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Hayton이라는 영국인이 저술한 책입니다. 2020년 출판된 책으로 아직 국내에 번역본은 없지만, 다소 흥미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소개할만한 가치는 충분하리라 봅니다. 저자가 묻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은 5천년 간 불변하는 일종의 '영원의 문명'인가?
-중국이 주장하는 중화사상이라는 것에는 실체가 있는 것인가?
-중국이 주장하는 중국 고유의 영토란 것에는 역사적 실체가 있는 것인가?
-중국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만고불변의 오랜 전통의 산물인가?
어떻게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까지는 없는 질문들이지만, 서구인들이 보통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 내지 환상 (사실 한국인들 중 상당수도 같은 종류의 편견과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을 깨부수는 걸 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중국이라는 관념도, 중국인이라는 정체성도, 중화사상이라는 이념도, 중국의 영토관념도 모두 19세기-20세기 격동기에 태동한, 지극히 "근대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많은 연구들을 종합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중국사 전문가가 아니지만, 수많은 중국사 전문가들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이를 종합하여 일반대중이 소화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청사(New Qing History) 학파의 저자들을 대거 인용하고 있으며, 또 일본인 저자들의 작품도 다수 인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중국사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John King Fairbank의 유산을 해체(?)하면서 최신의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대청제국의 근대화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황쭌센(조선책략을 집필한 그 사람 맞습니다), 량치차오, 캉유웨이, 쑨원 등의 활동을 볼 수 있으며 그들이 후학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들이 어떤 신조어를 만들었는지, 그들이 설정한 국가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일본이 끼친 영향이 또 얼마나 거대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죠.
사실 국내에 이미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는 "중화민족의 탄생: 중국의 이민족 지배논리" 혹은 "중국 내셔널리즘: 민족과 애국의 근현대사"를 읽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책이지만, 영토, 국민, 주권 등 항목별로 어떻게 중국이 "발명"되었는지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어 또 하나의 유용한 교양서가 될 수 있습니다.
본 저서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중국의 발명 : 원(몽골), 명(한족), 청(만주)의 성립의 역사를 개관하며 중국 역사가 얼마나 변화무쌍했는지 보여줍니다
(2) 주권의 발명 : 근대적 주권개념이 중국역사에 어떻게 도입되었는지 추적합니다
(3) 한(漢)민족의 발명 : 19세기 중엽 한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확산되었는지 추적합니다. 특히 만주족을 멸하고 한족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당대의 슬로건에 주목하면서, 예컨대 객가족이나 묘족도 그 슬로건에 공감하였는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4) 중국사의 발명 : 한족을 중심으로는 순환하는 왕조사관이 어떻게 국가에 의해 포섭되고 왜곡 내지 유용되었는지 추적합니다.
(5) 중화민족의 발명 : 중국의 수많은 민족들을 어떻게 중국인(Chinese Nation)으로 만들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6) 중국어의 발명 : 중국공산당이 수많은 토착언어가 존재하는 대륙에 단일 표준어를 어떻게 강제하려고 하는지 추적합니다. 저자는 중국어라는 표현 자체가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모두 유럽어라는 단일 언어로 퉁치는 것만큼 오해를 사기 쉽다고 말하는데, 저도 예전에 같은 말을 한적이 있어 꽤 공감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한자의 기능은 마치 이모티콘과 같아서 예를 들면 유럽대륙 전체가 같은 이모티콘을 쓴다고 가정하고 달모양 이모티콘을 프랑스에서는 Lune 그리고 독일에서는 Mond라고 발음하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7) 영토의 발명 : 근대적 영토개념이 중국에 어떻게 도입되었고, 이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적용하였는지 아울러 중화민국을 건설한 주역들은 영토를 어떻게 규정하고,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영토를 어떻게 규정하였는지 추적합니다.
(8) 해양영토의 발명: 마찬가지로 근대 이전 중국에 해양영토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이것이 어떻게 중국에 도입되었고 중국이 생각하는 주관적 해양주권이 어떻게 점차 확산/팽창하고 오늘날 남중국해에 각종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저서가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