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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4 10:21
능력주의 비판의 가장 큰 맹점인 것 같습니다. 사회의 한정된 자원을 능력 아니면 무엇을 기준으로 분배할거냐, 라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죠.
일정 허들을 넘은 사람들에게 추첨제로 분배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당장 저부터 억울할 것 같아요.
20/12/14 10:11
모든 제도는 결점이 있는거죠
능력주의가 싫고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더 공정한 대안이라는 게 있어야 합니다 윤리적 담론이다 보완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실제로 한국사회도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해가고 있죠 근데 딱 거기까지죠
20/12/14 10:15
저도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20대 후반까지는 능력주의 세대인데 아랫세대는 확실히 다릅니다. 능력의 상당부분은 '운'인데 능력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라고 생각해요
20/12/14 10:28
배우가 자기 연기 잘해서 상을 받는 데도 차려놓은 밥상 잘 떠먹었을 뿐이라고 겸손해 하는게 당연시되는 우리의 문화는 저런 비판이 나올수 밖에 없는 영미권과 아직까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진국 후발주자로서 개개인이 아무리 출중한 능력이 있어도 연공이나 서열, 평판 혹은 온갖 형식적 사회적 계급적 장벽을 좀처럼 뛰어넘지 못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치는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어떨때는 저런 좋은 말들은 앵글로색슨들이 사다리 걷어차고 영영 못쫓아오게 약 쳐놓는 의도아닌가 의심되기도 합니다.
20/12/14 10:29
대체로 경제문제는 늘 효율성과 형평성의 대립이죠. Trade-off라 둘다 잡는 방법은 없습니다.(둘다 버리는 방법은 있지만..) 이념도 결국 자유vs평등의 엄대엄이었던걸 보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인류의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
20/12/14 10:32
샌델은 능력주의의 반대로 이전시대의 귀족의 예를 들였는데 그러면 이걸 받아들여야 됩니다. 가문과 혈통에 따라 자신의 지위가 평생 결정된다는것. 돈을 아무리 벌든 뭘 하든 핏줄에 의해 인생이 좌우된다는걸 감수해야죠.
유럽에 가면 상류층과 서민층은 아예 서로 쓰는 단어 구사부터 어울리는거 자체가 다릅니다. 유럽의 지인들중 1명은 거의 200년동안 그 지역 유지 노릇을 해온 사례도 있는데 한국같이 평등의식이 강렬한 사회에서 그걸 수용할수 있을지 의문이죠. 그리고 현재 유럽의 경쟁력이 약화된건 이런 경쟁의식과 보상 감소도 적잖이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20/12/14 17:46
저는야 안읽어봐서 몰랐지만 와 정말 무섭네요
기껏 정의 외치며 대안이랍시고 한다는 얘기가 귀족사회라니 노블레스 오블리제 이런것도 결국은 신분제를 전제로 하는것 아닌가요? 가만보면 사람들은 유럽의 이러한 계층사회를 보고 떠드는게 아니라 고세율로 유지되는 복지사회의 좋아보이는 면만 보고 떠드네요
20/12/14 17:49
한국도 계층 고착화를 인정하고 사다리를 끊는대신 푼돈을 받는걸 조건으로 한다면 그거에 응할 부자들은 상당수 있으리라 봅니다만, 한국 사람들이 원할지가 의문이죠.
20/12/14 10:32
딱 본문에 써주신 그 정도의 함의는 있죠. 나의 성공엔 나 자신 외에도 주어진 환경, 사회, 운이라는 요소 등이 관여하고, 나아가서 개인이 이룬 성공을 사회와 일부는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 그런 함의는 누진 과세, 복지 등 분배 시스템으로 구현하고, 그 외의 나머지는 각자 개인이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과 운을 활용해서 각 개인의 능력에 따른 과실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그게 사회 전체적인 발전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각 개인의 성공이 오롯이 개인만의 힘이 아니라고 해서 개개인이 매번 본문과 같은 내용을 의식하고 살 필요는 없죠.
20/12/14 10:36
문제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깨야한다는 의식이 공정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도 착각이라는 것이죠.
미국의 현실은 모르겠으나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과 비슷한 취지로 도입한 지역균형 인재 전형만 하더라도 지방의 토호들 자녀가 입시의 수단으로 썼고 서울의 학생들은 역차별을 받았죠. 로스쿨만 하더라도 기존에는 사시에서 인생 말아먹는 사람들이 하도 많다보니 돈 많아도 머리가 진짜 좋거나 존버하면서 몇년간 계속 시험볼 깡 없으면 못하던걸 고위층/부유층 자제들 스펙 1줄행 되었고요. 아마 조국 학창 시절에 로스쿨이 있었으면 조국은 변호사 타이틀 하나 더 달고 나왔겠죠. 센델의 저 말은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여지와 기회를 줘야 한다는 말에서나 긍정이 되지 능력주의를 폐기하고 능력주의를 대체할 뭔가를 도입하려는 시도까지 간다면 그냥 헛된 환상을 쫓는 것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20/12/14 10:46
미국 어퍼머티브 액션도 뭐..그리 좋은 의도 아니죠.
유대계나 아시아계 돈없어서 기부금도 못내는 주제에 공부는 잘해서 많이 들어오는 거 싫다 이런 의도의 산물이 어퍼머티브 액션이니까.
20/12/14 10:37
능력주의가 가장 공정하고 뒷말이 없습니다
능력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면, 남는 건 부의 세습 및 계급 고착화밖에 없습니다 '가붕게는 그냥 뭐 하려 하지 말고 평생 가붕게로 살아라'는 과거 계급시대 마인드가 전국민에게 장착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20/12/14 10:43
이대로 오래 가면 그런 계급시대 마인드가 박히지 않을까요? 점점 세습 심해지고 자수성가는 어려워지는데 사람들 신분 상승욕구 강한 불균형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보는지라..
20/12/14 10:50
이미 사람들이 제일 공정하다고 느끼는 수능 정시도 부모 능력과 부의 세습입니다. 물론 수시가 공정하다는 말은 아니고요.
우리나라가 윗분이 말씀하신 대로 6.25 전쟁 때문에 계급이 파괴되어 능력위주의 성공이 가능한 시대는 끝났고 고착화되어가고 있죠.
20/12/14 11:05
그나마 제일 공정하니까 공정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당연히 부모능력에 의한 양의 상관관계는 있겠지만 어쨌든 수능 당일에는 온전히 개인 능력으로 평가받잖아요
그렇다고 개인 능력에 의한 서열화를 무시하는 순간, 그냥 부모님 능력이 자식 세대의 부로 100% 이어지는 계급사회가 되는 겁니다.. 아니면 이미 숱하게 망해버린 공산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겠죠
20/12/14 11:20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실게 아닙니다.
부모 능력을 유전과 부의 세습 양쪽으로 받기 때문에 잘하는 집안이 계속 더 잘합니다. 100% 수능정시 뽑는다면 지금보다 계급 고착화가 더 빨리 가속화 됩니다. 이럴경우에 밑바닥 계층에서 불만 폭동 슬럼화 가속되고 양극화 계급사회 고착됩니다. 따라서 지금은 강제로 밑에서 위로 퍼올려야 사회가 안정화 됩니다. 그래서 근데 이렇게 밑에서 뽑아서 계층을 이동시키려는 시도를 기득권계층중 못난 애들이 잘도 이용해 먹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고요. 상식적으로 가붕개가 짝짓기 하는데 용이 나올확률은 극히 낮죠.
20/12/14 11:25
이미 지역균형선발로 일정 퍼센티지는 소외 지역 학생들 뽑고 있지 않나요? 그 이상 어떻게 강제로 밑에서 위로 퍼올리자는 거죠?
그냥 대학선발, 기업채용 등을 뺑뺑이로 하는 게 훨씬 더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거 같은데요 그리고 말씀해주신 부분이 핵심인데, 보통 능력주의를 철폐한다고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보통 상류계급 중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20/12/14 11:42
전체 뺑뺑이야 당연히 안되겠죠. 다만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기는 해야합니다. 거기에 말씀하신대로 상류계급의 떨거지들이 이용못해먹게 막을 방법도 필요 하고요.
사회가 극도로 안정화되어 인간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학습 능력 하나로 점철되어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변동성이 많은 사회를 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문제 해결의 복잡함 이게 바로 현대사회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20/12/14 10:41
요즘 대중에서 주장하는 '공정' 담론이 구린 이유죠
나는 절차에 맞게 성공했으니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공정'이라는 단어로 포장되 공익은 개나줘버려로 확장되고 사회의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지죠
20/12/14 14:57
100% 동의 합니다. 요즘 세대가 말하는 공정이란건 "복잡한건 모르겠고 남보다 내가 불이익을 받으면 공정하지 못한 것이고 내가 받은 혜택 때문에 유리해진 것은 마치 선택적 기억상실처럼 인식하지 못하거나/합리화해서 애써 무시하는 것"이죠. 무슨 필기 시험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필기 시험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하는 순진함도 더해서요.
20/12/14 10:41
능력주의 맹신이 문제라는 거지 능력주의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야된다는 논지는 아니죠.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도 지금 되게 능력주의에 기반한 가치판단을 하고있지 않나요? 외모도 능력이다, 뚱뚱한 사람은 자기관리를 못하는거다 이런 말도 있으니까요. 명문대 출신은 그만큼 노력했으니까 대접받을 자격이 있고, 고졸 공장직원은 십대때 놀았으면 그정도는 감수해야한다는 시선도 흔하고요. 이런게 100% 사실이 아닌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사실인것도 아니죠. 실제는 항상 그 사이 어딘가 애매하게 있는 거니까.. 노력 열심히 하는것도 좋고 노력해서 무언가를 일궈낸 사람은 존경받아야 하지만 그에 대해 여러가지 관점을 가지고 볼 수 있어야 하고, 능력주의만으로 사람 차별하는 것 좋지 않다 - 정도로 읽히네요.
20/12/14 11:11
동의합니다.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믿음을 비판하는 것이 시장경제 체제를 버리란 말과 동의가 아니듯,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는 의견이 능력주의를 혁파해야한다는 의견으로 읽혀선 안 되죠.
20/12/14 10:44
자본주의 비판이랑 비슷한 늘상 나오는 얘기인데
그래서 대안은? 여기서 답이 없죠. 그냥 엔빵하자거나 랜덤갸챠 돌리자는 수준의 대안만 나오니까 그럴 바에 일단 줄세우기가 낫다는 거고. 능력주의가 절대적으로 공정해서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애초에 없어요. 저런 걸 대안으로 삼느니 그나마 이게 낫다는 거지.
20/12/14 11:17
굳이 한 쪽 방향으로 극단적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과거 자유방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극단적으로는 배급제 공산주의로까지 흐르기도 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현실 국가에선 그 비판에 대한 결론이 정부가 적절히 개입하고 통제하는 수정자본주의로 귀결되었듯,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의 결론이 랜덤가챠나 엔빵같은 극단일 필요는 없죠.
20/12/14 11:54
호모데우스라는 책을 읽는데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에 의해 붕괴할거라 예언했던 마르크스가 간과했던 점은 자본주의자들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이라 평하는게 재밌더군요
자본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위협을 실감해 그들의 저작을 흡수하고 자본주의를 수정하여 위기를 벗어났다는 설명이었습니다
20/12/14 10:46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 조차도 쉽지 않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 성공은 본인 노력으로 한 것이고 타인의 실패는 노력탓 타인의 성공은 운 덕이라고 하는거죠.
20/12/14 10:48
네 본문에 나오는 월령효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3월생 프로축구선수가 "나는 운 때문에 축구선수 됐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간 노력해온 시간들이 생각나겠죠.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타인의 실패에는 조금 관대한 정도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취지의 논지라고 이해했습니다.
20/12/14 10:48
대안이 없는 것도 맞고
이상한 대안 만든다고 난리치느니 능력주의가 낫긴하나 '지금 너가 받는 대우가 순전히 너의 노력 때문은 아닌 것을 명심하라' 그정도면 되겠죠.
20/12/14 10:50
능력주의를 비판하기는 쉽지만 그걸 대처하는 공정한 방식이라는게 사실상 없죠.
거기다 능력에 대한 평가를 정당히 하는 상황이라면 능력주의를 비판한다는건 능력에 따른 결과의 차이도 비판한다는것인데 이러면 결과에 따른 보상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생길겁니다.
20/12/14 10:52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를 택해야 하는것은,
여러가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택해야하는것과 마찬가지 이유일겁니다. 다만, 민주주의에서 우민독재를 조심해야 하는것처럼, 능력주의를 사회의 기본원리로 채택할수밖에 없지만, 능력만능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또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2/14 10:52
일단 국가든 기업이든 구성원이 노력을 하게 하는 쪽이 유리합니다.
그러면 노력의 가치를 높이 쳐 줘야 하지요. 아직은 그렇습니다. 기계가 인간을 먹여살리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거든요.
20/12/14 10:54
채용이나 입시에서 '이상한 거 하지 말고 시험으로 줄세우기 하는 게 제일 공정하다, 시험으로 뽑힌 사람이 제일 능력있다.' 라는 주장을 보면,
그 '이상한 거' 하자고 말 하는 윗선들은 진작 줄세우기로 뽑힌 사람들이고 심지어 윗선까지 올라가는 노오력까지 한 사람들인데 능력, 노력, 공정, 경쟁이라는 면에서 보면 그 사람들 말이 더 나은 거 아닌가... 그 사람들 말이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또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서 이상한 정책을 편다? 그런데 정치인들이야말로 스펙도 쌓고, 표를 얻기 위한 노력도 한 능력자들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가끔 듭니다. 자리를 놓고 매번 막고라나 라크쉬르를 해야 하는 건가 싶은...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20/12/14 10:54
능력주의 비판은 현 시대의 지도층을 겨냥하고 할 수도 있죠. 재벌의 성공에는 오로지 재벌만의 몫이 있는 게 아니라 계획경제 시절 정부의 지원에도 큰 빚이 있으니 재벌의 성공의 몫이 온전히 그 재벌 구성원(소유주는 물론 개미 주주나 일개 회사원까지도)에게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능력주의 비판과 결을 같이하고, 부의 세습과 계급 고착화에 대한 공격도 그 부와 계급이 자신들의 노력으로만 얻어진 게 아니라 사회 제도의 지원으로 얻어진 것이니 일정부분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논리로 가능하고요. 과거에는 세습된 상위 계급에 대한 시선이 운만 좋지 능력은 없는 자들이었는데 지금은 세습된 상위 계급에 대한 시선이 운이 좋아서 능력도 좋은 자들에 가까워지는 것을 감안하면 능력주의에 의한 계급 고착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놓지는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12/14 10:57
능력주의 한계는 저 역시 공감합니다만...
그래서 그에 반하여 나온 것들이 정말 평등한지 과연... 가끔 드는 생각인데, 세상에 [불평등]은 있기는 한데 [평등]은 존재 하는지, 존재 할수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평등은 해석인 거 같아서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해석도 다르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능력주의에 반해 평등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또다른 능력주의"에 빠진것 처럼 보일때가 많아요. [나는 너 보다 "깨어있으니" 우월하다, 너 역시 나처럼 세상을 해석해서 "깨어나야 한다" ]같은거요 [그리고 나보다 운이 없었던 사람들을 얕보게 만든다는 거죠. (중략) 능력주의의 신봉자들은 하위소득자들에게 신랄한 충고를 건넵니다. "배운 만큼 버는거야"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어." 엘리트들은 이러한 충고가 모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모르죠. 이러한 충고는 실패의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 이런 모습이 능력주의에 반해 평등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에게서도 보이는 모습 같거든요.
20/12/14 11:02
제대로 된 능력주의도 근대에 나타난 거 아닐까요? 능력주의의 전제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단 거니까요. 왕조 국가에서 정통성을 실력으로 평가하는 계승 방식을 초보적인 능력주의로 볼 수도 있는데 능력 평가 방식이 대부분 내전이라 체제의 경쟁력 자체를 깎아먹었죠.
20/12/14 11:10
정확히는 신분제를 대체해서 나타난게 평등 + 능력주의 니까요
유사이래로 사실 능력주의가 아닌 사회는 없었죠 고대에도 힘센놈이 지배자가 되고, 힘없는사람은 피지배자였고 (능력) 이게 고착화 된게 신분제였고 이 신분제때문에 막힌애들이 들고나온 명분이 '평등'이었잖아요 모든사람이 평등하다면 -> 상위권에 있는 우리의 능력이 뛰어나서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근대이후의 사회는 이 믿음위에 기반하고있죠 여기서 파생된게 pc고.. 큰흐름에서 이렇게 파악하고있습니다
20/12/14 11:25
샌댈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제가 보기에는 샌댈 그 자신도 능력별로 성공에 차등을 두는 사회구조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샌댈이 제기하는 문제는 사회가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미국의 능력주의는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을 얻어라. 그리고 성공해라. 더 좋은 대학을 갈 수록 너는 더 능력있는 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자격이 있다." 는 건데, 대학졸업자가 인구의 1/3정도인 미국에서 이 모델이 과연 유의미한 것인가냐는 것이죠. 센댈이 보기에는 이 모델의 문제는 1. 기회가 평등하지 못하고 2. 평가하는 능력이 공정하지 않다 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인텔리들이 사회상위층을 차지하면서 지배층의 권력을 이용하여 양극화를 부추기고 [사회전반적인 노동의 가치 감소]의 결과를 불러옴으로서 사회에 불안정을 불러온다는 것이 논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샌댈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제가 강조한 부분인 사회가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것 - 다른 말로 노동의 가치를 올리는 것에 있다고 할 것인데, 과연 이 이념이 인구과밀화되고 노동자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세계에서 적절한 이념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자원은 한계가 있는데, 기술발전이 심화되면 될수록 더 적은 노동으로도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기는 쉽습니다. 사회가 필요한 노동자의 비율은 계속 줄어드는 것이고, 사람의 노동력은 갈수록 더더욱 잉여자원이 된다는 겁니다.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더 높게 쳐주는 것이 정의로운 것일 수도 있지만, 사회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떄 중세 말에나 통할 청교도적인 이상론인 거죠. 글쓴이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20/12/14 11:37
양질의 피드백 감사합니다. [사회전반적인 노동의 가치 감소]가 문제이고, 때문에 [환경미화원, 배달부 등의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자]가 센델의 제안인듯 합니다. 그러나 말씀해주신 것처럼 대학졸업자가 훨씬 많은 한국에서의 문제는 '학력'보다 '학벌'인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미국처럼 강력한 엘리트집단을 생산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때문에 센델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해도, [성공한 이들이여 겸손하자]와 같은 결론 - 물론 이러한 인식이 하나의 교양으로 자리잡는다면 더 좋은 사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만을 얻게 됩니다. 또한 말씀해주신 것처럼 노동의 가치 자체가 극단화되고 있는 산업환경에서 이 윤리론에 적용할 수 있는 "노동자" 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도 감안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센델의 논의는 ai시대로 가는 과도기적 윤리론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이 능력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적절한 노동자론, 혹은 능력론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의견 있으시다면 청해 듣고 싶네요.
20/12/14 11:47
저도 이 주제 관련해서 예전에 댓글을 짧게나마 쓴 적이 있는데요 (https://pgr21.net../freedom/78178#3335476). 사회의 방향은 결국 새로운 봉건주의 도래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이 과정에서 평등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좁은 범위에서 재정의되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도태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걸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공산주의인데, 이건 이미 20세기 초기에 실패한 실험이구요. 제가 생각이 짧아서 그런가 비관적인 미래밖에는 보지 못하겠습니다.
20/12/14 11:26
책의 원제목은 <The Tyranny of Merit :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한국어 제목은 <공정하다는 착각 :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제목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아 더이상은 뭐라 말씀드리기 곤란한데요. 말씀하신 주제에 대해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우선 저는 실력과 능력을 구분하곤 합니다. 능력은 돈을 포함합니다. 외모도 능력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인본주의적 관점과 공리주의적 관점을 절충하는 입장에 있는데요. 먼저 공리적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세상의 온갖 자원들은 한정적이고, 또한 시간도 한정적입니다. 현실이죠. 그래서 기회를 모두에게 다 주기 곤란합니다. 또한 기회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를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실력을 키우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또한 시민으로서 정치인이 실력이 있길 바랍니다. 또한 시장의 구매자로서 실력있는 제품과 서비스들이 있길 바랍니다. 실력없는 의사에게 수술받기 싫습니다. 실력없는 관료가 정책을 만들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회는 실력대로 돌아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우고 기회를 잡는 것이죠. 실력에 따라 기회를 잡을 확률이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죠. (여기에 '시점'의 문제가 있고 '평가'의 문제가 있는데, 얘기가 길어지니 여기선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실력에 따라 기회가 돌아가고, 보상이 돌아가는 것이 극단으로 가면 곤란한 거라 봅니다. '실력없으면 굶어 죽으라는 것이냐?' 이건 인본주의에 반하는 것이니까요. 실력에 따른 보상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두지 않더라도, 실력을 키우고자 하는 동기부여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돈뿐만 아니라, 명예와 자존감의 관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실력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실력있다고 우월하다 생각하고 남들 깔보는 것도 좋은 세상이 아닐 것입니다. 균형이 필요한 것이고, 특히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한 능력주의 사회이니, 마이클 샌델 교수의 그런 목소리들이 필요한 거라 봅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도 극단으로 가면 곤란할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감정이 '냉동된 상태'로 정지해 있는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온갖 감정들은 어딘가로 향하게 마련이죠. 그러한 감정이 사회에 이로운 방향으로 쓰이는 것이 좋은 문화인 거라 생각합니다. 실력을 강조하고 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실력을 키우고자 하는 발전욕구'가 붕괴되었을 때, 그 자리에 어떤 감정이 대신 들어찰 것인지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발전욕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부정부패를 향한 감정들이 생겨날 거라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에는 오르고 싶은데 실력대로 안 한다? 그러면 실력 아닌 다른 방법을 열렬히 찾게 되겠지요. 그러면서 온갖 부정과 부패가 일어나는 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부정부패가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상당량의 부정부패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정치인이 실력이 없으면, 어떻게든 모략을 해서 정적을 제거할 궁리만 하게 될 것입니다. 모략하는 실력은 좋아질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게 그 옛날 우리 조선이 망한 이유라 생각합니다. 실력대로 기회가 주어져야 건강한거라 봅니다. 그러나 그 보상이 극단으로 가면 곤란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 깔보고 우월감을 가지면 곤란할 것입니다. 그건 인본주의에 반하는 것이니까요. 실력주의는 인본주의에 의해 견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요한게 있는데, 그건 사회의 공로라 생각합니다. 개인의 성공에 있어 사회가 기여한 부분이 있고, 때문에 사회는 개인에게 보상을 분배하자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당한 요구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가 얼마나 기여했으며, 얼마나 분배받아야 하는지일 것입니다. 저는 이거 상당히 높게 보는 입장입니다. 어떤 물질적인 도움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깊이 파보면, 실은 사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개인이 망가져도 사회의 책임이 큰 것이고, 개인이 흥해도 사회의 공로가 큰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의 문화나 시스템을 더 좋게 바꾸고자 하게 될 테지요. 개인이 망했을 때 그건 다 개인 책임이다라고 그러고, 개인이 흥했을 때 그건 다 개인이 해낸거다라고 그러는 건 균형 잃은 생각이고, 공리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효용이 떨어지는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운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글쎄요. 운에 의한 것을 다시 분배해야 정의롭다는 얘기는 제게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거야 잠정적인 생각이고, 저 책을 읽으면 생각이 좀 달라질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20/12/14 11:29
자본주의가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일부 개념을 받아들여서 수정자본주의가 됐듯이
능력주의도 수정능력주의가 되어야겠죠. 현재까지는 능력주의가 최선이니 이걸 버린다는건 말도 안되는 거고
20/12/14 11:35
능력주의에 대한 샌델의 비판이 상당히 유효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능력주의든 뭐든 A에 대한 맹신을 비판하면 그럼 A를 버리고 뭘 택해야하느냐? 하는 의견이 자주 보이는데, 굳이 능력주의를 완전히 버릴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이런 문제가 가장 선명히 드러나는 입시를 예로 들면, 누군가는 100% 수능 점수만으로 쫙 줄세워서 순서대로 대학 보내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향에 비판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극단적으로 대학도 평준화해서 추첨제로 학생 받아야한다고까지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수능점수를 통한 정시를 기반으로 하되 지역균형, 기회균형 등 다양한 수시제도를 도입하는 적당한 수정방향을 제시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실제로도 지금 그렇게 하고있고요. 사상적으로 어떤 극단적인 대안체제들이 제안되는지와 상관없이, 현실에서는 대부분 현재 존재하는 체제에 적당한 수정을 가하는 경우가 가장 최선인 경우가 많죠. 선명성 떨어진다고 한 쪽에서는 수정주의자, 다른 쪽에서는 위선자라며 욕 먹기 제일 좋은 포지션이긴 하지만요.
20/12/14 11:37
애초에 사람들이 왜 더 좋은 학군에 자리잡으려하고 왜 학벌 좋은 대학에 진입하려 하겠습니까.
증명된 것뿐만아니라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환경' 이 다르다고 다들 입 모아서 공감합니다. 이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꿈도 못꿀 상황이나 인연이 생기거나 지켜볼 수 있고. 그게 '경험'으로서 사람의 시야가 넓어지잖아요. 인천공항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다른 국내공항과 얼마나 차이나는지 아는 것 처럼요.
20/12/14 11:39
최근 정발된 엘리트 세습(원제: The Meritocracy Trap)을 정발되기전 조승연 작가님이 리뷰하실걸 봤었습니다.
거기에서도 능력주의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능력중의 사회로 오면서 생긴 문제에 대해서 말하더군요 저는 항상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제 생각보다 문제가 많은 체제인것 같다...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대안은 떠오르지 않고요. 윗분 말씀처럼 이러한 문제를 저희가 인지하고 이를 수정해 나가는게 바람직한 방향 같네요.
20/12/14 11:48
현재 자본주의 체제도 산업시대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져. 지속적인 비판 및 수정의 결과고요 본문도 그런 관점에서 받아들이면 될 거 같아여
20/12/14 11:53
능력주의로 이루어진 시스템 자체보다도 사회 전반에 깔린 "네 실패는 네가 못난 탓이야"라는 능력주의적인 정서가 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을지언정 착각에 단단히 빠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요.
20/12/14 12:03
능력주의에서 신분세습이 쉬웠다면 ,교수나 교육자분들이 자식을 위해 입시부정을 할이유가 없었겠죠.능력도 결과적으로 상단부분 세습이 되긴 하지만 그게 완전보장되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게 더 쉬운방향으로 바꾸려고 너희들의 한계가 그모양이였으니 네자식도 다를거같냐?인정하고 우리 신귀족들에게 미래를 포기해라 라는 이야기를 달콤하게 포장하려는거죠. 미국처럼 제후국들의 고급 인재들이 몰려드는 나라도 아닌데 저런방식으로 인해 그냥 내계급에 맞게 살아야겠다는 의식이 굳어지면 우리나라는 얼마못가 고급인재의 질이 뚝 떨어질겁니다.
20/12/14 12:32
능력이 부족했다는 질책보다는 운이 나빴다는 위로가 듣기에 좋죠.
예컨대 로또에 당첨되려면 집에서 나와서 로또를 구매하러가는 노력을 해야하는거죠. 노력의 최소치를 채워야되고 운의 최소치에 다가서야되는거죠. 사회학자들은 칼자르듯이 잘라서 자기만의 이론으로 유명해지고 싶겠지만 좀 허술하죠.
20/12/14 12:58
부모 세대의 결과 불평등(a)은 자식 세대의 기회 불평등(b)을 만들고 이는 필연적으로 자식 세대의 결과 불평등(c)으로 이어집니다. 공정 담론은 a는 손대지 않고 a-b 사이를 끊어서 c을 줄이자는 얘기인데, 역사적으로 이런 개입이 성공했던 적이 없지요. 심지어 미국에서 19세기에 의무교육을 도입한 엄청난 기회 평등 정책마저도 실제로 불평등을 줄이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입시정책을 어떻게 바꿔도 상류층이 유리한 것도 마찬가지지요. (통념과 달리 정시가 하위 계층에 덜 불리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의 능력 우열은 상당 부분 유전적인 요소에서 나뉘고 상류층이 자녀에게 더 나은 유전형질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까지 고려하자면 사회학자들 머리가 터지겠죠... 어쨌든 반드시 a 자체를 줄여서 b, c를 줄게 하는 기획이 함께 있지 않으면, 공정 담론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용되는 것처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만 쓰이게 되지요.
20/12/14 13:18
본문과는 별개로 김영준님이 본인 페북에서 이 글을 직접 언급해주셨네요. https://www.facebook.com/Paulbreit/posts/3489811034407832
20/12/14 13:20
능력주의의 문제를 다루는 다른 책들이 이미 있고 그것들 중 하나는 국역도 되어 이 게시판에서 토론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은 다소간 긴 리뷰를 통해서라도 논변의 얼개를 알고 있지만 샌델의 새 책은 리뷰도 읽지 못했으니 샌델의 논변을 정확하게 염두에 둔 주장을 할 수가 없네요. 근데 그건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일듯 합니다. 이 글타래의 글들이 샌델의 논변에 대한 것이 되기에는 본글에서 샌델의 논변이 너무나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대안이 뭐냐라는 분들이 계신데, 능력주의 외에는 신분주의 아니면 절대평등주의이니 대안은 없습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공산주의 사회의 분배원칙조차도 절대평등주의가 아닙니다. 능력의 차이와 관계없이 사람마다 필요한 것들이 다르니까요. 그 다름에도 불구하고 눈에 불을 켜고 다른 사람이 단 1원도 나보다 더 많이 받아가지 않는지 감시하고 더 많이 받아가면 분기충천하며 항의하는 공산주의 사회 시민들의 존재는 비개연적입니다. 사회가 바뀌면 사람도 바뀝니다. 샌델의 책 제목으로 미루어 보건데, 샌델의 문제의식은 능력주의의 어떤, 아마도 미국에 의해 가장 대표되는, 추구가, 만물의 상품화 경향이 그렇듯이, the Common Good 이 앙상한 사회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능력의 차이에 따른 차별적 보상은, 심지어는 그 차이의 발생이 불공평한 기회와 운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하더라도, 불가피하지만, 늘 그 차별이 어느 정도 이어야 하느냐와 그 불가피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차별의 공정한 정도를 지시하는 자연과학적 기준같은 것은 없습니다. 자유방임되는 시장에서 정해지는 차별적 보상 정도가 공정하다는 증명은 불가능합니다. 자유방임되는 시장같은 것은 있어 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 정도는 공론장을 비롯해 넓은 의미의 정치적 협의제도들 속에서 우리가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것입니다. 샌델은 아마도 the Common Good 에 대한 추구가 확보되는 수준의 차별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the Common Good 개념도 상당히 논쟁적입니다. 차별의 불가피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결국은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the Common Good 을 확보하는데 유리한가의 문제인듯 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얘기하셨듯이 능력의 차이는 노력의 차이 일뿐만 아니라 운 (어느 인종, 어느 사회, 어느 부모, 어느 유전적 자질)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실, 노력의 차이와 운의 차이의 경계는 불분명합니다. 소질과 성품 없이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고 소질과 성품을 노력으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차별의 불가피성은 사회는 정의로워야 하는데 차별이 절대적으로 공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롤스가 지적했듯이, 어느 정도라도 차별이 없으면 사회의 생산성이 가장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의 삶의 질이 인간적 품위의 최저선 이상에 위치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까지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식으로 차별을 '개인의 성취는 온전히 개인의 능력 덕분이고 그 능력은 온전히 개인의 노력 덕분이다'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은 사회일 수록 the Common Good 이 자리잡을 가능성은 더 커집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 수록, 미국 사회처럼, 천문학적 수준의 차별까지도 당연시되어 the Common Good 이 자리잡기 힘든 사회가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20/12/14 13:21
어느정도 공감합니다.
최근에 재능 담론에 대한 글이 올라왔었는데 노력이 부족하다느니, 운으로 위안을 삼으려한다느니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이런 소리 자체가 궤도를 벗어난 말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대체로 다들 노력하는 편이에요. 방구석 백수 악플러 수가 많을까요,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그 노력하는 사람들끼리 경쟁해서 결국 한끗차로 결정나고 이건 개인 입장에선 거의 운의 영역이죠. 이 글도 재능 논쟁과 어느정도 연결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재능, 운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저는 환경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습득이나 지식에 대한 접근성은 높아졌으나, 노동의 가치가 자동화같이 자본으로 대체가 점점 쉬워지고 있으며 미래는 더 심할 것입니다. 갈수록 소수 우수한 사람들만 필요하고 하류층은 필요 없어지며, 능력주의가 이런 환경과 결합한다면 부의 독식과 계층화로 연결됩니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노력은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운, 재능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겠죠. 그리고 이런 부분은 개인이 통제 불가능한 부분이고요. 또한 이런 환경에서 한 발자국 앞서간 순간 스노우볼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코로나 타격으로 실직하거나 취업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한끗차이로 이전에 취직했거나 직장을 지킨다면 미래에도 경제적으로 크게 차이날 가능성도 있고요. 능력주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나, 이게 극대화되면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겠죠. 솔직히 저는 능력주의 자체보다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승자독식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선진국은 앞다투어서 저출산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20/12/14 13:32
그렇죠. 능력, 정확히는 성과의 차이에 따른 차별적 보상은 불가피하나 그 보상의 정도는 훌륭한 성과가 온전히 해당 개인의 공/덕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따라서는 안 될 것이고 그 보상의 방식이 승자독식을 결과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가장 원론적으로 말하면, 이 두 가지 원칙을 실현하려 애쓰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20/12/14 14:40
오히려 부모의 능력유전, 환경이 모든걸 결정한단게 재능,환경 맹신 아닌가요?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이게 역으로 개인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폭거라 생각하고 운이나 재능,환경의 요인을 완전부정하는건 아닙니다만 조금 다르다 생각합니다 사람들 대체로 노력하긴 하나 그게 할수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항상 한다고는 생각안해요 대부분 많아봐야 60~70%정도 한다생각하며 이것도 정말 많이 쳐줬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솔직하게 지금까지 살면서 100%는 커녕 50%도 노력했다고 생각안합니다 그 이상하는게 흔히 입에 오르내리는 노력가고요 또한 현대 사회에서 스노우볼효과는 당연하다 생각하며 이것은 어쩔수 없는 부분입니다 주식 그때 살껄 부동산 그때 살껄 이러는 것과 하등 다를바 없습니다 한끗차이로 먼저 취직해서 돈버는사람이 존재한다고 다른 모든부분에서도 그가앞선다고 생각하지않고 미래에 모든 경제적 차이를 단지 그 스노우볼 하나때문이라 치부하는건 말도 안된다 생각합니다
20/12/14 17:14
골목식당 보면 하다못해 자기 '목숨' 걸고 하는 장사도 대충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은 엄청나게 게으릅니다...
20/12/14 15:03
어쨌거나 모든게 운으로, 기원으로 가는 운빨똥망겜이 되어서는 안된다는거겠죠.
그점에 있어서는 기계적 중립을 지킬 수 밖에요. 사회안전망의 확보, 무임승차만 해결되면 뭔들... 하고 싶습니다.
20/12/14 19:47
능력이 뛰어나서 돈을 번다고 하면 별로 반박할 것이 없는 능력주의입니다만 실제 사회에서 이것을 풀어적으면, 능력이 뛰어날 것 같아서 - 뽑혀서 - 치열한 경쟁에 나가떨어지면 모르겠으나 붙어있는 한 바깥에 누구보다는 돈을 많이 받도록 보장되었다인 경우가 많죠. 운도 운이지만 [사람을 고르고 실제 기여실적을 체크하는 권위]의 문제가 실제의 능력주의에 계속 드리워있습니다. 그 권위가 절대적으로 냉정하여 일만 잘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뽑을 때, 그후 평가할 때 다른 것을 더 요구하기도 하니 문제는 더 복잡하죠.
20/12/14 21:37
"운과 더불어 환경적 요소를 배제한 채 오로지 타고난 재능과 노력만을 갖고, 심지어는 타고난 재능조차 배제한 채 오로지 노력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 공정하고 옳은 것으며 진정으로 능력주의에 부합하는 일이다."라고 주장하기에는 [온전히, 올바르게] 이를 행할 수 있는 방법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인간의 본성과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는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허상과도 같은 허울 좋은 이상을 쫓을 게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며 운과 환경적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능력과 결과물의 차이도 있는 그대로 냉철히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오히려 옳고 현명하며 바람직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개 고만고만한 재능을 갖고 태어나 고만고만한 환경에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대개는 괜히 재능을 탓할 것도, 환경을 탓할 것도, 운을 탓할 것도 없이 그저 노력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될 문제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타고난 재능과 노력을 바탕으로 한 잠재력과 향후 발전 가능성만을 온전히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본디 없기도 하거니와 중간 과정들을 일일이 참작하여 평가에 반영하기에는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으며 공정하고 올바른 참작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를 뜻하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명확히 결론을 내리거나 합의한다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그저 타고난 환경 하에서 타고난 그릇에 따라 각기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때그때 찾으며 살아가고, 또 그에 만족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맞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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