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다가 우연히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영어 위키백과에 나온 나발니의 이력을 살펴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글로 정리해 봤습니다. 편의상 경어는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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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귀국한 이후 러시아는 연일 대중집회로 들끓고 있다. 하루 2만 명 이상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연일 수만명의 시위대가 러시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고, 체포된 사람만 3500명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알렉세이 나발니와 100년 전 러시아의 혁명가인 블라디미르 레닌을 비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서도 나발니와 레닌을 비교하는 시각을 전하고 있으며(
https://foreignpolicy.com/2021/01/22/navalny-bring-down-putin-russia-opposition/) 국내 언론에서도 나발니와 레닌을 비교하는 칼럼이 실렸다.(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1012505731)
확실히 나발니와 레닌의 모습엔 닮은 구석이 있다. 레닌은 1차대전이라는 대혼돈의 시기에 독일에서 러시아로 귀국했다. 나발니는 코로나 정국이라는 혼란기에 독극물 테러로 독일에 치료차 나갔다가 자신이 체포될 수 있는 상황임을 알고서도 치료를 마치자마자 러시아로 귀국했다. (혼란의 시기에 독일에서 러시아로 귀국)
두 사람은 당대 뉴미디어를 잘 활용한 인물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레닌은 여러 혁명가들 중에서도 신문의 존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 지도자였다. 전제정부 치하에서도 그는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며 신문을 제작했다. 지금도 명맥이 이어져 오는 레닌의 신문 프라우다는 정권의 불법과 비리를 폭로할 뿐만 아니라, 하루 평균 30건에 달하는 독자투고를 통해 레닌의 볼셰비키 조직을 늘려가는 역할도 했다. 1905년 이후 레닌은 10년 이상 망명생활을 했지만 신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러시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알렉세이 나발니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1월 17일 귀국 직전 그는 인스타그램에 2000년 러시아 영화 'Brother 2'의 대사를 인용해 자신의 귀국을 알렸다.(한국으로 치면 '타짜' 같은 위상의 영화로 보임) 나발니는 귀국 직후 체포됐지만 유튜브 영상을 통해 "두려워하지 말고 거리를 점령하자. 나를 위해 행동하지 말고 여러분과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자"는 말을 올렸고, 실제로 나발니가 언급한 날짜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체포 뒤에도 미리 만들어 둔 듯한 나발니가 출연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고 있다. 푸틴의 비밀별장 및 각종 비리의혹을 나발니가 설명해주는 2시간 가까운 영상은 유튜브에서 9300만회의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ipAnwilMncI&feature=emb_title)
이렇게 나발니와 레닌이 비교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레닌에 대한 좋은 감정을 여전히 갖고 있는 러시아인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4년 전 여론조사에 의하면 러시아인이 꼽은 가장 위대한 러시아인 4위가 레닌이었다. (
https://www.yna.co.kr/view/AKR20170626146100080) 러시아에 가본 적도 없고, 러시아어도 모르는 입장에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만 이렇게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러시아를 유럽에서 가장 뒤쳐진 전제군주국에서 여성 참정권이나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바꿔내고, 미국에 뒤이은 세계 제2의 공업대국으로 만든 기틀을 다진 것은 누가 뭐래도 레닌이었고, 그런 업적이 있기 때문에 아직 레닌을 긍정적으로 보는 러시아인들이 많은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나발니 앞에 놓인 상황은 1917년 2월 이후 레닌 앞에 놓인 상황과 매우 다르다. 사실 나발니의 앞길이 레닌보다 훨씬 험난하다. 레닌은 이미 러시아인들이 2월 혁명을 경험한 직후에 귀국했다. 그리고 최소한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의 소비에트는 레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나발니는 푸틴이 21년째 장기집권중인 데다가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점에서 귀국했으며, 나발니의 세력은 야권 중에서도 소수파다. 러시아 하원(두마) 기준으로 제1야당은 소련 공산당의 후신인 러시아 공산당이다. 레닌은 자신을 지지하는 소비에트 조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신문, 전신 등 다양한 수단으로 전할 방법이 있었다. 반면 나발니의 귀국 소식은 외국에서나 떠들석할 뿐, 러시아 내에서는 최소한으로만 언급되고 있다.
또한 푸틴의 사정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의 총리였던 케렌스키의 사정과도 매우 다르다. 케렌스키는 2월 혁명의 주체세력간의 합의로 총리가 된 처지라 푸틴처럼 전권을 휘두를 위치가 아니었다. 여전히 러시아 전역에는 과거 제정을 지지하는 세력들도 남아 있었고, 1차대전으로 불만이 많았던 군부가 독자적인 쿠데타를 주도하기도 했다. 케렌스키의 통치권은 수도권을 넘어섰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그 안에서도 소비에트 조직세가 강한 곳에서는 정부의 말이 먹히지 않았다. 케렌스키 정부의 근원적 취약함, 레닌을 지지하는 수도권 노동자 조직, 쿠데타도 제 힘으로 진압하지 못한 정부의 허술함 등이 겹쳐진 결과 10월 혁명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고 본다.
반면 푸틴은 케렌스키처럼 취약하지도 않으며, 군부가 푸틴에 반란하는 낌새도 없으며, 나발니 등 야권 지도자를 지지하는 거대한 대중조직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푸틴도 무조건 강하게만 나오는 지도자는 아니다. 이미 2번의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에는 다른 독재자들처럼 개헌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대통령직을 내려놨다. 그의 후임자 메드베데프는 겉으로는 푸틴과는 다른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기도 하고, 푸틴과 충돌하는 모양새도 연출했다. 10년 가까이 지난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메드베데프는 애초에 푸틴에 도전할 의사가 없었다. 다만 푸틴 정권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해주는 양념으로 쓰였을 뿐이다.
지난해 푸틴은 개헌을 통해 사실상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2036년까지 대통령직 가능) 그런 한편으로는 의회에 대법원 판사 임명권, 총리 및 장관 인사 승인권 등 몇가지 권한을 이양했다. 오랫동안 총리로 기용한 메드베데프도 물러나게 했다. 나름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한 모양새다. 하지만 푸틴은 여전히 대통령이고 메드베데프는 추가적인 권한을 이양받은 의회의 절대다수당의 당대표다.(기존엔 푸틴이 장관을 임명하고 끝났다면 이제는 푸틴이 장관을 임명하면 메드베데프가 박수로 통과시켜주는 형식) 푸틴은 때론 강하게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한편 국민의 눈을 속이는 수법을 통해 21년간 강고한 집권기반을 쌓아왔다.
나발니가 이런 푸틴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레닌처럼 러시아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은 공산주의 하면 중국, 북한처럼 억압적인 체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레닌의 공산주의는 애초 급진적인 민주주의, 모든 인간의 평등(참정권 평등, 성평등, 민족 평등 등 포함) 등을 내세운 사상이다. 수백년간 전제군주정을 거친 러시아 인민 입장에서는 충분히 열광을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었다. 10월 혁명의 순간 러시아인의 절대다수가 레닌을 지지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0월 혁명 이후, 그리고 내전 과정에서 최소한 러시아의 주요 공업지대 대도시의 인민의 절대 다수는 레닌의 공산주의에 지지를 보냈다.
반면 나발니가 레닌과 같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을 전파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을 참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의 과격 민족주의자(일종의 러시아민족 우월주의)로서의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애초 리버럴 성향의 정당 야블로코에서 출당된 이유도 과격한 민족주의 활동 때문이었다. 나발니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기존정당 후보들을 앞지르고 2위를 달성해 러시아 내에서 화제가 됐는데, 그 때도 그의 과거 발언들이 문제가 됐다. 외국인 노동자를 뽑아내야 할 충치로 비유하거나, (2008년 러시아로부터 침략당한) 조지아인을 설치류 떼로 묘사하는 발언 등이 이슈가 됐다.
다만 모스크바 시장 선거 이후 반푸틴 정치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이후에는 러시아민족 우월주의 발언은 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한 말일 수도 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시리아 내전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고, 크리미아 합병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실질적으로 합병이 완료된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긴 하다. 일본에서 '타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말하는 일본 민주당 정치인의 입장과 비슷한게 아닐지) 동성결혼 합법화나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등 러시아에서는 쉽게 동조하기 어려워보이는 주제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피력했다고도 한다.
최소한 나발니가 과거 러시아민족 우월주의 성향을 그대로 유지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다. 최근 발언만 보면 그래도 러시아를 민주주의 국가로 바꾸겠다는 의지는 확실히 있어 보인다. 현재로서는 앞길이 막막하긴 하지만, 그가 제2의 레닌이 되기 위해서는 레닌처럼 2021년의 시대정신에 맞는 지향점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 나발니의 이력 2000~2018
국내 언론에도 가끔 나발니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긴 하는데, 독극물 사건 이전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한 소개는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영어판 위키백과 등을 참조해 독극물 사건 이전 나발니의 행보를 간단히 정리해 봤다.
2000년 나발니는 리버럴 성향(한국의 민주당 정도?)의 야블로코(Yabloko)란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TV 토론도 나가고 약간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나, 애초 야블로코와 색이 맞지 않았던 듯 하다. 2006년에는 불법 이주노동자 추방을 내건(겉으로는 그렇고 실상은 우익 민족주의자 집회로 보임) 시위를 주도하고, 2007년엔 러시아 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민'이라는 민족주의 시민운동 조직을 발족하는 등 행보를 보이다가 출당당한다. 탈당 이후엔 민족주의 시민운동을 이어가다가 2011년 총선(당연히 푸틴의 집권여당이 압승)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다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러시아의 정치시사 방송국 모스크바 공감(Echo of Moscow)은 이 사건이 나발니를 온라인 유명인에서 오프라인 정치 지도자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나발니는 2012년 푸틴의 3선 직후 대담하게도 모스크바에서 2만 명 가까이 모인 반푸틴 시위를 조직하는데 참여했다. 이 시위로 그는 15일간의 감방생활을 한 뒤 현재도 자신이 이끌고 있는 '인민연맹'(현 미래의 러시아)을 창당한다. 이듬해 그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기존 정당인 공산당, 야블로코 후보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반푸틴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이때도 그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결선투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음) 시장 선거 이후에는 그는 반푸틴 '빅텐트' 정당 참여를 권유받았다. '빅텐트'의 일원이자 또다른 반푸틴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는 '빅텐트' 논의가 한창이던 2015년 2월 권총테러로 갑자기 사망했다. 반푸틴 공동전선에 공식적으로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나발니는 인민연맹이 정당 자격을 박탈당한 것도 있고 해서 결국 공동전선에 참여한다. 하지만 이 공동전선은 러시아 선관위의 비협조로 많은 후보를 내지 못했고 2016년 총선에서 2%를 득표하는데 그친다.
2016년 총선 이후 나발니는 2018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 선언했다. 그런데 나발니의 출마선언 2달 뒤인 2017년 2월, 러시아의 중서부에 위치한 키로프 주의 주법원이 갑자기 나발니의 부패 혐의에 대해 징역 5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미 나발니는 똑같은 건으로 2013년에 선고를 받은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유럽인권재판소가 공정한 재판이 아니었다며 러시아에 시정을 권고했다. 러시아 대법원은 이 권고를 받아들여 주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시켰는데, 주법원은 대법원과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다시 유죄를 내린 것이다. 이 판결로 인해 나발니는 피선거권을 박탈당했고, 선거 등록 전까지 피선거권 회복을 위해 국제사회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결국 후보등록엔 실패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전세계 외신을 타면서 러시아 국외에서도 반푸틴을 상징하는 유명인사로서의 나발니의 명성이 더해졌다.
영어권 언론을 보면 푸틴이 나발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푸틴 앞에서는 '나발니'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어 있다고 한다. 푸틴이 나발니를 어쩔 수 없이 언급하더라도 절대로 이름은 거론하지 않고 영어의 mister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표현으로만 부른다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