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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1/20 00:04:19
Name 성아연
Subject [일반] [삼국지]남의 남자를 탐했던 그 남자 (수정됨)
손권은 남자(?) 욕심이 많은 남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인재를 구하는 욕구가 쩔어줬던 남자인데 그래서 조조, 유비 못지 않게 신하들과의 미담도 많은 군주입니다. 예, 뭐 말년의 그 일 때문에 가려지는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오늘은 손권이 탐하려다가 실패한 남자에 대한 글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제갈량이 강동에 도움을 청하려 갔을때 제갈량은 손권에게 강노지말의 고사를 들어가며 손권을 설득하고 손권은 제갈량의 말에 동의하며 유비와의 동맹을 결의합니다. 아마 한동안은 강동에 제갈량이 머물렀을 것인데 손권 진영에서는 이제 막 출사한 이 젊은 선비 제갈량의 재능을 눈 여겨 봤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오나라의 중신 중의 중신인 장소부터 제갈량을 은근히 떠 봅니다. 제갈량을 손권에게 추천한 것이죠, 물론 제갈량은 거기에 머물기를 거절합니다. 손권은 분명 도량이 있는 어진 군주지만 내 기량을 다하게 할 사람은 아니다(유비만이 내 능력을 온전히 다 쓸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손권을 띄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군주 유비를 높이는 식으로 말이죠. 또 자신의 재능에 확신을 가진 젊은 제갈량의 패기도 느낄 수 있습니다.

손권 자신도 제갈량에 대해 등용을 시도해봤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릉대전 당시 제갈근이 유비와 내통한다고 의심을 받자 '제갈근더러 아우를 오에 등용케 하라고 했지만 제갈근은 아우가 유비에게 신의가 있다고 거절했는데 제갈근 역시 나한테 그러하므로 나를 배신할리 없다'라고 일축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제갈근이 의심을 받으니까 내가 제갈량을 등용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라고 옹호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사 삼국지와 화양국지에 따르면 손권은 유비가 형주를 차지한 이후 촉을 함께 치자고 유비에게 권유합니다. 정사 삼국지 선주전에서는 '아, 아무튼 못 가 안돼 돌아가라고' 유비 측이 극구 반대해서 손권이 군사를 물린 것만 기록되어 있는데 화양국지에 따르면 이때 손권의 요구 사항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형주를 영유하기에 이르러, 다시 많은 이들을 수하에 두게 되자 손권은 사자를 보내어 공동전선을 펴서 촉을 토벌하자고 요청했다.
또 (손권이) 말하기를 '저는 한 가문이 되어 융성해지길 원합니다. 제갈공명의 동복 형은 오나라에 있으니 서로 합치게 하십시오' - 화양국지 유선주지

예, 그러니까 손권은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서 이런 말을 한 겁니다. '촉을 같이 칩시다! 그리고 한 가문이 되어 융성해지길 원하는데 제갈량 형 제갈근이 오나라에 있으니 제갈량을 오나라에 있는 형과 합치게 하면 안 될까여?' 이 편지를 본 유비나 그걸 같이 보고 있었을 제갈량이나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군요.(...) 하여간 제갈량은 당연히 오나라로 안 갔고 그대로 익주로 들어가 촉한 건국에 매진합니다.

하여간 제갈량을 매우 탐했던(?) 손권은 제갈량이 촉한의 승상이 되어 유비의 탁고를 받고서도 빠심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태평광기에 남아 있습니다. 황제로 즉위 한 이후 어느 날에 손권은 제갈근의 아들이자 제갈량의 조카인 제갈각에게 물어 봅니다.


손권이 일찍이 제갈각에게 물었다.

​"그대를 승상(제갈량)과 비교하면 어떤가?"

제갈각이 답했다.

"신이 그를 이깁니다."        

​손권이 말했다.

"승상이 유조로 보정(輔政)을 제수받아 나라는 부강해지고(國富) 형벌은 맑아지니(刑清) 비록 이윤이 황천의 격이 되고(格於皇天) 주공이 사표에 빛나도(光於四表) (제갈량을) 멀리 넘어갈 방법이 없다.(無以遠過) 또한 (제갈량은) 그대의 숙부가 되는데 어찌 그를 이긴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제갈각이 답했다.

"진실로 폐하의 밝은 말씀과 같사오나, 다만 (그는) 더러운 군주를 섬기는 데에 이르렀고, 거짓 임금의 비위를 맞추었고, 천명(天命)을 어둡게 하였으니, 즉 맑고 큰 조정을 섬기고(清泰之朝) 천하의 임금을 찬양하는 신과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 태평광기 제갈각편


예, 그러니까 제갈각이 숙부를 이긴다고 답하니까 갑자기 손권 이 양반이 급 발진이 걸렸는지 '니가 니 숙부를 이긴다고? 야, 제갈량이 정치하는걸 보면 이윤이나 주공 단이 와도 제갈량을 넘어설 방법이 없는데 니가 니 숙부를 어떻게 이김?' 이라고 대놓고 면박을 준 겁니다. 제갈각이 특유의 기지로 손권을 띄워주면서 잘 마무리 합니다만 제갈각 입장에서도 아니 이건 무슨 답정너인가 싶어서 내심 황당하긴 했을 겁니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손권의 인재욕심이 이상한 쪽(?)으로 기운 일화 가운데는 남의 남자(?)인 제갈량을 탐했다는 기록도 있다더라는 얘기 되겠습니다. 그만큼 손권이 인재욕심이 많은 군주였다고도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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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0 00:17
수정 아이콘
제갈량이라면 그럴만하죠.. 모든군주가 꿈꾸는 신하..
마담리프
21/01/20 00:22
수정 아이콘
와...얼마전 네임드분의 삼국지 한자드립글보다가
이글을 보니 심신이 정화되네요..
Pygmalion
21/01/20 01:04
수정 아이콘
제갈각은 무슨 근거로 제갈량을 이길 수 있다고 답변한 건가요?

그냥 군주가 물으니 신하가 나도 엄청 잘난 사람입니다~ 라고 근자감 답변한 건지,
아니면 (자신만의 망상일지라도) 뭔가 그럴 듯한 근거가 있었던 건가요?
성아연
21/01/20 01:09
수정 아이콘
답은 제갈각 본인이 벌써 한 거죠. 숙부 제갈량이 아무리 영명한 신하라고 해도 결국 숙부는 잘못된 군주를 택했고, 내가 섬기는 군주가 뛰어나니 더 낫다고요. 적당히 손권도 띄워주고 자신의 입지도 챙기고 그런거죠.
계피말고시나몬
21/01/20 01:12
수정 아이콘
제갈각은 그냥 자뻑이 심했습니다.

[최민호? 복싱 3개월 배운 우리 남친이 이김.]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아연
21/01/20 01:16
수정 아이콘
[진실로 폐하의 밝은 말씀과 같사오나]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갈각도 숙부에게는 살짝 숙이는거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의외로 제갈각이 숙부 표문을 가지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 정도로 숙부를 의식한 기록도 있고요. 여기선 자신을 살짝 낮추는 대신 군주를 띄워주는 선택을 한 거죠.
판을흔들어라
21/01/20 02:01
수정 아이콘
제갈량이 취업(?) 못해 유비쪽에 등용됐다는 말을 진지하게 하는 게 참 이해가 안 가더라는.... 누구나 탐하는 인재인데
Sardaukar
21/01/20 14:08
수정 아이콘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한 웹툰작가가 단편을 그리게 되는데..
21/01/20 02:22
수정 아이콘
능력을 다쓴건 맞긴한데 미래가 그리 어두울줄은 제갈량 자기자신도 몰랐을듯 ㅠㅠ
이른취침
21/01/20 11:33
수정 아이콘
셀러리맨의 숙명...꼬우면 자영업이라도 했어야...
21/01/20 06:36
수정 아이콘
유비의 침상에서 수어지교를 맛 본 제갈량이 다른 사람 아래로 갈 리가 없었지 싶습니다
이른취침
21/01/20 11:34
수정 아이콘
ㅓㅜㅑ 근데 거기에 조운도 있었...???
GNSM1367
21/01/20 07:54
수정 아이콘
정말 대단한게 제갈량과 관우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거의 신 취급을 받았다는거.. 곱씹을수록 대단한 것 같습니다.
동년배
21/01/20 08:37
수정 아이콘
제갈량은 위에도 나오지만 공자가 숭배한 주공 단과 비견될 정도로 모든 왕들이 꿈꾸는 신하죠. 주공 단은 어쨌든 왕족의 일원이었지만 제갈량은 그런것도 아닌데 왕이 좀 못나도 다른 생각 전혀 없이 내정 잘하고 심지어 자기 사후 몇십년 뒤 준비까지 다 해놓고...
신류진
21/01/20 11:38
수정 아이콘
제갈각이 평소에 숙부와 자신을 여러번 비교하긴 했죠.
더치커피
21/01/20 17:25
수정 아이콘
권력욕만큼은 숙부를 아득히 능가했죠..
지니팅커벨여행
21/01/21 00:00
수정 아이콘
제갈량이 후사가 늦어서 제갈근의 가문을 보존해 주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각나네요.
제갈각은 동생이 숙부의 양자로 들어갈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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