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10년전 오늘, 저는 상하이에 있었습니다. 세계일주라는 거창한 꿈을 꾸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몇십리터의 등산용 배낭과 아이폰4, 조그마한 노트북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죠. 자아 찾기같은 거창한 목적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그냥 이 넓은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쯤은 봐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목표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때의 저는 나름 입체적이고 복잡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1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그때를 돌아보니 결국 저 생각이 여행의 가장 큰 동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네요.
일정과 목적지는 상해로 들어가서 라오스로 나간다는 루트만 정한 상태로 대책없이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예약한 항목들은 정확하게 3개였는데요, 인천-상해, 방콕-네팔 항공권과 페루 쿠스코에서의 1주일간의 홈스테이 뿐이었습니다. 일정은 대충 몇달 간의 텀을 두면 맞출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대충 잡았구요. 이런 처참한 준비성은 어떻게 보면 여행을 즐기는 한가지 방식이었습니다. 가급적 사전 지식없이,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모든 것이 새롭고, 막연하지만 즐거운 기분. 단 하루도 지루할 수가 없는 느낌. 당장 잘 곳을 매일 고민해야 하는데 지루하기가 힘들긴 했죠.
중국에 있던 3주는 좋았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한국인에게 많은 중국분들은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사기당한 기억도 없네요. 지금이야 다양한 일들이 있지만, 그땐 좀 더 국가간의 관계도 괜찮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하이에서 쑤저우로 넘어갔을때의 일입니다.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오후 5시쯤 도착했는데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기차역에서 호객행위하는 아저씨에게 이끌려 으슥한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서있던 봉고차안엔 난닝구만 입은 덩치큰 빡빡머리 아저씨가 자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 깡으로 그 차를 탔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꽤 퀄리티 좋은 숙소로 데려가서 잠도 잘 자고, 그 다음날 쑤저우 투어도 잘 하긴 했지만(숙박비까지 총 비용이 3만원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식사도 제공됐고..) 그 차를 타고 이동하는 30분간의 시간동안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붙잡고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어보지도 않은 사촌동생이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얘기를 어설픈 영어로 말하면서요.
장가계도 좋았습니다. 미혼대라는 지명처럼, 혼을 잃을 것 같은 멋진 풍경들이 가득했어요. 8년후에 그랜드캐년을 가게 되는데, 그때까지 제 마음속 no.1의 풍경이었습니다. 언젠간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상하이에서 시작해 쑤저우, 항저우, 황산을 거쳐 장가계, 계림, 양숴, 징홍의 루트로 3주간의 중국 여행을 하고, 버스로 라오스로 넘어갔습니다. 2011년 4월 13일의 일입니다. 루앙남타라는 지역에서 생전 처음 스쿠터를 빌려 탔었습니다. 한 이틀정도 혼자 이곳저곳 다니다 루앙프라방 - 방비엥으로 이동했어요. 꽃보다 청춘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그때도 한국 사람들을 꽤 볼 수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혼자 떠난 여행이다보니 외로울 때가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분들이 해외에서 한국 사람들을 마주치는걸 선호하지 않지만, 저는 한국분들을 포함해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주 말을 걸었습니다. 혼자 다니면 스스로에 대해 깊은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제 생각보다 저는 사회적 동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라오스는 루앙남타에서 시작해 루앙프라방, 방비엥을 거쳐 수도인 비엔티안으로 갔고, 거기서 베트남으로 버스를 타고 떠났습니다. 꽤 오래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나는데, 기록을 보니 약 8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땐 하루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져서 착각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사소하게 지나치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때로는 긴장을 계속 하기도 했고요.
방비엥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로컬 버스를 타고 비엔티안에 새벽 5시쯤 도착했는데, 불도 거의 켜지지 않은 도로에서 스쿠터 한대가 제 쪽으로 달려왔었습니다. 머리긴, 아마도 성전환하신 것 같은 여자분이 타고 있었고, 낮은 목소리로 '너를 죽이고 싶어'라고(성적인 뉘앙스가 가득했던 것 같네요) 말하길래 급하게 아무 숙소나 잡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정말 무서웠습니다.
새벽에 라오스 - 베트남 국경을 넘으면서, 버스에서 내려 출입국관리소로 향하는데 누군가 굿모닝 베트남!하고 외쳤습니다. 제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그 곳부터 시작됩니다. 비엔티안에서 하노이까지 열 몇시간을 침대 버스를 타고 갔었는데, 처음 접하는 베트남어가 굉장히 낯설었어요.
베트남은 남쪽과 북쪽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조금 달랐습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겠지만요. 북쪽은 좀 더 거친 느낌이었다면, 남쪽에선 농담도 가끔하고 여유가 좀 더 있어보이긴 했어요. 하노이에서 묵었던 숙소 주인과 와이파이가 안되서 말다툼을 했었는데, 그날 밤에 들어오니 로비에서 아내의 유혹 더빙판을 보고 있길래 옆에 앉아 같이 보고 그랬습니다. 여행하면서 한류라는게 실체가 있는거라는걸 알고 조금 놀랐습니다.
베트남 여행은 하노이 - 훼 - 다낭, 호이안을 거쳐 호치민시티에서 끝납니다. 호이안에 가장 오래 있었습니다. 덥고 습한 옥탑방에서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며칠 묵었는데, 선풍기조차 덜덜 거려서 더위먹을 것 같았어요. 스쿠터를 빌려서 몇 km 떨어진 myson이라는 지역에도 다녀오고, 다낭은 불꽃놀이 축제를 보러 하루 갔었네요. 그때의 저에겐 전혀 휴양도시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서요.
호치민시티에서 또 야간버스를 타고 캄보디아로 떠났습니다. 2011년 5월 3일입니다. 버스가 5시간 정도 멈춘다고 하길래, 킬링필드 박물관을 보고 왔어요. 그때 희생당한 무수한 사람들의 해골이 놓여있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버스는 씨엠립에 도착했고, 여기서 3일을 앙코르와트만 왔다갔다 했었네요. 나중에 마추픽추도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건물 자체는 앙코르와트가 더 섬세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처음에 맨몸으로 갔다가 감흥이 별로 없길래, 한국말 잘하시는 캄보디아 가이드분을 섭외해서 갔더니 훨씬 영양가있는 여행이 됐었어요. 미술관이나 유적지를 방문할 때는 일정 수준의 사전 지식이 있으면 여행은 좀 더 풍요로워 지는 것 같습니다.
씨엠립에서 또 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이동했습니다. 주구장창 버스를 타다보니 4~5시간 정도는 짧은 거리로 느껴졌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말로만 듣던 카오산 로드 표지판을 봤을 때 소름돋았던게 아직도 생각나요.
태국은 사진 파일이 많이 날라가서 남은게 별로 없지만, 3주 좀 넘게 있으면서 모든게 좋았습니다. 더위먹어서 식욕이 뚝 떨어졌을 때 레드 커리를 먹으면서 회복했고, 치앙마이와 빠이에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푸켓에서 바다보면서 멍하니 누워있기도 했구요. 네팔로 떠나던 마지막 날, 늦잠자서 게스트하우스의 셔틀을 놓쳤는데 수능 끝나고 놀러왔던 한국 고등학생 남자애한테 한국돈으로 만오천원 정도를 빌려서 간신히 비행기를 탔네요.
2011년 6월은 네팔에서 시작해 네팔에서 끝났습니다. 전 회사분이 좋다고 했던 말만 듣고 무작정 간 나라고, 도착하는 그때까지 어디에 있는지도, 무엇이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된 정보들로 9일간의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떠났습니다. 행군보다 훨씬 힘들긴 했는데, 아래 사진에 있는 중국 친구를 중간에 만나서 서로 의지하며 걸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고산지대의 무서움도 많이 느꼈네요.
이때 한참 여행에 취해있고 여행을 하고 있던 저에게도 취해있을 때라, 감성돋아서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보잘것 없는 머리로는 이 곳에 있던 경이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하고 싶긴 하지만, 그만큼 자연에 압도당했던 순간입니다.
(세계 2위의 번지점프대라고 하네요. 여기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번지점프도 하고, 부처님이 탄생하신 성지 룸비니를 거쳐 인도로 떠났습니다. 6월 1일에 도착해서 6월 30일에 떠났고, 7월 1일 새벽에 바라나시에 도착했으니 네팔에서 정확하게 30일을 있었네요. 나중에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인도는 한달이 조금 더 넘게 있었네요. 저렇게 허술한 국경선을 넘고, 비가 새던 버스를 열시간 넘게 타고 도착한 새벽의 바라나시의 첫 인상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터미널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많았고, 덥고 습했구요.
타지마할은 한번쯤은 볼만 합니다. 관리를 잘해서인지, 아니면 새로 만들다시피 보수를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깔끔했어요.
조드뿌르라는 지역의 메헤랑가르라는 요새입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나와서 엄청 반가웠던 기억이 나요.
이 지역이 '김종욱 찾기'라는 영화에 나왔다고 했는데 그 영화를 안보고 가서 좀 아쉬웠네요.
바라나시부터 여러 지역을 거쳐 8월 2일에 비행기로 터키에 도착했는데, 결국 이 곳에서 여행을 끝내게 됩니다. 인도까지 오는 동안 너무 힘들게 여행을 했고, 항상 긴장하면서 왔는데 이 곳에 오니 너무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는게 어색했어요. 우습게도 그 것 때문에 여행의 재미가 떨어졌구요.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가 죽을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터키는 좋았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지금보니 안 찍힌 지역이 더 많네요)
여행을 시작할 때에 MBC에서 '나는 가수다'가 처음 시작했습니다. 무한도전의 전성기 시절이었고, 네이버 웹툰으로 살인자o난감이 연재중이었어요.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라오스 버스에서 옆에 앉은 영국 여자애들이 소곤대면서 저보고 스마트한 라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도를 찍어서 핸드폰으로 보고다니는 여행 방식이 그땐 최첨단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가이드북을 스마트폰에 담기 힘들다보니, 네팔까지는 가이드북을 싸들고 다녔는데 이 무게도 상당했습니다. 네팔을 떠나면서 제 론리플래닛을 한국 절에 기증하고 왔는데, 이 구절이 너무 좋아서 찢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어딨는지 모르겠네요.
2011년 3월 인천 공항에서 여행을 시작한 후로 제 삶은 백번도 넘게 변한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여행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밀도 높은 시간이었고,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 정도면 여행의 가치로 충분한 것 같아요.
졸문이라 부끄럽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