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가 <작가 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글 한편 써보게 되었네요. 서툰 감상문이지만, 감명을 공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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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작가 미상
—예술적 진실의 힘
<1>
<작가 미상>은 예술 양식의 양극단을 오가면서 무엇이 진정한 예술의 조건인지 묻는 영화다.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격동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한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다.
시작은 ‘퇴폐 미술전’이다. 나치는 국가주의에 복무하지 않는 예술을 퇴폐로 규정했고, 국민은 이와 같은 국가의 판단에 세뇌되어야 했다. <작가 미상>의 예술가 쿠르트는 어릴 적에 이모 엘리자베스와 이 퇴폐 미술전을 보러 갔다. 그곳에서 국가의 목소리를 들은 쿠르트는 “이제 화가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런 쿠르트에게 이모는 이 퇴폐가 ‘나는 좋다’라고 은밀히 이야기한다.
그런 엘리자베스는 나치에게 부적합한 개체였다. 나치는 그녀가 독일의 위대한 국민이 되기에 적절치 않은 유전형질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고, 불임시술을 강제했다. 이에 저항하며 총통의 건강한 군인을 열심히 낳겠다고 외칠수록 그녀는 ‘퇴폐’을 향해가는 꼴이 됐고, 결국 가스실로 보내지고 만다.
그렇게나 위대했던 나치는 전쟁에서 패하고 쓰레기가 된다. 전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갈리고 쿠르트는 공산권의 지배하에 있는 동독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교육을 받으며 노동자들의 예술가가 된다. 예술적 재능이 있던 쿠르트는 노동자의 주체성과 힘을 찬양하는 벽화 작업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하지만 노동자를 찬양할수록 실은 아무 의미도 정치적인 것도 없는 작업이라는 생각에 권태를 느낀다. 결국 아내와 함께 서독행을 감행한다.
쿠르트가 새로운 땅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예술은 아방가르드 그 자체였다. 어떤 이는 감자의 진자 운동에 천착하고, 어떤 이는 탁자에 못질만 하고, 또 어떤 이는 커터칼로 캔버스를 찢기만 한다. 이곳은 새로운 것 자체를 쫓는 예술의 장이었다. 이 환경은 쿠르트에게 설렘을 줬지만, 한편으로는 곤욕이었다. 왜냐하면 지금껏 그가 밟아왔던 예술은 이미 정답이 있는 것을 탁월하게 시현하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학우들이 나름의 개성을 갖고 하던 작업을 꽤나 그럴 듯하게 훔치던 쿠르트는 서서히 감을 잡아가는 듯 보였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를 지켜봤던 친구도 인정한다. 하지만 쿠르트의 입학을 허가했던 스승인 안토니우스의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볼 때 쿠르트의 작업은 뜬구름 잡는 것에 불과했다. 안토니우스는 구리스만을 사용하여 예술작업을 하는 괴짜인데, 실은 사연이 있었다.
그는 참전 군인으로 공군의 무전기사였다. 임무 수행 중 크림반도에서 격추되고, 조종사는 즉사, 자신도 죽음의 문턱에 놓인다. 그런 상황에서 그곳의 주민인 타타 유목민이 그를 기적적으로 구하게 된다. 화상을 심하게 입었던 안토니우스는 타타 유목민이 계속해서 발라주었던 구리스와 추위에 떨던 자신을 덮어준 펠트이불의 감각을 뼈 속 깊이 각인한다. 간호와 보호를 받던 그는 1년 여 뒤 미국에 항복한다. 타타 유목민은 안토니우스의 전투기가 폭격할 바로 그 지역 사람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안토니우스는 탁월한 아방가르드 예술가가 된다.
<2>
스승의 사연을 들은 쿠르트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인어른인 칼 시반트가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도 텅 비어 있었다. 칼은 사위의 세계를 조롱한다. “흰 바탕에 흰 그림. ‘공허의 우화’라고 이름 붙이면 되겠군.” 여전히 고민하는 쿠르트 앞에 우뚝 서 있는 칼은 인간 개체로 보이지 않는 견고한 존재다.
<작가 미상>에서 가장 곤욕스러운 관계가 바로 쿠르트와 칼이다. 칼은 나치 시절 가장 충성심 높은 의사 중 하나였고, 괴링과 괴벨스 부인의 주치의였다. 그 충심은 위대한 나치를 위해 꼿꼿이 섰고, 곡선은 견디지 못했다. 쿠르트의 이모인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사정을 칼에게 말하며, 관용을 구할 때, 그는 그녀를 죽음의 아가리에 밀어 넣었다. 자신의 구두에 묻은 그녀의 눈물을 닦은 손수건을 거리낌 없이 쓰레기통에 던지는 그는 단호했고 견고했다.
나치의 깃발이 부러지고 나치의 구두가 심판대에 오를 때도 칼은 빗겨갔다. 그는 소련의 고위 간부에게 사적인 은혜를 베풀고 공적인 우정을 얻는다. 공산당의 세계에서 칼은 위대한 인민공화국의 톱니바퀴가 된다. 새천지가 열리고 권력이 전복된 세계 속에서도 그는 단호했고 견고했다.
칼은 흔들림이 없다. 자신이 충성하던 세계가 붕괴할 때도, 새로운 권력으로 충심을 갈아탈 때도 단호하다. 그 뿐인가. 자신의 외도를 쿠르트에게 걸릴 때도 아무렇지 않다. 도리어 그 때 흔들린 존재는 쿠르트다. 형편없는 씨라고 판단하여 외동딸의 자궁에서 태아를 긁어낼 때도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쿠르트는 일방적인 장인의 폭력에 속수무책이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계단 청소 일을 뻔히 알면서 시키는 대도 그는 달리 저항하지 못한다.
하지만 예술이 흔든다. 쿠르트의 예술이, 칼을 흔들어 낸다. 체계이자 정신 그 자체인 세계가 균열한다.
<3>
<작가 미상>에서 칼은 인간이지만,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던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처음으로 당혹하는 순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제인가. 그것은 그가 쿠르트의 구리스를 보았을 때이다.
안토니우스는 자기가 온전히 아는 유일한 것이 구리스와 펠트이불이었다. 그의 예술은 아방가르드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의 힘은 오롯한 자신의 깊은 체험을 통해서였다. 쿠르트는 어떤가. 자신에게 예술의 영감을 불어 넣어줬고 ‘퇴폐 미술’을 사랑하던 이모. 그녀가 나치에게 끌려가면서 이를 똑바로 보라던 모습. 그런 이모와 같은 이름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칼의 딸 엘리. 자신의 가족을 파괴했던 나치의 얼굴과 성공했던 노동자 예술가 신분을 버리고 경계를 넘었던 그날 밤의 긴장.
쿠르트는 나치와 공산당의 깃발을 거꾸로 잡지 않았다. 그저 구리스와 펠트이불을 숙고했을 따름이다. 아무런 포트폴리오를 챙겨나오지 못했던 쿠르트는 뒤셀도르프에 입학 할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쿠르트가 거쳐 온 삶의 궤적을 보았다. 그리고 쿠르트는 그 궤적을 예술에 담았다. 그것이 가능했을 때 비로소 견고했던 칼은 흔들렸고, 비틀대며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작가 미상>은 예술은 결국, 한 개인이 펼쳐 내는 세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이 지극히 사적일지라도, 사회적 효용과 비판의 대상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것을 드러낸다. 결국 사회적 폭력이 깊이 각인 되는 곳은 개인의 몸이기 때문이다. 연약해 보이는 협소한 한 개인의 세계가 시대의 진실을 보존하는 견고한 그릇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