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9/28 15:30:56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후기] 메디치 더 매그니피센트 시즌 2, 르네상스의 명암을 보여주다 (수정됨)

메디치, 피렌체의 지배자
메디치, 더 매그니피센트 시즌 1
메디치, 더 매그니피센트 시즌 2 

오늘날 피렌체를 만든 메디치 가문을 그린 유럽 드라마(영국+이탈리아 합작) 입니다. 
피렌체의 지배자는 가문의 창시자 코지모 데 메디치를 다루었고
더 매그니피센트 시즌 1,2는 코지모의 손자 [위대한 로렌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왓챠플레이에서 전 시즌 모두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시리즈를 정주행 하고 나니까 아주 깊은 여운이 남네요.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양합니다. 몇가지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복수(Vendetta)
Medici: The Magnificent' Boss Calls Final Season 'the Most Emotional &  Powerful' - TV Insider
복수심밖에 남지 않은 로렌조

파찌가문의 암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로렌조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동생과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교황에 맞서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갑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 아래 온갖 종류의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에 매진하고 또 도시국가 피렌체를 지키기 위해 독재적 권력을 위임받게 됩니다. 도시의 의회라고 할 수 있는 시뇨리아는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끼고 있지만, 감히 메디치에 맞설 수 없고, 또 메디치는 친구와 적 모두에게 두려운 존재로 변모해갑니다. 그 과정에서 로렌조의 정무수석 브루노 베르나르디(가공의 인물입니다)는 철저하게 정략적인 관점에서만 사물을 바라보고 언제나 가장 치밀하고 기묘한 계략을 제시하면서 로렌조를 보좌합니다. 한편 브루노는 젊은 심부름꾼 한 명을 고용하여 그를 매우 아끼는데 시즌 마지막 화에서 그 젊은이의 이름이 니콜로 마키아벨리라는 게 드러납니다.  

사랑(Amore) 
Clarice Orsini -
로렌조의 아내 클라리사 (외국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얼굴은 아닌데, 정말 순수/선함과 잘 어울리는 인상의 배우를 택한거 같네요) 

그러나 로렌조는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냉혈한이 아닙니다. 그는 내적으로 갈등하기도 하며, 여러 여인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거 엄청난 바람둥이였던 그는 아내 클라리사 데 오르시니의 영향으로 점잖아지고 또 (최소 남녀관계에 있어) 진실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클라리사는 한편 독실한 신앙인으로, 남편의 행위에 괴로워하며 그를 가급적이면 올바른 길로 유도하고자 하는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녀 또한 결국 남편과 가문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악을 묵인하기도 하는데 내적으로는 점점 괴로워하며 병들어갑니다. 남편은 항상 가족과 피렌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하지만, 그녀는 부패와 만용 외에 또 어떤 악행까지 저질러야 하냐고 절규합니다. 시즌 후반부에서 남편이 살인까지 지시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아 지병이 악화되는데, 결국 이로 인해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로렌조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예술(Arte)
1920px-Botticelli-primavera.jpg
보티첼리 - "봄"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들은 예술가들을 전폭적으로 후원했습니다. 로렌조는 산드로 보티첼리와 아주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묘사되는데, 시즌이 진행되면서 산드로는 악행을 일삼는 로렌조에게 실망하며 점점 그와 거리를 두게 됩니다. 한편 로렌조는 예술의 발전을 위해 아예 전용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이곳에 젊은 예술가들을 대거 초빙합니다. 그리고 로렌조는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젊은 예술가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그의 이름을 물어보는데, 그가 바로 미켈란젠로입니다. 다른 한편 본 작품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등장하는데, 로렌조는 그가 발명한 기계를 이용해서 다른 도시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신앙(Fede)
Medici' Season 3: Who was Girolamo Savonarola and did he bring an end to  the Medici's power in Florence? | MEAWW
로렌조에 맞서는 급진 수도승,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아름답고 부유한 피렌체. 이탈리아의 으뜸가는 도시 피렌체.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인 도시 피렌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영혼은 가난하고 무언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핍을 파고 든 자가 그 유명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입니다. 그는 교황에 비판적이고 교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수도승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마르틴 루터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고, 다른 종교개혁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선구자라고도 알려져있습니다. 아무튼 로렌조는 그러한 급진주의자(?)를 교황을 상대로 맞설 카드로 이용하기 위해 피렌체에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피렌체의 수도원장이 되는 데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가 유용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평민들뿐만 아니라 귀족들도 그의 설교를 들으러 가고, 또 그의 설교에 선동된(?) 무리는 부자의 저택을 쳐들어가거나 메디치의 저택도 위협하게 됩니다. 나아가 사보나롤라는 메디치의 독재를 직접 비판하면서 한편 로렌조가 살인을 지시했다는 정황을 손에 넣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를 무기로 메디치 가문을 쓰러트리려 하자 로렌조는 그를 암살하기로 계획합니다. 

그러나 로렌조는 마지막 순간에 죽은 아내의 말을 떠올리고, 또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친아들도 자신을 저버린 것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몸을 던져 사보나롤라의 암살을 저지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로렌조의 명을 받아 이를 실행하고자 했던 충직한 가신 브루노 베르나르디가 분노한 군중에 의해 죽임당합니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등은 모두 픽션입니다...) 한편 로렌조 또한 지병이 악화되어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하는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자기가 죽이려고 했던 사보나롤라를 불러들여 고해성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고해성사 중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만큼 "후회하지 않는 것도 많다"고 하면서 피렌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사보나롤라는 그런 것들은 모두 허영이며 사라질 것이라고 되받아치는데, 로렌조는 "오, 아니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다시 대답합니다. 그러자 사보나롤라는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는데, 곧 이어 로렌조 또한 눈을 감게 됩니다. 

이윽고 사보나롤라를 지지하는 파가 도시의 실권을 찾지하게 되는데, 이들은 로렌조가 지은 아카데미에 쳐들어가 고전양식의 석상들을 부수고 그림들을 불태웁니다. 그리고 작업실에 들어가보니 자신들의 작품들이 모두 파괴된 것을 보고 절규하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립니다. 

한편 사보나롤라는 로렌조의 죽음 얼마 후 피렌체의 실질적 지도자로 부상, 오늘날로 치면 거의 IS와 같은 원리주의적 정권을 수립해서 많은 책과 예술품을 파괴하였는데, 그러한 종교적 원리주의에 지친 시민들에게 의해 결국 그 본인도 교수형 당하고 불태워집니다.  


로렌조가 통치하던 시대의 피렌체는 정말 아주 희한한 곳입니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사보나롤라 서로 전혀 다른 인물들이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활동하던 무대였는데... 최고수준의 인문주의와 최고수준의 종교적 광신이 공존했고, 최고수준의 미의식과 최고수준의 엄숙주의가 공존했습니다. 본 드라마는 이러한 모순의 시대를 드라마적 상상력으로 나름 잘 보여준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강력 추천드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20/09/28 16:11
수정 아이콘
영상 떼깔부터 벌써 마음에 드네요. 이번 연휴에 좋은 볼거리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Je ne sais quoi
20/09/28 17:20
수정 아이콘
재미있겠네요
개발괴발
20/09/28 19:41
수정 아이콘
사보나롤라 보면...
[경전에 적힌대로 하자]고 하면 어떤 종교든 얼마든지 폭압적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또다른 예시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Rule Breaker
20/09/28 21:14
수정 아이콘
넷플릭스에 없는게 아쉽네요. 왓챠플레이는 한번도 결제를 안해봤는데.. 쓸만한가요?
쪼아저씨
20/09/28 23:02
수정 아이콘
어제 1년구독권 99000원에 나와서 4인팟으로 가입했는데 (1인 25000원정도) 영화종류랑 일드가 많더군요. 연간 2.5만이면 제값하는거 같습니다.
물론 뭘볼까 고르기만 하다가 하나도 보지는 않았습니다.
20/09/30 14:46
수정 아이콘
휴 보셨는줄알고 깜짝놀랐네요
스팀이랑 넷플 왓차같은건 채우는 건데
쪼아저씨
20/09/30 19:33
수정 아이콘
그럼요. 국룰 아닙니까. 엄지척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8241 [일반] 낙오자들의 시간-가비지 타임 [55] lasd24112982 20/09/28 12982 12
88240 [일반] 화제의 롯데리아 밀리터리팩 후기 [68] 길갈16054 20/09/28 16054 20
88238 [일반] [후기] 메디치 더 매그니피센트 시즌 2, 르네상스의 명암을 보여주다 [7] aurelius11692 20/09/28 11692 7
88237 [일반] 무시당하고 열받은걸 행동으로 표현한 경험.... [10] 사람은누구나죽습니다8891 20/09/28 8891 6
88235 [일반] 제 뇌가 망가진거 같습니다 [34] 뒤틀림13349 20/09/28 13349 1
88234 [일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더빙한거 몇개 올리러 왔습니다! (강철의, 앤트맨, 소니공기청정기) [3] 유머게시판7709 20/09/28 7709 7
88233 [일반] 왜 나의 코미디는 웃기지 못하는 걸까(feat. 영화 '조커'의 아서 플렉) [8] 치열하게10812 20/09/27 10812 2
88231 [일반] 레드 벨벳에 빠져 지낸 지난 한 주 [23] 아난10649 20/09/27 10649 4
88230 [일반] 영화 '디바' 후기입니다..신민아의 재발견?no스포 [26] 에버쉬러브12011 20/09/27 12011 0
88229 [일반] [미디어] 요란한 빈 수레의 지배 [46] 아루에16613 20/09/27 16613 53
88228 [일반] 40대 미혼의 일상 [32] CastorPollux16797 20/09/27 16797 10
88227 [일반] [웹툰추천]가볍게 볼수 있는 웹툰 몇개 추천 합니다. [26] 치토스12511 20/09/27 12511 3
88226 [일반] [그알]이종운 변호사 실종사건.jpg [35] 청자켓23735 20/09/27 23735 5
88225 [일반] [팝송] 토니 브랙스턴 새 앨범 "Spell My Name" [4] 김치찌개7359 20/09/27 7359 2
88223 [일반] 태조 이성계가 이방석을 왕세자로 삼던 당시 상황 [53] TAEYEON14224 20/09/26 14224 5
88222 [일반] 새로운 종류의 스캠 이메일 받았습니다 [21] OrBef13538 20/09/26 13538 15
88221 [일반] [역사] 1537년, 노예제를 금지한 교황칙령(Sublimis Deus) [5] aurelius10337 20/09/26 10337 4
88220 [일반] 북한 ICBM과 북한에게 절대 지원해주면 안 되는 분야 [66] 그랜즈레미디13642 20/09/26 13642 12
88219 [일반] 공무원 시험에 추첨 요소를 도입한다면? [66] 대파11652 20/09/26 11652 2
88218 [일반] [역사] 어원으로 보는 서양어와 번역어, 그리고 사고방식의 차이 [9] aurelius10521 20/09/26 10521 14
88217 [일반] 선진국과 국제연합이란 용어의 문제점 [63] 아리쑤리랑15619 20/09/26 15619 59
88216 [일반] 대충 알아보는 태종 이방원의 숙청 [61] TAEYEON14955 20/09/26 14955 4
88215 [일반] [역사] 라틴교회는 어떻게 시민사회의 선구자가 되었나? [4] aurelius9170 20/09/26 9170 1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