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응원에 힘 입어 연참 달립니다.
제 글을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플롯은 다 짜둔 글이나, 지인으로부터 전개가 빨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늦더라도 지금처럼 잔잔하고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갈 지, 주변 의견이나 트렌드에 맞게 뼈대를 골자로 빠른 전개를 해나갈 지,
최근 글을 쓰면서도 여러 번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에 여러분께서 의견을 주신다며, 무게 중심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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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그치고, 어두운 하늘에 밝은 달이 하얗게 떠있었다.
그래도 잠깐 잠든 사이에 제법 눈이 더 내린 모양인지,
눈꽃들이 달빛과 가로등 빛을 반사하여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덕분에, 새벽길이 낮처럼 환하진 않았지만 평소보다 갑절로 밝았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도 하윤이는 홀로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얘가 이렇게까지 예뻤었나?
잠시 얼얼한 새벽 공기와 맑은 달빛에 취해 하윤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 아닌 다른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하윤이를 바라볼 수 밖에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마유미도 정말 사람같지 않은, 아름다운 불꽃같은 외모를 지녔었지만
달빛을 탄 하윤이의 미모는 마유미의 그것에 전혀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다른 느낌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청순하고, 청초하면서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자태가 자못 마유미와 대비되는 느낌도 들었다.
"아저씨."
".. 으.. 응?"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내 시선을 느낀 하윤이가 손으로 제 뺨을 슥슥 문지르며 물었다.
"아니. 안 묻었는데."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요?"
하윤이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그거야 네가 너무 예...!"
"예? 뭐요?"
하마터면 여과없이 주절댈 뻔한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예쁘다고 하기에는 쑥쓰럽기도 하고, 괜한 오해를 살까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달리 생기 넘치고, 안색이 참 좋아 보인다. 하하..."
적당히 둘러댔지만, 하윤이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이미 입가 주변에 그득,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하, 예쁘다고요? 그렇죠. 제가 좀 예쁘긴 해요?"
"..."
얘는 이런 소리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나?
어떻게 자기 입으로 이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윤이의 제 자랑이 내겐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고, 반박할 구석도 없어 보였다.
이럴 땐 그냥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자.
"인정."
"그렇죠. 인정... 어?"
내가 긍정할 줄 몰랐는 지, 하윤이가 당황한 듯이 몸을 흠칫 거렸다.
거참,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기 쑥쓰럽네.
나는 머쓱해져서 볼을 긁적이며 하윤이의 눈길을 피했다.
"아저씨, 뭐에요. 진짜, 하하. 재미없어."
"그거 맞아? 재미는 없는데 기분은 좋아 보이는데?"
"글쎄요? 하하."
어느새 다시 내 시야로 쏙 들어온 하윤이가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어째, 재미없다면서 입가에 미묘하게 미소가 걸린 걸 보면, 그래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잠깐 얘기를 주고 받느라 멈춘 걸음을 함께 다시 옮겼다.
"다시 보려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바로 볼 수 있을지 몰랐어."
"그러게요. 저도요."
너무 가벼워 보일까봐 실실 빠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막아보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선선한 공기와 달빛 내음이, 내 마음을 어수룩하게 간지럽혔다.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좋다..."
하윤이와 함께 걷고있는 이 순간이, 시간이, 더할 나위 없다고 느껴졌다.
"저도요."
"응? 뭐가?"
"좋다구요."
"뭐가 좋은데?"
"글쎄요? 아저씨, 조금 빨리 걷죠."
경보하듯 앞으로 하윤이가 치고 나갔다.
거의 반쯤 달리듯 하윤이를 겨우 따라 잡았을 쯤, 하윤이가 걸음걸이를 늦추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데 무슨 조건이 있는 것 같아요."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 조건을 알아내면 더 많이 만날 수 있을텐데... 뭘까요?"
나 역시 어렴풋이 어떤 조건이 분명 있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하윤이 본인도 모르고 있던 내용을 당장 내가 알 수 있을리 만무했다.
그러다 문득 강이훈이 해주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면의 존재들.
그리고 그런 이면의 존재들이 우리 세상으로 넘어오기 위한 통로인 홀(Hole).
그런 홀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음기가 한 곳으로 강력하게 집중되어야 했다.
하윤이가 정말 유령같은 이면의 존재들 중 하나라면,
그녀 역시 홀을 통해 내 앞에 나타나게 된 걸까?
이성적으로는 가능성있는 타당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강이훈의 말에 따르면, 이면의 존재들은 우리 세상의 인간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들이다.
내 옆에 있는, 이 은하윤이 누군가를 해친다고?
나는 하윤이의 얼굴을 다시금 빤히 바라봤다.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었다.
내 멋대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하윤이가 이면의 존재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이성과 감성의 추론이 팽팽하게 부딪혔다.
무엇이든 확실히 하기 위해선 결국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오늘 재밌는 일이 있었어."
"재밌는 일이요?"
나는 몇 번 목청을 가다듬고, 강이훈과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하윤이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도움을 구하고, 동아리 방에서 만남을 갖게 되고, 폴터가이스트를 겪고, 홀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고...
홀(Hole). 음기가 뭉치는 특이 현상으로 발생하는, 이면 세계와 우리 세계를 잇는 통로.
그리고 그 통로를 통해 우리 세상에 나타나는, 음기로만 이루어진 이면의 존재들에 대한 내용까지.
"어떻게 하다보니, 마지막엔 쫓겨나게 되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여기까지야."
"..."
얘기를 마치니, 하윤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윤이는 혹시 홀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나?
"네가 허락한다면, 그 친구에게 너에 대해서 얘기하고 도움을 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
못 들은건가?
"하윤아?"
"..."
"하윤아?"
"..."
"은하윤!"
"아!"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어, 어깨를 탁 붙잡았다.
그제야 하윤이가 상념에서 깬 듯 나와 눈을 맞췄다.
"미안해요.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요."
"무슨 생각을 했길래 미동도 없어?"
"음... 일단 그 친구 분께는 도움을 요청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확실히 뭔가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알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나 역시 공감하는 바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컬트 동아리 사람들과 엮이다 보면, 뭐가 되든 지금보단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아저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어쩌면 저 정말로 유령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윤이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나는 하윤이가 유령일리 없다 생각하고, 정작 본인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왜 그렇게 생각해?"
"홀(Hole)이라고 했죠?"
"응."
"저 그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아니, 본 적이 있어요."
"뭐?"
너무 놀라 우뚝 걸음을 멈췄다.
"혹시, 홀을 통해 왔다갔다 한 게 기억난거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하윤이에게 물었다.
"그건 아니에요. 제가 홀을 드나든 기억은 없어요. 하지만... 암전 같은 곳에서 의식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하고,
나타나기 전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어쩌면 제가 홀이라는 곳을 드나드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으음.."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삼켰다.
충분히 타탕성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하윤이가 진짜 유령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아직은 추측일 뿐이야. 거길 왔다갔다한 기억이 온전히라도 떠오르면 모를까."
"하하... 그럴까요?"
하윤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어렵사리 추적한 끝에 알아낸 하윤이의 정체가 정말 유령이라면...
그 땐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거세게 고개를 흔들어 불길한 생각을 애써 털어냈다.
"어쨌거나 본 적 있다는 얘기는 그럼 무슨 뜻이었어?"
"그건... 말 그대로에요. 홀이 열리는 걸 본 적 있어요. 그 땐 그게 뭔지 몰랐는데, 아저씨 얘길 듣고 그게 홀이란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땠어...?"
폴터가이스트를 직접 겪었을 때보다 놀랐다.
설마 하윤이가 홀이 열리는 광경을 직접 봤다니.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음..."
미간을 찌푸린 하윤이가 쥐어짜내 듯 기억을 더듬었다.
"그냥... 신기했죠. 몇 번이나 보곤 했는데. 멀쩡한 허공이나 바닥에 마치 블랙홀 같은 구멍이 뚫렸었거든요."
"블랙홀이라... 거기서 뭐가 나오진 않았어?"
"네. 제가 봤던 건 아주 작은 구멍들 뿐 이었거든요. 저기 저런 것 처럼, 비슷하게... 어?"
아무 일 없었으니, 내 앞에 이렇게 서 있는 것 이겠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뭐라고...? 저런 것 처럼?
나는 하윤이가 놀라 가르키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저씨, 저거 안 보여요? 저기 눈 덮이 길에...! 블랙홀 같은 구멍이 나 있잖아요."
"..."
정말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윤이는 당황한 듯 발을 동동 구르다가, 갑자기 덥석 내 손을 붙잡았다.
깍지까지 끼는 건 지나친 것 같은데... 아무튼 굳이 내가 먼저 손을 뺄 필욘 없겠지.
"혹시 이래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어?
하윤이와 손을 잡고, 몇 초뒤 내게도 눈 밭에 뚫린 검은 구멍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블랙홀이 저런 원형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블랙홀 같은 구멍이 거기에 있었다.
"보여요..?"
"어..."
강이훈의 말을 믿긴했는데, 실제로 보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저런 게 실재할 수 있는 건가?
"어쨌거나 간혹 봤었는데, 뭐가 나오거나 바뀌거나 그러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요."
음. 그렇구나.
- 끼리리리릭. 키히히히힛.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윤이의 말에 수긍하는 와중,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끔찍하고, 기괴한 소리가 홀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기계음, 짐승의 울부짖음, 미친 사람의 웃음소리 모든 것을 합쳐놓은 것 같기도 했고,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소리 같기도 했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양 팔에 털이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곤두섰다.
심장 쿵쾅거렸고, 식은땀이 났다.
이건... 너무나 불길하다. 도망쳐야 해.
하윤이도 나와 비슷한 것을 느꼈는 지, 표정이 잔뜩 얼어 붙어있었다.
그 와중에 홀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 아아아아아아....... 가아아아아아아....
홀에서 빠져나오는 소리는... 확신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존재할 수 없는 소리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소리다.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귓고막을 스스로 터뜨려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16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