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은 밭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감자밭과 고구마밭, 그리고 울도 담도 없는 집.
70년대, 인천에서도 중심가였지만, 제 어린 시절에는 허허벌판에 집 몇 채, 그리고 논과 밭이 전부였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의 서랍 안엔 항상 진기한 물건들이 그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에는 매우 드문 얼리어답터였던 것입니다.
국민학교 들어갈 무렵이었나, 아버지는 이상한 새들을 사오셨습니다.
일명 "호로호로" 라는 요상한 이름의 새.
호랭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고, 인터넷은커녕 집에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서(국민학교 3학년 때 처음 전화가 생겼습니다)
한낱 새 이름에 엄정한 고증을 거쳤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호로호로"라는 그 이름을, 애칭이나 별칭 정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우리 동네엔 칠면조를 키우는 집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닭은 우습게 여기는 담력이 센 아이들도, 칠면조 우리 근처엔 가지 않았습니다.
칠면조가 한번 물면 손가락을 잘린다고 하는 소문을 누군가가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칠면조 주인의 작전이었던 것같습니다.
하여간 이 호로호로란 놈은 생긴 것이 칠면조와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검은색 몸에 흰 반점이 나 있어 녹록지 않은 성격을 표현하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은 호로호로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고, 저 역시 이 불쾌한 새 근처엔 가지 않았습니다.
좀 난감했던 것은 이웃집 사람들이, 우리가 새 수십 마리를 키운다고 몇 번 항의를 했던 것입니다.
집들이 띄엄띄엄 있던 옛날이었음에도, 항의가 들어온 것을 보면 이 호로호로란 놈의 목청을 짐작할 듯합니다.
더군다나 단 두 마리임에도 불구하고 암수가 소리 높여 "호로호로" 하고 울기 시작하면 동네가 한바탕 떠나갈 정도였습니다.
만일 지금 도심지에서 이 새를 키운다면, 반상회에서 매장될 각오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여간 이 새는 약간의 알과 욕 비스무리한 엄청난 소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사건이 터졌습니다.
어느 날 밤, 호로호로 두 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신뢰할 만한(?) 정보에 의하면, 인근 공사장의 인부들이 이놈들을 밤에 서리해가서 구워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기로서니 먹을 것이 따로 있지.
맛이라고는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새를 훔쳐다 구워 먹었다니.
수십 년이 지나고 이 사건은 잊혀졌습니다.
한데 최근 어느 홈피에서 이 새에 대한 정보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본명은 호로새(호로호로보다 더 욕같다)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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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조는 「판타드」란 원명을 가진 아프리카산 야생 조류로 고기맛이 워낙 좋아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가축으로 길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현재도 조류 중 가장 맛이 있고 비싼 요리로 각광받고 있다. 이 호로조가 한국에 도입된지는 16년 전쯤 되나 오리고기가 호남의 일부지방에서나 별미로 취급되어 왔다가 이제야 겨우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처럼 가슴살이 회 맛으로 일품인 호로조는 이보다 더 늦게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호로조는 낯선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가면 듣기 시끄럽게 울어대는 거위처럼 집을 지키는 데도 쓸모가 있으며 힘도 좋아 한번 날면 높은나무 꼭대기까지 단번에 올라가며 놓아 길러도 멀리 가지 않고 닭처럼 주위를 빙빙 돈다. 최근 맛자랑의 메스콤을 통하여 홍보된 이후 사육을 희망하는 농가들의 분양문의가 날로 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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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홍보의 냄새가 풍기는 설명이지만, 그래도 주목할 만한 구절.
[ 한국에 도입된 지 16년쯤 된다고 한다 ]
기사의 시점이 2005년 경이고 우리 집에 도입된 것은 1977년쯤이니 한국 도입을 기준으로 대략 12년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아버지는 이 새를 어디서 구하신 걸까.
아프리카에서 직수입하신 걸까? 아니면 프랑스에서?
대체 왜 이 새인가?
제주 세관에 근무하던 한 친구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불법 수입한 타조 수십 마리가 세관에 억류돼 있는데 처분도 못 하고 미치겠다고.
아버지는 그냥 평범한 공무원이었는데 그런 구입 루트일 리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이 새의 효용 가치를 보고 선구자의 마음으로 도입하신 아버지.. 진정 놀랍습니다.
얼리어답터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공사장의 인부들입니다.
처음 보는 새의 징그러운 생김새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 새를 서리해 갔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명절날 조심히 여쭤본 기억이 납니다.
나 "아버지 혹시 호로호로란 새 기억하세요?"
아버지 "그 뭐시라? 그런 새가 있었나?"
조금 허무하고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진정한 얼리어답터는 뒤는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것을.
# 최근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호로새' 고기를 파는 식당의 에피소드를 보고 컴퓨터 안에서 잠자던 이 글을 소환해봅니다.
# 호로호로는 일본식 표현이 아닌가 싶어요. '고독한 미식가'에서도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학교를 나온 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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