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귀는 박새 소리에 묵적(黙跡)은 눈을 떴다.
그는 소림 고승들의 사리탑이 수풀처럼 우거진 탑림(塔林)에 앉아 있었다. 해가 뜨기 전 탑림에 앉아 염화선공(拈花禪功)의 심법을 수행하는 일은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참선만 했을 뿐인데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염화선공의 구결은 무궁무진해서 수행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묘(妙)가 다양했다.
그런 점에서 묵적은 최적의 인재였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기에도 너무나 높은 봉우리를 정복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떼는 구도자의 자세를 묵적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다.
그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 대해서 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괴리는 누구와 비교해 봐도 특기할만한 점이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한다는 것, 그러나 결코 편법이나 지름길을 찾는데 심력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묵적이라는 담백한 법명의 사나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이 점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묵적은 문득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았다. 태실봉(太室峯) 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장엄한 일출의 광경을 보자 소림에 첫 발을 디뎠던 초심이 되살아났다.
출가한 지 어언 십오 년째였다. 일곱 살 때 그가 아버지에게 강호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처음 밝혔을 때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묵적으로서는 처음 보는 연약한 것이었다. 화를 내거나 고함을 지를 줄 알았던 아버지는 의외로 담담했다.
따듯하고 온화한 집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도산검림(刀山劒林)의 험한 강호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어린 아들의 말을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처마에 매달린 붉은 수실들을 만지작거리는 것뿐이었다.
수실들은 평소 보기에는 아름다웠으나 그날 새벽만큼은 멀리서 불어오는 젖은 모래바람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어린 묵적으로서도 처연한 감정이 들었다. 수실들에 붙은 모래를 털어내는 아버지의 손가락을 묵적은 눈으로 좇으며 대답을 기다렸었다.
그러나 아주 이상하게도 그날 새벽 아버지의 대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당 한편에 새로이 움 돋던 보리 새싹의 잎사귀 숫자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묵적으로서는 아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그날 담판의 결과로 어린 묵적은 강호에 명망 높은 소림사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기억만이 담담한 사실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상념에서 깨어난 묵적은 흐르는 시냇물에 몸을 씻은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불전(大佛殿) 전각으로 향했다. 대불전에는 기기괴괴한 모습의 다양한 불상들이 즐비했다.
거리낌 없이 불상들을 지나쳐 걷던 묵적은 앙상한 나뭇가지 한그루가 우두커니 드리운 방 앞에 멈추어 섰다. 방 안에는 한잔의 다기(茶器)가 놓여있었고 그 앞에 백의(白衣)의 노승이 불상처럼 꼿꼿이 앉아있었다.
그의 스승 명회(明悔)선사였다.
명회는 소림에 적을 두었으면서도 법명보다 다른 이름으로 더 유명한 기묘한 인물이었다.
오늘날 거리를 지나다니는 강호인들 아무나 붙잡고 소림의 대불전 안쪽 깊은 석굴에 기거하는 명회라는 법명의 고승을 아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십오 년 전에 내몽고의 마록고림(麻綠古林)에서 벌어진 희대의 혈사(血史)를 아느냐고 물으면 대번에 안색이 변할 것이다.
마록고림사밀혈사(麻綠古林沙密血史)!
마른 모래만이 휘날리는 척박한 땅에서만 자라는 마록목(麻綠木)은 나목(裸木)처럼 앙상하고 나무기둥도 보잘것없었지만, 그 기이한 생명력은 누구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마록목이 천하의 영약이라는 소문이 강호 암암리에 퍼지기 시작했다. 소문을 들은 강호인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으나 내몽고 바싹 마른 사막의 마록림까지 가는 일은 강호의 고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의 여정은 험난했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마록림의 출입을 통제하는 세력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세력은 어렵게 마록림까지 도착한 강호인들을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판별하여 들여보내고 거절하였다.
강하게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마록림을 통제하는 단체의 세가 워낙 막강했기에 저항의 외침은 미약하게 잦아 들었다.
마록목이 천하의 영약이라는 소문도 시일이 흐르며 잠잠해졌다. 강호인들이 뜬소문에 속아 넘어간 우스운 일로 치부하는 자도 나타났다.
그리고 강호인들의 뇌리에서 잊혔던 마록림에서 난데없이 혈사가 터졌다.
마록림에서 영약을 섭취하고 무공을 수련하던 이들이 모두 죽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강호인들은 대경실색하며 공포에 떨었다. 여기에 혈사의 생존자가 있다는 소식에 또 한 번 몸서리치며 마록림의 유일무이한 생존자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생존자는 아직 삼십대 초반의 젊은이였으나 중원에 귀환하는 그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옥(地獄)의 나찰(羅刹)을 보았다며 두려워하였다. 당시 그를 용모파기 한 혹자는 이렇게 적기도 했다.
‘눈빛은 피에 굶주린 악귀였으며 눈두덩은 무너져 내려 나락과 같았다. 헝클어진 머리칼은 음습하고 지저분했으며 입술은 당장이라도 날름거릴 것처럼 요사했다.’
강호인들이 그를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뒤처리를 위해 마록고림에 도착한 인원들은 수백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광경을 목도해야만 했다. 죽은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무서운 점은 죽은 이들의 사인이 모두 같았다는 점이었다. 죽은 이들은 인중에 묵으로 찍은 흑색의 점 같은 상처가 있었는데 그 상처가 사인이었다.
혈사에서 생존자를 수습한 이는 당시 강호에 전설적인 무명(武名)을 떨치고 있던 공공대사(空空大師)였다. 마록고림의 시체를 보고 기겁한 강호인들은 공공대사에게 흉수의 정체를 캐물었으나 대사는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공공대사가 거두어간 의문의 생존자가 혈사의 배후에 있음은 자명해 보였다. 생존자에 대한 강호인들의 증오는 대단하여 악심수(惡心獸)의 흉명(兇名)은 이때 퍼진 것이었다. 소림사의 거대한 봉우리로도 야수의 펄떡거리는 악마의 심장을 억제할 수 없을 거라는 게 강호인들의 중론이었다.
공공대사가 처음 생존자를 데리고 숭산(嵩山)에 돌아왔을 때, 소림사 내에도 수군대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오백 년 소림 사상 최고수로 꼽히는 공공대사의 앞에서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공공대사는 생존자에게 법명을 내리고 자신의 직전제자로 삼았다. 생존자는 묵묵히 대사의 말을 따랐다. 그가 바로 명회였다.
세월이 지나자 더 이상 악심수를 거론하는 이는 없었고 그 흉명도 희미해져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소림의 인물들도 명회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명회는 소림사 내에서 나름의 특이한 위치를 인정받았으며 외인이 찾지 않는 깊숙한 대불전의 관리를 맡았다.
이십오 년 전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노승이 즐비한 소림에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소문으로 남아있는 그의 젊은 시절은 흉폭했다. 흉성으로 가득했다.
악심수라는 별호에 걸맞게 그가 화가 났을 때 내지르는 악성(惡聲)은 모골이 송연하다고 했다. 그런 명회가 소림의 깊은 석굴에서 염화선을 수련하며 정심(正心)을 다지고 있다니 우스운 노릇이었다.
공공대사가 명회를 거둔 지 십 년이 지났을 무렵 조용히 지내고 있던 명회는 소림본단에 제자를 두고 싶다는 전언을 보내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단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가 비록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소림의 이름을 얻고 십 년간 정종(正宗)의 무공을 익혔다고는 해도 그의 진정한 진전(眞詮)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온 것인지는 그의 사부인 공공대사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의 진전을 이어받은 소림의 어린 제자가 그와 똑같이 폭주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었다.
허나 공공대사는 마록고림의 혈사 이후 그대로 은거해버렸기 때문에 대사에게 문제를 의논하기도 어려웠다.
이때 소림곤법을 펼치는 모습이 야차가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강맹하다 하여 대웅야차(大雄夜叉)로 불리는 소림의 방장 명본(明本)대사가 나섰다.
명본은 그가 펼치는 곤법처럼 화통한 성정이었다. 명회의 제자를 두는 문제를 놓고 장로들이 지지부진하자 명본은 명회를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은근히 명회를 꺼리는 마음이 있던 장로들로서는 한방 먹은 셈이었다.
대불전의 정문을 열고 들어간 지 채 일각도 되지 않아 명본은 들어갈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나왔다. 그리고 명회에게는 곧바로 소림의 어린 제자들이 무공을 수련하는 천불전을 둘러본 후 단 한 명의 제자를 지명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때 지명 당한 제자가 겁을 내거나 명회의 진전을 잇는 것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명회는 묵적을 지명했다.
묵적은 표정에 아무런 변화 없이 묵묵히 지명을 받아들였다.
그날부터 묵적은 왁자지껄한 천불전에서 떨어져 나와 명회의 밑에서 수련했다. 그렇게 십오 년이 지난 것이다.
명회는 방안에 들어온 묵적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천천히 차(茶)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묵적은 조용히 기다렸다.
선사와 함께 한지도 벌써 십오 년이 흘렀지만 묵적에게는 번갯불이 떨어지는 시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는 소림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마음가짐을 지금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명회가 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 시간쯤은 무서울 정도로 짧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묵적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염화선공의 수련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다.
언제 숨을 크게 들이마실 것인지, 혹은 아예 참을 것인지의 결정이 찰나에 오가는 염화선의 심법을 체화시키기란 매우 어려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묵적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깨어 있을 때와 숙면에 들었을 때, 혹은 자맥질을 할 때와 무공을 수련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그에게는 차이가 없었다.
마침 침묵하던 명회가 조용히 다기를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마록고림사밀혈사에 대해 아느냐?”
묵적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난 십오 년간 명회 선사가 무공에 관련되지 않은 말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선사가 관련된 혈사에 대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바는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안다고 해야 할지 묵적은 알 수 없었다.
“마록고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혈사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
“예, 뭇사람들에게 들어본 바는 있습니다.”
명회는 뒤이어 말했다.
“일이 생겼다. 네가 가봐라.”
묵적은 잠시 당혹해하며 몸서리쳤으나 이 시간은 찰나도 되지 않을 만큼 짧았다. 묵적은 곧 대답했다.
“예, 제가 가보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묵적은 전혀 몰랐다. 명회가 지나가듯 가볍게 언급한 그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를,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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