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에서 너구리가 케넨으로 ‘이야압’ 외치며 돌진하니, 상대방이 혼비백산하며 싸울 생각 안하고 허둥지둥 퇴각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찌릿찌릿한 감정이 전해졌다.
한동안 접었었던 롤이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내가 왜 롤을 접었는지 이유를 잊은채 다시 롤을 깔게 되었다. 설치되는 동안 머리속으로 멋지게 한타 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갖고 있다.
현실에서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지만, 게임에서 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블리츠를 픽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기없으면 중국, 일본에서도 인기 없는 것처럼,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도 내게 끌려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와 합을 맞추던 원딜은 천천히 하라고 다독여 주었지만 2데스를 더 하니 이내 그의 인내심에 고갈 되었는지 씨에스까지 포기하며 나에게 엄청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머지 세 명의 배심원도 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면 이제 게임 끝날때까지 그들에게는 나에게 욕을 할 수 있는 정당한 기회가 부여 된다.
20여분 동안, 체벌이 사랑이었던 학창시절보다 더 심한 구타를 당하고 나니 ‘아 내가 이래서 접었었지.’ 하며 과거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금새 까먹었던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2. 하지만 사람은 까먹는다.
며칠 지나서 다시 롤에 접속했다. 그날은 오랜만에 복귀한 첫 판이라서 서툴렀던 것이라고 내 자신을 위로했다. 이번엔 내 모스트픽 아이번을 픽했다. 사람들은 ‘아니 여기서 아이번을?’ 이라며 물음표를 찍었지만 숙련도 레벨 7을 확인하고서는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아이번은 다리는 길었지만 항상 전투에 한발 늦게 도착 하였고, 내 팀원은 데스가 늘어날 때마다 한숨도 깊어져만 갔다.
미드에게 블루라도 줘야 겠다 싶어 핑을 찍고 강타를 써서 먹었다. 그러자 우리 미드가 순식간에 우리 어머니를 동물에 비유하고는 탈주해 버렸다.
(아이번은 원래 이렇게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동안 턱걸이로 골드를 달며 승리 스킨 받았다고 히덕거렸지만, 이제 주변에 게임하는 사람도 없고 혼자서 히히덕 거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 동안 몇번의 승리 스킨을 받았었지만 어디 자랑할데도 없고 나 혼자만 잘했다고 자기 위로만 했었다. 그리고 나면 어김없이 현자 타임이 오곤 했었다.
다시 한번 게임을 삭제했다.
하지만 또 까먹을 것이다.
3. 가수 이소라는 그러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노래를 부를때 한 손을 관자놀이 쪽에 갖다 대고 눈을 지그시 감곤 한다. 마치 노래를 썼을 그때를 회상하는 듯.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사하는 그녀는 힘들었던, 잊고 싶었던 그 기억들을 노래로 기록하고 부를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보는 듯 했다.
고통스러웠을 테지만 그녀는 그 기억을 잊고 싶지 않은가 보다.
4. 담원도 작년의 그 패배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구리가 파이크로 원더 대가리 찍어 버렸으면 좋겠다. 파이크 나올 확률이 적으니 다리우스로 찍어버렸으면 좋겠다. 뭐가 어찌됐든 찍어버렸으면 좋겠다.
담원이 이기고 선미가 쇼메이커 옷입고 가시나 불러주면 좋겠다. 담원이 이기고 김동준이 울분을 토하며 좋아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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