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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3 23:51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정치질서의 기원]이라는 책에 관련된 내용이 잘 씌여 있습니다. 기업이나 조직의 운영과 정치체제는 원리나 세부사항이 많이 다르죠. 무엇이 더 좋으냐 혹은 무엇이 더 효율적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기업이나 조직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더 성공하고 더 돈을 많이 벌면 좋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현상에 대해서 질문해야 할 겁니다. 왜 어느 나라는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어느 나라는 불가능한가? 이에 대한 대답을 문화적, 역사적 조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얼핏 생각하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로 이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일종의 서구 중심주의에 불과합니다. 과학기술과 민주주의가 더 좋다는 가치판단, 그래서 그 분야에서 먼저 앞서 간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죠. 지난 20년간 미국과 유럽의 정치체계는 현실적인 한계를 많이 드러냈고 다른 세계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는데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문화적, 역사적 조건에서 답을 찾는다는 접근법은 유효하지만 내용이나 결론은 다소 진부한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21/05/24 01:02
과학발전이 정치체제와 인과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드네요. 일본도 중앙집권체제가 아니었는데 딱히 과학이 발전하지는 않았으며, 수백개의 영방국가들로 분열되었던 시기의 독일이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과학이 특별히 앞서지도 않았지요. 독일은 오히려 통일 후에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등의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이 대거 등장했죠.
다만, (과학이 아닌) 기술에 한해서는 일리가 있는 말씀인 것 같네요. 과학과 기술의 결합은 극히 최근의 현상이고 대략 1~2백년 전까지는 따로 놀았는데, 과학은 돈많고 시간많은 귀족분들의 취미생활에 가까웠던 반면 기술은 평민들이 우격다짐으로 개발하는 방식으로 발전했죠. 그리고 고만고만한 정치집단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기술혁신을 불러일으켰구요. 저는 서양 과학의 발전은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현실세계를 작동하는 근본원리인 이데아를 탐구하는 것이 플라톤 이후 서양 지성인들의 지상목표였던바(심지어 기독교도 플라톤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음), 이러한 지적 풍토가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 된 거죠. ps. 요즘 안보이는 어떤 pgr 회원님은 기독교가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셨는데, 인과관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네요.
21/05/24 09:35
동양식 중앙집권체제가 제게 끼친 가장 큰 해악은 크킹2 처음 할때.....아니 내가 다 땅 따먹었는데 왜 내 땅이 아니냐고! 아니 결혼을 했는데 왜 땅을 떼가냐고!!
는 농담이고 개인적으론 체제 만큼이나 중요한게 경쟁상대 같아요. 유럽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등이 쟤를 못죽이면 내가 죽는다 하니까 기를쓰고 발전하려고 애를 썼던거고 중국이야 뭐 통일왕조일때는 위협할 상대가 끽해야 북방 이민족이니....
21/05/24 10:11
또 생각해봐야 할게 왜 동양은 중앙집권체제가 되었고, 유럽은 안 됐는가인데, (사실 전근대에서는 중앙집권이 더 유리했다고 봐서요) 이건 지리적 영향이 큽니다. 중원과 오지로 나뉘는 중국. 자잘한 산맥으로 찢어진데다, 지중해의 존재 때문에 오지가 없는 유럽. 이 지리적 차이가 정치적 지형 차이가 되었고, 그 차이가 과학, 경제, 군사력 차이로 벌어졌다고 봐야겠죠.
21/05/24 10:24
봉건적 질서가 자본주의 발전과 상업혁명에 어느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양문명으로 통칭되는 서유럽은 사실 오리엔트+그리스로마+이슬람 등 지중해 문명권의 직접 버프를 받고 큰거라 잠깐동안 국부적으로 나타났던 정치체제 비교는 의미가 없죠. 한중일 동아시아 지역은 쌀생산성 덕분에 인구 숫자만 우월했지 다른 문명권과는 근본적으로 단절된 공간이라서 인종, 언어, 문화적 다양성이나 시간에 따른 변화무쌍함의 양에서 지중해 문명권과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그 거대한 권역내부에 동로마나 페르시아 같은 강력한 중앙집권 신정일치 체제도 있었고 서유럽같은 봉건주의 국가들도 있었고 그러한 다양한 환경과 세력들이 수천년 치열하게 경쟁하다 결국 될놈 된거죠
21/05/24 10:42
내용은 안읽어봐서 모르겠는데
책 표지문구는 좀 무섭네요 능력만 있으면 규정 통제가 필요없다니... 능력과 인성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끔찍한 느낌인데...
21/05/24 13:29
과학 기술을 가장 빨리 확실하게 발전 시키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집권체제에서 돈을 쏟아 붓는 겁니다. 가장 과학 기술의 속도가 빠른 시간대는 세계 대전 시기의 군사 기술과, 미소 냉전 시기의 우주 기술일텐데 이 시기는 중앙집권체제에서 이루어진 일이죠.
21/05/24 13:59
근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정부가 집중하는 부분에서 노력을 집중하면 빨리 발전한다"죠.
소련이 미국보다도 더 빨리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독일 V2 로켓을 입수하여 역설계한 덕이 큰 건 사실인데 실제로는 V2의 개발진급 중 헬무트 그뢰트룹 정도나 소련으로 갔고 대부분은 미국행을 택했죠. 그런데도 소련이 앞설 수 있었던 건 이미 30년대에 소련은 로켓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였지만 대숙청 시기를 거치면서 "동지는 뭔 이상한 장난감이나 만듦?" 이러면서 숙청되고 굴라그 갔다오고 그 다음엔 2차대전으로 로켓 같은 걸 개발할 정신머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정체됐던 겁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나오는데 2차대전 후 소련 내부에서도 다시 로켓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니까 "동지들은 미사일이나 만들 것이지 뭔 위성인지 뭔지를 우주로 쏘겠다는 거임? 혈세로 불꽃놀이 하고 싶음? 굴라그 또 갈래?" 이런 식으로 다시 탄압 받았고 흐루쇼프가 인공위성을 쏘아올린다는 것의 과학적, 정치적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더라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입니다. 반대로 말해서 흐루쇼프가 아니었다던가, 혹은 흐루쇼프가 "그딴 선동성 세금놀이 그만하고 실용적인 거나 만드쇼!" 했으면 끝났습니다. 동시기의 미국에서도 하루라도 더 빨리 위성으로 쏘아올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육해공군이 다 따로 로켓을 만들고 있었고요. 중앙집권 하에서 국가의 자원을 일률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그 방향성이 맞기만 하면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지만 만약 그 방향이 잘못 되었더라면 똑같이 흐루쇼프 시대의 처녀지 개간사업 같은 대참사만 나옵니다
21/05/24 15:09
동아시아면 인구만 해도 중국비중이 한 50프로는 넘을거같은데 중국이 했으면 큰그림에선 동양식이 맞죠 특히 전근대 이전은 더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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