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학 기사에 보니까 인간은 세 번 늙는다고 했다. 단백질 수치가 달라진다나. 잔인하게 34, 60, 78세라고 시간도 딱 정해 주었다. 거시적인 인생 전반으로 본다면 저 시기들 일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 20~30대 남자들이 노화되는 원인으로만 특정해본다면 따로 세 가지를 꼽아볼 수도 있다. 바로 군대, 취업, 육아이다. 국가와 사회와 가정이 살포시 건네는 이 세 번의 고난을 거하게 겪고 나면 소년은 아저씨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한두 번 운 좋게 시련을 이겨 낸다고 쳐도 결국 다들 세월을 직방으로 맞게 되어 우울해하고는 했었다. 어린이부터 중후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노안들이 우리는 그대로라며 의기양양해지는 시기도 이때라 볼 수 있다. 동안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때이다. 당연한 것이 청소년에게 동안이라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안의 소유자였다. 길을 가다 옛 친구를 만나거나 경조사에서 동창들을 마주치면 안부인사보다 먼저 들었던 이야기가 「너는 어떻게 그대로냐?」라는 소리였다. 그럴 때마다 너스레를 떨며 「물 많이 마시고 술, 담배 하지 않고 일찍 잠자고 좋은 마음을 품고 살면 된다」라는 시중에 널린 자기 개발서 한 구석에서 발췌한 듯한 헛소리를 하고는 했다. 진짜 으쓱도 했다. 내가 봐도 그 검붉은 낯빛들과 내 탱탱한 얼굴은 차이가 났으니까. 어느 날은 병원을 갔는데 원장님이 약간 놀라면서 내 나이와 얼굴을 두어 번 살폈다. 그러더니 「와, 엄청 동안이시네요. 언제부터 동안이셨어요?」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 태어났을 때부터요」라고 대답했던 적도 있었다.
어려 보이는 얼굴은 단점도 많았다. ‘만만히 보이기 쉽다’, ‘반말 듣는 건 예사이다’라는 잘 알려진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연애 시장에서 꽤나 불리하다. 한창 짝짓기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 동안 소리를 듣는다는 건 다른 말로 한다면 수컷의 매력이 부족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른 장점을 만들어야 했다. 누군가 본능적 남성성만으로 이성을 유혹할 때 나는 열심히 웃기고 떠들고 이상한 이야기라도 열심히 들어주는 노력을 해야 했다. 동안은 따지고 보면 자랑할 것도 못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물난리가 났던 것처럼 아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잘생긴 사람은 잘생겼었구나, 키 큰 사람은 키가 크구나. 하지만 동안이었던 사람에게 ‘어렸었구나’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누구나 그랬으니까. 그래도 가진 것 하나 없었던 시간의 나에게 동안이라는 것은 약간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사실 부릴 게 그거밖에 없었다.
그러나 30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인 지금 급격한 노화가 왔다. 거울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과학이 겁을 줬던 서른네 살도 무사히 넘어가길래 ‘거봐라 과학이라고 다 맞는 거 아니다’라며 의기양양했지만 내 얼굴이 드디어 무너졌다. 맨주먹의 가난한 대학원생이 느지막이 결혼도 하고, 취업도 하고, 귀여운 딸도 낳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행복의 값을 얼굴로 치렀다. 이제 알았다. 인생에 무임승차는 없었다. 나는 뒤늦은 삶을 살아서 이제야 대가를 냈다. 친구들 얼굴이 상한 것은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과 육아에 지쳐서였다. 내 얼굴이 팽팽했던 것은 그동안 생각 없는 댕기머리로 편히 살아서였다. 덕분에 이제 나는 「아직도 얼굴이 그대로」라는 말 대신 「너도 갔구나」를 한동안 들어야 한다.
얼굴뿐 아니라 생각도 나이가 들어간다. 누가 BTS를 아냐고 물었을 때 「그거 간선급행노선 아니야?」라고 대답했었다. 간선급행노선은 BRT이다. 또 카카오 페이지에서 만화를 볼 때, 보는 것마다 ‘기다무 웹툰’라고 쓰여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 ‘기다무’가 독과점 웹툰 업체 이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 말은 ‘기다리면 무료’의 약자였다. 나도 쉬었구나, 이제 꼰대구나라며 머리를 감싸 쥐자 아내가 한 마디 위로를 해주었다. 「자기는 꼰대는 아니야. 그냥 옛사람이지」.
이제 동안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정식으로 이별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마음 아파서 쿨하게는 못 보내겠다. 다만 어느 날 그 사람이 없어도 내 인생에 티가 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젊음과 서서히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그 삶이 얼굴에 비친다고 했다. 내가 동안에 집착했던 것은 얼굴에 새길 불확실하고 두려운 미래보다는 만만했던 과거에 미련을 두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딱히 좋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왕지사 나이 드는 거 이제는 지난날에 대한 미련을 접고 겪어낼 앞날에 대한 생각을 해야겠다. 한 번 더 나이들 60세에는 그동안 도망치지 않고 열심히 살았구나를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그러니 새해에는 더 힘을 내서 살아야겠다. 안녕 내 젊은 날의 얼굴, 그 얼굴은 내 딸에게서 찾아볼게.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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