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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21 23:47:04
Name 똥꾼
Subject [일반] [스포] 영화 미나리 보고 왔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심장이 안 좋은 아들과 딸 하나씩을 둔 한국인 부부가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로 이사를 옵니다. 남자의 로망이었던 넓은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기 위함인데, 이사온 곳이 집이 아니라 긴 트레일러입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병아리 부화장에서 병아리 똥꼬만 쳐다보며 감별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수입이 많은 것 같진 않고, 빚이 있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아내는 남편만 바라보며 버티는 삶에 조금씩 지쳐갑니다. 남편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농사를 시작하려는 생각이지만 아내는 심장이 아픈 아들을 데리고 너무 외진 곳으로 온 게 아닐까 걱정이 많습니다. 걱정은 부부싸움으로 번져, 타개책으로 친정 어머니(윤여정)가 미국으로 건너와 같이 생활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상영관으로 들어서며 걱정이 앞섰습니다. 불안한 생활 > 큰 비극 > 눈물과 화해 > 가족애 부각... 이라는 K-신파 테크의 영화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티븐 연이 이 작품으로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고 하는데 강한 감정씬이 많이 나오겠구나 하는 예상을 했더랬지요.

하지만 영화는 인물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들의 심장이 아프고, 부부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하고, 한국에서 건너온 할머니가 잠시나마 몸이 마비되고, 불이 나서 창고가 불에 타는 등 사건이 벌어지지만 인물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감정을 강제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돌아보면 살면서 '저런 거 한번쯤은 겪지' 싶은 행복과 불행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특별하게 행복한 삶이나 불행한 삶을 제외한 우리네 삶이랑 닮아있는 그런 삶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 내의 사건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아들내미의 심장은 왜 안 좋은지, 할머니는 왜 몸이 마비되었는지, 왜 드럼통에 쓰레기를 태웠는지... 이런 장면을 좀더 세심하게 그려내 개연성을 확보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영화가 지향한 바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인지 불행인지, 왜 벌어졌는지 모르겠는 일들 투성이여도 삶은 결국 흘러가듯이요.

극중 윤여정이 미국으로 건너오며 미나리 씨앗을 가져오는데, 손주와 미나리 심을 곳을 알아보며 이런 말을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 Wonderful 미나리]. 담담한 서사에 비해 조금 노린 대사와 제목 아닐까 싶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미나리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잘 자랄 것이고 인생 역시 언제 어떻게 방향을 틀지는 몰라도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며 계속되겠죠.

슴슴한 엔딩에 응? 이렇게 끝난다고? 당황했지만 이 또한 극장을 나오면서 마음에 들더군요. 양념을 덜 쳐 싱겁지만 본연의 향을 잃지 않은 나물 무침을 먹는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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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2 00:5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병아리 감별사 연봉이 적지 않습니다. 단지 하루종일 병아리 똥꼬만 쳐다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아니죠..
저도 영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제 부모님 세대들도 극장에서 많이 보시던데.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더라구요.
하나의꿈
21/03/22 01:15
수정 아이콘
기생충 급을 기대하면 실망할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현재 미국에서 불고 있는 열풍은 일종의 부채의식의 발현인거 같습니다.
이민들레
21/03/22 08:15
수정 아이콘
지금 관람 방법이 어떻개 되나요?
LowTemplar
21/03/22 08:50
수정 아이콘
국내 영화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박스오피스 1위이 거예요.
이민들레
21/03/22 09:17
수정 아이콘
아.. 극장안간지가 오래되서 당연히 넷플릭스 웨이브 어디로 가야하나 싶었는데..
마프리프
21/03/22 08:49
수정 아이콘
미국영화인대 한국갬성이 넘쳐서 놀랐고 인종차별이란 개념이 없어서 인종차별이 없던 레이건 시절이 그립습니다 면전에다 칭챙총박다니 후덜덜
나가노 메이
21/03/22 09:29
수정 아이콘
일본에서도 거의 동시기에 개봉해줘서 보고왔는데,
영화속 인물과는 밖으로 나와서 산다는 공통점밖에 없는데도 굉장히 감정이입하게 되서
별것도 아닌데 눈물 났습니다.

오히려 감정을 담담하게 그려내는데 그거때문에 왠지 더 슬퍼져요.
속삭비
21/03/22 09:52
수정 아이콘
어제 영화관에서 와이프랑 보고 왔는데 엄청 재미있게 보고 왔네요
21/03/22 09:57
수정 아이콘
저 같은 영알못과 제 친구들은 영화 만들다가 귀찮아서 끊은 느낌을 받았네요 크흐
21/03/22 09:59
수정 아이콘
정말 좋게봤습니다. 결말도요.
21/03/22 11:14
수정 아이콘
느낌이 그린북 노예12년 같아서 왠지 아카데미 몇개 가져갈 갓 같아요.
음악도 좋고 하니 영화관에서 봐야 더 재미를 느낄 듯하구요
데브레첸
21/03/22 11:32
수정 아이콘
기생충처럼 대중적인 스타일은 아니에요. 조용하고 담담한 스타일의 영화라, 액션영화에 익숙한 분들은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제 자리 앞 옆에서 사람들이 지루한지 스마트폰을 잠깐씩 키더군요.

홍보 덕분인지 한국인들은 한국계(아시아계) 이민자의 삶이라는 키워드에 몰입하기 쉬운데, 생각보다 한국인/아시아인 색채는 약하더군요. 막 한국에서 온 것도 아닌 서부해안에서 오래 살다 이주한 출신이고, 한국 교민들을 사기꾼이라며 한인 교회를 피하려는 모습도 보이죠. 이 영화는 오히려 아시아계/한국계라는 사례를 빌려 보편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미국인의 삶을 그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은 극소수 원주민(native)을 제외하면 모두가 이민자 출신인 나라고, 미국도 동북아와 양상은 다르지만 가정을 중시하는 문화니까요.
21/03/22 15:29
수정 아이콘
매우 한국적인 감성이라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더 인상적일 느낌이었지요.
그럼에도 좋은 영화였습니다.
밀물썰물
21/03/22 15:53
수정 아이콘
궁금하신 세가지는;
아이 심장병은 (특별히 이런 케이스는 더구나) 선천성 이구요
할머니는 Stroke 이 왔고 그래서 잘 못 움직이고
그 곳은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지역이 아니라 쓰레기 양을 줄이려고 쓰레기를 태우는데, 할머니가 그 몸으로 일 돕겠다고 쓰레기 태운 거고.
저는 위와 같이 이해 했습니다.

저는 미국은 아니지만 오래전 외국에 이민 와서 살고 있어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 아이가 갖고 있는 심장병도 갖고 있고, 소위 말하는 심장병 어린이의 한 종류 입니다. 통상 좋아지는 법은 없지만 영화에서는 좋아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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