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5회 연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제 글이 너무 형편없는 것 같아 좌절하지만,
꾸준히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추천과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꼐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힘내서 연참할 수 있네요.
부족한 작품이지만, 묵묵히 읽어주시는 분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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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을씨년스러웠던 초겨울은 한겨울로 성(姓)을 갈기 위해 부단히도 추위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잔잔했던 바람이 날카로워졌고, 날카로운 바람에 실린 냉기가 따끔거렸다.
날씨가 그런 탓인지 이틀 전부터 몸이 으슬으슬, 감기몸살 기운이 돌았다.
하기사, 이런 날씨에 새벽마다 한 시간씩 겨울바람을 맞고 있었으니 감기에 걸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하윤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취."
알싸한 재채기가 나왔지만,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지막에 본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원래 몸이 아픈 아이는 아닐까?
괜히 찬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녀서 상태가 악회된 것은 아닐까?
나는 그녀가 걱정되어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다.
"하아."
한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탓인지 내뱉는 한숨에 하얀 입김이 서렸다.
실없는 생각이었지만, 어쩌면 겨울은 걱정의 모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속하게도 하얀 걱정이 모락모락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오늘도 공치는 건가.
다시 만나면 전할 좋은 소식도 있는데.
아직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서류합격이라는 여러 통의 문자를 그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비록 아직은 서류합격에 불과할 지라도.
치열한 낮의 일상에 대한 보상이었지만, 어쩐지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허허, 학생 오늘도 혼자 달밤에 명상인가?"
"아, 안녕하세요."
"오늘도 힘내게. 허허"
일주일 넘게 지속된, 늘 같은 일상이었지만 평소와 다른 점도 있었다.
어쩌면 내게 동네 이웃들이 생긴 것 같았다.
매번 편의점 앞에서 하윤이를 기다리다 보니 이따금씩 편의점 아저씨와 말을 섞었고, 오며가며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편의점 아저씨는 굉장히 털털하고 넉살있는 분이었다.
매번 새벽마다 편의점 앞에서 죽치고 있는 젊은이가 이상할 법한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도 명상이냐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다며 미소짓곤 했다.
명상은 자신을 닦고, 맑게하는 마음의 비누라며 은근하게 나를 기특히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편의점 아저씨의 눈에는 명상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나는 단지 하윤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럴 때면 뜨끔하여 아무 말 없이 편의점에 들어가 강아지 간식거리 같은 것을 집어들고 계산 받았다.
나는 나름대로 그게 편의점 테이블, 의자에 대한 자릿세라고도 생각했다.
물론, 추운 겨울 새벽이라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나 뿐이었지만.
"어머 오빠? 오늘도 있네요."
또 다른 이웃도 있었다. 일주일 전 도와주었던, 강아지 두부의 주인이었다.
그녀와 다시 마주친 것은 두부를 찾은 후 이틀 째 되는 날이었다.
'어? 혹시...'
하윤이를 기다리고 있던 내게 조심스럽게 쭈뼛거리는 여자와 두부가 함께 다가왔다.
솔직히 두부를 찾은 날, 워낙 어둡고 경황이 없었기 떄문에 여자의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질 않았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옆의 두부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어색하지 않게 아는 체를 할 수 있었다.
'아, 산책하시나 봐요?'
여자는 까무잡잡하지만, 매끄럽고 탄력있는 피부에 늘씬한 건강미가 돋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하얀 여우를 닮은 두부가 꼬리를 힘차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꼬리에 모터라도 달린 건 아닐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날은 정말 고마웠어요. 뭔가 사례라도...'
'아니에요. 정말 괜찮습니다. 정 그러시면 편의점에서 따뜻한 음료 하나만 사주세요.'
'아 그래요! 잠시 두부 좀...'
나름대로 마음의 빚이 무거웠는 지,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내게 자연스럽게 두부의 산책줄을 넘겼고, 재빨리 편의점에서 따뜻한 음료 하나를 사왔다.
'그나저나 두부가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 신기하네요.'
여전히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는 두부의 목줄을 건네 받으며 여자가 중얼거렸다.
글쎄... 보통 강아지란 사람을 보면 꼬리를 마냥 흔드는 게 아니었나?
'그게... 사실 두부가 그렇게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 저를 뺴고는 사람도 무서워하거든요.'
'그래요?'
'네.'
내 옆에서 서성거리며 냄새를 킁킁거리는 두부를 보고 있자니, 여자의 말이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 지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정말이에요!'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저는 류아라에요. 25살이구요.'
아라가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밝히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강아지까지 찾아준 사이인데 통성명도 하지 않았었나 싶었다.
나도 손을 내밀어 아라와 악수를 하면서도 하윤이 생각이 났다. 하윤이 이름도 알아내는 게 쉽진 않았지.
'27살 한세건 입니다.'
'어머,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오빠네. 오빠라고 해도 되죠?'
아라가 붙임성 좋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두부를 산책시키는 아라와 마주칠 때면, 우리는 편의점 앞에 앉아 두런두런 조금씩 대화를 나눴다.
물론 두부도 같이.
"앙!"
녀석이 반갑게 꼬리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방금 전 산 강아지용 간식 스틱을 꺼내 두부의 입에 물려줬다.
"아 오빠, 왜 자꾸 미안하게 볼 때마다 미안하게 두부 간식을 챙겨줘요?"
"그냥. 두부가 좋아하잖아."
편의점 아저씨의 무안한 눈빛 때문에 마땅히 살 것도 없어 산거라고 솔직히 말할 수는 없어 애둘러 말했다.
"앙!"
순간 두부가 물고있는 스틱을 떨구고 짖었다.
마치 '거짓말 하지마!' 같이 들려서 내심 뜨끔했으나, 강아지 주제 어쩌겠는가. 꼬우면 사람 말을 하든지.
"얘가 간식을 놓을 떄도 다 있네?"
아라가 그런 두부의 행동에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고마워요. 대신 저도 따뜻한 음료라도 사줄게요."
자연스럽게 아라가 두부의 산책줄을 건넸다.
나도 그것에 꽤 익숙해져 당연하다는 듯이 줄을 넘겨받고, 다시 간식에 열중하고 있는 스피츠, 두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건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자주자주 보다보니 정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뭣보다 머리털의 감촉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겨울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아라가 따뜻한 유자차 두 개의 계산을 마치고 나와 그 중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평소에는 캔커피를 사오곤 했는데 오늘은 유자차였다.
"캔커피 사려다가, 왠지 오빠가 조금 으슬으슬해 보여서요. 역시 감긴가?"
"글쎄...어쨌든 고마워 잘 마실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아라의 따뜻한 마음씀씀이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따뜻한 유자차를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니 몸 속이 따뜻해지며 한결 몸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하아, 살 것 같네."
"음, 역시 감기인가 봐요. 오빠 몸살기운이 있어보여요."
"으음."
나도 아라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부정할 수 없었다.
"날도 추운데 들어가요. 그러고보니까 매일 새벽에 여기서 뭘 하는 거에요?"
"왕!"
아라가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두부도 동의한다는 듯이 나를 보며 짖었다.
두부 녀석, 제법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똑똑하고 아라와 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미소지으며 다시 두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명상... "
하윤이를 기다린다고 대답하기에는 부끄러워서 둘러대려고 하니 편의점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씨발, 아무리 그래도 명상이라니. 내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이유다.
"혹시... 오빠 누구 기다려요?"
이것이 여자의 감이라는 것 일까. 아라가 예리하게 눈을 번뜩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눈빛을 피하고 짐짓 모른 척 했다.
"기다리긴 무슨, 어휴 날 춥다. 나도 이제 들어갈거니까. 너도 빨리 들어가. 두부도 춥겠다."
"왕! 왕! 왕!"
'안 추운데? 나 안 추운데? 안 갈건데?'라고 두부가 짖었다. 아니 , 내가 생각했다.
저 똘망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간혹가다가 개가 아니라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너무 찬바람을 쐬고 오래 앉아있다보니 별 망상이 다 드는 걸지도.
"에취!"
"앗. 진짜 이거 안 되겠는데. 빨리 들어가요."
눈치도 없이 재채기가 터져나왔다. 아라가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그 걱정어린 눈빛을 받고 있자니, 내 몸이 슬슬 정말로 아파오는 게 느껴졌다.
열도 조금 나는 것 같고.
"알겠으니까. 먼저 들어가, 나도 곧 갈테니까."
"아이고. 남자들이란 왜 말을 잘 안 듣는 걸까요?"
그거야 쓸데없는 오기와 객기야말로 남자의 본성이니까, 하고 장난스레 받아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아라와 두부로부터 긴 잔소리를 듣게 될 것만 같아 그만뒀다.
"어쩄든 얼른 들어가서 따뜻하게 하고 자요. 가자 두부야."
"끼잉... 끼잉..."
그렇게 멀어져가는 아라와 두부가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배웅했다.
내게서 멀어지기 싫은 지 낑낑대며 아라에게 질질 끌려가는 두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 둘이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눈을 감았다.
몸이 뜨겁고, 눈을 감고 있으니 약간의 어지러움이 머리에 맴돌았다.
후, 정말 딱 1분만 세고 집으로 들어가야겠다.
대충 상태를 보니 며칠은 끙끙 앓으며 고생할 것 같았다.
'하나... 두울... 세엣...'
말이 1분이었지, 보통보다 세 배는 늘어지는 카운트를 시작했다.
스물 쯤 세었을 때, 슬쩍 실 눈을 떴다. 역시 하윤이가 있을리 없었다.
'서른 일고오옵, 서른 여더어어어얼, 서른.. 아호오오옵... 마...흔...'
다시 한 번 실눈을 슬쩍 떠봤다. 빈 공간에 찬바람만 가득했다.
'쉰 아홉... 예순...!'
혹시나하는 마음에 일부러, 어거지로 대략 3분 동안 1분을 센 것 같다.
멀쩡히 양 쪽 눈을 다 떴지만, 역시 하윤이는 없었다.
하하, 그럼 그렇지. 내가 뭘 기대한 걸까 하고, 씁쓸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양 뺨이 추운 칼바람에 베인 듯 꽝꽝 얼어 있었다.
약간의 허탈감이 밀려왔지만, 그나마 아라와 두부 덕에 나름대로 의미있는 기다림이었다.
내일은 볼 수 있으려나.
일단은 엉겨붙은 몸살 기운을 잘 털어내야 겠다. 그래야 내일도 잘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테니.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선 순간이었다.
"아저씨...."
익숙한 음성이었다.
맑고 깨끗한 목소리. 나는 휙 몸을 돌려 뒤 쪽을 바라봤다.
"안녕?"
하윤이, 은하윤이 뒤에 서 있었다. 창백하지만, 장난끼 가득 미소지은 얼굴로.
포기하고 있던 터에 정말로 하윤이가 나타나자 나는 당황스러워 하려는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입만 뻥긋 거리고 있는 와중에 하윤이가 나와의 거리를 슬며시 좁히며 물었다.
"나 기다렸어요?"
하얗게 질린 얼굴이 신경쓰였지만, 그래도 투명하게 걸려있는 하윤이의 미소는 여전히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미소에 화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 역시 열이올라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미소를 걸었다.
"아니, 보고 싶었어."
5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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