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지알에 처음 접한건 중학생 때였는데, 뒤늦게 스1에 관심갖다가 나무위키를 통해 임요환 선수에 대한 헌정글 '황제를 위하여'를 읽고나서였다. 지금은 하도 많이 읽어서 그 글을 다시 읽어도 그때의 그 느낌을 완전히 되살리지 못하지만, 어린 내게는 한 사람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얼마나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처음 느끼게 해준 글이 아닌가 싶다.
우리 중학교는 중학교치고 빡세기로 유명한 학교였는데, 학교를 졸업할때 고생한 나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에 대한 헌정글을 페북에 써올려 많은 호응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황제를 위하여'에 단어만 바꾼 셈이지만... (하도 많이 읽어서 문장구성은 물론 각 문장에 사용한 조사까지도 다 외웠다)
중학생은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한테는 롤이나 스타였는데 거기에 글쓰기가 추가된 셈이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3가지 모두 피지알과 함께했다. 어느날부터인가, 궁금한게 생기면 네이버보다 피지알에 먼저 검색해보았다. 피지알 질게가 네이버 지식인보다 우선했다. 지인과 가족한테 피지알을 소개하고, 유용한 사이트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친구가 뭔가 물어보면 피지알에서 검색해서 복붙으로 답변해주는 경우도 많아졌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교때와 다르게 좀 널널한 고등학교에 가면서, 롤과 스타 말고 공부가 잘하는 것에 추가되었다. 내 절대적인 실력에는 변함이 없었는데,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인들의 달라진 태도에 매우 당혹감을 느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을 위한 특권, 그들만 가지고 시작하는 기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사회에 나가서야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과연 학교에서 미리 될놈 안될놈을 갈라놓고 선택과 집중을 해도 되는걸까? 내 삶의 중요한 분기점중 하나였다.
중학생의 성장과, 고등학생의 성찰은 모두 피지알과 함께였다. 갈등되고 답답한 마음이 들때면, 나는 이런 내 생각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피지알에 물었다. 감사하게도 다양한 답변을 받았다. 다양한 관점을 들을 수 있어서 내 생각을 좀 더 넓게 할 수 있었다. 마음에 와닿았던 답변들은 저장해두고 자주 보기도 했다.
당시에 내가 했던 고민의 주는 "사립 고등학교는 대입실적으로 먹고사는 조직인데, 조직원의 능력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허용될 수도 있는거 아닌가?" 였다. 직관적으로 느끼기에는 학생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비어있는 논리가 많다는 느낌이었다.
피지알은 내 논리의 칼을 날카롭게 해주었다. 이 칼을 직접 휘두를 일은 없었지만, 갖고있다는 사실만으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때, 내 행보에는 정말 거침이 없었다. 나는 본래 겁이 많은 사람인데,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기도 하다. 교무실에 나를 훈계하려고 부른 선생님과 2시간동안 담판을 짓기도 하고, 교장선생님의 연설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특정 학교 회계 내역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우리반 학생들 전원의 사인을 받은 뒤, 어떤 내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반은 특정 학교 정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했다.
칼을 품에 안고, 나는 학생회장이 되었다. 학생회장이 된 것은 무언가 변화를 시키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이후로는 너무 구체적인 내용이 많았고, 내가 학교 내에서 주목받는 위치에 있었기에, 함부로 피지알에 글을 쓰기가 조심스러웠다. 쪽지로 가끔씩 연락을 주는 감사한 분들께만 조심스럽게 해결할 수 없는 갈등에 대해서 물었다. 해결할 수 없는 갈등에 답이 있을리가 없었지만, 비슷한 경험을 공유해주셨던 몇몇 회원분들 덕분에 답을 찾아갈 용기를 얻었다.
피지알은 정말 감사한 공간이다. 이곳을 볼때면, 고민이 많았던 어린시절과 치열한 현재를 다시한번 떠올리게 된다. 구체적인 추억이야 다르겠지만, 연차가 된 사이트인만큼 아마 여기계신 많은 분들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내게 마음에 와닿은 댓글을 써준 분들의 닉네임을 다른 글에서 만나기도 한다.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태도를 견지하신 분들도 있지만, 가끔 세상의 풍파에 지친 분들도 뵌다. 현실에 발디딘 채로 이상을 향해 걷던 그때의 문장을 읽으며, 다시 한번 모두가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