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하라 히로코의 이방인 커버 노래를 듣고 쿠보타 사키(久保田早紀)라는 가수를 알게 되었습니다. 79년부터 88년까지 주로 활동한 가수로 엄청 옛날 가수인데, 한국에서도 꽤 인지도가 있는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같은 가수와는 달리 거의 아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아이돌 가수도 아니어서 앞서 언급한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노래들을 불렀죠.
쿠보타 사키의 본명은 쿠메 사유리(久米小百合)입니다. 쿠보타는 결혼하기 전 옛 성이고, 사키는 예명이었죠. 결혼하고나서 부터는 쿠메 사유리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는 가수를 은퇴하고 기독교 음악가로 활동 중이죠.
어릴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고, 포크송, 가요, 비틀즈의 노래를 자주 듣던 그녀는 뮤지션의 꿈을 꿉니다. 어머니의 반대로 레슨을 그만두게 되자 중학교 친구들의 권유로 밴드 활동을 하게 되죠. 가수에 부정적이었던 어머니와 달리 쿠보타 사키의 아버지는 딸의 진로를 응원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업무차 이란에 갈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다양한 이란 가요 음반을 구매하여 우편으로 보냈다고 하네요. 쿠보타 사키의 이국적인 정서가 담긴 노래는 이때서부터 비롯되었나 봅니다.
대학 재학 중인 1978년, 쿠보타 사키는 자신의 창작노래를 CBS소니(현소니 뮤직 레코즈)가 주관하는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 응모 1차 심사에 합격합니다. 이 대회에는 마츠다 세이코도 오디션을 봤었다고 하네요.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는 아이돌을 뽑는 오디션이었는데,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쿠보타 사키는 수영복 심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디션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를 눈여겨 보던 디렉터 카네코 후미에는 롯본기 CBS 스튜디오 리그에 쿠보타 사키를 내보내서 직접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방송 관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쿠보타 사키는 카네코 후미에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가수 데뷔를 눈앞에 두게 되죠.
79년 쿠보타 사키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 산요전기에선 그녀의 소속사에게 CM송 의뢰를 합니다. 대뷔곡 후보는 하얀아침, 꿈 비행, 25시 등이 후보에 올랐는데, 산요전기는 하얀아침을 선택했다고 하네요. 그녀의 음악성에 맞도록 최대한 이국적인 정서를 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광고 촬영까지 했는데, 프로듀서 사카이 마사토시의 판단으로 후보 목록에도 없었던 이방인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사카이의 판단은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중동의 이국적인 정서를 담은 노래 이방인은 전국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합니다. 중동풍 가요라는 마켓팅을 더하기 위해 실크로드의 테마라는 부제까지 붙이죠. 쿠보타 사키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이방인은 발표한 그해 79년 12월부터 80년 1월까지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그리고 80년 연간 차트 2위라는 대단한 성공을 이뤄내죠. 오랫동안 일본인들에게 사랑받아서 역대 오리콘 차트 싱글 29위에 기록된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방인으로 커다란 성공을 얻었지만, 너무 이른 성공은 그녀에게 독이 든 성배와도 같았습니다. 이후로도 80년에 두번째 앨범 천계와, 세번째 앨범 사우다데를 연달아 발표하지만 성적은 이방인이 수록되었던 첫번째 앨범 꿈이야기만 못했습니다. 사우다데는 이미지 변신을 하기 위해 유럽 포루투갈 풍의 노래를 선보였지만 작품성이 뛰어났으면서도 좋은 반응은 얻지 못했죠. 무슨 노래를 부르든 이방인을 불렀던 그 가수라는 꼬릿표가 떨어지지 않았기에 쿠보타 사키는 가수 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 가수 쿠보타 사키라는 이미지를 벋을 수 없었던 그녀는 84년 음악가 쿠메 다이사쿠와 결혼하면서 옛 성과 예명을 버리고 쿠메 사유리란 이름을 사용합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녀는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기독교 뮤지션으로 진로를 변경합니다. 그후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가수 쿠보타 사키의 수명은 끝난 셈이었죠.
한국에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도하고, 이방인 한 곡만 엄청나게 성공한 원히트원더 가수이긴 하지만, 쿠보타 사키의 노래를 들어보니 잊혀진 옛날 가수로만 기억되기엔 아까운 실력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이국적인 음악풍도 그렇지만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듣다보면 긴 세월의 차이가 있음에도 듣는이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죠.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하고 푹 빠지게 되었기에 pgr에도 쿠보타 사키의 노래를 소개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옛날 가수의 노래이지만 정말 좋은 명곡들이 많습니다. 야심한 밤 쿠보타 사키의 노래를 함께 감상해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이방인 ~실크로드의 테마~
이방인 라이브 1980
이방인 포루투갈 녹음 버전
이방인 2011년 라이브
카사하라 히로코 버전
나카모리 아키나 버전
자드 버전
오카 미도리 버전
아사쿠라 사야 버전 (천수의 사쿠나히메 주제가 담당)
EGO-WRAPPIN' 버전
시노자키 아이 버전
쿠보타 사키의 대표곡 이방인입니다. 위에 설명한대로 대히트한 일본의 국민가요지요. 후배 가수들이 자주 커버하기도 했는데, 나카모리 아키나나 자드 같은 유명 가수들도 포함되어있습니다. 90년대 이후엔 주로 자드의 노래로 기억되었죠. 전혀 다른 노래같이 믹스하긴 했지만 저는 카사하라 히로코가 부른 밝은 분위기의 이방인도 좋더라고요. 오카 미도리는 예전에 샤미센 글을 쓰면서 알게된 엔카 가수인데 일본의 장윤정 같은 가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창력이 뛰어나서 이 가수의 이방인도 좋더라고요.
이방인 포루투갈 버전은 3번째 앨범 사우다데에 수록된 곡입니다. 사우다데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와도 같은 의미의 포루투갈 말이라고 하네요. 이방인 원곡 만큼 훌륭한 노래입니다. 전주부분과 포루투갈어 나레이션이 1분가량 되는데 노래가 바로 재생되도록 설정해놨습니다. 노래가 마음에 드신다면 전주부분도 다시 들어보세요. 포루투갈의 이국적인 멜로디가 매력적입니다. 이 노래를 몇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이방인 커버 영상 중에 조회수 높은게 있어서 추가해봅니다. EGO-WRAPPIN'은 무슨 그룹인진 모르겠지만 어레인지를 잘했네요. 시노자키 아이는 몸매 좋은 그라비아 아이돌인 줄로만 알았는데 노래도 상당히 잘 부르는군요. 모델이랑 병행해서 가수 활동을 하는 것 같던데 의외로 잘 불러서 놀랐습니다.
백만송이 장미
백만송이 장미 원곡
백만송이 장미는 연세 지긋한 분이시라면 심수봉의 노래로 기억하실텐데, 원곡은 라트비아의 가요입니다. 애절한 가사도 일품이죠. 여러 버전의 백만송이 장미를 들어봤는데 쿠보타 사키가 부른 버전이 가장 좋더군요. 중동풍인 이방인과 달리 포루투갈 전통 가요 느낌이 듬뿍 들어간 쿠보타 사키의 백만송이 장미도 정말 좋은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방인 한 곡 뿐이었으면 구태여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시티팝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캠퍼스 거리81을 듣다보니 글을 쓰지 않고는 못배기겠더군요. 쿠보타 사키 노래답지 않게 이국적 정서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경쾌한 멜로디의 노래를 듣다보면 아련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비록 노래가 나온 시대는 다르지만 20대 시절 친구들과 술을 먹고 놀거나, 연애를 하던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이 떠오르니 아련함만 계속 남는군요.
프롤로그... 꿈 이야기 夢がたり
꿈 비행 夢飛行
기타 연주해보지 않을래요? ギター弾きを見ませんか
귀향 帰郷
별하늘의 소년 星空の少年
살람 サラーム
환상여행 幻想旅行
아침 朝
쿠보타 사키의 첫번째 앨범 꿈이야기입니다. 꿈비행, 기타 연주해보지 않을래요가 좋습니다.
천계 天界
천계 라이브
25시 25時
두번째 앨범 천계입니다. 재즈풍이 가미된 25시 라이브가 무척 감미롭네요.
사우다데 サウダーデ
한 밤 중의 산책
아르파마의 소녀 アルファマの娘
9월의 색 九月の色
3번째 엘범 사우다데 입니다. 포루투갈 전통 가요 느낌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죠. 좋은 노래들만 모였지만 대중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게 아쉽네요. 앨범곡 중에선 3번째 앨범의 노래들이 가장 듣기 좋군요.
오렌지 에어 메일 스페셜 オレンジエアメールスペシャル
1981 기린 오렌지 CM
상하이 노스텔지어 上海ノスタルジー
4번째 앨범 에어메일 스페셜입니다. 두곡 만 따로 선곡해봤는데 이 노래들도 좋네요. 오렌지는 광고 타이업 노래인데, 두번째 영상을 보면 80년대 코카콜라 광고와 같이 낙관적인 일본의 생활상이 느껴지네요.
네펠티티 ネフェルティティ
최종편 最終便
6번째 앨범 네펠티티입니다. 제목을 들으니 원피스가 생각나네요. 쿠보타 사키의 후기 앨범이라 초기 노래와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그래도 역시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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