/24 08:13
오 실제상황님 반갑습니다. 요즘 이글 저글에서 자주 뵙네요.
제가 누구 책 읽고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미 아시니까 뭐 서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제 생각에도 결정론과 양립가능한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해석'의 문제이지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냐라는 '사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걸 자유의지라고 생각하면 그냥 그런 거고 (제가 그런 경우이고), 저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자유의지는 없는 거고 (실제상황님이 그런 경우이고), 뭐 그런 거죠. 다만 이런 생각은 들어요. 데닛의 자유의지가 진짜 자유의지가 될 수 없다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그냥 논리적 오개념에 불과하다는 그런 생각이죠. 의지나 영혼이 자연계의 일부가 아니라 물질 너머의 세계인 거야 뭐 그래도 되는데, 그렇더라도 자연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이상 그 의지나 영혼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제 생각에는 그것을 의지라고 불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가 신인 건 뭐 그래도 되는데, 설령 예수가 신이더라도 그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선택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했고 예수는 인간을 사랑하니까요 (아 물론 제가 종교인은 아니고, 그냥 예를 드는 겁니다). 여호와가 세상을 창조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지 않을 수 없고... 아 이건 아닌가? 하여튼 선택의 주체가 존재하고 그 주체가 랜덤가차를 돌리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는 같은 상황에서는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시간을 되돌렸을 때 같은 인격이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제 생각에는 인간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뭐 그걸 의지가 없다고 부르기로 한다면, 그거야 뭐 각자의 선택입니다. 다만 저는 '물은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이니까 물이란 것은 허상이다' 라는 식의 환원론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는 지금 댓글을 교환하고 있지도 않지요. 그저 수많은 미립자들이 일정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을 뿐.
20/09/24 09:30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자연을 초월하는 행동원리가 있다는 거니까요. 매번 같은 선택을 하는 거야말로 통제권이 없는 것이죠. 그거야말로 말그대로 출력값이니까. 그 출력값을 내는 게 바로 나니까 나에겐 통제권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 '나'도 형성된 존재일 뿐이죠. '나'는 궁극적으로 객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라는 것 착각이죠. 그래서 그 허상인 자아가 바로 나다!를 시전할 순 있어도 그 허상인 자아가 주체적이다!를 시전하긴 어렵다는 얘기를 한 것이죠.
한편 뭐 그게 해석의 문제라는 건 맞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자유롭다고 생각하면 그런 거긴 한데... 그걸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아왔단 거죠. 그래서 자유라는 말은 떡밥일 뿐이란 거고, 자유의지 담론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연에 100% 연속된 존재인가 아닌가 그 자체가 포인트라는 거죠. 오토마타냐 아니냐. 물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면 그냥 그런 거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건데, 전자는 보편적인 삘이랑은 동떨어져 있다는 거구요. 그래서 그게 새로운 비전일 순 있다고 그랬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삘'이 대세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요. 일반적으로는 기계가 작동하는 걸 보고 거기에 자유가 있다고 느끼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의지가 있냐없냐 하는 거랑 그 의지가 주체적이고 자유롭냐 하는 건 다른 거니까요.
20/09/24 09:33
예 저도 말씀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저는 다만 말씀하시는 새로운 비전쪽으로 몇 년전부터 캠프를 옮겼는데, 일단 옮기고 나니 세상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더라고요. 이쪽도 괜찮은 곳입니다 :)
20/09/24 09:46
아 댓글 수정 중이었는데 벌써 대댓 달아주셨네요.. 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긴 하겠죠 흐흐.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라서요. 그래서 그건 지금껏 논의되어온 자유의지를 재정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는 거겠죠. 그게 자유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는 분들이 절대다수 아닌가 싶습니다.
20/09/21 08:20
1. 왜 사과를 지금보다 더 잘하고 잘 받아들이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 인거죠?
대전제에 대한 논거x 2. 사과 안받아줌 - 자유의지를 불신 까지 가는 논거가 너무 부족해서 납득불가
20/09/21 12:10
1번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사회가 더 성숙하고 미래지향적이고 문제의 본질에 더 빨리 접근하는 사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피드백을 받다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용어를 바르게 정의하고 그 용어 내에서 깔끔한 논리전개가 돼야하는데 그럴만큼 논리구조가 머릿속에서 단단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20/09/21 09:46
제대로 사과를 하는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변명에 가까운 사과, 사과문밖에 안 보입니다. 심지어 사과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회피책으로 쓰는거죠
20/09/21 18:55
그게 우리사회(한국)은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정착이 덜 되서 그런것 같습니다.
일단 사과를 하면 (졌다) 라는 체스쳐로 받아들이는 풍토도 한몫하고요... 이를 알수 있는게 가정교육에 대한 나라별 차이인데 , 일단 우스게 소리긴한데 뼈가 있긴합니다. 1) 한국 : 남에게 지지 마라 : 이것을 위해 통상적으로 자신이 주장하는 논거에 합당하는 기초 데이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을 미리 정해두고 . 나중에 그 과정과 이유를 찾는거죠. : 원래는 데이타가 의미하는 바를 중립적입장에서 추론하여 결론을 도출해야 정상인데. 이걸 반대로 합니다. 결론을 미리 정해두고 과정과 이유를 찾으면. 배가 산으로 갈수 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토론이 잘 될수가 없으며. 토론의 결과 또한 우수한내용이 나올수가 없는 구조인데... 토론의 목적을 어느것이 진리인가를 찾는 과정이 아니고. 내가이기냐 너가이기냐 검투사 게임으로 인식하는거 같습니다. 2) 일본 : 남에게 피해주지 마라 일본의 가정교육은 남에게 피해주지 마라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전국시대의 덴노(천황;현재는 사실상 미국) -> 쇼군(총리) -> 막부(자민당) -> 지방영주(자민당의원과 계파) -> 사무라이(공무원) 시스템인데.. 일본의 장인정신이 탄생한 근본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정치하는 사람은 계속 대를물려가면서 정치하고. 사무라이 집안은 계속 칼질만 하고. 연구하는 집안은 그냥 주구장창 연구만하고 (일본의 노벨상 수상이 많은이유) , 국수말던 집안은 아들이 세계적 천재건 말건 . 주구장창 국수말고.. 이 시스템에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것은 다른 계급 라인에 간섭이나 관여를 한다는 것인데.. 그러지 말고 니 할것만 하고 신경끄라 시스템입니다. 덕분에. 일본은 자민당 60년 통치아래. 정권이 뒤집힌적이 최대 6년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본국민들은 한국에 비교해서 굉장히 개인주의 적입니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볼때..) 한국인은 상당히 오지랖이 넓습니다. (일본인이 한국민을 볼때는..) 3) 중국 : 남에게 속지마라 마오쩌둥 -> 등소평 라인으로 옮겨지면서 . 실리를 중요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 실리가 자기 개인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관점으로 변질되었는데.. 덕분에. 통수에 통수에 통수를 치는 이기주의가 저변에 깔리게 되었다. 때문에 하도 속이고 속이고 하다보니. 결국 가정교육이 남에게 속지마라. (그만큼 통수를 많이 친다는 얘기) 우리가 보기에는 상당히 이상한 논리가 이들에게는 평범하게 깔려있는데.. '속인사람이 잘못이 아니고. 당한놈이 못난것' 이라는 개념도 깔려있다. 덕분에. 가짜분유 사건을 말할것도 없고. 심지어 명문화된 계약서(서류에 도장꽝) 한것도 뒤집는 이상한 문화가 정착되어있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일명 짝퉁왕국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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