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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11 21:47:06
Name 아난
Subject [일반] <기생충>은 어떻게 걸작에 미치지 못하는가 (리처드 브로디) (수정됨)
HOW “PARASITE” FALLS SHORT OF GREATNESS (Richard Brody)
<기생충>은 어떻게 걸작에 미치지 못하는가 (리처드 브로디)

● 출처: 뉴요커 / 2019년 10월 14일
https://www.newyorker.com/culture/the-front-row/how-parasite-falls-short-of-greatness

Of the two current movies in which a young man who has been severely harmed by the inequalities of money and power preys upon the wealthy, looks nihilistically at the social order, turns to violence, and is given to fits of compulsive laughter, the Korean director Bong Joon-ho’s “Parasite” is by far the better one, but the contrast between that film and “Joker” is nonetheless revealing. “Joker” take s off from a facile premise and descends into incoherent political trolling as a result of scattershot plotting and antics—its director, Todd Phillips, appears not to see what he’s doing. Bong, by contrast, is a far more skillful and thoughtful filmmaker. He has a very clear purpose, sees exactly what he’s doing, and does it with a directness that is itself deadening: his messaging is so on point, his rhetoric so rigid, that there’s hardly anything left untethered to allow the viewer imaginative freedom.  

돈과 권력의 불평등으로 심하게 상처를 받은 청년이 부유한 이들을 먹이로 삼고 사회질서를 허무주의적으로 보고 폭력을 향해 돌아서고 강박적 웃음의 발작에 빠지는 현재의 두 영화 중 한국 감독 봉준호의 <기생충>은 훨씬 더 뛰어나지만, 그 영화와 <조커>의 대조는 그럼에도 시사적이다. <조커>는 안이한 전제에서 출발하며 산만한 구성과 익살의 결과로 일관성 없는 정치적 트롤링에 빠진다. 그것의 감독인 토드 필립스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는 것 같다. 대조적으로 봉은 훨씬 더 능숙하고 사려 깊은 영화감독이다. 그는 매우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보는데, 영화 자체를 약화시키는 직접성으로 그렇게 한다. 그의 메시지 전달은 아주 뚜렷하며 그의 레토릭은 아주 엄밀해서 줄에 매여 있지 않아 감상자에게 상상적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Parasite” seems, for the most part, to fulfill Bong’s strong and admirable intentions. It conveys the sense that he made the movie with the desire, the will, to show something that he has in mind, that troubles him, and that ought to trouble viewers—and to show it in a form that’s sufficiently entertaining, sufficiently within the standards and codes of genre films, that significant numbers of viewers will trouble themselves to see it and make note of what they’ve seen. “Parasite” is a satirically comedic thriller about poverty, about the contrast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about the injustice of inequality, that avoids the conventions and habits of realistic social dramas. The settings are crucial to the movie. Bong wants to show specific places that stand in for many others of the same sort. One is a cramped, substandard, subterranean “semi-basement” apartment in which a poor family of four lives, at the end of a dead end, where they’re vulnerable both to social and environmental hazards. He contrasts that with a rich and frivolous family’s lavish, well-protected, spacious, comfortable, architecturally distinguished and aesthetically pleasing villa that, nonetheless, conceals and symbolizes the agony of the deprived and the despised.

<기생충>은 대체로 봉의 강력하고 감탄스러운 의도들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가 염두에 둔, 그를 괴롭히는, 그리고 감상자를 괴롭혀야 하는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 그리고 충분히 즐겁게 하는 형식 속에서, 충분히 장르 필름들의 표준들과 약호들 안에서 그것을 보여주려는 욕망, 의지로 그가 그 영화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상당수의 감상자들은 그 표준들과 약호들을 보아내려고 고군분투하고 그들이 본 것을 적어 놓을 것이다. <기생충>은 리얼리즘적인 사회 드라마들의 규약들과 관습들을 피하는, 빈곤에 관한, 부자와 빈자 사이의 대조에 관한, 불평등의 부정의함에 관한 풍자적으로 코믹한 스릴러이다. 이 설정은 영화에 결정적이다. 봉은 같은 종류의 다른 많은 것들을 대표하는 특정한 장소들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하나는 4명의 가난한 가족이 막다른 골목의 막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비좁은, 표준미달인 “반-지하” 주택이다. 거기서 그들은 사회적 위험과 환경적 위험 양자 모두에 취약하다. 그는 그 주택을 부유하고 경박한 가족의 호화롭고, 잘 보호되고, 넓직하고, 편안하며, 건축적으로 개성적이고 미적으로 쾌감을 주는, 그렇지만 궁핍한 이들과 괄시받는 이들의 고통을 은폐하고 상징하는 빌라와 대조한다.

The despairing young man, Kim Ki-woo, lives in the tiny semi-basement apartment, which yields a ground-level view of the street from a ceiling-high window. He lives with his sister, Ki-jung, a talented graphic artist; his father, Ki-taek, an out-of-work driver; and his mother, Chung-sook, a former star of track and field. The four members of the Kim family are all unemployed; their search for work is further thwarted when a neighbor slaps a password on the Wi-Fi that they’ve been piggybacking on. A piecework job folding pizza boxes comes to nought; then Ki-woo’s friend Min, a college student, comes to the rescue. Min is tutoring a high-school student who’s the daughter of the wealthy Park family, but he’s leaving, to study in the United States. He offers the part-time gig to Ki-woo, who wanted to go to college, too, but couldn’t pass the rigorous entrance exams—because, it’s said, he was too busy working.

절망적인 청년 김기우는 그 작은 반지하 주택에서 살고 있으며 천장 높이의 창문에서 거리의 지표면을 볼 수 있다. 그는 재능있는 그래픽 아티스트인 여동생 기정과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 기택은 실직 중인 운전사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정숙은 전 육상경기 스타이다. 김씨 가족의 네 성원 모두 실업자이다. 그들의 일자리 찾기는 그들이 편승해 사용해 왔던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이웃이 바꾸자 더욱 힘들어진다. 피자 상자를 접는 삯일은 끝난다. 나중에 기우의 대학생 친구 민이 도움을 받으러 온다. 민은 부유한 박씨 가족의 딸인 고등학생의 가정교사 일을 해왔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참이다. 그는 역시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입학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던 – 일 하느라 너무 바빠서였다고 한다 - 기우에게 파트 타임 일자리를 제공한다.  

Ki-jung, a talented artist, goes to an Internet café and forges university certificates for Ki-woo, who’s hired by the Park family—the father, Dong-ik (who also calls himself Nathan), is the head of a software company; the mother, Yeon-kyo, doesn’t work outside the home—to teach the girl, Da-hye, who’s fifteen. Min has an incipient romance with her, and hopes to marry her. But Ki-woo—who is introduced to the Americanophilic household as Kevin—lets a mutual flirtation develop, and himself imagines ultimately marrying her and moving into the lavish home. Meanwhile, Ki-woo sees an opening: the Parks’ young son, Da-song, has emotional issues, and Ki-woo recommends his sister—passing her off as a friend—as an art teacher. Once she arrives (under the name of Jessica and the guise of a onetime student in the United States), she sees another opening: she contrives to get Nathan’s chauffeur fired and her father (also presented as a friend) hired in his stead; then the three Kims manage to get the Parks’ live-in housekeeper, Moon-kwang, fired and replaced by their mother, Chung-sook. The Kims more or less take over the Park household—in the process, exposing underlying tensions and unresolved conflicts that lead to violence of a Grand Guignol extravagance.

재능있는 예술가인 기정은 인터넷 카페에 가서 박씨 가족에 고용된 기우를 위해 대학 졸업증명서를 위조한다. 박씨 가족의 가부장인 동익 (자신을 네이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 소프트웨어 회사의 사장이다. 그의 부인인 연교는 15살인 딸 다희의 사교육에 신경쓰느라 집 밖에서 일하지 않는다. 민은 그녀와의 로맨스의 초기에 있으며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미국 애호 일가에게 케빈으로 소개된 기우는 그녀와의 연애 관계를 발전시키며 궁극적으로 그녀와 결혼하여 호화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상상한다. 한편 기우는 기회를 대면하게 된다. 박씨 부부의 어린 아들인 다솜은 감정적 문제를 겪고 있으며 기우는 자신의 여동생을 친구로 위장시켜 미술 선생으로 추천한다. 일단 그녀가 (제시카라는 이름과 미국에 유학한 적이 있는 학생이라는 이름 아래) 도착하자 그녀 또한 또 하나의 기회를 대면하게 된다. 그녀는 술수를 부려 네이선의 운전기사가 해고되고 (역시 친구로 소개된) 부친이 대신 고용되도록 한다. 그 후, 세 명의 김씨는 이럭저럭 박씨네의 동거 가정부인 문광이 해고되고 모친인 정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는데 성공한다. 김씨네는 박씨 일가를 접수하고 - 그 과정에서 그랑기놀풍의 방종한 폭력에 이르는 근저의 긴장들과 미해결된 갈등들이 노출된다.  

The chaotic “Joker” feeds red meat to conflicting strains of political tantrum-throwers, from Bernie bros (by exulting in violence against the rich) to the alt-right (by exulting in a mainstream-media figure being shot in the head), and to critics who mistake such button-pushing for seriousness. “Parasite,” by contrast, is consistent, all too consistent; it focusses its messaging to wreak a devastating twist on a dark truth of capitalism. Where the nineteenth-century robber baron Jay Gould infamously said “I can hire one half of the working class to kill the other half,” Bong suggests, in his whiplash-sardonic satire, that by hiring only one half of the working class, the rich are already in effect killing the other half—that, in the very search for work, the working class can be relied on to kill each other unbidden. The subject of the film is the nexus of unemployment, of gross inequality of opportunity, and of a system of competition that is designed to be fiercest at the bottom, where those with the least also have the strongest incentive to claw against each other in a struggle for survival.

혼돈의 도가니탕인 <조커>는 정치적 불평불만자들의 상충하는 혈통들 모두에게 적색육을 제공한다. 부자에 대한 폭력에 환호하는 것에 의해서는 버니 브라더스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에게, 주류 언론인이 헤드샷을 당하는 것에 환호하는 것에 의해서는 대안 우파에게 그리한다. 그리고 그러한 버튼 누르기를 진지함으로 착각하는 비평가들에게도 적색육을 제공한다. 대조적으로, <기생충>은 일관성 있다, 정말이지 너무나 일관성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어두운 진실에 강력한 비틀림을 가하는데 메시지의 초점을 맞춘다. 19세기 강도 남작 제이 굴드는 ‘나는 노동자 계급의 절반을 고용해서 다른 절반을 죽일 수 있다’는 악명 높은 말을 했는데, 봉은 자신의 통렬하게 냉소적인 풍자로 노동자 계급의 절반만 고용함으로써 부자들은 이미 실제로 다른 절반을 죽이고 있다고 - 즉, 바로 그 일자리 찾기 중에 노동자 계급은 서로를 자발적으로 죽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실업, 기회의 막대한 불평등, 그리고 바닥에서 가장 격렬하도록 설계된 경쟁체제 사이의 연관이다. 그 경쟁체제에서 가장 적게 가진 이들은 또한 생존투쟁에서 서로를 잡아 찢어야 할 가장 강한 인센티브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In “Parasite,” Bong dramatizes, with genre-contrived antics, the daily indignities to which the poor are subjected—cut off from digital society as if from society at large, deprived of educational opportunities by a pseudo-meritocracy that rewards the lavishly tutored, dilapidated surroundings that others think they can both metaphorically and literally piss on, unmaintained infrastructure that leaves them most cruelly vulnerable to the elements and to crises of sanitation and hygiene. He contrasts their lives with those of the rich, whose money buys elaborate defenses against a wide range of dangers, whose leisure and surfeit of wealth enables them both to devote outsized attention to frivolities and comforts while also indulgeing their children’s whims and idiosyncrasies to the point of stunting them—creating a new generation of the warped, the undeserving, and the incompetent to lord over a new generation of embittered and marginalized strugglers.

<기생충>에서, 봉은 장르적으로 고안된 익살로 빈자들이 겪는 일상적인 수모를 극화한다. 사회 전체로부터 단절된 듯 디지털 사회로부터 단절되고 아낌없는 사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보상하는 사이비-능력주의에 의해 교육기회를 박탈당하며 거처의 둘레가 다른 사람들이 비유적으로나 문자 그대로나 오줌을 갈길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너저분하며 유지보수되지 않는 기반시설은 그들을 하수처리와 위생관리의 요소들과 부실함에 가장 잔인하게 취약하게 한다. 그는 그들의 삶을 부자의 삶과 대조하는데, 그들의 돈은 광범위한 위험에 대한 정교한 방어수단들을 구매하고 그들의 여가와 충만한 부는 경망하고 편안한 것들에 큰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하는 한편 아이들의 변덕과 별스러운 점들을 그들의 성장이 방해될 정도로 충족시키기도 한다. 적의를 품고 주변화된 분투자들의 새 세대를 좌지우지할, 편벽된 이들, 적합하지 않은 이들, 그리고 능력 없는 이들의 새 세대를 창출하면서 말이다.

It’s precisely this plugged-in sense of spot-on messaging and calculated talking points, aimed at critics and viewers who share this clearly defined perspective, that makes “Parasite,” for all its cleverness, the art-house equivalent of the fan service delivered by studios to devotees of franchises. Which is to say that the action, alternating between surprising twists and blatant affirmations, is filled with shovelled-in details that, despite apparent peculiarity and singularity, link up all too perfectly—that are seemingly dropped in solely for the purpose of creating a plot point later on in the film. (A decorative stone that is seen in the first act will surely go off in the third.) “Parasite” is scripted to the vanishing point: for all the desire to show, its images are more like realizations of a plot point or a premise than events themselves.

<기생충>을 모든 그것의 영리함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들이 프랜차이즈 애호가들에게 제공하는 팬 서비스의 아트-하우스 등가물로 만드는 것은 이 명확하게 정의된 관점을 공유하는 비평가와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쪽집게식 메시지 전달과 계산된 얘깃거리들이라는 확연한 느낌이다. 놀라운 비틈들과 노골적 단언들을 번갈아 반복하는 액션은, 분명 독특성과 특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후반부에 플롯 포인트를 만든다는 목적만을 위해 떨어뜨린 것으로 보이는, 너무나 완벽하게 정렬된 삽질된 세부 사항들로 가득 차 있다. (제1막에서 보이는 장식용 돌은 제3막에서 확실히 사라질 것이다). <기생충>은 소실점에 이를 지경까지 대본화되어 있다.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욕망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이미지들은 사건들 그 자체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플롯 포인트나 하나의 전제의 실현들을 더 닮았다.

* 플롯 포인트 - 지나면 이야기의 방향이 크게 바뀌어 주인공이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지점

In this regard, “Parasite” makes for an unfortunate contrast with the great satirical political comedies, whether classic or recent—whether any one of many films by Charlie Chaplin or Jacques Tati or Vera Chytilová, whether Spike Lee’s “Chi-Raq” or Jim Jarmusch’s “The Dead Don’t Die,” Jordan Peele’s “Us,” Boots Riley’s “Sorry to Bother You,” Maya Vitkova’s “Viktoria,” or Jia Zhangke’s short film “The Hedonists”: these films offer a radical sense of materiality, making their exaggerations and contrivances continuous with experience outside the screen. With “Parasite,” the machinery is composed in the script, and what’s filmed is so stringently and narrowly subordinated to realizing those plans—and doing so in a way that’s both designed to reach its audience and that weirdly undercuts the movie’s own tone and design.

이 점에서 <기생충>은 고전작이든 최근작이든 위대한 풍자적인 정치 희극들과 - 찰리 채플린이나 잭 태티나 베라 치틸로버의 많은 영화들 중 아무것이나 하나, 스파이크 리의 <치락>이나 짐 자무쉬의 <죽은 자는 죽지 않는다>, 조던 필의 <우리>, 부츠 라일리의 <당신을 괴롭혀 미안하다>, 마야 비토코바의 <비토코리아>, 또는 지아 장커의 단편인 <쾌락주의자들> 같은 영화들과 불행한 대조를 이룬다. 이 영화들은 그것들의 과장들과 장치들을 스크린 외부의 경험과 연속적인 것들이 되게 하면서 급진적인 물질성 감각을 제공한다. <기생충>에서 [영화의] 조직은 대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촬영된 것은 그 계획들을 실현하기에 매우 엄격하고 협소하게 종속되어 있는데, 관객에게 도달하도록 설계되고 영화 자신의 톤과 디자인을 기묘하게 약화시키는 두 방식 모두로 그렇다.  

On the other hand, “Parasite” offers a twist that’s too good to mention or even to hint at. Suffice it to say that the movie takes off in a direction that’s a shock of narrative inventiveness when it’s first introduced—and that also gets drawn into the movie’s plot mechanism and schematically illustrative direction in a way that undercuts its shock, even as it ramps up the dramatic tension. What’s more, “Parasite” admirably tweaks one of its crucial genre elements, a casually revealed yet significant imagining of a ghost. That spectral conceit has a strong emotional effect on one of the movie’s characters and turns out to have a basis not in the metaphysical realm but in the economic one.

다른 한편, <기생충>은 너무나 [뻔하게] 훌륭해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넌지지 알려줄 필요조차 없는 비틈을 제공한다. 영화가 도입부에서 충격적으로 내러티브적으로 독창적인 방향으로 이륙한다고 – 그리고 또한, 결과적으로 극적 긴장을 조성하기는 해도, 그것의 충격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영화의 플롯 메커니즘과 도식적으로 예시적인 방향으로 끌려간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더욱이 <기생충>은 그것의 결정적인 장르 요소들 중 하나를 찬탄할만하게 비튼다. 불쑥 출현하지만 의미심장한 유령 형상. 그 유령 공상은 영화의 등장인물 중 한 명에게 강한 정서적 영향을 미치며 형이상학 영역이 아니라 경제 영역에 기반을 두고 있음이 판명된다.    

The film is an elegantly realized movie that virtually flaunts its production values, its suave sophistication, its simultaneous knowingness regarding its own messages and its own techniques. Its characters lack density and substance because their traits melt into an unexceptional blandness except when they stand out for derision. There’s a ground state of simple normalcy, free of culture and free of substance and free of ideas, as if personality itself were a luxury; it’s the sort of benign condescension that working-class characters often receive in far worse films than “Parasite,” and that, no less than its elegant and creamy aesthetic, flatters the sophistication of its art-house audience. So, for that matter, does the underlying order that, despite the film’s obvious sympathies and valuable insights, Bong approaches with restraint and leaves largely unchallenged. “Parasite” is essentially a conservative movie, looking with bitter dismay at an order that falls short, a sense of law and of social organization that functions efficiently but misguidedly—that needs, in effect, more and better order.

<기생충>은 그것의 작품 가치들, 그것의 친근한 정교함, 그 자신의 메시지들과 그 자신의 기법들에 관한 그것의 동시적 앎을 실질적으로 과시하는 우아하게 실현된 영화이다. 그것의 등장인물들은 밀도와 실체성이 부족하다. 그들은 조롱거리가 되기를 거부할 때를 제외하면 예외적이지 않은 온순함으로 녹아들기 때문이다. 개성 자체가 사치품이기라도 한 것처럼 문화와 실체와 관념들이 결여되어 있는 단순한 정상성의 바닥 상태가 있다. 그것은 <기생충>보다 훨씬 나쁜 영화들에서 노동계급 등장인물들이 종종 대접받는, 그리고 그것의 우아하고 매끄러운 미관 못지않게 그것의 아트 하우스 관객의 지적 교양에 아첨하는, 일종의 친절한 겸손[자기 낮춤]이다. 그 점에 관한 한, 영화의 명백한 공감들과 귀중한 통찰들에도 불구하고 봉이 자제하는 태도로 접근하고 거의 도전하지 않은 상태로 놓아두는 기본 질서 또한 그렇게 한다[아트 하우스 관객의 지적 교양에 아첨한다]. <기생충>은 씁쓸한 낙담으로 부족한 것들이 많은 질서를 응시하고 법과 사회조직이 효율적이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기능한다는 느낌을 전하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영화이다. 하긴 그것들이 부족한 것들이 없고 더 나은 질서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Parasite” is far from a comprehensive or complete vision of South Korean society or even of modern capitalism in its over-all social and cultural sense. Rather, it’s a well-tuned mechanism for an ultimately modest and moderate lament, a reasonable filmmaker’s flirtation with extreme modes of expression and emotion that, nonetheless, relentlessly pull back to a moderate norm. It’s neither nihilistic nor utopian, neither revolutionary nor visionary; it wishes and shrugs. For the strength of its concepts and the bravado of its narrative ingenuity, “Parasite” is a good movie—in both senses of the word, both artistically and morally. Where it falls far short of greatness is its inability to contend with society and existence at large—or with its own conservative aesthetic; it doesn’t risk disrupting its own schema in pursuit of more drastic experiences and ideas. As for the young man’s compulsive laughter, it, too, remains incidental and undeveloped; that’s the only thing that “Joker” does better.

<기생충>은 남한 사회의 포괄적이거나 완전한 비전과 거리가 멀며 전체적인 사회적 및 문화적 의미에서의 현대 자본주의의 비전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겸손하고 부드러운 탄식을 위한 잘 조정된 메커니즘, 분별력 있는 감독이 극단적인 표현양식들 및 정서와의 사이에서 벌이지만 그럼에도 온건한 규범에 가차 없이 끌리는 연애이다. 그것은 허무주의적이지도 유토피아적이지도 않고 혁명적이지도 몽상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희망을 피력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그것의 개념들의 힘과 그것의 내러티브적 교묘함의 대단함 면에서 <기생충>은 좋은(good) 영화이다. 그 낱말의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즉 예술적으로도 좋고 도덕적으로도 좋다. 그것을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없게 하는 것은 사회 및 존재 일반과의 – 또는 그 자신의 보수적인 미학과의 - 대결의 결핍이다. 그것은 더 강렬한 경험과 관념들을 추구하기 위해 그 자신의 도식을 중단시키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 청년의 강박적인 웃음이라면, 그것 또한 우발적이고 발달해 있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조커>가 더 잘하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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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21/03/11 21:49
수정 아이콘
크으. 선리플 후감상. 제 게시물과 대구를 이루는 좋은 게시물 너무 감사합니다. 잘 읽을게요!
아스라이
21/03/11 22:23
수정 아이콘
(수정됨) 한번 정독했는데 워낙 쉽지 않은 글이라 스스로의 이해도가 만족스럽지 않네요. 몇번 더 읽어봐야 겠습니다.
좋은 글 번역해 주셔서 재차 감사드립니다. 아. 말미에 보수적인 영화라고 레떼르 다는게 꽤나 강렬하게 다가오네요. 생각도 못한 지점인데 말입니다.
아스라이
21/03/11 22:35
수정 아이콘
건그렇고 , 천조국 동부 엘리트들의 지적 소양은 상상초월이라는 얘기를 풍문으로만 많이 접했는데 , 그 편린이나마 눈으로 직접보니 명불허전이구나 싶네요 . 얼마나 많은 고전을 탐독하고 무수한 인물들과 사상들에 대해 깊이 고찰해야 저런 글빨이 갖춰질지 가늠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
후마니무스
21/03/12 01:34
수정 아이콘
충분히 높은 수준의 지적 소양이라곤 하나..글쎄요.

너무 몇몇 개념을 난삽하게 쓰는 경우가 보이긴 하네요.

가령 레토릭이란 개념도 적절하게 사용한것 같진 않아보이네요.
21/03/11 21:5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의 영화였습니다.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다른 해석이나 이해의 여지가 없는 완벽하게 꽉 들어찬 영화.
정밀하게 세공된 스위스 시계같은 영화.

걸작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답을 줄 것이고,
적어도 그해에 나온 상업영화중 기생충보다 확실하게 앞에 세울 수 있는 영화는 얼마 없을 거라고 봅니다.
도라지도라지
21/03/11 22:02
수정 아이콘
blandness는 온순함이 아니라 특징 없는, 단조로운 뭐 이런 뜻인듯요.
21/03/11 22:43
수정 아이콘
그럴것 같습니다. 제가 영한대역을 선호하는 것은 이런 댓글이 달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돼지목살
21/03/11 22:05
수정 아이콘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 취향으로는 기생충이 2010년대 최고의 영화입니다. 2000년대 최고의 영화는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 ^_^ 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aDayInTheLife
21/03/11 22:06
수정 아이콘
꽉 짜여진 영화라는데는 공감이 가네요. 다만 그 꽉 짜여진 느낌이 저는 어느 정도 좋았습니다. 다만 별개의 의미로 꽉 짜여진 캐릭터 속에서 사실성을 부여하는게 봉준호 감독의 특징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어디었던가 괴물도 감정을 지닌거 처럼 느껴진다고 이야기 했던가요. 그 처럼 캐릭터는 여전히 생기 넘치기에 기생충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흔솔략
21/03/11 22:10
수정 아이콘
아 공감이 가네요. 저도 기생충 되게 재밌게 봣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너무 하나부터 열까지 정교하게 꽉 짜여진 느낌이라서 뭔가 해석의 풍부함?같은게 조금 아쉽다고 느껴지긴 했습니다. 좀더 느슨했더라면 더 좋았을까요? 지금도 충분히 매우 좋지만요.
21/03/11 22:18
수정 아이콘
어떻게 걸작에 미치지 못하는 가라고 썼지만 충분히 그 영화를 인정하고 있는 평론이네요. 흥이냐 망이냐 누구 말이 맞냐 이분법적으로 가르기 위한 목적은 아닌 것 같고 영화를 더 깊이있게 즐길 수 있는 글인 것 같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나마 저는 기대했던 두 영화를 모두 볼 수 있었어서, 그리고 둘 다 너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정말 행복한 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파아란곰
21/03/11 22:22
수정 아이콘
꽉 짜여진 이유는 우화로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선녀와 나뭇꾼이나 햇님달님 같은 .....
실제상황입니다
21/03/11 22:27
수정 아이콘
블레이드 러너2049에서 제가 느낀 생각이랑 비슷하네요.
21/03/11 22:50
수정 아이콘
영화는 때로는 꽉 짜여진게 오히려 매력이기도 하죠. 조커의 극단적인 표현은 한국적인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좋은 관점이긴 한데, 기생충은 지극히 한국적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이런 관점적인 부분은 이국인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21/03/11 22:54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평론이면서도 개인적으로 동의하긴 좀 어려운 평론이네요.

조커를 날고기로 표현하고, 기생충은 남한사회에서의 비전으로 보기에도 너무나도 작위적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사실 다들 아시다시피 (아무리 비틀었어도, 애초에 영화 제목에서부터 보이듯이) 원작 각본이 있는건 조커고, 기생충의 각본은 남한이든 세계든 1대1로 대응하는 작품이 없죠. 비슷한 작품조차 없습니다. 무슨 봉준호 감독만이 할 수 있던 자본주의사회 비판~ 이라는 뜻이 아니라, 너무 작품적이고 비현실적이다라는 본문의 주장에 대해서 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학벌에 어필해서 학위를 위조하고, 메리아스 차림으로 고기 구워먹고, 피자접다가 소독차에게 당하는게 너무 깔끔하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수많은 현실적인 사례를 잘 재배치한 것이 아닌가요? 사실 조커라는 작품도 작위일정도로 개인(내지 일가족)에게 비극이 몰려있으며, 지나치게 완급자체가 감독이 의도한 스토리의 흐름을 따른다, 라고 비판 할 수 있지 않나요?

오히려 "보수적인 영화이며", "아트 하우스 작품 같다", "노동계급은 더 못만든 영화에서도 (제대로) 비웃음을 받는다" 라는 문장들이 등장하는 문단에서는, 꽤나 계급주의적인 시각이 보이기도 하네요. 자본주의나 노동계급을 다루고 있는것 치고는 노골적인 사회비난을 하는 날것이 못되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그런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건 워킹클래스가 아니라, 대만 카스테라를 팔다가 지하로 들어가는 한국 중산층의 위기감에 대한 영화인데도 말이지요. 사실 조커랑은 많이 다르죠, 그 점에서는.
21/03/1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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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인데,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기생충이 지나치게 '순한맛'이고 '잘 짜여진', '연극'같다는 점을 얘기하는것 같긴 합니다.
한국적 관점에선 꽤나 매운맛인 표현인데 말이죠..
기생충이 굉장히 한국적인 영화고, 그런 점에서 온전히 서양인에게는 전달되기 어려운 점이 있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위치 메이커
21/03/1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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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 맛을 봤다면 그분들도 발로 물개박수를 쳤을 겁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1/03/1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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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그것을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없게 하는 것은 사회 및 존재 일반과의 – 또는 그 자신의 보수적인 미학과의 - 대결의 결핍이다."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는 조커가 훨씬 도전적이고 파격적이죠. 코미디의 왕이나 택시드라이버 같은 영화들의 복제품이라는 소리도 듣지만 확실히 그 불온함에서는 몇 수 위거든요. 심지어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사실적이니까요. 적어도 그렇게 느껴지도록 교묘하게 설계됐으니까요. 반면 기생충은 훨씬 오리지널한 영화이긴 하지만 짜여진 맛이 나고 친절하며 그만큼 진부합니다(물론 엄청나게 잘 짜여져 있긴 합니다). 오리지널한데도 어디선가 본 것 같죠. 조커의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섬뜩한 것과는 반대로 말입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새삼스럽게 문제적이라고 난리를 피우고 그랬던 거죠. 물론 조커라는 캐릭터빨이 있었겠지만요. 일각에서는 굳이 조커라는 캐릭터를 써먹을 필요가 있었냐 그러기도 했지만, 저는 오히려 그래서 조커라는 캐릭터를 써먹은 게 의미 있었다고 봅니다. 조커는 만화적 캐릭터로서 우상화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영화 조커에서는 반대로 '이건 영화나 만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거든요. 이런 양면성을 잘 활용한 듯싶었습니다. 사실적인 캐릭터야 아서 플렉 말고도 물론 많겠지만, 아서 플렉이 조커라는 점에서 아서 플렉의 사실성은 궤를 달리합니다.
21/03/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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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도 조커를 보면서 정말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특히 와킨 피닉스의 연기는 정말 연기 하나로 영화의 급을 올린다! 라는 걸 보여줬다 생각합니다 와아~), 또 마음 한켠에서는 "아니 진부한 영화에다가 (말씀하신것처럼 코미디의 왕은 배우캐스팅을 포함해서, 거의... 오마주 그 이상의 수준이죠.) 조커라는 우리 모두 아는 유명인사를 발라놨구만?"이라는 생각도 좀 들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기생충을 보면서, 이거랑 비슷한 각본이 있었는가?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더라고요. 연출도요. 짜파구리나 시계방향 같은 유머와 비오는 날의 공포, 마지막 날의 파국... 이걸 현실성 없는 각본이며, 실재감이 들지않는다라고 코멘트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동시에 기생충을 '순전히 미술적인 작품이며, 어떤 사회적인 코멘터리도 못한다'라고 꼬집어야겠지요. 하지만 본문의 비평문조차 그건 시도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1/03/1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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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도 각본으로 봤을 때는 기생충이 정말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각본의 신선함이 살아숨쉬는 한 단지 잘 짜여져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보구요.
21/03/1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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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면에, 본문글이 뭐랄까.. <기생충>이 미국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하층민들의 소위 '리얼한'삶과 정형화된 계급구조가 아니라서 그걸 당혹스럽게 느끼는건가? 싶더라고요. k-pop노래가 미국에서 건전가요 취급이라는 그런 말이 생각나기도 했고요.
기생충의 캐릭터 묘사를 아트하우스 관객에게 아첨하는 자기겸손이라고 표현하는데.. 한국사람이 보기에는 사실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이 아니던가요?
그들이 생각하는 하층민과, 우리가 생각하는 하층민의 개념이 그만큼 다른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계급갈등이라는 요소도 그렇죠. 한국사회에서 계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체는 집이고.. 이걸 이정도로 효과적으로 사용한 작품들도 드물죠.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가지는 그런 사회와 사람과 계급에 대한 생각들은 한국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어떤것이니까요.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만큼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영화가 조커인거고 (지극히 서양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는게 기생충인거죠(지극히 한국적으로). 애초에 향하는 방향성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21/03/12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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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서구애들 특히 미국애들은 지들 관점이 세계공통인줄알아요

그래서 로컬발언에 그리 난리났던거고
-안군-
21/03/1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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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로 치면 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인데, 한국식 불고기만 먹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너무 날것이고, 레어를 즐겨먹던 사람들에게는 너무 구워서 맛이 안나는 뭐 그런거겠죠...
21/03/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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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굉장히 동감이 가는 평론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기생충을 보고 엄청나게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지만 기대했던 어떤 화면 바깥까지 폭발하는 힘 (좀 낭만주의적으로 말하자면 감독 본인조차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 또는 통제하려 하지 않은 그런 날것의 에너지 같은 거요? '더 리얼' 과 마주치는 섬뜩한 느낌 같은 것) 은 없다는 실망을 느꼈거든요. 굉장히 좋은 영화가 나왔는데, 제가 보기 전에 기대했던 건 굉장히 좋은 영화가 아니라 걸작이었기 때문에.

왜 그런가 에 대해 저 평론이 말하는 게 꼭 옳은 건 아니겠지만 제 생각도 어느 정도 비슷했습니다. 기생충의 경우는 주제는 계급, 자본주의인데 주인공은 '인물' 이나 '사건' 이나 '고난' 같은 게 아니고 '장르'죠. 사건들의 연결, 인물들의 행동과 동기, 미장센, 반전 등등이 장르적 관습을 계승하면서 변주하고 반전시키는 정밀하게 계산된 놀이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고 그래서 이 영화에서 얻는 쾌락에 대해 평론가가 대형제작사들이 프랜차이즈 팬들에게 제공하는 팬서비스의 예술영화판 등가물이라는 표현이 잘 와닿았습니다. - 참 본문의 twist 는 대부분 '반전'으로 해석해 주시는 게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스라이
21/03/1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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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wny님 팬입니다!
친목질 하려는 건 전혀 아니고 , yawny님의 혜안을 매우 애정하는 사람으로써 재밌고 논쟁적인 게시물들에 좀 더 많은 의견을 피력해 남겨주십사 하고 댓글 남깁니다 . 좋은 밤 되시길 .
21/03/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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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앗. 고맙습니다만 깜짝 놀랐습니다. 저같은 유형은 제 아이디도 누군가 기억에 담아두고 있다고 알게 되면 어이쿠 커뮤니티질을 너무 많이한건가 하고 급 소심해지는 편이라 하하
21/03/12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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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꼈던 것과 아주 흡사하네요. 기생충은 너무 완벽하게 잘 조직되어 있어 어떤 울림이나 여운을 줄 여백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저 글에서는 현실 그리고 존재 일반과의 연결점을 잃고 영화 내부로 함몰되었다는 식으로 표현했네요. 묵직한 주제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것은 상당한 성취이기는 한데 그 해학 역시 저 글에서 표현한 것처럼 날카로움이 아니라 교양에 봉사하는 세련됨으로 무장되어 있고요. 이 영화가 끝나자 중산층 미국인들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박수를 치는 것을 보면서 이 영화가 심각한 주제와 내장된 비판의식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불편하지 않게 하는 영화, 누구에게도 쓴 뒷맛을 남기지 않는 오락/교양 영화라는 제 생각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고급 오락영화가 이를 수 있는 최고봉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21/03/1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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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셨나봐요! 대부분 동감하기는 하는데 저는 또 그건 또 약간 가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네요. 당시 시점에서 이 영화를 개봉관 찾아올 정도의 미국인은 기생충보다 더 급진적이거나 마이너리티 지향의 영화를 찾아보고 또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중산층에 몰려있기도 하고요... 역설적이지만. 지금 씬들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예컨대 테이블 밑에 숨어서 자신과 가족의 '냄새'얘기를 듣는 송강호 같은 건, 빈곤과 차별의 직접적이고 센슈얼한 묘사보다 도리어 중산층에게 더 불편한 지점을 잘 짚지 않았나 싶어요.
21/03/14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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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진보적 색채가 강한 곳이고 관객들도 아마 대부분 외국영화를 굳이 영화관에 와서 볼 정도의 교양과 개방성을 갖춘 중산층일 겁니다. 쓰고 보니 혹평 비슷하게 되고 말았지만 기생충이 아주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에는 변홤이 없습니다. 사실 냄새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본주의 계급 문제를 파고 든 것 자체가 상당히 놀라운 발상이고 저 역시 그 점은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그런데 yawny님께서 잘 지적하신 것처럼 영화가 [정밀하게 계산된 놀이]가 되어 그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교양 갖춘 이들에게 지적으로 세련된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임같은 영화가 되린 듯합니다 그래서 [어떤 화면 바깥까지 폭발하는 힘]이 거세되어 버렸고요.

제가 기생출이 고급 오락/교양영화라고 한 것은 혹평이라기 보다는 그렇게 봐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제 머릿속을 오간 것들은 온갖 상징물과 미장센에 대한 의문과 해석이었지 자본주의가 그 교묘한 모습을 드러내는 냄새라는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정교한 구성과 탁월한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 그러나 영화 내부로 함몰되어 울림이 삭제된 영화. 이 정도가 저의 최종적 평이 될 것 같습니다. Yawny님의 좋은 평 덕분에 저도 영화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마도악마가
21/03/1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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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가네요 개인적으론 작년 타여초에서도 유사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21/03/1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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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Ms.Hudson
21/03/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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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함에 미치지 못하는가'를 논할 만큼 좋은 영화라는 뜻이죠 크크 제 생각에도 8/10점짜리 영화입니다.
플롯 음향 영상 모두 치밀하고 흡입력있는데 영화 안에서 모두 마무리되고 의자에서 일어나서 뭔가 상상이나 논의를 이어갈 거리는 없습니다. 마치 마지막장면에서 눈내리는 배경 가운데 화면이 흐려지듯이 다 사라지는 것처럼요.

봉감독이 수상 소감중에 스콜세지를 언급했는데, 택시 드라이버의 2019년 서울 버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란파괴왕
21/03/1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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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포함한 영화의 모든 구성이 감독의 의도에 따라 인형극처럼 움직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서 개인적으로는 불호인 영화였습니다. 잘만들긴 했는데 인공적인 맛이 너무 나서 거부감이 느껴지더군요. 거기에 이말년식 와장창 엔딩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도 있습니다. 저 해결불가능한 갈등을 어떻게 마무리지을까 하고 보다가 그냥 파티장에서 죽창질로 끝내니 실망스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만든 영화긴 하지만 딱 그 정도. 그 해 최고의 영화도 아니라고 봅니다.
21/03/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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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왜 작품성이 10점이 되지 못했지?에 대한 내용으로 봤습니다.

작품성을 너무 추구하면 대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개인적으로 기생충은 둘 사이의 밸런스를 잘 잡으면서도 저점은 몹시 높은 작품이라고 봐서 좋아합니다.
21/03/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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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예술성을 강조하길 바라는 평론가들은 좋아하기가 힘들어요. 그런 평론글을 볼때마다 평론가들은 내가 해석을 해주었기에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거다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 말이에요.
회색의 간달프
21/03/1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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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모르겠지만 최소 수작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서 평가가 쌓일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작품성?? 어찌 말하면 작가주의랄까? 이런게 너무 쎄면
흥행성을 얻기 어렵습니다. 흥행성만 치중하면 팝콘무비가 되고...
이 양단에서 이런 절묘한 밸런스를 잡은 영화는 참 드물죠.
셧더도어
21/03/1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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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번역도 댓글들도 다들 공감이 가네요.
장고끝에악수
21/03/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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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퍼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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