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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은 강원도 태백시 와 정선군 고한읍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는 1,573m이다.
온갖 아름다운 야생화가 피어 별명이 천상의 화원이다.
자동차로 백두대간을 넘어갈수있는 유명한 고갯길 함백산 만항재 아래 은대봉과 함백산계곡을 걸쳐서 정암사가 있다.
정암사는 중간에 계곡이 있고 그 계곡을 건너는 극락교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양옆으로 절건물이 있고 다리를 건너면 적멸보궁과 수마노탑이 나온다.
나의 문화유적답사기에서 유홍준선생은 정암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정암사의 아름다움은 공간배치의 절묘함에 있다. 이 태백산 깊은 산골엔 사실 절집이 들어설 큰 공간이 없다. 모든 산사들이 암자가 아닌
한 계곡 속의 분지에 아늑하고 옴폭하게 때로는 호기 있게 앉아 있다. 정암사는 가파른 산자락에 자리 잡았으면서도 절묘한 공간배치로
아늑하고 그윽하고 호쾌한 분위기를 두루 갖추었다.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 건축가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공간운영이다."
내가 정암사에 갔을때 받은 인상도 저중에 하나인 아늑함이다.
어디선가 나는 숯향기와 함께 밥짓는 연기가 나오는 공양전 숲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경사를 한 낮은 돌담길과 자연의 모양그대로 위에 지어진
절집들 절묘한 자연적 공간배치와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절이다.
정암사로 가는길에 회장보살은 팔고의 마지막인 애별리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리고는 큰 슬픔을 안겨주지요. 과거 부처님에게 아들을 잃어 슬퍼하는 여인이 부처님이 신통하다는 말을듣고 찾아와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자 부처님은 저기 마을에 가서 가족중에 죽은 사람이 한명도 나오지 않은 집을 찾아 양귀비씨앗을 하나 받아오면 아들이 살아날것이다라고 했고 여인은 마을로 가서 모든 집을 다 찾아보았지만 모든 집에는 가족중에 죽은 사람이 있었고 각자의 헤어짐으로 인한 슬픔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죽음으로써 헤어지는 슬픔은 모두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고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일수 있었습니다.
애별리고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냥 만나고 헤어지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는 만날수 없게 된다는 그런 사무치는 상실을 깨닫기 때문에 그 고통에 매몰되면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무기력상태에 빠지게 되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나는 회장보살이 애별리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것을 들으며 애잔함과 함께 어렸을때 보았던 영화 불멸의 하이랜더가 떠올랐다.
넷플릭스에 있는 올드가드처럼 우연히 불로불사의 전사가 된 주인공 코너맥클라우드를 다루는 영화인데 주인공은 어떠한 상처를 입어도 물속에서계속있어도
죽지 않는다 오직 다른 불사신의 칼에 목을 잘려야만 죽을수 있고 죽인 불사신의 모든 힘과 지식을 흡수하는 설정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무한히 방황하며 세계를 떠돌던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헤더라는 여인과 깊은 사랑을 하게 되고 둘은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는데 주인공은 불사신인 자신을 잊어버릴정도로 평범하고 충만한 생활을 한다. 헤더는 자기는 점점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데 코너는 처음 만났을때 그 모습 그대로인것을 알지만 코너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에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유한한 인간에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이 헤더를 찾아오게 되고 늙고 힘없는 헤더가 둘이 살던 오두막에서 자기를 간호하는 코너에게 마지막까지 최대한 아름다운 표정을 지으려 애를 쓰던 그 장면, 결국 헤더가 숨을 거두고 난뒤 고통스러워하며 한없이 슬퍼하는 코너가 오두막에서 나와 어두워지는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서 절규하는 그 모습이
회장보살이 애별리고를 이야기 할때 생각이 났다.
인간은 왜 유한한 존재일까?
기껏해야 팔십년 남짓 살면서 왜 사랑이란걸 하게 되어서 한없이 사랑하는 존재와 헤어짐을 맞이하게 되는것일까?
진짜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여러가지 고통속에서 사는게 인간이구나.
애별리고에 대해 여러가지 꼬리에 꼬리를 문 애잔한 생각을 하다보니 버스는 어느새 정암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공양물을 내려 일주문을 통과해서 우리는 관음전에 공양물을 가져다 줬다. 마중나온 스님과 회장보살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공양물을 내려놓은 나는 관음전 뒤에서 사람들 소리가 나서 궁금해서 가보았다.
관음전 뒤에는 어떤 젊은 내나이또래로 보이는 스님한명과 중년의 남자 거사 두명이 장작을 패는 일을 하고있었다.
딱 봐도 너무 분위기가 좋았고 서로 농담을 하며 어설프게 장작을 이렇게도 패고 저렇게도 패며 느긋한 분위기로 보였다.
순간 그 느낌이 너무 좋았고 부러워보였다. 장작을 패는걸 잘하거나 점수로 평가하지도 않고 빨리 패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이 느긋하게 좋은사람들과 웃으며 장작을 어설프게 패고 쉬고 하는 저 모습에 반한 나는 저들사이로 들어가 이 아늑한 정암사에서 같이 일하고 수행하고 알고 지내고 함께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인간관계가 늘 미숙하고 능숙하지못해서 서툴러 회피하게 되어 결국은 지금 방구석에서 혼자서 은둔형외톨이처럼 생활하던 내가 저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든것이다. 새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맞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게 자연스러운거 같았다.
이야기를 마친 회장보살과 우리는 정암사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인공정원과 뒤의 숲 가운데서 대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보기가 좋았다.
적멸보궁 뒤에 진신사리를 모신 수마노탑은 마노석이라는 돌을 중국에서 서해(물)를 건너 가져와 지었다고 해서 수자가 붙어 수마노탑이 되었다고한다.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봉안한곳들은 다들 모양이 다른데 여기 이 정암사의 수마노탑은 유일하게 큰 석탑형태로 되어있었다.
어렸을때 책에서 그림으로만 보던 석탑 그모양인데 가까이서 보니 큰돌이 매우 정교한 기술로 가공이 잘되어 지어져있었다.
수마노탑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회장보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회장보살님 스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나이에 출가해서 승가고시를 준비해도 괜찮을까요?"
회장보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 예비승으로 들어가게 되면 제일 밑 허드렛일들을 다 도맡아서 하느라 바로 수행에 들기도 어렵고 승가고시 준비도 하기 힘듭니다. 빠른 시간안에 5급 4급 승가고시에 합격하려면 10대후반이나 20대 초반나이가 가장 좋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있으면 난이도가 올라가서 재수 삼수 사수도 하고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나이가 든 사람들중에 스님이 되겠다고 오는 분들중에는 강한 마음과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염원이 강하면 빠른 시간안에 경지를 이루고 큰 스님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일행들은 템플스테이방에 쉬러가거나 절 곳곳을 여유롭게 다니고 회장보살은 나를 데리고 스님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며 관음전으로 데리고 갔다.
이윽고 회장보살은 스님 한명을 데리고 왔다.
아까 그 공양전 뒷마당에서 본 젊은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어보이는 귀티가 나는스님이었다.
나는 그 스님이 왠지 어디 부자집이나 재벌집 아들이 출가해서 스님이 된게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가졌다. 스님은 속세의 나이로 40대 중반이라고 했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 나이 또래라고 생각했는데 욕망을 잘 다스리는 스님의 나이는 겉모습과 매우 다르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우리 세명은 공양전에 붙어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녹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젊은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 속세에는 재미있고 즐길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 좋은 속세를 벗어나 이 산사에 오시려고 하십니까?"
나는 나에 대해 고해성사하듯 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회장보살과 스님은 한번씩 맞장구도 쳐주며 이야기를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나는 그때 여러가지 어렸을때부터 받았던 상처 냉담하고 사랑표현이 하나도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대해 너무 사랑도 많이 하고 기대도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거 같은 패배자가 된거 같은 나의 현재 맨날 내가 가지지 못한것을 다 가진 친형과 말로는 비교하지 않지만 어느순간부터 자연스레 비교되어 항상 친형의 성과 뒤에 주눅들어 있는 나 그래서 친형에 대해 부모님이 칭찬을 조금이라도 하면 그게 한없이 기분이 나빠지고 형이 미워지는 못난 나의 속마음, 방에서 외출도 거의 없이 하루종일 게임만 하며 회사에 이력서를 넣지만 면접까지 가본것도 없이 거의 서류탈락 어쩌다 서류전형에 통과해서 면접에 가서 주눅들어있다 돌아왔을때의 자괴감 여자와 막연하게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벗꽃구경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지만 한번도 그런적이 없어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있는것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책을보다 생기는 깨달음과 지식탐구에 대한 지식에 대한 열망, 정순한 인간관계를 하고싶지만 서투르고 지금은 거의 전무하고 유일하게 게임에 친추가 되어있는게 인간관계의 전부인것 등등 정말 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
젊은 스님은 자기가 출가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출가하기전의 저는 포항의 대보리라는 어촌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기억나는데로 쓰면
양식업과 어업을 하던 거칠고 술을 좋아해 술먹고 일을 자주나가던 아버지와 몸이 약한 어머니사이에서 그럭저럭 자라던 어느날 스님의 아버지는 태풍이 지나간뒤 혼자 배를 몰고 가두리 그물을 정비하다 그물과 배 사이에 끼는 사고로 주위 아무도 모르게 사망하는 사고가 났고 스님의 어머니는 너무 상심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유서를 쓰고 스님 혼자 남겨두고 자살했다고 했다. 갑자기 너무 황망한 일을 당해 넋이 나가있던 스님은 가족회의 끝에 집이랑 양식장을 다 처분한뒤 삼촌집에 맡겨졌는데 1년정도 뒤에 갑자기 삼촌이 병에 걸려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혼자남은 숙모는 스님을 너무 싫어해서 스님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숙모집에서 쫒겨나고 아무도 안데리고 가려고 했다고 했다. 스님은 결국 음식을 얻어서 먹고 길에서 거의 반 노숙생활을 하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살기 싫어 엄마를 만나러 폐가가 된 살던 집에서 농약을 찾아 마셨다고 했다. 극도의 고통뒤 정신을 잃고 난뒤 죽은줄 알았는데 갑자기 병원에서 눈을 뜬 스님은 동네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왕할머니라고 불리던 분을 만나게 되고 그 왕할머니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했다. 왕할머니는 동네에서 일종의 민간치료를 하고 산파역할도 하던 분이었는데 큰 분쟁이 있을때 중재도 하고 상담도 하던 그런 분이었다고 스님은 기억했다. 병원에서 퇴원한뒤 왕할머니는 스님을 데리고 살며 그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그저 때가 되면 밥을 차려서 먹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스님에게 간섭하지 않고 자기의 할일만 했었다고 했다.
시간이 남자 그는 저절로 왕할머니 집에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불경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형언할수 없는 따스한 느낌을 받고 읽었던 불경의 문구중에
"너는 이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우주의 아이이다. 너의 과거가 얼마나 힘들었던간에 너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수 있다."
는 말을 깨닫고 아침을 먹고 왕할머니에게 출가하겠다고 말을 했었다고 한다.
나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곳은 속세와 연결된 곳이 아닌 새롭게 시작하는 곳이구나. 온갖 고통과 가짜 환상 탐욕이 넘치는 속세에서 더이상 삶을 이어나갈수 없는 사람도 새롭게 태어나 처음부터 진리를 구할 수 있는곳.... 바로 이곳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어떤 누구던지 새롭게 시작할수 있는 곳이구나..
"속세의 제 이름은 인호였습니다. 인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해야 했던 운명이 조금 당겨졌을 뿐이지요.
언젠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도솔천에서 다시 웃으며 만날날이 올것입니다."
젊은 스님은 맑고 밝은 해처럼 활짝 웃었다.
적멸보궁 여행이 끝난뒤 버스는 다시 출발지에 도착했다. 농협장례식장 주차장이었는데 모두 인사를 마치고 다른 일행들은 전부 주차되어있던 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회장보살은 지하철타고 집가지말고 자기가 가는길이 비슷하니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회장보살이 말했다.
"이번 적멸보궁 여행은 어땠습니까?"
나는 뭔가 그럴싸하고 거창하게 이야기하려고 생각하다가 이번 적멸보궁여행에서 만나고 들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몸이 아파 바로 누을수도 없을 지경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함께 있던 아난다가 이별을 슬퍼하며 울고있을때 담담히 위로해주던 부처님, 멀고 큰 나라에서 여자왕이 지배하는 작고 힘없는 나라를 걱정해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다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주기를 바라며 적멸보궁을 지은 자장율사 무수한 침입과 도적질 화재에도 목숨을 내놓으며 끝까지 진신사리를 수호하며 죽어간 수많은 승려들과 불자들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미군사령관에게 절을 짓게 해달라며 단식하며 소원을 빌던 봉정암의 스님들 여덞번이나 잿더미가 되어도 꿋꿋하게 지을때마다 더 훌륭하고 큰 절을 지은 불굴의 백담사 스님들 봉정암 적멸보궁에서 추운 새벽에 아픈 엄마를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던 늙은 여인 따뜻한 말한마디로 모든 분위기를 바꾸던 노스님 쓸쓸하면서도 담담하게 운명과 맞서서 싸우던 그 도화살여인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난 속세의 이름이 인호였던 젊은 스님까지
나는 적멸보궁 여행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본 것이다.
나는 목이 메어 울컥거림을 억지로 억누르고 고개를 창문쪽으로 돌려 흘러나온 눈물을 소매로 닦아 감춘뒤 말했다.
"사람.... 사람을 보았습니다."
회장보살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