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이나 글로 쓰기 어렵다는 생각을 종종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쌈빡하게 한 단어로 표현할 그런게 있는데 생각이 안 나... 하면서 말이죠. 분명 책을 멀리해서 그럴겁니다. 제대로된 독서를 해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요.
그리하여 가뜩이나 요즘 할 게임도 없어 무료한 차에 퇴근길에 서점에 들렀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마음에 드는게 없어 결국 구매는 하지 않고 나왔습니다. 대신에 서점에서 나오는 자신이 뭔가 교양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했죠.
그렇게 교양뽕에 취해서 매장을 나가는데 문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별 생각없이 지나치려는데 아주머니께서 말을 거시더군요. 혹시 XX중학교 나오지 않았냐고요.
머릿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일단 출신 중학교는 맞는데... 진짜 알고 말한걸까? 아니면 아무거나 말하면서 이니시를 거는건가? 대학교 때 화학과라고 말하니까 갑자기 양자역학에 대해서 말하던 미친X도 있었는데 (실화입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나?
그냥 아니라고 말하고 빠져나올까 했지만 그래도 한 두마디는 더 얘기해보자는 생각으로 맞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존대가 반말로 바뀌고 목소리 톤이 한 단계 올라가더니 제 얼굴이 하나도 안 변했다며 여전히 인물 좋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혹시나 했지만 인물 좋다는 말에서 의심 게이지가 피크를 찍으려 하는 순간,
"너 이름이 OO 인데 성은 잘 생각이 안 난다?"
어? 명찰을 달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름까지 알 정도면 사이비쪽은 절대 아닌데? 혹시 친구 어머니인가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여쭈어봤습니다. 죄송한데 누구시냐고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음악 선생님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정말 카리스마 있던 분이었습니다. 근데 그것 말고는 특별한 기억이 없더군요. 제 담임을 맡으신 적도 없고, 문제를 일으켜서 서로 대면한 적도 없고, 그냥 음악 담당하시던 선생님이셨죠. 아니면 제 기억력이 아메바 수준이라 기억을 못 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잠깐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서로 갈 길을 가는데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킹시국이라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근 20년만에 보는 제 얼굴을 어떻게 알아보셨냐는거죠. 집에 돌아와서 친한 중학교 동창에게 톡으로 이 얘기를 해주었더니만 제 얼굴이 너무 X같아서 마스크로 가려도 X같다는 답변을 해주더군요.
하하... 몇 분간 서로 육두문자가 섞인 얼평을 주고 받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선생님과 친구들 이름을 꺼내보았습니다. 같은 반이었던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성함, 한 손으로 턱걸이 하시던 체육 선생님(덜덜), 스케치북에 줄 하나 그어놓고 이게 예술이라고 하시던 미술 선생님 등. 겸사겸사 오랜만에 먼지쌓인 앨범도 꺼내서 촌스런 옛날 사진을 찍어 올리며 서로 낄낄거리다보니 참 즐겁더군요.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동창회도 하지 않기로 했는데 조금이나마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할 얘기는 이게 끝인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음... 글이 좀 있어보이게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는 식으로 끝을 맺어보겠습니다.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1. 코로나를 죽입시다. 코로나는 우리의 원수.
2. 여러분들도 오랜만에 앨범을 꺼내 추억에 젖어보아요.
3. 친구의 얼굴은 마스크를 써도 X같다.
4.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
5.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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