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규 무네노리와 관련된 정보를 찾던 중 야규 신카게류의 분쟁에 조선인이 얽혀 있다는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야규 삼대 연재글 2편에서 야규 신카게류의 분쟁을 다룰 예정이었는데 이 내용까지 들어가면 분량이 너무 많아 질 것 같아서 따로 글을 써봅니다.
야규 신카게류 분쟁의 전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초대 당주 야규 무네요시(이하 세키슈사이)가 죽기 전 5남 무네노리에겐 인가목록을, 손자 효고노스케 토시요시에겐 스승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로부터 물려 받은 신카게류 오의전서를 전해줍니다. 이후 야규 무네노리는 도쿠가와 가문의 검술 사범이 되어 에도에 터를 잡게 되고 야규 토시요시는 오와리 번에 사관하게 되죠. 두 사람은 서로 야규 신카게류의 정통이 자기들에게 있다 주장하고, 야규 신카게류는 에도 야규 신카게류와 오와리 야규 신카게류 두개의 유파로 갈라지게 됩니다.
인가목록이란 면허개전을 지닌 유파 제자들의 명단을 적어 놓은 것으로 면허개전은 유파의 모든 기술을 터득하여 독자적으로 도장을 개설해도 좋다는 일종의 자격증이었죠. 즉 인가목록은 유파의 수장을 인정하는 물품입니다. 반면 토시요시가 받은 오의전서는 유파의 비법이 적힌 두루마리인데 일자상전식 도제 시스템이었던 고류 검술에선 유파의 후계자에게만 수여하는 물건입니다. 이런 물건들을 다섯번째 아들과 장남의 아들인 손자에게 나눠주었으니 분쟁의 여지를 세키슈사이 본인이 스스로 자초한 셈이었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에도 야규와 오와리 야규의 정통성 분쟁엔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엇는데 그 중심엔 조선인 출신으로 여겨지는 야규 슈메(柳生主馬)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야규 가문 기록인 옥영습유(玉榮習遺)와 야규번구기(柳生藩舊記)에선 야규 슈메를 두고
타국에서 온 자로 본래 성씨는 알 수 없다(然る所、主馬は他国人で氏も知られていない), 전하길 슈메는 조선에서 온 자였다.(伝に曰く、主馬者朝鮮国の種也) 라고 적고 있습니다.
슈메의 조선 이름은 알 길이 없고, 사노 슈메라는 이름을 썼는데, 야규 무네노리는 이 슈메의 자질을 높이 평가해서 야규 성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가국의 야마자키 소자에몬이라는 인물에게 시집갔다가 파혼하고 돌아온 큰형 요시카츠의 딸을 슈메와 결혼시켰죠.
요시카츠의 차남 야규 토시요시는 자신의 누이를 출신도 불분명한 조선인(노골적인 표현으론 조선인 종)에게 시집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합니다. 야규 무네노리는 불구여서 폐적당한 장남 대신 야규 가문의 당주가 되어 모든 식솔들을 책임지는 입장이었는데 토시요시와는 한마디 상의 없이 독단으로 혼인을 추진한 것이죠. 이에 토시요시는 크게 반발하며 무네노리에게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겠다는 절연장을 보냅니다. 그 후 오와리 번에서 독자적으로 야규 신카게류를 열어 자기가 정통성을 지녔다고 주장한 것이죠.
여기까지 보면 토시요시가 분노한 이유도 수긍이 가고 독단적으로 조카딸을 야규 슈메와 혼인시킨 무네노리의 처사가 너무해 보입니다. 사견을 보태서 무네노리를 두둔하자면 야규 무네노리는 검호들 중에서도 인품이 훌륭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인격자였습니다. 거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츠 쇼군 삼대를 섬겨온 유능한 신하이기도 했죠. 이런 성품이 고결하고 두뇌가 명철한 인물이 당시 일본 기준으로 출신이 천한 조선인 포로에게 조카와 결혼시킨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나 그리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출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의 자질을 슈메에게서 발견한 것이겠죠. 반면 야규 토시요시는 조부 세키슈사이가 구마모토 번의 다이묘 가토 기요마사에게 가신으로 출사시킬 때 이 아이는 성격이 급하고 경솔하니 죽을 죄를 저질러도 세 번은 용서해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로 불 같은 성격이었습니다. 심지어 토시요시는 구마모토 번의 동료와 말 싸움끝에 베어버리고 가신을 그만두기까지 했죠. 이런 토시요시의 격정적인 성격을 감안했을 때 무네노리는 혼인 의사를 물어봐도 맹렬히 반대할 게 뻔했으므로 알리지 않고 슈메와 조카딸을 혼인시키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너무 무네노리 쪽에 치우친 견해일런가요?
여하튼 이런 악연으로 에도 야규와 오와리 야규는 서로를 견제하며 지리한 정통성 분쟁을 이어 왔는데 최후의 승자는 토시요시의 후손인 오와리 야규였습니다. 에도시대 때 에도 야규는 대가 끊겨 사실상 멸문하게 되고 오와리 야규 출신 후손들이 현대의 야규 신카게류 종가가 된 것이죠. 그런 연유로 야규 신카게류의 적통이 오와리에 있다란 프로파간다가 이루어지고 야규 토시요시를 시조로 하는 오와리 야규가 진짜 야규 신카게류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나라현 나라시에 위치한 호토쿠지(芳徳寺) 야규 일족 묘소
한 유파의 수백년 동안 이어진 분쟁의 원인이었던 야규 슈메는 복잡하게 얽힌 주변 상황과는 달리 야규 가문의 무사로 평탄하게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야규 일족들이 묻힌 호토쿠지에 그의 무덤이 현재까지 남아있다고도 하네요. 쇼군가의 검술 사범역으로 에도시대에 번영을 달렸던 야규 가문에 조선인 출신 데릴사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는지 현대에 야규 슈메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국내 소설가 조정연은 어린이 대상 역사 소설 '유성검'에서 야규 슈메를 좌준이라는 조선인 소년으로 설정하여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로 끌려간 후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며 무사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유성검 후반부에는 야규 무네노리의 손녀와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내용도 나온다고 하네요.
한편 일본의 소설가인 아라야마 토오루는 야규 슈메를 박주말이라는 조선인으로 설정하여 관련 작품을 썻다고도 합니다.
항왜 출신인 김충선을 주인공으로한 역사 소설은 몇몇 작품을 본적이 있는데, 반대로 조선인 포로 출신이 사무라이 명문가의 사위가 되어 출세한다는 입지전적인 이야기는 참 신기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