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내일은 바로 그날이다. 이 날을 위해 그렇게 공부했던가...아니 회상해보면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딱 한 해.
올해 한해는 열심히 했다. 그래. 공부한 만큼은 쏟아내보자.
오늘은 예비 소집날. 느지막히 일어나서 전날 고지받은 고사장으로 가봐야 한다.
대전 중앙고등학교.
대전 유성고등학교를 다닌 나에게 중앙고는 미지의 세계였다.
옛날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중앙고로 배정받은 몇몇 학교 친구와 함께 어찌어찌 운동장에 모였다. 학교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운동장에 모여있는데 교실에선 신기했는지 중앙고 1,2학년생들이 청소를 하다말고 창 밖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내일이다. 오늘은 뭐하지.
예비소집이 끝나고, 첨 가본 곳 답게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오늘은 좀 맘 편하게 보내고 싶은데-
돌아오던 길에 음반사에 들렀다.
주머니에 있던 돈으로 앨범을 샀다.
투니버스 만화 주제가 앨범 WE.
학년초에 친구 재용이에게 3만원에 산 중고 cd 플레이어에 넣어 음악을 들어본다.
귀가. 엄마는 아직 퇴근전이고 난 할일이 없다. 맘이 제법 싱숭생숭하다.
하릴없이 컴퓨터를 켜고 삼국지영걸전을 실행한뒤 크게 의미없는 마우스질을 몇시간 한다. 어머니가 귀가하셨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 내일 피곤하지 않게'
맞다. 일찍 자야지. 지난 한 학기를 괴롭히던 아침마다 화장실로 달려가게 만들던 과민성 대장염도 내일은 괜찮았으면 좋겠다.
잠자리만 바뀌어도 쉬이 잠을 못이루는 예민한 내가
이런 중요한 날 어쩐 일인지 잠이 잘 든다.
아침이다. 배가 안아프다.
어머니께서는 정성들여 아침을 차려주시고 난 꼭꼭 씹어먹는다. 컨디션이 끝내준다 오늘은 왠지 결과가 좋을것 같다.
집에서 배웅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같은 시험장이던 친구네 부모님 차를 얻어타기 위해 같은 아파트단지 친구집으로 향한다.
고사장 앞에선 어느학교일지 모를 어린 후배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이상한데, 진짜 컨디션 좋다.
고사장안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는다. 매일 아침 아프던 배도 걱정조차 안되고 맘 한켠에 되도 않는 걱정이 든다.
이거 수능 너무 잘봐서 우리 집에 안맞는 인서울이 넉넉하면 어떡하지?
..
친구들도 하나둘씩 들어온다.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이지만, 우리교실이던 다른 교실이던 같이 잘 봤으면 좋겠다.
시험이 시작된다. 가장 자신있던 언어영역 그것도 듣기평가부터 시작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문제를 기다린다.
음. 불국사에서 길을 찾으라고? 그래.
....
????????????????????????????
그날. 언어영역 듣기평가를 생애처음으로 틀려본 순간이었다. 문제가 만만치 않다. 나는 문제를 상당히 빨리푸는 편에 속한다.
언어영역 시험시간 100분중에 늘 반은 남겼는데, 그날은 문제를 다 풀고 나니 10분이 남았다. 올해 시험이 전년도가 물수능이라 대단히 어려울것이라 생각했지만 상상이상이었다. 1교시 쉬는 시간, 우리학교 친구 2명이 학교를 떠났단 소문도 들려온다.
2교시...점심은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다같이 울상이었다. 3교시..수탐2...4교시 외국어....제2외국어...
와 진짜 장난아니다. 돌아오는 버스안., 버스안에 울려펴지는 라디오뉴스에선 당연히 오늘 시험에 관한 얘기가 첫꼭지이다.
"얘년보다 어려운 가운데 30점이상의 하락이 예상..."
뉴스를 듣던 우리 모두 어이가 없었다. 겨우 30점?
집에 온 나를 어머니께서 맞아주신다. 시험 잘봤니? 시험 너무 어려웠어. 일단 밥부터 먹자.
오늘 차를 태워주신 친구네 집에서 같이 채점을 하기로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안에서 친한 3명이서 같이 하기로 했는데 문과 2, 이과 1이다.
EBS에서 한문제씩 해설을 해주고, 가채점을 하는 우리 손들도 하나같이 떨린다.
이과인 내 친구는 모의고사보다 10점이 떨어졌고, 문과인 내친구는 점수가 떨어지지 않았다. 난? 60점이 떨어졌다.
시험 전전날 담임선생님꼐서 가채점하면 자기전화로 꼭 점수를 알리라고 했다, 겨우 전화를 걸어 점수를 불러드린다. 담임선생님 목소리도 좋지 않다.
아침에 컨디션 좋았잖아. 방심하면 안되었었는데....ㅠㅠ 친구들도 내 눈치를 보며 겨우 위로의 말을 건내지만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겨우겨우 집에 들어온 나. 어머니의 기대어린 눈빛에 절대 보답을 할수가 없는 상태이다. 그날밤은 19살 남자답지 않게 정말 엄마품에 안겨서 펑펑 울었다. 한밤중에 고모네서 나 시험 잘봤냐고 전화가 왔지만 어머니께서도 울음섞인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받으셨다. 내 맘은 아무도 모를거라고.
다음날이다. 수능 전전날까지 7시 20분까지던 등교시간은 갑자기 9시로 바뀐다. 피곤을 뒤로 한채 학교를 떠나던 날은 불과 3일이 지났을뿐인데 어느덧 먼 옛날일같다.
이렇게 느리게 움직여도 학교를 갈수 있다니.
학교는 초상집이다.
불수능. 불수능이다했지 이럴줄은 몰랐다. 들리는 소문으로 일부문제는 학원강사들도 틀릴 수준이었다 한다. 담임선생님도 참담한 표정이다.
하지만 먼저 위로의 말을 건낸다. '어려울 거라고 하긴 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어...............'
라며 나직히 뒤로 도신채 울먹이시며 말씀을 하신다. 가장 절망을 할 학생들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셨던것 같다. 아무튼 학교는 입시전문가 집단답게 전교생의 가채점 점수를 파악한후 곧 입시대책에 나서기 시작한다. 전날 60점이 떨어진 나는 오히려 정상이었다.
그해, 수시란게 도입이 막 되었지만 수시는 한 학년에 두어명 쓸까말까. 전해까지 있던 특차도 없어지고
그해 입시는 수능+면접이 핵심이었다. 학교는 능숙하게 학생들을 3부류로 분류했다.
<인서울반>, <충남대반>, <그외>
나는 충남대반이었다. 인서울반과 충남대반은 면접과 논술 대비를 시켰고, 그외는 그냥 놀았다. 인서울반과 충남대반의 차이점은 충남대반은 대전권대학 입시설명회에 갔고, 인서울반은 안갔던 그 차이다. 수능 이후 학교는 놀랄만큼 변했다. 오전에 아주 널럴한 분위기에서 면접 실습을 하고, 12시면 집에 갔다. 친구들끼리 12시면 끝나서 버스정류장 근처 PC 방에서 단체로 스타하던게 일상이었다.
그해의 2학기는 그렇게 흘렀다. 학교는 그냥 오전마다 친구들 보기 위해 가는 곳, 스타하러 가는 곳.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성적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각 반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란 오더가 떨어졌다.
한명씩 한명씩 부모님 입회하에 원서를 어디쓸지 상담을 하는 거였다.
난 기대치보다는 약간 낮은 성적이었던 상황. 원래 가고싶던 충남대 XX학과말고 2순위던 국문학과나 철학과를 쓰려했다. 워낙에 내신이 개판이었기도 하고, 옆에 계시던 어머니도 한말씀하셨다. 얘가 원래 여길 가고싶긴 한데 점수때문에 불안해서 여길 쓰려고 해요.
내 점수와 배치표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담임선생님이 한마디 하신다.
'음..........나군은 원래 쓰려던 한국기술교육대 쓰구, 혹시 모르니까 산업대로 한밭대 쓴다고 했으니까 쓰구요. 가군은 점수맞춰서 넣지 말고 원래 쓰려던 데 넣어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한번 해보시죠?'
엄마나 나나 팔랑귀. 냉큼 그 떡밥을 문다. (당시 입시체계는 가. 나, 다 군 각각 1개씩, 그리고 군 외의 산업대는 추가로 더 지원할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전 다군은 아예 쓰지 않았구요)
원서 접수 시즌. 학교마다 가서 줄을 선다. 당시 이미 2001코카콜라 스타리그가 개최한 인터넷 세대. 아직도 대입 원서접수는 '직접' 접수받던 시기이다. 대전이었던 충남대, 한밭대는 그렇다 치고 원서접수하러 천안까지 간건 고역이었다.
충남대는 대충 수능 11%, 한기대는 17%, 한밭대는 25%선이 최초합격권. 내 수능성적은 2등급. 딱 걸쳐있던 상황이었다.
한기대는 성적 하나로 끝까지 가는 거였지만, 한밭대랑 충남대는 면접이 포함이었다. 처음 면접은 한밭대. 불수능의 여파어서 그런지 당시 경쟁률이 수십대 1이었다. 나중에 서강대로 진학한 내 다른 친구조차도 한밭대를 썼을정도였다. 이놈의 불수능 안전빵.
토론면접이었고 지적재산권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난 이놈의 성격이 늘문제다. 옆의 사람들이 하나하나 기조 주장을 하던 찰나. 내 주장도 원래는 그쪽인데 맘속에 반골이 든다.
다른 주장을 하고 싶다
했다. 그리고 시원하게 망했다. 하아.............미친
한 일주일인가 뒤였나? 충남대면접이다. 충남대는 정말 넓었다. 사실 고3때 매일 고등학교 등교를 하면서 그 앞을 버스로 지나갔는데, 이 학교를 가게 될 거란 생각조차 안했다(난 고3때 미친듯이 성적을 올린 케이스에 해당한다. 고3첫 모의고사 400점만점 230점-마지막 모의고사 360점).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서린 얼음들도 새롭기만 하다. 커다란 강의실에서 하나둘씩 풋풋한 아이들이 모여든다. 서로 눈알을 굴리며 각자 긴장해있는데 어디선가 우르르 재학생들로 보이는 일단의 집단들이 들어오더니
뭐하니
긴장했네
안심심해?
방해만 안되면 얘기나 하자
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지원자들을 둥그렇게 앉게하더니 말을 건낸다.
신기했다.
난 시험을 보러왔는데 어느순간 그들과 동화되어 잡담을 하고 있었다. 긴장? 그딴건 어느새 날아가버렸다. 뭐지? 이게 대학인가? 너무 신기했다. 면접 내 차례. 오 이런기적이, 며칠전 한밭대에서 물어본 질문과 똑같은 질문 아닌가.
알다시피 면접 망하면 그 면접을 오랫동안 되씹으며 머릿속에 이미 지나갔지만 모범답안을 끊임없이 만들며 재생시킨다.
그걸 실전에서 재생할 때가 됐다!!!!!
그날 단과대 언덕을 내려가던 길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내가 모르던 대학생이라는걸 경험한 기분? 그리고 워낙에 개판이던 내신을 면접으로 조금은 만회한 기분?
학교들마다 성적발표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친구들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알바도 구하고, 정말 이제 면접도 다 봤겠다 아무 생각없이 1월을 보내간다. 언젠지 기억안나는 어느날 합격자 발표.
충남대 후보 5위. 한기대 최초합. 한밭대 후보 13위.
뭐 하나 쉽게 가는 길이 없구나. 일단 혹시 모르니 한기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순번을 기다린다. 여전히 인터넷으론 안되는 고로 등록도 가서 했던 기억이 난다. 겨울방학은 어느새 끝났고, 이제 졸업만을 앞둔 고3정말정말 막바지이다. 재수를 결심한 친구도 있는 반면 많은 친구들은 이제 진로를 결정짓고 나중에 대학가서도 연락하자며 서로 우정을 불태운다.
내일은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이제 나도 대학생인가? 그냥 저 공부만 엄청 시킬것 같은 한기대를 가야하나?(위에는 안쓴거였는데 당시 한기대는 천안중에서도 외곽 구석에 있었고 한기대 주변의 시설이라곤 정문의 편의점 하나가 유일한 정말 내가 남자셋여자셋 등에서 보던 대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밤이었다. 전화가 왔다.
충남대 어쩌구저쩌구
!!!! 내 차례닼!!!!!!!
좀 이따가 전화가 왔다
한밭대 어쩌구저쩌구
안가여!!!!!!!!
내일이 졸업인데 등록은 모레까지 해야하고, 등록한 곳은 취소해야 한단다. 졸업식날 학교에 가서 행사가 끝나자마자 사진도 못찍고 버스에 올랐다. 대학교 영업시간내에 취소를 하러가려면 빠듯한 시간. cdp에 들리던 투야 1집을 벗삼아 등록 취소를 하러가니 직원들이 초상집바라보는 눈으로 내 등록취소를 해준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가고싶던 대학등록을 마쳤다. 한켠으론 아쉽지만, 그깟 졸업사진 대학 등록에 비하면...
이때가 2월 초중순. 하염없이 남은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2주정도가 지나던 어느날 위에서 썼던 10점 떨어진 이과친구는 사실 충남대 농대를 갔는데, 그 친구가 이상한 단서를 던져줬다.
'새터라는게 있데'
'그게 OT래는데?'
'난 연락왔는데 니넨? 설마 후보라고 안오나?'
마음 안에서 이상한게 꿈틀댄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용기로 인터넷을 뒤져서
'충남대학교 XXXX대학' 연락처를 찾는다.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거기 혹시 새터라는게 궁금해서 전화걸었다고 하니
잠시 당황하며(아마 단과대 행정실이었을거다), 학생회실로 전화를 연결해준다. 누군가 어느 여자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저기여
친구한테 들었는데 새터라는게 있다고 들었어여
제가 사실 추가합격생인데여
가도 되여?
..
오지말라고 하겠나.... 며칠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눈이 동그란채로 단과대 한 강의실 안에서 희망 분반 설문지를 쓰고 있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분수령이 되었을 나의 대학생활은 그해 겨울을 끝으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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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기 한번 써봤습니다.
사실 그 해 겨울이 지금까지도 제 삶에서 가장 맘편하게 있었던 겨울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는 그 겨울을 다시 경험하려면
지금까지 살았던 인생의 정확히 절반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여전히 요즈음 되면 그때가 생각나고, 기억할수록 특별하고,
사실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 젊음도 그립고,
너무나 즐겁게 생활했던 대학도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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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애 가장 아무 생각 없이 놀았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맨날 친구들하고 만나서 게임하고 놀았습니다. 저도 추합이었는데. 될대로 되란 생각이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편했는지 모르겠어요.
군대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많이 봤지만, 저도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말 재밌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