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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5/16 09:57:48
Name 쿨럭
Subject [일반] 돼지는 다이어트 중 (수정됨)
1. 어린 시절부터 돼지였습니다. 반에서 세손가락 안에는 들 정도로 말이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농구를 많이 해서 그런가 점점 뚱뚱에서 통통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2. 고기에 환장, 밀가루에 환장했습니다. 식탐 많았고요. 빨리 먹는 걸로는 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네요. 포만감이 오기 전에 계속 먹으니 당연히 많이 먹었고요. 지금도 비록 느려지긴 했지만 일반인들 보통 먹는 것보단 제가 곱빼기를 훨 빨리 먹습니다.

3. 그래도 174cm 키에 75~80kg 정도를 유지하다 20대 중반에 인생을 놓아버리게 되면서 히키코모리가 됩니다. 움직이질 않고 쳐먹기만 하니 살이 오르죠. 물 대신에 탄산음료, 점심 때 고탄 메뉴, 저녁엔 소주 두병과 기름진 안주가 루틴이었습니다. 처음엔 자그마한 튼살 자국을 보고 겁이 났으나 어차피 놓아버린 인생, 튼살이 온몸에 번져가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돼지는 이렇게 4년전에 110kg을 찍게 됩니다.

4. 인생을 다시 붙잡았습니다. 직업학원을 다니는 6개월 동안 90kg이 되었습니다. 운동은 따로 안했는데 일단은 집에 엎드려만 있다 움직이게 되고, 실기 실습도 하였고, 점심도 학원 근처 식당에서 1인분만 먹었으니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는 하네요.

5. 누적된 고혈압, 고지혈증의 여파인지 병원에 한달 입원을 했습니다. 맛없는 병원밥으로 식단관리까지 받으니 80kg 초반이 되네요. 퇴원후 술을 끊고 아침 30분이나마 걷기 운동을 시작합니다. 탄수화물.. 아니 정확하게는 밥, 면류 혐오가 생겨 저탄 식단으로 바꾸고 취직 준비를 하는 3개월 동안 75kg가 되었습니다. 10개월 동안 35kg이 빠지니 몸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되어 피부가 늘어졌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늘어진 피부는 제 컴플렉스 중 하나입니다. 언젠가 수술을 받고 싶네요.

6. 취직을 하고 75kg 에서 +- 3~4kg 정도로 체중을 유지하다 2년전쯤 연애에 대한 욕구가 생겨서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걷기로 시작한 것이 자꾸 생기는 물집 때문에 같은 거리를 빨리 달리는 것이 낫겠다면서 러닝으로 취미가 바뀌고, 식사 한끼는 샐러드로 섭취하게 되었습니다. 4개월 정도 빡세게 하니 최저로는 65kg까지 내려가봤습니다만, 그때그때 치팅과 요요 등으로 68kg 정도가 평균 체중이 되었네요. 어느샌가 연애는 뒷전이고 퇴근하고 러닝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으로 선후관계가 바껴버렸습니다.

7. 돼지는 동료들에게 어디 아프냐? 원래 마른 체질 아녔냐? 이런 소리를 들으니 너무 기뻤습니다. 평생 들을 일 없을 줄 알았죠. 예민해 보인다, 신경질적으로 보인다라는 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마스크 쓰고 달리는게 너무 답답한데 운동을 안하면 체중이 늘어날 것 같아서 작년 11월부터 홈트레이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엔 슬로우버피로 시작한게 점점 푸쉬업으로 바뀌고, 어깨 가슴 삼두에 근육 비슷한게 생기는데 이두가 너무 빈약해서 인생 처음으로 헬스 운동기구인 덤벨을 들게 되었습니다.

8. 평일 점심은 샐러드, 라떼 한잔, 현미 누룽지칩 3조각, 우유 한잔 입니다. 저녁은 베이글 한개, 커피 한잔 정도네요. 일주일에 한두번 휴일에는 굽네 치킨 한마리 먹습니다. 중간중간 케이크 한조각이나 과자도 먹을 때가 있는데, 후회하고 자책하는 편입니다. 야채 정말 극혐이었었는데 계속 먹다보면 입맛이 바뀌더라고요. 야채 좋아하게 되었고, 그렇게 싫어하던 당근이랑 파프리카가 페이버릿이 된게 스스로도 신기합니다. 샐러드 먹을 때 드레싱은 안먹습니다. 이것도 자꾸 이렇게 먹다보면 익숙해지고, 야채 고유의 간을 알게 되더라고요. 양상추가 밥, 방울토마토가 반찬 같은 느낌? 하지만 고추 바사삭 치킨 먹을 때마다 고블링 소스 3개씩 추가하는 건 비밀..

9. 하지만 돼지가 멸치로 환생은 못하고 살빠진 돼지일 뿐이다라고 생각이 든게, 제가 어느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체중을 잰게 68kg 이었는데 괜찮겠다 싶어서 딱 이틀 동안 놓아버린 적이 있거든요. 점심은 평소 스타일에 카페에서 케이크 한두조각 더 먹고, 저녁으로 치킨 한마리에 배라 파인트 2통씩을 먹었었는데 일요일 아침에 체중이 72kg이 나오더군요. 충격도 받고, 현타도 왔었는데 그냥 나는 돼지다 죽을 때까지 다이어트 중인 돼지가 될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이제 제 인생에 배라는 없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여야지 어쩌겠어요. 이러고 일주일이 걸려서 체중 복구하고 복구 기념으로 버거킹 4스태커 와퍼 2개 완식 성공했습니다. 하핫~

10. 누가 제게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다이어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러닝도 좋아하고, 러닝화도 사모으고, 홈트 루틴도 생기고, 샐러드 맛집도 찾아다니고, 이제는 핏도 좀 좋아져서 슬림 청바지와 머슬핏 티셔츠도 자주 검색을 하게 되는데, 결국엔 이 모든 것들이 다이어트 한마디로 귀결이 되더라고요. 부디 10년, 20년 뒤에도 스스로를 놓지 않고 계속 다이어트 중인 돼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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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ong Run
21/05/16 10:12
수정 아이콘
멋있어요
댄디팬
21/05/16 10:32
수정 아이콘
저는 최고 무게는 같고 키는 작습니다. 날씬했던 적도 없고요. 지금 다이어트 중인데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ㅠ 부럽습니다
소이밀크러버
21/05/16 10:35
수정 아이콘
베라 파인트 2통은 선넘긴했네요. 흐흐.
21/05/16 10:37
수정 아이콘
자기관리를 계속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리스펙트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합니다.
21/05/16 10:41
수정 아이콘
멋지십니다
21/05/16 10:48
수정 아이콘
저도 빼고 싶습니다. 187cm ,108kg.
연애+결혼+육아 콤보로 30kg 쪘네요.
찌기전엔 제법 괜찮단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이젠 아예 그런 비슷한 소리도 못듣고 있어요.
나이 40되기전에 다시 한번 용기내보고 싶은데 애들 키우느라 시간이 안나네요. 핑계지만...
쿨럭님 정말 대단하세요!
별거아닌데어려움
21/05/16 10:58
수정 아이콘
마른편이었던 사람도 나이들고 중년접어들면서 배나와서 운동시작하는 것보면 식사와 운동에 평생 신경써야 하는게 상수겠죠. 쿨럭님은 좀 일찍 시작했으니 습관이 배이면 나이들어서는 그때 시작하려는 사람보단 더 관리된 몸이 되어있을 것 같습니다.
21/05/16 11:33
수정 아이콘
저도 40대여서요. 흐흐.
린 슈바르처
21/05/16 11:11
수정 아이콘
저도 15키로 빼고
3년째 유지중인데, 이게 참 힘드네요..^^

결혼도 해서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구요...
서윤아범
21/05/16 11:13
수정 아이콘
한달전 문득 올라간 체중계에서 44살 인생 최대 몸무게인 80이 찍히는걸 보고 가장의 책임감은 건강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다이어트(출근전 한시간 속보로 런닝머신+퇴근하고 아들 복귀전 링핏 30분+아침은 사과1개,달걀1개 점심은 기존량 40프로 정도 먹고 저녁은 닭가슴살 100g) 해서 오늘 71kg 나왔네요.

줄인 몸무게가 아쉬워 치팅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소심이고

이제 유지하려고 더 노력해야겠다 생각중입니다
어바웃타임
21/05/16 11:28
수정 아이콘
저는 몸무게가 고무줄인 편이라

정신줄 놓고 먹어대거나 정신줄 잡고 다이어트하면

3개월에 20kg가 왔다갔다할 정도인데

튼 살자국은 있어도 빠질때 피부가 늘어지진 않거든요

20키로 정도여서 안생기는걸까요?

3개월에 20이면 10개월에 35보단 급진적인것 같은데.....

체질차이인가요?
21/05/16 11:34
수정 아이콘
세자리수 체중으로 10년은 있었던 지라 피부가 그게 원래 자린줄 알고 줄어들지 않았나봐요.
공염불
21/05/16 11:34
수정 아이콘
반갑습니다 동지들이여.
결혼과 육아로 179에 100이 됐던 30대 초반 이후로
다욧은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가 됐네요.
이놈의 술을 더 맛있게 마시기위해, 더더욱 다욧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모두 홧팅입니다. 크크
21/05/16 11:38
수정 아이콘
네 저도 그저그런 식단 7일 먹을 바엔 샐러드 6일 먹고 하루 치팅하는게 낫다는 주의라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21/05/17 13:45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그저 그런 식단보다 차라리 다이어트 식단이 정신적으로 훨씬 편하고 속이 가벼워요.
21/05/16 11:41
수정 아이콘
다들 멋지십니다.
반성하고 저도 내일부터 다이욧 하겠습니다.
(오늘은 돼지갈비 약속이 있어서...)
21/05/16 11:49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같이힘내시죠.
인생 마지막 다이어트 시작했습니다(중간에 안접고 평생 한다는 마인드..)

40일차입니다
자연스러운
21/05/16 12:36
수정 아이콘
먹은게 다 살로 가다니.. 장이 부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이 인간은 먹는게 다 똥이 되어버리니...
밀물썰물
21/05/16 12:39
수정 아이콘
그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목표를 갖고 그 것을 계속 사랑하고 유지해 가는 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
쥬블리
21/05/16 14:33
수정 아이콘
코로나 덕분에 집콕 생활을 했더니 1년동안 30Kg가 쪘더라구요 저는 운동이 너무 싫어서 3월 부터 2시간 걷기와 식단조절다이어트 시작해서 현재 29Kg 감량했습니다. 제로 음료가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꺼 같네요
고생하셨네요 유지어터의 삶 응원합니다
21/05/16 15:55
수정 아이콘
저도 살진짜 잘찌는 체질인데.. 쯔양같은 먹방bj보면 그냥 맛있는거 먹는거보다 걱정없이 배터지게 먹는게 제일 부럽습니다 ㅠㅠ
21/05/16 19:26
수정 아이콘
저도 볼떄마다 부럽습니다..
나는 라면 하나 먹어볼려고 진짜 죽어라 운동하는데 ㅠㅠ
21/05/16 16:28
수정 아이콘
저도 육퇴후에 축구보면서 라면먹는게 습관이 되버려서 100키로 돌파했습니다...라면은 매일 먹어도 왜 매일 맛있는지ㅜㅜ
21/05/16 18:58
수정 아이콘
어느순간 부터 밀가루 비린내가 올라오는데 그후론 꼴도 보기 싫으실거에요 목넘긴도 구역질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다른거로 돼지가 되었습니다(?)
21/05/17 08:32
수정 아이콘
주 4일 이상 운동하고 식단을 놓지 않으면
살이 엄청 붙진 않더라구요
기초대사량이 올라가서 그런듯
만취백수
21/05/17 12:17
수정 아이콘
평소에 끼니만 잔뜩 먹고 군것질을 잘 안하는 편이라 과자나 음료수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먹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었는데, 하우스 메이트 중 한 사람이 과자랑 탄산음료 먹는거 보니까 좀 적응이 안되더라고요. 분리수거함에 1.5리터 콜라가 이틀에 한병씩 쌓이는거 보고 놀랐습니다.
Lainworks
21/05/17 13:37
수정 아이콘
배부른 소리일수도 있겠는데 양을 한번 줄여놓으니 이젠 먹고 싶어도 많이 먹질 못하는 몸이 되더군요 크크크
지도앱 즐겨찾기에서 무한리필집을 삭제하게 될줄은 몰랐네요
캥걸루
21/05/18 09:07
수정 아이콘
저도 170에 105 키로 나가던 말그대로 굴러다니는 돼지였는데 취직하고싶어서 살뺐습니다.
한 1년정도 만에 105에서 70.9까지 찍고 취직에 성공하고 .. 다닌지 1년 정도 됐네요
현재는 73~75 사이에서 간신히 유지중입니다.. 매일 하던 운동이 주말만 하는걸로 바뀌다가 요새 갑자기 로아에 꽂히는 바람에 주말에도 운동을 놓아버렸는데 이 글 보고 다시 주말에라도 운동 나가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모두 다이어트 화이팅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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