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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1 16:14
후계 지목은 우유부단함을 보였다...라고 볼 수 있어도
초창기에 하북 먹고 할 때는 굉장히 과감하고 그런 면을 보여줬던 게.. 아니었었던가요? 흐흐;
20/12/21 16:14
아무리 집안빨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세력을 키운 것 자체가 능력자가 아니면 불가능할텐데...
항상 그게 제일 의문이었습니다. 세력을 쌓고보니 보수적이 된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향이라 저렇게 큰 건지...
20/12/21 16:23
유비가 원소에게 의탁할 때 유비 따라갔으니 굳이 따지자면 휘하에 있었던 적이 있긴한데...이 때도 유비의 직속부하라 원소 부하라고 하긴 어렵죠.
20/12/21 16:18
후계문제 이거 하나만 좀 더 확실히 어느쪽으로던 결른을 내놨어도 달라졌을지도...
아니면 좀 만 더 오래살았던가....둘 중 하나만 되었어도 많이 달라졌을거 같긴해요.
20/12/21 16:20
원소가 패배한 가장 큰 원인은 우유부단함도 아나고 모사들의 내분도 아니고 허유의 배신도 아닌 원소가 급사한 탓이 크죠. 관도대전에서 졌을지언정 여전히 세력은 원소가 조조보다 앞서고 있었습니다. 후계자 정리를 못하고 갑작스럽게 죽어버린게 원가의 멸망을 앞당겼죠. 원소 본인이 명성을 얻으려고 삼년상을 두번 치르는 혹사를 한것이 단명을 자초하긴 했지만요.
20/12/21 16:21
관도대전에서 졌을지언정 원소가 조조와의 세력 구도에서 졌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죽은 다음의 일을 논외로 한다면 말이죠.
20/12/21 16:24
흔히 원소의 모사로 알려져 있는 전풍 저수 심배 봉기 등은 실제로는 원소 vs 공손찬 시절 쯤부터 원소의 손을 들어준 호족에 가까웠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자신들의 입지에 따라 반목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조조가 순욱을 대표로 하는 영천 순씨를 밀어주며 순욱 아래 수직적인 체계, 소위 순욱 피라미드를 형성한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는데 이 방식이 관도 이전까지는 원소의 떡상에 크게 기여했던 것도 사실이죠.
20/12/21 16:25
근데 원소가 우유부단하다고 할만한게 있나요? 자기가 답 다 내놓고 남들이 '이거 문제 있지 않나요?' 이럴 때 '응 문제없어~'하다가 손해본 케이스가 더 많을걸요.
20/12/21 16:27
연의에서 나왔던 다섯번째 아들 이야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되는 게 많을 거예요.
유비가 서주에서 조조에게 털려서 원소에게 달아났을 때 전풍이 조조를 칠 좋은 기회라고 인식, 진언할 때 연의의 원소는 다섯번째 아들이 아파서 세상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전풍의 간언을 무시해버렸죠.
20/12/21 16:29
연의에서의 원소는 우유부단의 화신같이 그려지죠.
가령 오소가 위험하다는 소릴 듣자 구원군을 보내느냐 아니면 조조의 근거지를 몰아치느냐로 한참 갈등하다가 결국 둘 다 채택하는 등...
20/12/21 16:31
공부 안 하는건 죄악이 아니지만, 공부 안 한 걸 가지고 내가 맞아 이러는건 죄악입니다. 사료를 기준으로 해서 요즘 원소에 대해 평이 바뀐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우유부단 같은 소리가 나오나요;;
20/12/21 17:10
원가 세력은 하도 강해서 원소가 죽은 이후에 조조가 아들들 제압하는데도 애를 먹을 정도였습니다... 내분때문에 결국 이기긴 했으나.
그저 우유부단찐따가 이 정도를 이루긴 어렵죠
20/12/21 17:13
후한서를 보면
"원소는 사람됨에 인정이 있고 정치를 잘했다. 그렇기에 백성들은 그를 일컬어 '덕' 이라 불렀다. 하북에선 점잖은 선비에 이르기부터 비천한 여인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불만을 품은 자가 없었다. (원소가 죽자)저자,거리에서는 눈물과 통곡이 끊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부모상을 치르는 자도 있을 정도였다." "자긍심이 강해 오만하며 스스로의 재주를 지나치게 자신하여 그의 성품엔 (절제하고 자중하며)선을 쫓는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패배하기에 이른 것이다." 조조가 하북을 정렴한 뒤에도 꾸준히 반란이 일어나 걱정을 하는 순유전 기사가 있습니다. 원소의 우유부단함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를 띄워주기 위해서 나타난 거고 원소의 성격은 우유부단함과 거리가 멀며 오히려 계산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이었습니다. 실제론 불리한 구도에서 연달아 한복-공손찬-장연을 이기고 하북을 평정하고 안정화시킨 것을 보면 정치력과 군사적 재능은 뛰어나다 할수 있으며 우유부단때문이 아니라 명문가 특유의 혈족중시, 제왕적, 독단적 성향의 용인술 때문에 망한 겁니다. 원소는 유독 주위 인물의 숙청기록이 많죠 전풍과 저수도 관도대전을 반대하니까 원소가 숙청시킨 겁니다. 관도대전도 정상적이었다면 원소가 이기는게 당연하다 할만큼 원소가 조조를 압도했으며 조조는 관우가 원소군에서 가장 유명한 군사령관인 안량을 잡아 초반에 휩쓸리는 것을 막고 허유와 장합의 배신으로 식량창고를 한방에 날려버려서 막아낸거에 가깝지 관도대전으로 조조가 얻은 땅은 하나도 없고 끝난 뒤에도 여전히 원소가 조조보다 세력이 훨씬 강대했습니다. 조조는 원소가 죽은 뒤에도 바로 공격하지 못 했고 후계자 분쟁이 시작되고 원담, 원상, 고간의 셋으로 동강난 뒤에야 공격을 합니다. 원소가 정사에서 우유부단하다고 할만한 모습은 유일하게 후계자 문제인데 원소가 생전에 워낙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급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혈족중심의 용인술이 문제였는지 후계자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죽어버리고 심배와 봉기가 유부인과 짜고 원소의 유명을 조작했다는 기록도 있어서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지만 원소가 우유부단한 것은 소설 삼국지연의 속 창작된 모습이라고 봅니다.
20/12/21 17:17
크킹하다보면 원소가 이해가 되더라구요
후계 구도 정리는 제일 잘 난 놈 주려고 뒤로 미뤄두고 세력 키우고 전쟁 치루다가 급사하게 되면서 점 찍어둔 얘는 시간이 필요한데 세력은 찢기고... 불만 죽여놓은 봉신들은 들고 일어나고... 가문이 멸망하는 건 전투에서 패배해서가 아니라 후계구도 정리에 실패해서 라는게
20/12/21 17:26
사실 원소는 과격한게 문제였죠
십상시 갑먹게한다고 마을하나 몰살시켜버림적도 있고 십상시의 난이 그렇게 처리된것도 그렇고 (아 그럼 덩탁정도까지 부르면 니들 꼼짝도못하겠지) 하북을 모략으로 먹는 장면,국의 토사구팽하는 과정이나 여포쫓아내는거 전부 결단이 빨랐습니다. 관도전투도 원소가 유유부단했으면 장기전으로 갈거였죠. 후사도 원담을 죽이지만 않았지 ,스폿라이트 못받게 구석탱이에 처박아놓은건데 지가 알아서 기어들어온거라. 감정을 배제하고 피도 눈물도 없이 구는 장면같은거보면 일본식 미디어믹스의 조조가 정사의 원소에 가까울겁니다
20/12/21 17:57
원소가 원담을 아에 버릴수없었던것은 얼자출신이었던 원소의 친위세력 자체가 약했기때문이 아닌가요. 원씨일가는 다 원술을 따랐구요.
호족들도 관도에서 졌을 때 상당수가 일어났을만큼 충성도가 높지도 않았으니... 관도에서 지고 죽기전에 일어났던 반란들 다 정리한거만봐도 능력이 없거나 우유부단한지는 모르겠어요. 원소의 끊임없이 주위를 의심하는 사람쓰는 방식도 친위 세력이 확실했던 조조와 단편적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원소가 언제나 좋은 판단을 한건 아니지만 조조도 마찬가지고 결국 둘을 가장 가른건 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2/21 18:20
원소가 우유부단은 사실 아닐듯... 승패는 병가지상사인데... 관도대전 패해서 망한것처럼 연의는 그리지만.. 사실 뭐 그건 연의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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