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TCM이란?
LTCM은 미국의 헤지펀드로, 1994년 설립되어 1997년까지 경이로운 실적을 올렸으나 1998년 변동성 장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파산직전까지 몰렸고, 타 은행의 베일아웃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근근히 수명을 이어가다 2000년 청산한 펀드입니다.
LTCM이란 이름은 재무관리, 혹은 여타 경상계열 강의를 수강했던 사람이라면 메탈게젤샤프트, 베어링스 등과 함께 한번 쯤은 들어보았을 이름일 겁니다. 보통 “리스크 관리의 실패 사례”로 언급이 되고, 러시아 채권에 크게 베팅했다가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에 자본을 날려먹고 미 연준이 구제해주었다 정도로 설명이 되는데, 실제 LTCM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면 러시아 채권은 얼마 들고 있지도 않았고 연준이 직접 돈을 먹여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LTCM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금융공학과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월가에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던 헤지펀드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LTCM을 설립한 메리웨더는 놀랍게도 Ph. D. 학위를 가진 책벌레들을 모아 계량적 트레이딩 전략을 활용할 생각을 했습니다. 금융이 원래 다 그런거 아니냐고요? “20세기 금융”하면 복잡한 통계학, 물리학적 모형과 컴퓨터 공학, 초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차트를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금융의 99%는 인맥과 골프고, 박사 학위가 딱히 이재에 도움이 되는 인맥을 보장해주지는 않으며, 지금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LTCM은 달랐죠.
LTCM의 트레이딩 전략은 기본적으로 수렴차익거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LTCM의 주력 거래대상은 온더런-오프더런 차익거래였습니다.
※미 국채는 온더런 국채와 오프더런 국채로 나뉘는데, 온더런은 갓 발행한 따끈따끈한 국채를 의미하고, 오프더런 국채는 온더런 국채보다 좀 낡아서 식은 국채를 뜻하죠. 그런데 사실 채권이란게 언제 발행했던 간에 같은 만기에 동일한 원리금을 상환한다면 두 국채 사이에는 가격차이가 없어야합니다. 하지만 온더런 국채와 오프더런 국채의 사이에는 작은 스프레드가 항상 존재했고(지금도 있습니다), 그 스프레드는 국채가 만기에 다다를수록 좁혀져 상환할 때에는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온더런 국채를 오프더런 국채보다 좋아하는 이유는 유동성 때문(담보로 제공하기가 수월하다는 뜻인데, 이 스프레드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만 저는 오래된 오프더런 국채는 만기보유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시장의 거래가 적어진다는 설명이 가장 직관적인 것 같습니다)으로, 이 온더런-오프더런 사이의 스프레드를 유동성의 척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1994년, LTCM은 이 온더런(1993년 8월 발행)-오프더런(1993년 2월 발행) 스프레드가 12bp (0.12%)로 벌어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오프더런 국채보다 온더런 국채를 12bp만큼 더 비싸게 주고 산다는 뜻인데, 사실 미 정부가 1993년 8월 발행한 국채를 상환하되 1993년 2월 발행한 국채를 상환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었으니 이 두 스프레드는 몇 달이 지나 둘다 오프더런이 되면 사라질 예정이었습니다. LTCM은 이 기회를 노리기로 했죠. LTCM은 비싼 온더런 국채를 매도하고, 싼 오프더런 국채를 매수했습니다.
잠시만요. 그런데 조금 전 12bp의 스프레드가 있다고 했는데, 이 스프레드가 몇 달 사이 4bp까지 67%가 줄어들었다고 치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요? 이 전략에 $100을 투자하면 약 $1를 벌어들일 수 있을 겁니다. 고작 1%예요. 최고의 두뇌를 모았다고 표방하는 LTCM에서 몇달 간 1%의 수익으로 만족할 리가 없었고, LTCM은 $10억, 즉 1조원의 온더런을 매도하고, $10억 어치, 즉 1조원의 오프더런을 매수했습니다. LTCM의 초기 자본이 약 1조원 언저리였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첫 트레이딩 한 건으로 자본을 모두 베팅한 셈이죠. 그런데 LTCM은 자본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보통 레버리지 효과를 막기 위해 공매도 등을 할 때에는 담보를 맡기게 되는데, LTCM은 설립부터 이 담보로 제공해야하는 비율(헤어컷)을 극도로 낮춰놓았기 때문에 자기자본은 한푼도 쓰지 않고 도합 2조원의 포지션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프레드는 줄어들었고, LTCM은 순식간에 15억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아주 간단한 차익거래의 예시를 한 번 들어볼까요?
2010년 ~ 2012년까지의 삼성전자-삼성전자우 간의 스프레드를 한번 봅시다.
[그림 1] 2010 ~ 2012 스프레드
연말에 스프레드가 많이 벌어졌네요. 이 스프레드가 다시 좁혀져서, 0 언저리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다면 삼성전자를 공매도하고, 삼성전자우를 매수하는 포지션을 취할 수 있습니다. 포지션 설정 뒤 실제로 스프레드의 변동을 봅시다.
[그림 2] 2010 ~ 2013 스프레드
오우, 연중에 스프레드가 실제로 0까지 내려왔네요! 위 포지션을 취한 당신은 돈을 레버리지에 따라 꽤 벌었을 겁니다. 돈 벌기 참 쉽죠.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다시 보니 연말에 스프레드가 -0.15까지 내려갔습니다. 이거 아까와 반대의 포지션을 취하면 다시 0.0으로 돌아가서 다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요? 반대의 포지션을 한번 잡아 봅시다.
[그림 3] 2010 ~ 2014 스프레드
2014년, 스프레드가 -0.15에서 -0.2까지 하강한 다음 유지되고 있습니다. 만약 돈을 크게 빌려 투자했다면, 아마 추가적인 마진콜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했을 겁니다. 어차피 자기자본으로 투자했더라도 스프레드는 -0.3에서 유지되다가, 2020년에는 -0.4까지 벌어졌으니 돈을 벌지는 못했을 거에요.
물론 채권의 경우는 주식보다는 광기가 훨씬 덜하고 서로 간의 관계가 어느정도 정해져있으니, 스프레드가 크게 벌어졌다면 만기까지 버틸 수 있다면 스프레드가 언젠가는 줄어들긴 할겁니다.
LTCM은 위 예시와 같은 "주식 페어 트레이딩"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규모도 크지 않았으니 기본적으로는 채권 트레이딩 회사였죠.
어쨌건 그 뒤로도 LTCM은 계속 승승장구했습니다. LTCM은 두 자산 간의 스프레드가 벌어질 때를 노린 차익거래를 성공했고, 불충분한 수익을 레버리지를 통해 증폭시켰습니다. LTCM은 설립되고 4년 간 연 20% ~ 40%의 수익률을 벌어들였으며 도무지 잃을 줄을 몰랐습니다. LTCM의 모형에 따르면 LTCM은 12%의 트레이딩 기간 동안 5%의 손실을 볼 예정, 즉 100개월을 영업하면 그 중 12개월은 5%의 손실을 봤어야 했으나 LTCM은 벌고, 벌고, 또 벌기만 할 뿐 잃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요인은 존재했는데, 일단 레버리지 비율이 너무 높아(2500% ~ 3000%) 수렴이 발생하기 이전에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다분했고, 또한 LTCM이 실행하는 차익거래 중 ‘진정한’ 차익거래는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의 온더런-오프더런 예시의 경우에는 기초자산이 동일하므로 수렴하는 것이 당연(30년 동안 들고 있으면 100% 확률로 수렴합니다)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회사채-국채 등)에는 높은 확률로 수렴하겠지만 100%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LTCM은 최초 자신들의 전문분야인 채권 트레이딩을 집중적으로 실행했습니다만, LTCM의 경이로운 실적을 본 타 투자은행이 트레이딩 부서를 키우자 차익거래의 기회가 점차 사라졌고, 떨어진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LTCM이 주식과 단방향 거래 등 자신들의 전문분야가 아닌 곳에 점차 뛰어들었다는 것 또한 위험요인이었습니다.
1998년, 러시아의 채권수익률이 100%를 넘어갔습니다. LTCM은 당연히 IMF 등 구제금융에서 아시아를 구제해주었듯 러시아 또한 구제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러시아 채권을 매수했습니다. 수억 달러 정도 규모였고, LTCM이 자기자본만 사십억 달러가 넘어가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 큰 포지션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갑자기 세계가 Flight-to-Quality (안전자산선호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당연히 IMF가 구제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러시아가 박살나면서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자산이 과연 정말로 안전한 것인가? 묻기 시작했고 모든 자금이 가장 안전한 온더런 미 국채로 몰려들었습니다. 딱히 금융위기가 온 것도 아니었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미 국채를 제외한 모든 자산의 가치가 바닥을 쳤고 스프레드는 어처구니 없이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아무런 금융 위기가 없었음에도요! 그리고 미 국채를 제외한 나머지 자산의 거래가 멈췄습니다. LTCM이 자기자본으로 투자했더라면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다시 수익이 났겠지만, LTCM은 레버리지가 과도했고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LTCM의 거래규모가 너무 거대했기에 자산을 청산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1998년 8월, LTCM은 여전히 $23억의 자본과 $10억의 유동성 재원이 있었고 만약 익스포져를 줄이거나, 추가적인 자본 조달이 가능했다면 파산을 면할 수 있었지만 LTCM의 거래규모는 너무 거대($1.2조 달러 규모)했고, Flight to Quality로 인해 얼어붙은 시장에서는 그 누구도 LTCM의 주문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을 따라 모형을 설계한 LTCM에게는 효율적이지 못한 시장은 너무나도 가혹했죠.
월가 밖의 사람들은 금융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미 연준에서는 LTCM이 이대로 파산할 경우 자본시장에 대한 파급력이 과도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LTCM과, LTCM에 주주은행들, LTCM의 청산은행들, LTCM의 채권은행을 불러모아 그들 간의 합의를 유도했고, 결국 LTCM은 추가로 자금을 차입하여 생존하였으나 다시 예전의 부를 불러오지는 못했고 2000년 펀드를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2. LTCM의 리스크 관리 전략
LTCM은 “무차입 S&P 500 지수와 동일한 위험(변동성)으로 그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투자자들에게 약속했습니다. LTCM이 1998년 초 투자자들에게 전달한 자료에 따르면, LTCM 펀드의 일간변동성은 약 $45백만으로 예상된다고 하죠.
1978년 1월 1일부터 1997년 12월 31일까지 S&P 500 지수의 일간변동성은 0.94%, 이를 1998년 LTCM의 자본금인 $47억원에 곱하면 약 $44백만이 나옵니다. 실제로 펀드의 일간변동성이 $45백만이라면 정말로 무차입 S&P 500 지수 투자와 유사한 수준의 리스크를 보유하고 있었겠네요.
그러나 이 $45백만의 일간변동성은 몇 가지 무시무시한 가정이 있는데, 1) 변동성이 변화하지 않고 2) 수익-손실 분포가 대칭적이며 3) 정규분포를 가정했다는 점입니다. 1)과 3)은 지난 CDO 관련 글을 읽어보셨거나, 재무관리를 조금이라도 배우신 분이라면 당연히 아실 내용(금융시계열자료는 변동이 굉장히 심하고 꼬리분포가 두텁다)이며, LTCM의 주요 투자대상은 주식이 아니라 채권이었으므로 채권은 수익이 제한적(이자수익)이고 손실폭이 몹시 큰(부도) 자산이므로 수익률이 대칭적인 분포를 그리고 있지 않았죠.
자, 일단은 LTCM의 주장인 S&P 500 수준의 리스크를 가정해봅시다. LTCM의 일간변동성이 $45백만이라고 했으니, 99% 유의수준에서의 1일 VaR은 $45백만 × 2.33 = $105백만이 될 겁니다.
1일 VaR을 월 단위로 변경하려면 √시간을 곱해주면 되니까, $105백만 × √21(한달에 21영업일이라고 가정) = $480백만입니다. 그리고 이 펀드의 연간 기대수익률이 18%라고 했을 때(동 기간 S&P 500 기대수익률), 월간 기대수익률은 $71백만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VaR 공식에 따라 99% 유의수준에서 1달 동안의 최대 손실폭은 $71백만 - $480백만 = $409백만의 손실이 되겠네요.
아까 LTCM의 자본금이 $47억원이라고 했으니, 사실상 1% 미만의 확률이 연속적으로 매달 일어나지 않는 이상 LTCM이 파산할 일은 없어보입니다.
1998년 1월부터 4월까지 LTCM은 $18억원을 잃었습니다. 거의 매달 $450백만 = $4.5억을 잃은 셈인데, 1%를 초과하는 확률이 공교롭게도 연속적으로 일어난 걸까요? 정규분포 가정 하 약 2.5 표준편차 정도 거리니까, 0.62%의 확률로 일어나는 사건이고, 160개월에 한번 쯤 발생할 법한 손실입니다. 네 달 연속 발생할 확률요? 약 6억 개월에 1번 꼴로 발생할 사건입니다. 1998년 6월, LTCM은 $450백만을 또 한 번 더 잃었습니다. 아니 잠시만요. 이미 6억 개월에 1번 꼴로 발생할 사건이 터졌는데, 또 잃는다고요? 뭔가 이상합니다.
1998년 8월, LTCM은 $19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9표준편차 거리입니다. 빅뱅부터 현세까지의 시간을 여러 번 살아내야지 한 번 볼 수 있는 손실이에요.
실제로 1998년 당시 LTCM가 경험하고 있던 일간변동성은 LTCM이 모형을 통해 계산한 $45백만이 아니라 $100백만 수준이었습니다. 시장의 변동성은 상수도 아니었고, LTCM의 모형은 편향되어 있었죠. 만약 $100백만의 일간변동성 값과 두터운 꼬리를 반영하기 위한 자유도 4의 T분포를 사용한다면 1998년 8월의 대참사는 10년에 한번 쯤 볼 수 있는 참사였으니,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닌 셈입니다.
물론 LTCM의 트레이더들은 위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고 Worst-case scenario를 연간 $23억원의 손실로 잡아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시장은 효율적이고, 언제든지 자신들의 주문을 받아즐 상대방이 시장에 존재하며, 일시작인 시장 교란 요인이 있더라도 금새 균형을 회복될 것을 가정하고 전략을 수립했죠. 하지만 1998년, 시장이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않자 $23억원을 잃은 LTCM은 주문을 받아 줄 사람이 없어져서 자신들의 포지션을 청산할 수 없어 추가적인 손실을 막지 못하고 1998년 $44억원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제 LTCM의 리스크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Jorion(1999)는 LTCM의 주력 거래가 채권 트레이딩이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미 10년 국채와 Baa 회사채(BBB등급) 두 개의 위험자산과 한 개의 무위험자산에 투자하였을 경우의 최적 포트폴리오를 구현해보았습니다.
[식 1] 평균-분산 효용함수
지난 글에서 보여드렸던 평균-분산 효용곡선의 식인데, 여기서 var(rp) 앞의 팩터를 0.25로 놓고
| 미10년국채 | Baa회사채 | 무위험자산 |
연간기대수익률 | 5.75% | 7.28% | 5.36% |
월간변동성 | 1.90% | 1.58% | |
상관계수 | 0.9654 | |
[표 1] 포트폴리오 구성자산
위 숫자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면, 미10년국채에 -1560%의 비중(비중이 음수니까 공매도) Baa회사채 비중을 1966%, 그리고 그 차액인 306%을 무위험이자율로 차입하는 포트폴리오(100%는 자기자본이니까)가 구성됩니다. 이 때 기대수익률은 37%(연간), 변동성은 8.1%(월간)으로 계산되는데, 월간변동성이 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펀드를 파산시키려면 1/8.1% = 12표준편차 거리의 사건이 일어나야합니다. 사실상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죠.
[그림 4] 평균-분산 최적화 포트폴리오 (Jorion)
그런데, 이는 상관계수를 0.9654라는 높은 수치로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1998년 ~ 2000년 미10년국채와 Baa회사채의 상관계수는 0.8까지 낮아졌고, 1998년에는 일시적으로 무려 0.3(!)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0.8의 상관계수를 가정하더라도 월간변동성은 19.2%, 부도까지는 5표준편차의 거리이고, 만약 0.3 상관계수를 가정한다면 월간변동성은 35.9%, 2.8표준편차 거리로 30년에 한번 쯤 발생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만약 정규분포의 가정 대신, 자유도 4의 T분포를 가정한다면 3년에 한 번 쯤은 발생하는 사건이며 연간부도율이 24%에 육박하는 펀드가 됩니다. 정크본드죠.
[표 2] 상관계수의 변동과 분포 가정의 변화에 따른 월간부도율(Jorion)
상관계수를 약간만 줄이고, 정규분포 가정을 조금만 풀어보면 월간부도율이 0.00001%에서 0.3%으로 치솟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LTCM은 전세계의 각종 자산에 대한 여러 포지션을 잡고 있었으나, 그 자산 간의 분산효과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LTCM이 취하는 전략은 "변동성숏" 전략이었기 때문에, 금융위기 시 모든 금융자산의 변동성이 증가하면 모든 포지션에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죠.
[그림 5] LTCM 월간수익률 분포 (Jorion)
위 그림, 익숙하지 않나요?
[그림 6] 변동성숏 전략의 월간수익률분포(SPVXVHST)
즉, LTCM은 사실상 변동성숏 전략과 동일한 수익률 분포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죠. 변동성숏 전략은 달려오는 로드롤러 앞에서 동전을 줍는 것과 같다(picking up nickels in front of a steamroller)는 해묵은 격언이 있습니다.
잠깐 극단적으로 튀었다 회복된 상관계수는 무시하고, 일단 상관계수를 0.8 정도까지 낮아진다 설정하고, 자유도 4의 t분포를 활용할 경우 LTCM의 일간변동성은 19.2% * $47억 / √21 = $197백만 정도입니다. 아까 LTCM에서 투자자들에게 보고한 수치가 $45백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실제로 LTCM은 자신들의 모형으로 산출한 예상수치보다 네 배가 넘는 시장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3. 마치며
LTCM은 뛰어난 천재들이 모여 정교한 수학적 모형을 통해 시장과 동일한 변동성으로 압도적인 수익률을 기록하여 마침내 시장을 이기는 방법을 찾아낸 듯 했으나, 현실과 사뭇 달랐던 모형의 정규분포 등 가정으로 인해 크게 손해를 보았고, 효율적 시장 가설을 맹신하여 거대하게 규모를 불린 탓에 스스로의 규모가 비효율을 초래하여 결국 파산 직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98년 LTCM의 손실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 등 이머징채권 : $4억
선진국 채권 : $4억
주식 페어 트레이딩(위의 삼성전자-삼성전자우와 같은 방식의 거래) : $3억
기타 등등 차익거래 : $5억
이자율스왑거래 : $16억
주식변동성숏 : $13억
스왑거래와 주식변동성숏 포지션이 너무나도 거대했던 것이 문제였죠.
IMF가 구제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러시아 채권에 베팅했다가,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것까지는 아마 LTCM의 예측범위(worst case scenario)에 포함되어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투자금액이 (자본규모 대비) 큰 것도 아니었구요. 그러나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인해 촉발된 안전자산선호현상, 미 국채를 제외한 모든 자산의 거래가 중지되는 현상은 $1조 장부가치의 파생상품, $1000억 가치의 자산을 편중되게 보유하고 있었던 LTCM에게는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LTCM 내부적으로도 포지션이 과도하게 비대해진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고 LTCM의 투자자들도 이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LTCM의 창립 멤버이자 스타 트레이더였던 빅터 하가니는 그 말을 듣지 않았죠. 하가니는 LTCM 설립 초기에는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국채 등의 채권 트레이딩에만 투자하기를 바랐고, 전문분야가 아닌 시장에는 진출하기를 꺼려했을 정도로 보수적인 사람이었으나 수년 간 계속된 성공, 처음 진입한 주식시장에서의 성공, 성공에 이은 성공이 그 스스로가 결코 틀리지 않는 무적의 트레이더라도 믿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타 창립 멤버들과 여타 출자자의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야아, 그래서 니들 돈 안 벌거야?"로 일관했습니다.
LTCM은 또한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굉장히 제한적으로만 공개했으므로, 투자자들은 LTCM이 어느 정도 규모는 있겠지~ 싶었으나 실제로 저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규모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리스크의 저감을 보다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었죠.
현실과 맞지 않는 가정을 바탕으로 생성한 모형을 통해 자신이 시장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오만은 아이비리그의 박사들을 모아놓았던 헤지펀드에서도 발생했습니다. 사실 저희 같은 개인투자자들한테야 시장왜곡이 벌어질 만큼 포지션을 편중되고 크게 잡는 것은 불가능하고,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쓰지 말자 정도만 말씀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천재들의 실패" 책은 LTCM 관련 내용을 아주 쉽고 깊게 풀어낸 책이니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모두들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참고 자료
천재들의 실패, Lowenstein
Risk Management Lessons From Long-Term Capital Management, Jorion
Examination of VaR after long term capital management, Yalincak et 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