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학생들은 다양한 교과서로 바탕으로 오랜기간 공부합니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소위 사서삼경이라 불리는 중국고전을 교과서로 삼았죠. 그럼 유럽 중세시대 학자들과 귀족들은 어떤 자료로 교육받았을까? 로마제국 멸망 후 게르만 왕국들이 여기저기 난립하는 와중에도 교육의 명맥은 끊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한 프랑크 왕국은 그들 스스로 게르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구 로마제국의 교육체계를 계승했고, 더욱 확산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기본 교과서로 삼은 것은 스페인 출신 주교가 집필한 거대한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서기 7세기, 서고트 왕국의 주교이자 학자 이시도로 데 세비야(Isidoro de Sevilla)는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거대한 작업을 시작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하나의 책으로 엮고자 한 것입니다. 그 결과물의 제목은 에티몰로기에(Etymologiae)라고 불렸고, 또는 오리게네스(Origenes)라고도 불렸습니다. 세상의 원천을 탐구하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지은 것입니다.
총 20권에 달하는 저서로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권 - 문법에 관하여(De Grammatica)
전문분야와 아르테 / 7개 전문분야 / 알파벳 / 라틴문자 / 문법 / 연설의 구성 / 명사 / 대명사 / 동사 / 부사 / 과거형 / 동사변형 / 전치사 / 결합 / 문법에서 글자 / 음절 / 측정 / 억양 / 억양 기호 / 부호 / 다양한 약어 / 법에서 약어 / 군사분야에서 약어 / 교회에서 약어 / 어원 / 서술형식 / 우화 / 역사 / 역사가 / 역사의 유용함 / 역사의 종류 etc
제2권 - 수사학과 변증법에 관하여(De Rhetorica et Dialectica)
수사학이란 / 수사학의 창시자들 / 연설가와 수사의 부분 / 논증의 3가지 종류 / 법적 논증의 2가지 종류 / 3자 분쟁 / 연설의 4가지 부분 / 확증과 반박 / 질문의 종류 / 형식 / 무장 / 편지나 연설에서 피해야할 오류들 / 단어의 결합 / 변증법 / 철학 etc
제3권 - 수학에 관하여(De Mathematica)
수학의 기원 / 숫자란 무엇인가 / 나눔 / 기하학 / 음악과 하위 분야 / 천문학과 하위 분야 etc
제4권 - 의학에 관하여(De Medicina)
의학이란 / 의학의 창시자들 / 의학의 종류 etc
제5권 - 법과 시간에 관하여(De Legibus et Temporibus)
법의 원천 / 신법과 인법 / 법리와 법 그리고 관습 / 자연법이란 / 민법이란 / 국제법이란 / 군사법이란 / 공법이란 / 법이란 무엇인가 / 공민투표란 / 원로원칙령이란 / 명령과 칙령이란 / etc
제6권 - 성경과 성직에 관하여(De Libris et Officis Ecclesiasticis)
구약과 신약 / 성경의 저자들 / 도서관 / 번역가 / 로마에 성경을 가지고 온 자들 / 기독교 도서관 / 문학의 종류 / 필기의 도구 / 책을 만드는 법 / 책의 종류 / 필사가들과 그들의 도구 / 복음의 정경 / 공의회의 법령 / 부활절 시기 / 전례의 축일 / 성직의 종류 etc
제7권 - 하느님, 천사, 성인들에 관하여(De Deo, Angelis et Sanctis)
하느님 / 성자 / 성령 / 삼위일체 / 천사 / 예언자 / 교부들 / 사도들 / 복음에 나타난 다른 인물들 / 순교자들 / 성직자 / 수도승 / 평신도
제8권 - 교회와 이교에 관하여(De Ecclesia et Sectis)
교회와 시나고그의 차이 / 종교와 신앙 / 이단과 분교 / 유대교의 이단들 / 기독교의 이단들 / 이교도 철학자들 / 시인 / 예언자 / 마법사 / 이교도 / 이교도의 신들
(이하 생략)
제9권 - 언어와 민족, 왕국과 군대, 도시와 직위에 관하여(De Linguis, Gentibus, Regnis, Militia, Civibus, Affinitatibus)
제10권 - 어휘에 관하여(De Vocabulis)
제11권 - 인간과 계시에 관하여(De Homine et Portentis)
제12권 - 동물에 관하여(De Animalibus)
제13권 - 세상과 그 구성에 관하여(De Mundo et Partibus)
제14권 - 지리와 그 구성에 관하여(De Terra et Partibus)
제15권 - 건축물과 농촌에 관하여(De Aedificis et Agris)
제16권 - 돌과 금속에 관하여(De Lapidibus et Metalis)
제17권 - 농업에 관하여(De Rebus Rusticis)
제18권 - 전쟁과 오락에 관하여(De Bello et Ludis)
제19권 - 선박, 건물, 의복에 관하여(De Navibus, Aedificiis et Vestibus)
제20권 - 주거와 주거용품에 관하여(De Domo et Instrumentis Domesticis)
당시 지식인이라면 응당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을 총망라한 것으로 로마시대 대가들의 저서를 폭넓게 인용 및 요약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로마의 지식이 유실되지 않고 계속 전해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책으로, 일부 로마시대 저서의 원전이 사라졌음에도, 이 책 덕분에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이 책이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모든 단어의 어원을 설명하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법을 설명할 때 전문분야(Discipline)와 일반 과학(Science)가 어떻게 다른지, 알파벳은 어떤 글자로 구성되어 있고 왜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 단어(noun)와 동사(Verb), 전치사(Preposition), 부사(Adverb) 등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아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데, 근대적 문법 교양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울러 법과 성직자 교회의 구성, 하느님의 어원 등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내용이 꽤나 세부적이어서 놀랍습니다.
한편 이 책을 가장 많이 필사하고 공부한 게 프랑크 왕국이었다고 하는데, 역시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무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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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 법과 시간에 관하여(De Legibus et Temporibus)
5.2 신법(Divine Law)과 인법(Human Law) - 모든 법은 신으로부터 또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신법은 자연에 바탕을 두며, 인법은 관습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인법의 경우 민족마다 관습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 권리(Fas)는 신법인데 반해 법(Ius)는 인법이다. 예컨대 타인의 소유지를 경유하여 통과하는 것은 신법에 의해 허가되지만, 인법에 따라 제한된다.
5.3 법리(Ius), 법(Lex), 관습(Mos)은 어떻게 다른가 - 법리(Ius)는 일반 명사이고, 법(Lex)는 법리가 표현된 모습이다. 법리(Ius)는 정의롭기(Iustus)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고, 모든 법리는 법(Lex)과 관습(Mos)으로 이루어진다. 법(Lex)은 글로 새겨진 경전이다. 글로 새겨진 문장을 읽기(Legere)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한편 관습(Mos)은 오래 지켜져온 도덕적 습관(Mores)에 의거하며 관습법(Consuetudo)은 이러한 습관에 바탕을 두는데 이는 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법이다.
5.4 자연법이란 무엇인가 - 법은 자연법(Ius Naturale), 민법(Ius Civile) 그리고 국제법(Ius Gentium)으로 이루어진다. 자연법은 민족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자연의 본능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누군가가 규정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남녀의 결합, 자녀의 상속과 교육, 사물에 대한 소유, 폭력으로부터 자위 등은 모두 자연법에 속한다.
5.5 민법이란 무엇인가 - 민법은 각 도시의 시민들이 그들 스스로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5.6 국제법이란 무엇인가 - 국제법(law of nations)이란 영토의 정복, 요새의 건축, 전쟁과 포로의 취급, 노예화, 평화협정과 강화, 외교사절의 보호, 다른 민족 간의 통혼 규제 등을 의미한다. 모든 민족(Gentes)이 이용하는 법이기에 국제법(Ius Gentium)이라고 부른다.
5.20 법을 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법은 두려움을 통해 인간의 무모함을 규제하기 위해, 강탈로부터 무고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 처벌을 통해 사악한 자들의 위해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제정된다.
5.21 어떤 법을 제정해야 하는가 - 법은 명예롭고 정의로워야 하며, 집행 가능해야 하며 또 자연법과 일치해야 하고, 해당 국가의 관습에 맞아야 하며, 또 시간과 장소에 어울려야 하고, 필요한 것이어야 하며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명쾌해야 하는데, 명쾌하지 않으면 속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공리를 위해 글로 새겨져야 한다.
(중략)
제9권 - 언어와 민족, 왕국과 군대, 도시와 직위에 관하여(De Linguis, Gentibus, Regnis, Militia, Civibus, Affinitatibus)
9.3 왕국에 관하여 - 왕국(Regnum)은 왕(Rex)이 다스리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며, 왕(Rex)는 그가 통치하기(Regere)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모든 민족은 한때 왕국이었다. 아시리아인, 메디아인, 페르시아인, 이집트인, 그리고 그리스인 모두 한 때 왕국이었다. 그러나 모든 왕국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부상한 것은 처음에는 아시리아였고, 그 후에는 로마였다. 전자는 먼저, 그리고 동방에서 부상했고, 후자는 나중에 그리고 서방에서 굴기했다. 다른 나라의 왕국들과 왕은 이들 제국의 부속물에 불과했다.
왕(Rex)은 그가 통치하기(Regere) 때문에 그렇게 불리고, 성직자(Sacerdos)는 그가 제물을 바치기(Sacrificare)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한편 통치하다(Regere)라는 동사는 올바르게 하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는데, 따라서 왕은 올바르게(Recte) 행동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왕위를 상실한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현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대가 올바르게 행동(Recte)하면 왕(Rex)이 될 것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 결코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다." 이에 왕의 덕목은 정의로움과 자비로움인데, 보통 자비로움을 칭송하는 경우가 많다. 정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집정관(Consul)은 그들이 조언을 하기(Consulere)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과거 로마인들은 왕들의 폭정을 견디지 못해 집정관 직을 신설하고 이들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했다. 집정관(Consul)은 시민들과 이익을 상의(Consulere)하였고, 또 통치방식도 협의(Consulere)를 통해 하는 것이었다. 또한 오만함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하였으며, 또 동일한 직위를 2명이나 두었다. 한명은 민간행정을 담당했고, 다른 하나는 군사행정을 담당했다. 집정관의 시대는 467년 지속되었다.
본래 황제(Imperator)는 군사를 지휘하는 장군을 의미했다. 그들은 군대를 지휘(Imperare)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는데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이르러 원로원은 이 칭호를 오직 그에게만 부여했다. 이렇게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는 다른 민족의 왕들과 구분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칭호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또한 황제를 의미하는데, 이는 황제들이 공화국의 영토를 늘렸기(Augere) 때문이다. 원로원은 공화국의 영토를 확장시키니 옥타비아누스에게 이 칭호를 수여하였다. 이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이자 임페라토르였고 이에 더해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그 후 그가 경기를 참관하고 있는 와중 시민들은 그에게 도미누스(Dominus, 주님)이라는 칭호를 수여하려고 했는데 아우구스투스는 화를 내며 이를 거부하였다. 그 이후 누구도, 심지어 그의 자녀들도 그를 도미누스라고 부르지 못했다.
바실레우스(Basileus)는 그리스어로 왕을 의미하는데 이는 반석(Basis)과 인민(Laos)을 합친 것으로, 그가 인민의 반석이 되기 때문이다.
(중략)
제14권 - 지리와 그 구성에 관하여(De Terra et Partibus)
14.2 지구(Orbis)에 관하여- 지구(Orbis)는 그것이 원형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따라서 작은 원반을 두고 Orbiculus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바다는 지구를 맴돌며, 지구는 3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아시아,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이다. 아시아가 한쪽 절반을 차지하며, 유럽과 아프리카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