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밝히기 부끄럽지만 저는 게임내 채팅 제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승부욕이라는 포장지로 가리기에는 인성적인 결함이 너무 큰 탓입니다.
게임 클라이언트는 친절하게도 접속할 때마다 제재받은 채팅 내용을 첫 화면으로 띄워줍니다.
자.
두눈을 똑똑히 뜨고 네 만행을 보아라.
채팅 내용을 볼 때마다 후회를 반복합니다.
와.
내가 왜 저렇게 썼지?
나는 혹시 분노조절 장애가 아닐까?
분명 제가 쓴 채팅 내용인데, 아이디 속의 인물이 저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2. 어떤한 경우로든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있으실겁니다.
대부분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이게 내 목소리라고?"
스스로 말할때 듣는 목소리와, 녹음되어있는 목소리가 제법 다릅니다.
아, 다른 사람이 들을때는 이렇게 들리는구나.
3인칭 시점의 나는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구나.
3. 악플러나 어그로들은 일반인에 비해서 상처를 덜 입는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인격과 넷상에서의 인격을 분리를 하기 때문이라더군요.
이건 가상공간에서 생성한 내 '캐릭터'일뿐이니, 공격을 받는건 자신이 아닌 '캐릭터'라는 논리입니다.
대단히 무책임하고 속편한 생각이지만, 어찌보면 대단히 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역시 아바타야.
성능 확실하구만.
4. 드라마에서 악인을 향해 종종 나오는 대사가 있습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알겠죠.
스스로 한 일인데.
'무슨 짓'인줄은 확실히 알 겁니다.
하지만 '네가'라는 말을 확실히 알고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주체가 '나'라는 사실을, 그들은 '정말로' 알고 있을까요.
5. 그래서, 가끔은 나만을 위한 CCTV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직 나만을 위한 겁니다. 나만이 돌려볼수 있는 CCTV.
게임을 하다 싸울때는 [게임화면]만 보이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들기는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악플을 달 때에는 아바타만 보이지, 아바타를 만들어낸 내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이 경우에는 감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군요.
터무니없는 상상이지만, '3인칭 시점 의무 확인제도'같은게 있으면 어떨까요.
다른 누구에데도 보이지 않지만, 오직 본인만큼은 자신의 행동을 강제로 시청해보는겁니다.
보아라.
이게 너고, 이게 네가 한 행동이다.
감히 예상하건데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악행들이 유의미하게 줄어들것입니다.
6. 사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런 CCTV가 있습니다.
양심?
그런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단어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인간은 '상상'이 가능한 동물이니까요.
카메라가 없어서 직접 돌려볼수는 없지만, 내가 어떤 모습을 했는지 정도는 상상만으로 충분히 커버가 됩니다.
저또한 어떤 모습으로 키보드를 두드렸을지 눈에 훤히 들어옵니다.
또한번 쪽팔리네요.
물론 그 안에서도 어쩔수없는 내 '주관'이 있기는 하겠지만, 시도라도 해보는게 어딘가요.
7. 이 글은 채팅 제재와 명예레벨을 회복한 뒤 새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쓴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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