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상수 영화를 좋아한다. 나 대신 발가벗겨진 남자 주인공들의 비겁함과 유치함을 보면 잠시나마 내 치부가 사해진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양반전’을 보는 양반들의 마음이 이랬으려나.
클로저(Closer)에도 똑같이 찌질한 남자들이 나온다. 하지만 홍상수의 남자들과는 다르다. 슬프고, 불쌍하다. 결코 수학적이지 않은 사랑을 두고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찌질하다. 내 과거이자 현재다. 미래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참 힘들다.
장면#1,2
1. 래리(클라이브 오웬)는 바람 핀 여자친구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나보다 그 사람(댄/주드로)이 잘하냐?’고 묻고, ‘창녀’라고 쏘아 붙인다.
2. 래리는 안나에게 ‘나와 이혼하고 싶으면 마지막으로 잠자리를 하자’고 는 제안한다.
> 래리가 처절하게 슬퍼 보인다. 자신의 헌신과 진심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든 탓에 오히려 그 간의 사랑을 육체적인 관계로 ‘격하’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런 찌질한 방어기제는 일종의 ‘정신 승리’에 지나지 않고, 사실은 너무 절망적인 감정의 발로이다. 나도 경험이 있다.
장면#3
댄은 다시 만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가 래리와 정말로 잠자리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한다. 진실을 말해 달라며 투정을 부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엘리베이터 거울로 보고는 스스로 한심해 하며 곧바로 앨리스에게 돌아간다. 정작 그런 댄은 앨리스를 버리고 안나와 긴 외도 기간을 보냈다.
> 댄의 성숙하지 못한 이기심이 왜 그렇게 앨리스의 사랑(그리고 타협)과 비교가 될까. 그런데 댄에게는 ‘그 질문’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댄은 타협을 모르고 완전한 진실만을 좇는 본인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아니까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곧바로 앨리스에게 돌아왔을 것이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본인의 과거(진실)에는 너그러운 안타까운 댄. 댄은 또 언젠가 누군가를 그렇게 떠나보낼 것이다.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연민이 든다.
# 그런데 아마 래리와 앨리스는 잠자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래리도 거짓말, 앨리스도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비오는 날 본 영화여서인지 더욱 찝찝하다.
앨리스의 대사 하나로 감상을 마무리 합니다.
‘사랑은 순간의 선택이야 거부할 수도 있는 거라고 자기한테도 분명 선택의 순간이 있었어’
– 댄이 앨리스에게 안나와의 바람사실을 알렸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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