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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0 22:06
초딩때였는데 아무 생각없이 그냥 부모님 손잡고 어디 음식점 같은데 가서
보던 기억만...어릴때라 기억도 단편적으로 나고 막 이기고 집가러 밖에 나왔더니 사람들 차 문열고 소리지르던것도 기억나고요 크크
21/06/10 22:08
인생에서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중에 계속 한일월드컵중이어서 아주 힘들었답니다 밤마다 시끄러운 소리를 뚫고 셤공부를 했죠 시험이 끝나고 난 뒤 편한 마음으로 터키전인가를 친구와 광화문광장에서 보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21/06/10 22:11
16강 진출할 때 시장에서 수박을 막 돌리던 트럭장사아저씨도 봤었고...첫경기 때 치킨이 안와서 치킨집에 가보니 너무 많은 주문에 눈물을 글썽이던 젊은 치킨 주인 아줌마도 기억에 남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건 이탈리아전이었죠. 0:0에서 에이 허벘네 하면서 게임하고 있었는데 사람 함성만으로 지축이 울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도 작은 동네가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오히려 안 보고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네요.
21/06/10 22:13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그런 큰 이벤트는 다시 또 오긴 하겠지만 아시아에서 치뤄질때 일어나야 하는지라...확율상 쉽진 않을거같네요 아침이나 새벽시간이 아닌 일과 후 저녁시간이라 그런 광란의 분위기가 가능했던거 같아요
21/06/10 22:14
중딩때 중학교 운동장에서 실컷 응원하고 밤에 집 가는 길에 도로에 차량들 누가 지휘한 것도 아닌데 크락션으로 빠빵빵 빵빵!!하고 크크 낭만이 있었습니다
21/06/10 22:17
집에서만 봤었는데 골 넣으니까 온 동네에서 동시에 소리를 질러서 마치 한 데 같이 모여서 시청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어린 나이였지만 그 황홀함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아부지가 몇 분 전까지 설기현 욕을 하셨는데 막상 그 설기현이 골 넣으니까 너무 기뻐서 태세전환 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크크
21/06/10 22:18
반대로 그때 군대에 계셨던 분들이 많을 듯 한데...저는 수험생으로서 좀 애매한 상황이었지만 나름 잘 즐겼습니다. 중간고사도 미뤄지고, 세상에나 야자를 취소하고 조퇴시켜줄 정도였으니 나라 전체가 광기 그 자체였죠. 크크
16강전의 그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짜릿함은 그 후로는 경험할 수 없네요.
21/06/10 22:19
이제는 우리나라가 월드컵 우승한들 그정도 분위기는 안날 것 같고, 우주 전쟁이 일어났는데 인류가 피해 없이 이기면 그정도 되지 않을까..
21/06/10 22:31
이제는 사람들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그 때만큼 전국민 단위로 축구에 열광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당장 남자 축구라고 보이콧할 사람들도 떠오르는...
21/06/10 22:19
폴란드전은 집에서 미국전은 살던 도시 경기장에서 그 이후부터는 거리나 공원에서 응원했는데 그 때가 풋연애때와 맞물려서 가끔 주제가 나오면 생각나고 슬러시가 땡기곤 하네요
21/06/11 02:30
저도 문돌이라 헷갈리는데 ..
근데요. 어쨌든 동시에 함성이 난건 아니고 멀리서부터 슈우웅 지나간건 확실합니다. 저희집 당시 케이블이 구리선이었나 …
21/06/10 22:20
옛날이름으로 대구시민회관이라고 해야하나? 대구 두류공원쪽에 있던거 거기서 길거리 응원했는데 8강전 친구랑 라면 사먹고 거기 스크린 설치하고 재밌게 봤던 기억 나네요 초등학생이었는데 화면 역광이라서 잘 안보이기도 했지만 그때 박수만 치면 차들이 경적을 대한민국에 맞춰서 해줬던 기억도 나고 행복했습니다.
21/06/10 22:21
??? : 그때 우린 모두 미쳤었죠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4강을 가버렸으니 미칠만 했죠 크크크 학생일때라 제대로 즐기진 못했던게 아쉬울뿐
21/06/10 22:21
스페인전 즈음에 아파서 병원에 며칠 입원했는데요.
분명히 아침까지는 다들 흰옷이었는데 점심때부터 어디서들 들고오셨는지 빨간 옷들을 입더라고요 크크
21/06/10 22:27
군대 일병이었습니다........
거기다가 5분대기조였고요. 그나마 군대안에서 응원하고 그랬는데.. 축구는 보게 해줬는데, 중간에 위병소 근무일때 정말 짜증나거나 했습니다. 크크.. 16강전 보는데 연장전 막판 안정환 헤딩골로 다들 뒤집어 지고 기뻐했는데, 최고참 분대장이 자기는 이탈리아한테 내기 걸었는데 졌다고 열기가 가시기도 전에 TV끄고 다 쳐 자라고 윽박 질러서... 진짜 생각할수록 쓰레기 고참만 생각나네요. 에휴.. ㅠㅠ 그때는 길거리 응원 해보고 싶어서 다들 휴가 신청하고 난리였는데 짬에서 밀려서 결국 가지도 못했네요. 기쁘기도 하면서 우울하기도 한 2002 월드컵이었습니다. 흑흑..
21/06/11 07:53
에고...
저는 99군번이라 말년에 후임들한테 월드컵은 군대서 보겠네... 하고 놀렸던 기억이 있네요. 2천년 5월 이후 입대자들이었을테니 상병 이후였을 수도... 근데 그 분대장은 쓰레기네요. 건 건 건 거고, 우리나라 이겼으면 좋은 거지.... 내기가 컸나?
21/06/10 22:31
딱 스무살이었는데요
맥도날드 알바하면서(경기는 손님 없어서 모여서 봄) 포르투갈전이었나 이탈리아전이었나... 경기 끝나고 밀려오는 손님들에 영업종료 시간을 거의 2시간 넘겼던 기억이 나네요... 1시간 넘겼을때 점장님이 저보고 억지로 문 닫으라고해서 등빨로 어떻게 손님들 막고 닫으려는데 왠 아저씨의 "내가 아이스크림콘 다 쏜다" 한마디에 그냥 뚫려버렸던...
21/06/10 22:37
그땐 광기 그 자체였었고.
그때의 광기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을 옆집 할머니께서 해주셨었습니다. "광복 이후로 이런 거 처음 본다.."
21/06/10 22:38
광화문에서 미국전 보고
종로3가 대로에서 포르투칼전 보고 대학로에서 이탈리아전 보고 고대앞에서 스페인전 봤습니다. 그때 부둥켜안고 방방뛰던 처자가 지금의 마님이 되셨구요. 글로 표현이 불가능할정도의 집단 오르가즘이었죠 크크
21/06/10 22:48
다행히 컵스까진 보고 가는데
제가 죽은 다음에 롯데 우승을 보실테니 이득입니다.. 아마 부산에서 월드컵 이상의 광란의 밤이 아닐까..
21/06/10 22:54
나중에 사회과 부도였던가, 교과서중에 시청 앞 광장을 붉은 물결이 가득 메운 장면이 교과서 표지로 쓰였던게 생각나네요. 레전드라는 표현이 과다 사용되는 시대지만 2002 월드컵은 레전드라는 말로도 부족한 집단 경험이었죠
지금은 사회 자체가 그때만큼 집단적인 가치를 공유하지 않고, 그러한 경향성은 점진적으로 커질거라 봅니다. 한일월드컵 같은 경험은 우리 인생에서 더 이상 없을 것 같네요
21/06/10 22:55
제가 사람이 아주 차이가 많이 난다고 느낀사건이죠.
저는 폴란드전 시청에서 보고 그 다음부터는 집에서 봤습니다. 경기에 집중할 환경이 아니더군요. 4강가서 잘했네 정도의 감상이 끝이고 그때 게임에서 아이템 득템한게 더 좋았습니다. 월드컵 끝나고 몇일 안되서 워크래프트3 나왔는데 그게 더 기분 좋았죠.
21/06/10 22:58
저도 당시엔 축구에 별 관심없을 때라 가족이랑 거리 응원 갔을 때 빼곤 시큰둥하게 넘겨서 아쉬워요.
심지어 인척분 중 한분이 다른나라 경기 직관 표도 어렵게 구해주셨는데 재미없다고 중간에 나왔었던게 많이 후회됩니다... ㅜㅜ
21/06/10 23:03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그때 우린 반쯤 미쳤었죠.
2002 월드컵은 개인적으로는 뭔가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우리가 해냈다, 할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을 심어줬던 거 같아요. 여러가지 면에서 일본은 이겼?다는 것도 그 자신감의 큰 바탕이 되었던 것 같고요. 그 역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는게 촛불 혁명과 더불어 인생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21/06/10 23:05
2002년엔 왠만한 대로에선 길거리응원을 했고, 처음보는 사람들하고 껴안고 춤추고 끝나면 술먹고 날새고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02군번이라.. 이야기로만 들었습니다. 부들부들
21/06/10 23:06
글쓴분의 나이가 몇살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축구에 대한 관심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브라질에서 공부할때 학교 수업에서 살면서 인생을 바뀐 터닝포인트 이런거에 대해 발표하면서 2002년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와 그때 한국대표팀의 선전 + 거리응원 영상을 틀어줬었습니다. 당시 학교 친구들의 나이가 대략 95년생 ~ 97년생 사이로 분포되어있었는데, 발표후 쉬는시간에 그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한국나이로 6살 ~9살 정도였을텐데도 1.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박수를 기억하는 친구 2.16강에서 골든골 넣었던 테크닉 좋던 공격수를 기억하며 그선수 이름이 뭐더라? 라고 물었던 친구 3.당시 한국시간으로 오후 3시30분 경기여서 시차가 12시간 이었던 브라질에서 새벽시간대에 경기했던 8강 잉글랜드 vs 브라질 ( 호나우지뉴 폭풍드리블 + 도움, 시먼 키 넘기는 프리킥 나온 경기) 를 본다고 졸릴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아빠랑 함께 본 이야기를 했던 친구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어릴때인데 저렇게 디테일하게 다 기억을 한다고? 라고 생각해서 경악했던 기억이 납니다.
21/06/11 08:54
뭐 그 시절에 젊은/어린 시절 자기 추억이 있는 거랑 그 기억이 있는 거랑 좀 다르지 않을까요?
번화가에 수십만명이 모여서 함께 응원하고 모르는 사람과 얼싸안고 기뻐하고 밤새 소리지르고 다녀도 모두가 행복했으며 그 시절이 마침 자기 인생의 가장 젊고 활기찼던 날이라면요 90년생만 되도 번화가에 나가서 거리응원한 기억은 없을걸요
21/06/10 23:09
2002년 때 고2 였고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갔습니다. 여기에 제 동문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간이...공교롭게도(?) 컨페더레이션스컵과 비슷하게 겹쳤죠. 출발은 김포공항 - 돌아올 때는 인천공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게이트 출구에서 나서려는 순간.... [바로 뒤에서 히딩크 감독-박항서 코치가 나타나더니 그 뒤로 줄줄이 2열 맞춰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줄줄이 나오지 뭡니까.] 컨페드컵 끝나고 똑같이 인천공항으로 도착한 국가대표 선수들과 정말 우연히 내린 시간까지 맞은 것이었습니다. 같은 비행기는 아니었을 거에요. 그랬다면 이미 비행기 안에서 전 학생들이 다 알았겠죠. ....어쨌든 이 기막힌 우연은 제 1회용 카메라에 필름이 안 남아있어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던 것이 천추의 한입니다. ㅠㅠ 그 당시 저를 포함해 약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게이트 주변에 교복을 입고 나가는 도중에. 박수와 응원과 함께 게이트를 나서는 선수들을 배웅해 드렸습니다. 김태영선수는 다 아실 그 보호용 빨간가면을 착용한 채였고 황선홍-최진철-안정환-홍명보-박지성-김남일-이영표-등등등...그리고 유상철. 아마 가면을 안 쓰고 멕시코전의 그 코 부상 상태 그대로...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다들 모여서 떠나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게이트 옆 주차장에서 나이 지긋한 중년분이 A2(?!) 용지 하나 큼지막한 걸 들고 히딩크 감독님에게 싸인을 받는 모습까지 보고...그 이후로는 모두가 아시는대로 4강 신화에 같이 열광했죠 뭐. 옛~~날에 피지알 초창기 때 한 번 올렸던 에피소드지만...벌써 이거도 19년 전이네요. 세월 참 빠릅니다.
21/06/10 23:12
02학번이었고 시청 앞 광장에서 이탈리아전을 봤으며 경기 끝나고 광장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들이랑 하이파이브하면서 집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21/06/10 23:14
2002년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저도 비더레즈 빨간티 입고 광화문과 시청에서 거의 매경기 응원했고
트럭타고 태극기 휘두르고 돌아다녔죠.
21/06/10 23:22
그 때는 학교만 갔다하면 한달내내 형누나들이 축구하는데 축구봐야지 어디가냐고 맨날 공짜로 술 사주셨었죠.
집안은 망했는데 아들이란 놈은 뭣도 모르고 맨날 밤새도록 술 얻어먹고 새벽 첫 차 타고 집에 들어오던 시절....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어려운 시절을 그저 인내로 버텨내셨던 아버지 죄송하고 존경합니다. 그 때 술 사주셨던 형누나들 감사합니다(....)
21/06/10 23:46
2002년 이전의 한국은 월드컵 본선 들러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기억합니다. 98년도 네델란드 5:0 충격이 너무도 컸고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솔직히 기대도 안했습니다.
으례 한국 16강 해볼만하다..하는 기사를 진짜 몇명이 믿었을까요. 그런데 그걸 그만 해버리니 미쳐돌아갔죠 크크크크 정말 천상계라고 생각하던 팀들을 박살내고 올라갔으니..
21/06/11 00:01
윗 댓글도 있지만, 02년도에 대학 신입생들은 정말 최고의 해였죠.
특히 역대급 수능 난이도로 단군이래 최저학력 소리 듣던 02학년도 수능 이후 제 친구들은 대부분 재수를 택했지만, 전 월드컵을 이유로 그냥 점수맞춰 들어갔고 제가 승리자가 되었죠! 크크크크크 02 월드컵은 결과도 크지만, 앞선 98월드컵에서 충격의 패배와 조별예선 중 감독 경질 등 워낙 대폭망한 대회라 극적인 반전이 더 컸죠. 이태리전 끝나고 호프집에서 전 테이블 3000cc 하나씩 돌려도 모두들 계산하고 나가기 바빴습니다. 길거리는 정말 평생 못볼 축제 분위기 였죠. 2002년은 제 개인적으로 정말 최고의 해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21/06/11 00:11
점점 개인주의가 당연시 되고 개개인의 관심사가 파편화 되는 지금에 들어서는 더이상 일어나기 힘든 경험이겠죠.
인간이란 결국 사회적 동물이라 집단최면이라 해야 할 지, 커다란 집단에 소속되어 하나 되어 감정을 고양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니까요. 옛날 같았으면 종교적 열의나 민족주의, 어쩌면 전쟁도 그런 역할을 했을텐데 요새야 다 저런 건 구닥다리고 개인의 집단적으로 소속감을 느끼긴 커녕 당장 옆 사람한테도 공감을 못하는 판국이니. 이런 흐름이 나쁘단 건 아닙니다. 단체로 움직이는 게 잘못 번지면 광기가 돼서 사고를 치니까요. 근데 한편으론 그런 흐름 끝물에 태어나 제대로 겪지 못했다는 게 아쉽긴 합니다.
21/06/11 00:16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탓던 해가 2002년 이었고 월드컵 때에는 매번 시청에 가서 응원했었네요.
여러모로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요, 수많은 군중이 하나로 구호를 외치고 응원하면 에너지를 제대로 받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부흥회가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21/06/11 00:22
5대빵 히딩크 감독이라 기대감이 없었는데
마지막 평가전 영국, 프랑스전부터 뭔가 다른 느낌이더니.. 정말 환상의 6월이였죠 저는 스페인 승부차기로 이기고 4강 갔을때 울었네요 흐흐
21/06/11 00:22
유정현씨가 광화문 취재나왔다가 취재도중에 시민들이랑 강강수월래 돌고 난리 났었죠!
고3이었는데 나름 땡땡이치고 보기도 하고 호프집에서 보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크크크 진짜 말도 안되는 엄청난 추억이었습니다. 살아생전에 그런 기회가 또 있을까요...
21/06/11 00:23
부산에서 첫 경기 열리던 날....
지독하게 사랑했던 연인이 사이비종교에 빠졌습니다 지독한 슬픔에 기댄 저의 마음이 수년 뒤 이뤄지나 그 뒤로 기다림 끝에 인연은 그날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사라져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다들 첫 골에 환호 할때 경기장 산너머에서 너무도 슬픈 눈물을 흘렸던 기억만 납니다
21/06/11 00:27
해외에 있어서 tv로 봤습니다. 제 자취방에서 한국인 친구랑 이태리전 보고 소리지르다가 옆집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성질내서 길거리로 뛰쳐나갔는데 어두컴컴하고 조용했던 거리에서 시무룩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몇 한국인 선후배들이 이태리전 후 수업이고 뭐고 다 째고 귀국해서 스페인전 거리응원 했었는데 그때 같이 가지 않은게 아직까지도 후회스럽곤 합니다.
21/06/11 00:45
하나의 국가, 광기, 도가니...
정말 하나가 뭉쳐진 애국심.. 그 열광은.. 뭘로 비유해야 하나.. 전성기 때 나치뽕 맞았을 때의 독일 국민들? (비유하려니 이거 말고는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네요.) 거리에는 온통 붉은 악마들뿐이었고.. 저도 당연히 그 속에서 뽕에 취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열광은 앞으로 다시 나올 수가 없죠.
21/06/11 00:58
제가 다른 사건에서도 한번 봤는데요.
한국과 일본이 화합하는 이벤트가 있으면 기적같은 선물이 있습니다. 치고박고 싸우던 형제가 사이좋은 모습이 보이면 부모님이 선물을 주죠.
21/06/11 01:20
전 극성 야빠라 관심없었는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학회에서 16강 기원 지리산 등반mt, 경기 할때마다 친구들땜에 술집서 관람 하면서 강제 관람당했습니다. 심지어 여친이랑 모텔에 있을때도 경기는 틀어놓고 해야할일 했던.....
21/06/11 01:43
8강 스페인전 승부차기를 너무 떨려서 제대로 못 본 게 천추의 한입니다. 승부차기 때 등 돌리고 서 있는 선수도 아니고 두 눈 부릅뜨고 봤어야 했는데...
21/06/11 01:56
그깟 공놀이.
전 데브레첸님의 젊음이 더 부럽습니다..크크 스페인전은 교육문화회관이라는 곳의 헬스클럽에서 저랑 친구 둘만 탈의실 같은 곳에서 보고 있는데 여성 탈의실에서 직원 통해서 먹을거 많이 싸왔다고 같이 보자고 가서 15분 정도 보다가 다른 회원이 불편해 해서 다시 남자 탈의실로 온 말도 안되는 기억이 생각나네요 크크크크
21/06/11 03:47
중2였는데 학생대표로 교감선생님이랑 면담해서 기말고사를 미뤘습니다 크크크 조선일보앞에서 박지성 포르투날 전 골 넣는거 본 기억이 생생하네요. 다들 미쳤습니다.
21/06/11 08:51
지금도 폴란드전부터 터키전까지
경기내용 줄줄 읊을 수 있을정도...크크크 초5때라 기억은 확실히 나는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크크 제가 대학교때 처음으로 후배들하고 세대차이 느꼈던게 15인가 16학번하고 술먹는데 '월드컵 기억 안난다, 애국가, 교과서, 나중 TV로만 봤다' 하는데 진짜 놀랬던 기억이...크크
21/06/11 08:59
그 당시 예선전 3등급 좌석이 66,000원 이었을 때 대학 동기가 우리나라 경기 월드컵 직관을 언제 하겠냐고 해서 200,000주고 표 구해서 대구에서 미국전 직관했습니다. 페이스 페인팅하고 경기장 앞에서 미국 응원하는 미국 여자분들과 서로 이길거라고 웃으면서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었었던 기억이나네요. 좌석이 후반전 기준 미국 쪽 골대 뒤였는데 안정환 어깨(?)슛 동점골 들어가고 옆에 있던 첨 보는 여자분하고 얼싸안고 방방 뛰던게 기억납니다. 16강전은 학교에서 봤는데 설기현 동점골 넣고 안정환 골든골 넣었을 때 학교 기물 다 부숴지는줄 알았습니다. 8강전 4강전은 술집에서 봤는데 참 그 시절은 다시 안올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16강전이 하이라이트 였다고 생각합니다.
21/06/11 09:06
지금이랑 다르게 국민들이 칼라로 이어져있던 때라 IMF로 인한 전국민적인 패배감을 날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지금이야 갭이 많이 줄어서 일본 쯤은 하는데 그 때만 해도 일본과 갭이 크던 시절이라... 그런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프라를 갖추고 대회를 잘 끝냈고 황금세대라던 일본은 대진운 잘 받고 8강 한국은 조별리그부터 죽음의 대진을 뚫고 4강으로 끝냈으니 안 취할 수가 없었죠
21/06/11 09:10
제 기억으로 02년도가 구기 종목 스포츠 최고였죠. 월드컵 -> 아시안게임 농구 -> 삼성 우승(승짱 뜨리런~ 마해영!!) 크크크크
21/06/11 09:25
여의도에서 직장 다니던 때였는데 한국전 있는 날이면 친구하고 한강공원 가서 응원하고 끝나고 호프집가서 한잔하고...
행볷했던 한달이었습니다
21/06/11 09:39
그때 대학생이라 수원에서 월드컵 자원봉사를 했지요.
나름 경쟁도 높아서 면접때 긴장도 하고^ 비록 한국경기는 안했지만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관중과 선수의 열기를 바로 옆에서 느낄수 있어서 정말 좋은 기억입니다
21/06/11 10:32
그냥 나라 전체가 미쳤다는 표현이 적절한거 같아요.
제 아는 전혀 안그럴거 같던 여자 지인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하다란 말을 해서 정말 놀랬던 기억이 납니다. 단체로 모 맞은듯한 기분......
21/06/11 10:59
고3이었는데
폴란드전 친구들과 방 잡아서 빔프로젝트 켜놓고 단체관람 미국전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포르투갈전 동네 공원에서 이탈리아전 서울시청앞에서 스페인전은 광화문에서 독일, 터키전은 집에서 봤네요 공부.......?
21/06/11 11:20
이탈리아와 16강전 현장에서 직관했습니다.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기현, 안정환 선수의 골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 때 그 분위기 영원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21/06/11 11:20
하교 하고 오니 가족들은 매형네 가게가서 돈가스 먹으면서 보고 있었고 저는 집에서 라면 먹으면서 봤던 폴란드전..
경기가 3시라서 축구보라고 학교를 일찍 끝내줘서 친구집에 다 같이 모여 봤던 미국전 그 때 황선홍 선수의 부상투혼을 보며 울던 친구.. 송종국 선수에게 하루종일 시달리던 피구와 박지성 선수의 환상적인 골이 나왔던 포르투갈전 설기현 선수의 극적인 동점골 안정환 선수의 이제는 없어진 골든골이 나왔던 이탈리아전 승부차기로 경기를 끝내고 홍명보 선수의 환한 미소를 봤던 스페인전 전설의 4강 시골이라 면사무소에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대형 프로젝트 걸고 어디서 다 구해왔는지 모를 엄청난 양의 고기를 먹으며 응원했지만 칸친놈의 선방떄문에 아쉽게 진 독일전 홍명보 선수의 실수가 가장 크게 기억나는 터키전 하나 하나 생생히 다 기억이 나네요 진짜 소중한 추억입니다
21/06/11 11:36
한참 댓글들이 지나간 뒤지만...
마침 故 유상철 감독님 이야기도 있고 해서 한국:폴란드 전이 있었던 부산 경기 있었지요? 그 때 제가 경기장 안에 있었습니다. 티비에도 제 모습이 나왔어요. 근데 뒤통수만 나왔어요. 경기도 못 봤습니다. 크크크크크크 당시 의경으로 군복무 중이라 경기내 시설경비중이었거든요. 관중석 쪽 보고 도열해 있던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저도 누가 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파도타기 하는 관중 비춰줄 때, 관중석 쪽을 바라보고 도열해 있던 의경 중 한명이 저입니다 크크크크) 등 뒤에서 한국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가 펼쳐지는데 경기장 안에 있는데 경기를 못 봤어요. 아예 고참들은 대놓고 봤던 것 같은데, 당시 일경(일병) 4호봉 짬찌끄레기였던 저는 경기 볼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래도 좋은 추억이었어요. 우리 중대가 브라질 대표팀 베이스캠프 경비 서는 바람에 선수들 연습 및 비공개 훈련 하는 것도 보고...흐흐 (근데 당시 취미이자 특기가 요리라서 당직소대장 술상 안주 매일 밤마다 만들어주다가 잠결에 계속 칼질하다가 손가락 절단될뻔해서 + 간부들이 자기들 술상 차리다 다쳤다는거 외부로 새어나가면 안되니까 그렇게 다쳤는데 소독약과 반창고만 줘서 아직까지도 손에 상처 남아있고 왼손 검지가 약간 장애가 남은 건 안자랑입니다 크크 그래도 그덕분에 거의 한달 가까이 아침점호 면제받기도 했네요)
21/06/11 11:36
02학번인데 레알 역대급이였습니다. 거의 뭐 다신오지 않을 인생의 황금기 같았던 느낌...크크크
너무 텐션 업된 나머지 4강때 몸져 누워서 독일전 봤던 기억이 나네요
21/06/11 11:55
아니 스타사이트인데
8강 스페인전 이윤열vs홍진호 kpga결승전 직관후 바로 이어서 보신분이 한분도 없으시네? 단체응원했었는데 ㅜㅜ 양재 한전 아츠풀센터 물론 콩은 그때도 콩했지만
21/06/11 12:13
02학번입니다
포르투갈 전 끝나고 대구동성로 한복판에서 멕시코사람과 번개로 길거리축구했습니다. 지금하면 싸이코겠지만 당시에는 모든게 허용됐습니다
21/06/11 12:22
저보다 연배 높으신 분들은 저를 보면 아직 한창때라고 부러워하시지만
저는 2002 월드컵 때 성인이었던 분들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나도 그 때 대학생이었으면 ㅠㅠㅠㅠㅠ 그래도 강렬한 기억을 남길 수 있었던 나이여서 정말 다행이었죠. 한국 경기 뿐 아니라 다른 나라 경기도 꽤 챙겨보고... 진짜 재밌었습니다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몇만명 모여서 스크린으로 이탈리아전 봤던 기억은 인생 역대급 임팩트
21/06/11 12:30
그래서 가끔 올라오는 vs 글에 한국 월드컵 우승하고 100만원 중 하나 골라라고 할 때 저는 1000만까지는 월드컵 우승을 택할 것 같습니다 크크...
21/06/11 12:45
vs이탈리아전때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친구들하고응원하러갔는데 그때 소름은 죽을때까지 못잊을듯 언제또 경기장꽉채워서 응원해볼까요 흐 코로나 흑
21/06/11 13:19
고3 이었는데, 저희 동네에 유명 입시학원 고3반이 일년에 설날 당일 딱 하루만 쉬었거든요.(추석은 수능 얼마 안남아서 안쉼)
그런데 8강전, 4강전 무려 이틀이나 휴강했습니다. 물론 전 개막전부터 다 챙겨봄..ㅠㅠ
21/06/11 18:50
엄청난 열기였지만 당시 저는 의경 복무중이라 길거리응원 나갈때마다 철야근무를 섰던 기억이 더 강하군요.. 솔직히 대진보고 16강에서 떨어질 줄 알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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