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는 모른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근대 이전의 전통 지식이었던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단언했다. 위대한 신들, 혹은 전능한 유일신, 혹은 과거의 현자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가 있었고, 그것을 문자와 구전 전통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고대의 문헌과 전통을 파고들어 적절하게 이해함으로써 지식을 얻었다. 성경이나 코란, 베다에 우주의 핵심 비밀이 빠져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피와 살을 가진 피조물들이 앞으로 발견할지도 모르는 비밀이 말이다...고대의 전통 지식은 오로지 두 종류의 무지만을 인정했다. 첫째, 한 개인이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둘째, 하나의 전통 전체가 뭔가 중요치 않은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기원 후 약 1500년을 기준으로 인류의 지식은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인류는 과학연구에 투자한다면 스스로의 능력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라 점차 믿기 시작합니다. 성공의 증거가 하나하나 쌓일수록 그 믿음은 더욱 커져갑니다. 현대의 컴퓨터 한 대면 중세시대의 모든 도서관에 보유하고 있던 장서들을 전부 저장하고도 넉넉한 공간이 남습니다. 지표면만을 탐구하던 인류가 기어코 대기권 밖을 벗어나 달에 착륙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전 시대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차원이 다른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작가 유발 하라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 일컫습니다. 과학혁명은 단순히 지식의 증가를 뛰어넘어 앞으로 인류의 정신에 더 큰 영향을 미칠 패러다임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작가는 과학혁명을 '무지의 혁명'으로 정의합니다.
과학혁명 이전엔 이미 전지전능한 신들에 의해 모든 것이 밝혀진 상태였습니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기독교 사제나 지역의 유명한 학자를 찾아가서 물어보면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신을 통했음에도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지식'이었습니다. 신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인류의 번영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은 것 뿐이었습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현대 과학은 기존의 어떤 지식보다 더욱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 있더라도, 그에 반대되는 명확한 증거와 모두의 동의가 있다면 쉽게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새롭게 대체된 이론도 언젠가는 폐기될 수 있다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주장에서 흥미로운 점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짓는 존재가 아닌, 역사적인 천재들의 활약 덕분에 그 한계를 돌파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과학혁명의 정신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도 자신들이 탐구할 지식이 넘쳐난다는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이는 비슷하게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자신들이 정복할 땅이 넘쳐난다는 정복자들의 상상과 결합하여 제국주의를 부추기게 되지요.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만 알게 된다! 학사, 석사, 박사, 교수의 차이점
4. 커지는 파이
당신을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나는 부자가 될 수 있다. 당신을 굶어죽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나는 살이 찔 수 있다. 지구상의 파이 전체가 더 커질 수 있다. 지난 5백 년간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그 덕분에 정부, 기업, 개인은 현재 수입을 크게 넘어서는 큰돈을 장기 저리로 쉽게 빌린다. 지구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는 믿음은 결국 혁명이 되었다...스미스는 경제를 '윈-윈 상황'으로 생각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나의 이익이 곧 너의 이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적 부분은 새로운 윤리의 등장이었는데, 이 윤리에 따르면 이윤은 생산에 재투자되어야 한다. 재투자는 더 많은 수익을 가져오고, 이것은 다시 생산을 위해 투자되어서 더 많은 이윤을 낳으며, 이 과정은 무한정 되풀이 된다...새로운 자본주의 교리에서 가장 신성한 제1계율은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비생산적인 피라미드에 자원을 쏟아붓는 파라오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다...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수입의 일부를 주식시장에 투자한 공장 노동자는 자본주의자다...평범한 이웃간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벌어지는 대화가 저축을 어디에 투자하면 좋은가, 주식인가 채권인가 부동산인가 하는 긴 논쟁으로 조만간 귀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2012년, 대학교 3학년 시절에 저는 교내에서 '시사 스터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공대 다니면서 교과서 문제만 푸느랴 시사, 경제에 대한 지식도, 상식도 부족했기 때문에 그 갈증을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스터디 그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같이 공부하던 후배의 아버님께서 주식 투자를 많이 하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금이야 대학생들 사이에서 주식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큰 화제거리도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스터디원들 사이에선 같이 공부했던 경영대 형을 제외하고는 '무언가 위험한 일'을 하시는 분으로 여겨졌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투자자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우리나라의 주식 투자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금융인 '존 리'는 그 동안 우리나라를 '금융 문맹국'으로 정의해 왔습니다. 저의 학생시절만 하더라도 주식 투자라고 하면 큰 손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귀결되는 이야기들만 주구장창 들어왔습니다.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투자를 하려면 그나마 안전한 채권이나 부동산이면 몰라도 주식은 손도 대지 말아야 할 것처럼 인식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주변에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보는 사람들만 보는 방송처럼 여겨졌던 주식관련 유튜브 채널들이 수백만 구독자를 보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장기간 2000대 언저리에 머물던 코스피가 근래 3000을 돌파한 것도, 결국 근래 많은 투자자들의 유입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떠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도태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어르신들의 '엉뚱한 곳에 한눈 팔지 말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은 후에 집을 사라'라는 말씀을 어기지 않고 착실하게 실행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있다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집값 때문에 평생 집을 못살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위 대목을 읽다보니 우리나라가 그 동안 '금융 문맹국'이 맞았구나, 자본주의가 최근에 들어서야 제대로 뿌리내리기 시작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부동산 세력', '김치 프리미엄' 등으로 대표되는 투기성 문화를 보면 아직 자본주의가 완벽하게 성숙되지 않은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최근 본토 미국 주식 시장의 '게임스탑 사건' 등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도 드네요.
2021년 6월 현재 142만명의 구독자를 보유 중인 '삼프로TV'
5. 쇼핑의 시대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 상어가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질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드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누군가 제품을 사주어야 한다...신제품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항상 구매하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종류의 윤리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소비지상주의다...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로 하여금 제 자신에게 잔치를 베풀어 실컷 먹게 하고,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 스스로 죽이게끔 한다...소비지상주의는 대중심리학("Just do it!")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에게 탐닉은 당신에게 좋은 것이며 검약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려 무진장 애썼다...미국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소비지상주의 윤리와 사업가의 자본주의 윤리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답은 간단하다. 과거에도 그랫듯이 오늘날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는 노동의 분업이 존재한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값비싼 사치품에 돈을 흥청망청 썼지만, 농부들은 한 푼 한 푼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가 아이폰 금 케이스를 제작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휴대폰 케이스의 가격은 한화 약 2,300만원입니다. 이것은 메시의 2시간 시급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제가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가장 저렴한 휴대폰 케이스를 산 것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높은 확률로 메시는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 확실한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 이자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저의 시급은 메시와 다르게 회사 문 밖을 나오는 순간 계산되지 않습니다. 결국 메시의 2,300만원짜리 금 케이스는 사치가 아닙니다. 이성적으로는 메시가 금 케이스를 구매할 때보다, 제가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싸구려 케이스를 구매할 때 더 고민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개인 재산이 14조원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만약 이 사람이 중세 귀족이었다면, 이 돈으로 거대한 성을 쌓고 호의호식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 자본주의 시대의 부자답게 검소하게 용산에 수백억대의 집에 머물며 가끔 중고 팰리세이드를 운전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자산은 매우 안정적인 삼성 관련 주식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부친 故 이건희 회장의 취미는 슈퍼카 수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만약 중세 귀족이었다면 아마 비행기 혹은 제트기 모으기가 취미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작가는 과다 생산의 우려가 있는 자본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지상주의의 확대를 이야기 합니다. 소비가 권장되는 주요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들보다 일반인들입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소비품들만으로 충분한 생활이 가능함에도, 신용과 할부를 이용해서 더 좋은 제품들을 추구하도록 부추깁니다. 늘어나는 신용과 할부는 더 좋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그러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더 팍팍한 노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다소 섬뜩하면서도 현타가 왔던 대목이었습니다. 내가 SPA 브랜드의 옷을 사는 것보다, 몇 년전 화제가 된 임세령(대상그룹 부회장)의 에르메스가 더 검소한 소비라니. 그렇다고 일반인들이 무작정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자산 투자에만 집중하는 것이 자본가들의 위력에 대항하는 일이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겠지요. 제가 소비하는 돈에는 저와 같은 입장의 노동자들의 임금이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요. 소비가 줄어 회사 경영이 악화 된다면,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오너나 경영자가 아니라 그 회사의 노동자들이니까요. 게다가 저같은 일반인들의 소비가 줄어든다면, 기업에선 수요가 적은 것으로 판단하여 기술 발전과 혁신의 속도는 더욱 더뎌질 것이 분명합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일반인들이 더 많은 소비를 해서 더 팍팍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점, 이러한 아이러니는 자본주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습니다.
메시의 검소한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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