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11/12 20:04:13
Name 이븐할둔
File #1 mongol_1279.webp (27.7 KB), Download : 52
Subject [일반] [역사] 몽골의 유럽 참교육에 대한 소고 (수정됨)
안녕하세요. 방구석역사가 이븐 할둔입니다. 오늘은 몽골군의 유럽침공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몽골 제국은 인류사에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끼친 제국 중 하나이며, 순수한 유목 제국으로서는 단연코 가장 강력했던 정치 체제일 겁니다. 게다가 낯선 유목 전사(?)들에 대한 판타지까지 더해져서 전세계 역사가들의 진지한 연구 대상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국가입니다.  (캐나다 시골에 사는 백인 할아버지들도 칭기즈칸 이야기 이름 정도는 다들 들어보셨더군요. 서구권 일반인들의 아시아사 이해도를 생각하면 참 대단한 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zmI3vAIhbE
(독일 밴드그룹 칭기즈칸)

특히 한국 웹에서는 인종적 유사성에 힘입어 역사계의 아이돌이라고 할 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환국의 로망을 현실로 이뤄낸 국가인만큼 애호가가 많은 게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오만한 유럽코쟁이(?)를 참교육시켜주는 강력한 몽골 궁기병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지요. 몽골의 말발굽이 전유럽을 짓밟았고 공포에 떨게 했다... 이런 식이지요.

 오늘은 몽골 VS 유럽에 대한 속설을 차례대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우선 본격적인 정리에 앞서 의미부터 정리해야지요. 몽골 제국의 경우칭기즈칸과 그의 직계 후손들이 다스린 유목민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라고 당대에나 현대에나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유럽입니다. 유럽이란 지리학적으론 코카서스 산맥과 우랄 산맥를 나타내며 현대 러시아의 인구 밀집지대가 포함됩니다. 국제정치적으로는 유럽 연합 가맹국을 뜻하며, 역사적으로는 무엇이 유럽인지를 두고 유럽인들 스스로 정체성 논쟁을 벌입니다.  아예 몽골이 말을 달리던 13세기로 돌아가면 유럽은 아예 지명에 불과할 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들이 살던 문명의 범위라고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쯤에서 나올 반응이 예상되긴 합니다.

"아니, 그런거 말고. 우리가 말하는 그 근본 유럽 있잖아. 로마-그리스 문명 베이스에 기독교 믿고 피부는 하얗고, 정치체제는 봉건제 콩가루에 기사나오는 그런 곳 있잖아. 로마 교황이 다스리고."

그렇습니다. 현대 한국인이 논하는 유럽이란 영국/프랑스/독일로 대표되는 유럽의 헤게모니를 강대국을 뜻하고 "중세 유럽"은 그 국가들의 선조들이 살았던 라틴-기독교 문명을 뜻하는 것이라고 무방하겠지요. 중세에 로마 가톨릭이 전파된 지역은 오늘날 "유럽 연합 가맹국"의 범위와 대체로 일치하므로 합당한 이해입니다. 따라서 해당 글에서 유럽은 "중세 시대의 라틴기독교 문명권"으로 정의하겠습니다.

문제는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중세에 몽골이 "유럽"을 참교육시켜준 적이 없다는 겁니다. 몽골 제국이 직/간접 통치 체제를 수립하고 다스린 영역은 키예프를 위시한 오늘날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멈춥니다. 주기적인 침공의 대상이 되었던 범위를 넣어도 헝가리/폴란드의 동쪽 국경선에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유럽 참교육이 아예 없던 이야기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몽골 제국인 2대 대칸인 오고타이의 치세에 장남일가인 주치울루스를 위한 서방 원정을 감행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원정으로 현대의 유럽-러시아의 모든 체제가 정복되었고, 헝가리와 폴란드는 대패하고 왕국의 주요 고위층이 전사하고 국토가 약탈대상이 되는 피해를 겪습니다.

몽골의 서방 원정군은 거침없이 나아가 현대의 독일 지역까지 노리다가 대칸의 서거로 회군을 결정하게 되고, 몽골 십자군을 조직하던 신성로마제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지요. 여기까지만 보면 "무적의 궁기병을 앞세운 몽골의 침공으로 유럽 전체가 멸망할 뻔 했는데 운 좋게 살아남았다"라는 인상을 가지게 됩니다. 이게 "몽골의 유럽 참교육론"의 근거가 된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게 찬찬히 뜯어보면 인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을 공산이 높습니다. 이 부분을 좀 짚어보고자 합니다. 

1. 유럽 전역이 공포에 떨었다.
당시대의 많은 문헌들은 "알지 못하던 동방"에서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밀려오는 유목민 군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고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술의 방향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들이 몰려오니까 우리는 다 죽을거야"보다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들이 오고 있으니 기독교도들은 단단히 맞설 준비를 해야한다"에 가깝거든요. 실제로 교황과 황제는 휴전에 합의하고 대 몽골 십자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물론 몽골곤의 철수가 확정되자 다시 전쟁을 벌이긴 합니다!)

그리고 몽골군이 철수한 뒤로도 오스트리아까지 도달했던 끝없는 유목 기병들의 모습은 중부 유럽인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마자르족이 기독교화 된 이후 어떤 이교도 군세도 유럽의 심장부에 이렇게 접근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나 한계도 있습니다. 일단 몽골군은 다시는 유럽 깊숙히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주치 울루스는 "유럽"에 대한 지속적인 정복 활동을 시도했지만 결국 헝가리-폴란드의 재정비된 방어 라인을 뚫지 못하거든요. 해당 이유는 아래 문단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2. 헝가리-폴란드가 털렸으니까 나머지 유럽 국가는 시간 문제였다.
일단 이 문단은 어떤 주장이든 단언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오고타이 칸이 그 때 죽었으며, 몽골군은 다시는 독일 땅을 밟아보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굳이 이야기를 해보더라도" 그리 쉬운 과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중세의 헝가리-폴란드는 "유럽의 변방"으로 인구수, 전쟁 기술, 부유함, 사회 제도의 모든 측면에서 서유럽을 따라오는 후발주자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특히 신성로마제국(독일)은 존재 자체로 헝가리-폴란드에게 합병 위협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으며 실제로 합병될 뻔한 위기도 많습니다. 즉 중세 헝가리-폴란드 왕들의 고정 과제는 "동쪽에서 몰려오는 이교도들을 상대하면서" "강대한 독일 황제의 권위로부터의 자유"를 동시에 확보해야하는 일이었습니다. 인구수만 5~10배 넘게 차이나는데 문화력, 경제력까지 앞선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더군다나 프랑스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국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진정한 유럽의 중심이었고요.

따라서 몽골군이 "몽골의 서방 원정군이 헝가리와 폴란드를 격파했으니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도 격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근거가 좀 미비합니다. 아예 두 체급 위의 상대를 상대하는 이야기가 되버리거든요. 게다가 몽골군도 공세 종말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며 유럽으로 깊숙히 들어갈수록 보급난은 심화됩니다. (몽골군은 가축떼를 끌고 다녀야되는데, 독일라인부터는 짐승들 몰고 다니면서 풀먹일 곳이 좀... 없습니다.)

3. 어찌 되었든 당시 몽골군이 전승하고 있던 건 맞지 않는가? 그러니 운이 맞다.
물론 서방 원정군은 몽골 정복기의 최전성기에 있던 대단히 강력한 군대는 맞습니다. 그런데 오고타이 칸의 죽음과 그로 인한 몽골군의 철수는  "몽골 제국의 정치적 강점과 약점"이란 측면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제국의 군사적 한계는 정치적 한계와 맞닿아있거든요. 현대의 강대국들이 마음에 드는 나라를 마음대로 정복할 수 없듯이, 전근대 제국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시련과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몽골 같은 유목 제국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유목 제국들은 결국 정통성이 '군사력'에 근간하기에 모든 정치 참여자가 강대한 군사력을 갖추고자 노력합니다. 덕분에 카리스마 있는 보스가 있을 땐 폭발적인 정복 동력을 보이지만, 반대로 서로 간의 유대감과 일치감이 깨져서 판이 깨지기도 쉽습니다. 실제로 몽골 제국의 수명이 다른 정주 제국들보다 크게 줄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2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틴 건 유목제국에겐 굉장한 일입니다. 보통은 그냥 1대나 2대정도만 이어진 뒤에 제국이 통째로 공중분해되거든요.)

4. 기사 중기병 위주의 유럽인들이 궁기병 위주의 몽골인들에게 농락당했다.
이건 PGR러 분들에겐 설명이 쉽습니다. 질럿이 넓은 공간에서 벌쳐한테 발린다고 구린 유닛이 아니듯이 중장기병이 궁기병보다 구린 병과가 아닙니다. (물론 15원짜리 사기 유닛은 뺍시다. 몽골군이 스파이더마인이 있었으면 세계를 정복했을겁니다.)  실제 전쟁도 전장 환경이 어떠냐, 병력 훈련도가 어떠냐, 당시 지휘관이 누구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스타와 다르게 실제 전쟁은 맵구조, 스타팅 포인트가 전부 다릅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군대는 특정 병과를 고수하지 않고 자기네가 싸우는 전장에 맞춰서 유기적으로 병과를 도입합니다. 몽골군이 세계를 정복하게 된 근간은 분명히 유목민 기마궁사였지만, 정주민들의 전술과 병력 양성법을 습득하지 않았으면 잠깐 반짝하고 말았을 겁니다. (실제로 몽골군은 새로운 전술, 무기를 도입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군대였습니다. 이건 모든 종류의 "제국군"에게서 보이는 모습이기도 해요.)

중동이나 스탭지역처럼 짐승 기르기 좋고 트인 공간에선 당연히 궁기병을 쥔 측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모두 기마궁사가 되는 기예를 배운 것이지요. 하지만 유럽처럼 강과 숲, 언덕이 많고 평야는 죄다 경작지로 도배되서 기동 공간이 좁으면 중기병을 쥔 측이 유리합니다. 때문에 전근대의 모든 군대는 수비전에서 "홈그라운드 이점"을 누리면서 싸웠습니다. 보통 해당 환경에 맞춘 최적의 메타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이외에도 쓰고 싶은게 많은 데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시간 관계상 작성 못한 부분이 있는데, 유럽문명은 팍스 몽골리카에서 오히려 굉장히 이득을 본 입장입니다. 다른 문명권은 몽골의 말발굽이한 번 짓밟고 지나가서 내륙 지향성 성격이 강해졌는데, 유럽 애들은 그런 거 없이 몽골이 만든 교역망 이용해서 돈만 쭉쭉 벌어서 산업도 육성하고 바다로 나갈 생각도 하게 되거든요. 이건 지구사 전체를 갈라놓지요. 이상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말다했죠
21/11/12 20:2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크레토스
21/11/12 20:29
수정 아이콘
몽골의 정복이 가능했던건 명장들의 압도적 지휘력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을거 같아요. 무장이나 훈련도 따지면 다른 유목제국 기병들이 딱히 몽골기병에 밀릴건 없다고 봐서..
이븐할둔
21/11/12 20:59
수정 아이콘
사실 몽골 2.3세대 지휘관들을 보면 창업자들만 못하긴 하지요. 몽골제국 후기가면 말 못타는 칸(...)도 나오긴 하더군요.
미숙한 S씨
21/11/12 20:35
수정 아이콘
글쎄요, 러시아 털리고 호라즘 털리고 헝가리 털리고 폴란드 털리고 금 털리고 서하 털리고 고려 털리고... 당시 동유럽쪽 전력들이 레그니차/모히 전투 두방에 개작살이 났는데다 심지어 그 후에 몽골군이 돌아가면서도 중동쪽 털어가면서 돌아갔지요. 일단 야전에서는 당시 서유럽 전력으로는 상대도 안될거라는게 일반적인 인식이고, 그렇다고 몽골군이 공성전을 못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금나라가 성이 없어서 몽골군에 개털린게 아니거든요.

일단 다른거 다 집어치우더라도 수부타이가 잘 안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전쟁사 올타임으로 봐도 열손가락 안에 꼽힐 개사기 명장이라서...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만약 그때 오고타이가 10년만 늦게 죽었다면... 서유럽 전체는 모르겠지만, 최소 신롬 정도는 개작살 났을거다에 오백원 겁니다.
김연아
21/11/12 20:45
수정 아이콘
수부타이가 BBC선정 올타임 명장 1위로 뽑혀서 나름 유명하지 않나요? 크크

BBC선정은 구라였던데, 그 리스트 자체는 꽤 괜찮저라구요
이븐할둔
21/11/12 20:57
수정 아이콘
야전을 가정해도 레그니차, 모히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이도가 몇배는 높은 전투가 될 것이란게 본문 요지긴 했습니다. 사실 전 이리저리 약탈돌려보다가 적당히 빠지고 후일을 도모할 공산이 제일 높다고 보는편이긴합니다만.. 정답은 타임 머신이라도 타봐야겠지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21/11/13 03:01
수정 아이콘
뭐 이브할둔님 말씀이랑 s씨님 말씀이랑 양립하지 못할건 아니라고 봐요. 저도 오고타이가 10년은 커녕 5년만 늦게 죽었어도 오스트리아 폴란드 헝가리 신롬을 아우르는 칸국이 하나정도 더 생겼을거고 역사는 많이 바꼈을 거라고 봐요. 다만 신롬의 완정 정복이나 프랑스 까지 가는건 힘들지 않았을까 정도?
서류조당
21/11/12 20:36
수정 아이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당시 몽고군의 전력과 그들이 벌인 전쟁들을 생각해보면, 중기병 + 공성전 위주의 싸움이 주가 되었을
동로마나 중서유럽 침공은 늪에 빠지는거나 마찬가지였을겁니다. 오히려 오고타이가 죽어서 전쟁이 끝난 건 몽고에게 행운이었다고 봅니다.
이븐할둔
21/11/12 21:03
수정 아이콘
서유럽은 인구밀도도 높고, 요새화도 잘되어있고, 유목기병 활용도 어려운 곳인점이 크겠지요. 남송공략하듯 정복지 안정시키고 현지에서 물자/인력동원하는 체제가 먼저 필요할 공산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사실 당장 서유럽은 마초보급이 문제니까요...)
서류조당
21/11/12 21:12
수정 아이콘
몽고가 남송에 쏟아부은 전력과 보급의 용이함 등 각종 이점에도 불구하고 공략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 생각하면 중서유럽 점령은 어림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남송까지 갈 것도 없이 금나라만 해도 쉽게 멸망한 게 아니거든요. 초반 참패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수차례 몽고군을 패배시켰고 끝까지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남송 영토 우회루트를 탈 수 있었던 몽고의 우회작전에 말린거죠.
프랑켄~~
21/11/12 21:06
수정 아이콘
유럽정벌이 국운을 건 전쟁도 아니고, 몽고에게 행운일건 없죠..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유럽까지 갔다면 유럽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겁니다.
서류조당
21/11/12 21:15
수정 아이콘
본토만 몽고는 아니니까요. 중서유럽에서 몽고가 늪에 빠졌다면 러시아도 들고 일어났을거고 그럼 금장칸국 건국도 쉽지 않았을겁니다.
요새로 촘촘하게 구성된 중서유럽은 깊이 들어가면 퇴각도 쉽지 않은 곳이에요.
21/11/12 20:5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몽고군 vs 서유럽군 보다.. 몽고군 vs 매매트2세 시기의 투르크군이 제일 궁금합니다
pzfusiler
21/11/12 20:5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론 몽골이 동양을 대신해 서방을 참교육했다.. 이런 관점자체가 이해가 안됩니다. 넷상선 몽골뽕이라는 부륜데 그렇게치면 고려가 몇배는 더 지독하게 당했고 중화와 중동문명은 아예 말살직전까지 갔고.. 뭣보다 이런 관점이 일본이 동양을 대신해 러시아나 귀축영미와 싸운거란 주장과 뭐가 다른건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이븐할둔
21/11/12 21:04
수정 아이콘
20세기초 유럽인들의 인종주의에 대한 반발로 어디선가 시작된게 아닐까하는 뇌피셜이 있습니다.
서류조당
21/11/12 22:50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입니다. 40년 동안 강화도 하나 빼고 온 국토가 초토화 될 정도로 후드려 맞아놓고 대신은 무슨 대신입니까.... ㅠㅠ
21/11/12 23:23
수정 아이콘
뭐 어떤분들은 징키스칸이 우리역사다! 이러는 분도 있었으니..말다했죠

허영만도 그런류의 만화 그린거같았는데

솔직히 바보죠 바보
임전즉퇴
21/11/13 06:07
수정 아이콘
그분이 그랬나요? 혹시 말무사 얘기라면 전체적으론 그냥 테무친 전기였는데
CapitalismHO
21/11/13 17:22
수정 아이콘
실제로 비슷한 관점에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이겼을때 많은 아시아인들이 좋아하긴 했습니다...
모데나
21/11/12 21:13
수정 아이콘
다 필요없고, 유럽이던 베트남이던 중동의 어느나라건, 너무 멀어서 막은거고, 몽고군의 극히 일부만 상대해서 막은거지, 송나라만큼 가까이 있었으면 다 망했음.
이븐할둔
21/11/12 22:45
수정 아이콘
몽골고원이 중원한가운데 있었으면 몽골제국은 발흥도 못해봤겠지요?
Liberalist
21/11/12 21:14
수정 아이콘
동시대 바투가 단독으로 전투를 벌일 때나, 후대 몽골 칸들이 서방 쳐들어가서 빌빌거린 꼴을 보면, 까놓고 말해 몽골의 서방 대원정은 수부타이 원맨 캐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루스는 당시로서는 유럽의 최변방의 척박한 동네고, 폴란드나 헝가리도 유럽의 열강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손색이 있는 국가들인데 걔네 이겼다고 그 다음 상대였을 신롬이나 동롬 상대로 승산이 있었다고 하는건 좀... 이미 수백년 넘게 축적된 동롬의 대투르크전 경험치 + 십자군 원정으로 쌓인 신롬의 전투 수행능력을 생각해보면 어느 쪽이든 몽골군이 뭐 하지도 못하고 고전할 확률이 백프롭니다.

IF시나리오를 생각해보더라도 오고타이가 몇 년 더 살았다고 한들 수부타이 같은 명장이 저걸 모를리는 없었을테고, 결국은 그냥 돌아갔을거라 생각합니다.
번개맞은씨앗
21/11/12 21:1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중기병은 경기병에 기동력에서 밀리죠. 유연성만 떨어지는게 아니라, 철갑옷을 입으면 속도가 느려질 테고요. 말의 체력도 더 일찍 떨어지겠죠. 그에비해 몽골의 기병들은 역사상 가장 빠른 군대였던 걸로 알고요. 심지어 말 두필로 바꿔 타면서 달리기까지 한 걸로 들었고요. 정찰병이나 연락병이 잡힐 가능성이 크니 정보력에서 밀리고, 또한 결정적 전투의 순간에, 그 전투지점을 놓고 볼 때 수적으로 불리해진다는 얘기가 될 테고요. 야전에서 각개격파되는 거죠. 몽골 다큐멘터리에서 인상적으로 본 적이 있고요. 혹은 야전을 피하고, 중기병이 말에서 내려 성벽위에서 돌 던지고 수성전을 해도 문제인 것이, 국경의 성에 가둬놓고 수도를 비롯한 깊숙한 지역으로 돌격하는 식이 가능할 테고요.

안 그래도 정치 불안없이 안정된 통일 상태라면 엄청난 땅을 기반으로 물자를 대고 많은 군대를 투입할 수 있는데, 기동력으로 각개격파까지 하면서, 게다가 기병이 활까지 들어서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고 몰살시키는 패턴인데, 야전에서 함부로 덤볐다가 기울어져 버리는 것이겠고요. 다만 유럽의 성들이 동방에 비해 얼마나 견고한지, 얼마나 식량을 축적해둘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몽골의 결정적 장점 중 하나인 몽골의 기동력이 전략전술에 있어 어떻게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서, 검토가 안 된 상태로 판단하신 것 같고, 따라서 추천은 드렸지만, 결론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곤란한 듯합니다.

스타크래프트 얘기를 덧붙이자면, 양옆으로 넓게 트인 개활지가 아니더라도, 퇴로가 안 막힌 상태에서, 질럿이 발업이 안 되어 있으면, 벌쳐에 녹는 것이고요. 몽골기병은 교대하면서 뒤로 튀면서 활을 쏠 수 있으니까요. 그때의 컨트롤은 사람의 컨트롤이 아니라, 알파고의 컨트롤이죠. 왜냐하면 몽고기병은 각각이 기마술과 궁술에 특화된 군인이니까요.

그리고 기동력이 뛰어나면 또 다른 장점은 싸우고 싶은 곳에서 싸울 자유가 더 많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유럽의 성이 견고하여 쉽게 함락하기 힘들지라도, 모든 성이 극강의 수비력을 발휘하진 못할 테고, 따라서 기동력을 활용한 눈가리기와 속공과 수적 집중으로 몇몇 성들은 함락이 되었을 것이고, 성밖은 초토화되면서 장기적인 전쟁 수행 능력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락된 성에서는 학살이 있었을 것이고요. 그게 몽골의 또다른 전략이기도 하죠. 성밖은 초토화시키고, 성은 알아서 항복하지 않은 이상, 무력으로 함락시에 참혹한 학살로 끝내고, 그러면 전쟁지속능력이 떨어져서 무너지는 패턴 말이죠. 게다가 유럽은 중국과 달리, 단일 국가도 아니고요. 그들이 자기 땅에서 얼마나 잘 협력하며 방어할지는 의문인 거죠. 십자군 원정은 밖에 나가서 싸운 것이니 약탈하면서 어쩌고 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거죠.
21/11/12 22:05
수정 아이콘
서유럽에 중기병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중기병이라도 정찰을 나갈 때는 가볍게 무장합니다. 윌리엄 마셜의 전기에는 헨리 2세가 직접 정찰을 나가면서 마셜을 불렀는데 이미 갑옷을 다 입고 있어서 데려가지 않았다는 일화가 나오죠. 문제가 되는 것은 군장의 무게보다는 기병의 숫자일 겁니다.

보병과 중기병 위주로 구성된 정주민 군대가 궁기병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유목민 군대를 상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십자군 시대에 충분히 밝혀졌습니다.
https://gall.dcinside.com/m/war/1941977
https://gall.dcinside.com/m/war/1979873
마상궁술에 능숙한 초원 튀르크족도 벌쳐컨트롤처럼 활을 쏘고 도망치기를 반복하면서 중기병의 추격을 떨쳐낼 수는 없었습니다. 유목민 기병들이 십자군 중기병들을 이기는 패턴은 기본적으로 기병 숫자에서 압도하는 상황에서 삼면으로 포위하고 어그로 토스하면서 농락하는 것이었죠. 십자군은 기병과 보병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이에 대응했고, 튀르크인들은 다시 유인매복 전술이나 화공을 이용해서 사기를 떨어뜨리고 진형을 무너뜨리고 기병과 보병의 협력을 방해했고, 결국 병사들의 사기와 지휘관의 판단과 행운으로 승패가 갈렸습니다.
번개맞은씨앗
21/11/12 22:1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건 논리적인 말은 아니고, 제 직관적인 느낌에 따라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저는 몽골의 기병전술이 축구에서 전성기 FC바르셀로나와 유사하다 생각했어요. 국소적인 숫자 우위를 만들고, 기동력있게 짧은 숏패스 게임을 하는게 활쏘는 느낌이고요.

그런데 FC바르셀로나나 스페인이 그러한 티키타카 축구를 한다고 해도, 그게 클래스가 있는 것이겠죠. 일본이 티키타카를 했는데, 그걸 깼다고, 바르셀로나를 꺨 수 있으리란 법은 없는 거죠. 나름의 파헤법을 만들었다고 해도 말이죠.

몽골은 단순 궁기병이 아니라 생각하고요. 몽골의 말은 키가 작고, 그로인해서 몽골인들은 기마술이 특별히 발달할 수 있었다고 들었고요. 따라서 투르크의 말도 키가 작았다는 얘기를 듣지 않는 한, 투르크인들의 기마술과는 클래스가 다를 거라 생각하고요. 빠르게 말을 타고 앞으로 가고 있는데, 말위에서 뒤를 돌아서 활을 쏠 수 있는가, 쏠 수 있다면 얼마나 정확한가. 연사 속도는 어떠한가. 이런 것을 놓고 볼 때, 투르크와 몽골이 같은 수준이었을 것 같진 않거든요. 그렇다면 축구에서 일본과 스페인만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겠죠.
고기반찬
21/11/12 22:35
수정 아이콘
소위 스웜전술이 잘 통하는 장소에서 서유럽 군대가 싸워줄 이유가 없죠. 신롬만 해도 이미 955년 레히펠트 전투에서 마자르 군대를 격파한 경험이 있습니다. 동프랑크는 이미 930년대부터 다수의 요새로 구성된 종심방어체계를 구성해놨고, 마자르인들은 933년, 937년 원정에서 동프랑크의 청야전술에 말려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피해가 누적되어 패퇴했습니다. 요새 종심방어를 무시하고 깊숙하게 들어온 레히펠트 전투에서는 마자르인들은 거점 도시인 아우크스부르크를 공성하다 오토의 지원군이 배후에서 접근하자 패퇴한 뒤, 오토의 부대와 후방의 요새에 남아있던 부대의 협공을 받고 각개격파되었습니다. 동프랑크와 마자르 사이의 일련의 캠페인, 노가이칸의 헝가리 원정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실패했다는건 시사해주는 바가 크고, 소위 말하는 기동력을 이용한 각개격파는 요새들을 통한 종심방어에 상당히 제한을 받는다는 것과, 유목민을 견제할 수 있는 정주민측의 야전군이 건재한 상황이라면 장기적인 캠페인에 따른 전력누수는 유목민 측이 더 크다는 것(이건 동로마와 투르크 전쟁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유럽인들이 유목민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마자르인의 후손인 헝가리도 이 전훈을 재빨리 받아들여 노가이 칸의 공세를 격퇴해냈구요.

기동력에 제한한더라도 헝가리가 패한 모히 전투에서도 바투의 군대는 사요 강을 배후에 두고 기동이 제한된 상태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미 종심방어체계가 갖추어진 신롬을 상대로 몽골군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전략적 기동력을 발휘할 장소를 선점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죠.
번개맞은씨앗
21/11/12 22:41
수정 아이콘
불확실하다면, 지휘관의 능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유럽을 본격적으로 침공한다면,
몽골의 지휘관과 장군이 누구였을지, 그의 능력과 경험이 중요하겠지요.
고기반찬
21/11/12 22:5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무리 수부타이라고 해도 모든 전투를 원하는 장소에서 치룰 수는 없습니다. 모히 전투만 해도 그랬구요. 석조 요새 종심방어진에서 깔짝거리는건 수고롭기만하고 이득은 크지 않은 반면(당장 바투의 원정군만 해도 러시아에서 코젤스크를 점령하는데 7주나 걸렸고 4천 명이나 전사했습니다. 그때 러시아 도시들은 대개 목조요새였구요) 과감하게 돌파해서 들어가는건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지리도 익숙하지 않고, 서유럽은 동유럽처럼 자유롭게 기동할 장소도 모자라며, 잘못하면 야전군과 배후에서 접근하는 요새주둔군에게 협공을 당하고 그러면 기동 자체가 제한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된 전력만 거느린(물론 쿠만이나 투르크계 유목민들을 다수 끌어들이긴 했다지만) 수부타이나 바투가 굳이 모험을 하려고 할까요.
번개맞은씨앗
21/11/12 23:14
수정 아이콘
수부타이가 모험을 하려고 할지 물어보시니, 좀 어색하네요.
일생에 수없이 모험을 한 군인으로 아는데요.
모험을 하되 그러다가 망할 확률이 있는 것 아닐까 싶네요.
고기반찬
21/11/12 23:58
수정 아이콘
불리한 모험, 특히 종심방어를 내버려두고 중심지로 돌파한다는 전략을 택하려면 그럴 이유가 있어야죠. 그런데 수부타이나 바투가 그럴 이유가 있나요? 당장 후방 통치력도 확실하지 않은데? 그러다 망하면 특히 바투는 자기 밑천 다털리는데.
21/11/12 22:54
수정 아이콘
노가이 칸은 당대 동유럽과 주치 울루스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능하다고 평가 받는 군주이자 군지휘관이었습니다. 모히와 레그니차 전투에서 채 5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가 직접 병력을 동원하고 지휘한 다양한 동유럽 침공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게 무슨 의미일지 다시 생각해보세요.
번개맞은씨앗
21/11/12 23:09
수정 아이콘
투르크가 안 되니, 몽골도 안 된다.
노가이 칸이 안 되니, 수부타이도 안 된다.

일어나지 않은 역사라, 갑론을박이 많은 것 같네요.
몽골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유럽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결국 역사를 굴려보지 않는 한 확실한 건 없으니까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몽골이 정치적 문제만 없었으면,
유럽이 위험했을 거라 생각해요.
단기간에 멸망하는 시나리오만 있는게 아니게 되니까요.
21/11/12 23:26
수정 아이콘
초원국가들이 제국이 될때 주로 썻던 고기방패전술도 약간 고려하심이..
고기반찬
21/11/12 21:2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사실 몽골이 서유럽을 공격했을 때를 상상해볼만한 전쟁이 한 세대 뒤(1280년대) 노가이 칸의 헝가리 공격이죠. 모히 전투 후 헝가리는 서유럽식 석조 요새 도처에 축성하고 기병전력의 중장화를 진행시켰습니다. 노가이 칸이 만만한 군사지휘관이 아니지만 노가이 칸의 헝가리 공세는 석조 요새에 막혀 지지부진했고, 구식 요새 하나만 점령했을 뿐, 곧 헝가리군의 역습을 받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수부타이가 명장이라고 하더라도 한정된 전력으로 요새화된 서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란 어려울겁이다. 모히 전투도 바투의 삽질이 있었다지만 고전 끝에 간신히 이긴 전투였는데, 매번 누적되는 손실을 감당하면서 싸울 수 있을지...
뉴타입
21/11/12 21:29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절대로 몽골군의 강력함을 깎아내리는건 아니지만,징기스칸이 더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아니 이후로도 몽골의 대칸들이 유럽 정복에 정말 열의를 올렸더라고 하더라도 몽골군의 공성전 수행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많이 붙을수밖에 없어서 힘들었을거라고 보거든요.
고기반찬
21/11/12 21:32
수정 아이콘
비슷하게 인구밀도가 높고, 강력한 성채를 다수 보유한 금, 남송과의 전쟁에서도 단번에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게 아니라 수 십년에 걸쳐 피해를 누적시켜 방어체계를 붕괴시킨 뒤에야 비로소 점령이 가능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심장소리
21/11/12 22:42
수정 아이콘
저는 개인적으로 오고타이 칸이 죽지 않았어도 몽골제국이 유럽을 점령하는게 불가능했다고 보는 입장이긴 하지만, 글에 비약이 조금 심한 것 같아서 댓글을 달아보자면

1. 물론 이런 문제는 해석하기 나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당시 몽골 제국의 엄청난 서진 속도에 유럽인들이 공포에 떨었던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특히 레그니차 전투에서 유럽 연합군이 궤멸 당하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퇴위 협박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독일은 발칵 뒤집어졌던 상태였고요. 유럽인들이 몽골의 침입을 받고 두려움에 떨었던 것, 몽골제국의 침략에 대비해 수비를 준비하던 자신들이 상대에 비해 더 약자라는 걸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2. 신성로마제국이 헝가리-폴란드보다 한 체급 위의 국가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신성로마제국이 금이나 송보다도 강한 국가였다고 말하는 역사가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헝가리-폴란드 역시 여러번 독일을 고생시켰던 강국이기도 했고요. 단순히 '헝가리-폴란드는 유럽 2군일 뿐이고, 신성로마제국의 국력이라면 몽골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3. 몽골 같은 유목제국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가 급속히 쇠락하는 모습을 보였던 이유는 정통성이 군사력에 근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체계가 근본적으로 말자 분할 상속제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당시 유럽의 봉건제야말로 귀족들의 정통성은 군사력에 근간하는 체제였고, 유목민들은 통념과 달리 정주민족들 이상으로 혈통을 중시했습니다.

4. 중장기병의 유럽 vs 경기병의 몽골 이라는 도식 자체가 허구에 가까운 것이, 몽골군도 편제의 상당부분이 중장기병이었고, 당연히 그들이 최정예 부대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븐할둔
21/11/12 22:48
수정 아이콘
글을 대충써서 그런지 논의가 의도한 방향과는 좀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군요. 적어주신 말씀엔 전부 공감합니다. 어차피 같은걸 보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 같거든요.
kartagra
21/11/12 22:49
수정 아이콘
몽골이 유럽 정복하는 시나리오는 솔직히....

송나라를 걍 냅두고 그거 올인해서 유럽으로 박는 것 밖에는 생각이 안납니다.

송나라 칠때처럼 몽골 본대에 수부타이면 솔직히 서유럽이고 뭐고 그냥 아작났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동로마쪽은 개판오분전 상황이라 누구 돕고 말고 하기도 힘들었고. 결국 프랑스+신롬인데...일단 신롬은 그냥 가루되고 시작했을듯.

물론 본대 끌고오는 게 아니라면 수부타이가 아무리 명장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유럽 전선에 투자한 자원 자체가 너무 한정적이었죠. 남송 칠때처럼 거의 캐삭빵 수준으로 올인한게 아니었으니. 오고타이가 10년 늦게 죽었어도 신롬 정벌은 무리고 끽해야 신롬 국토 좀 개판만드는 선에서 그쳤을 겁니다.
서류조당
21/11/12 22:51
수정 아이콘
슬슬 많은 분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몽고가 유럽 바로 옆에 있었으면 가능했을지도.... 크크크크
이븐할둔
21/11/12 22:5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사실 시간문제로 못적은게있는데 저는 오고타이 칸이나 수부타이가 유럽정벌을 계속 추진했을지의 여부도 검토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을 정복하려면 추가지원군을 보내줘야되는데 그게 수지긴 맞을지, 또 그렇게 유럽을 공략한다고쳐도 주치울루스의 영지가 더 막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점도 정치가라면 고려하지 않았을까싶습니다. 로마가 팽창을 정치,경제적 문제로 일정시점에서 스스로 멈춘것처럼 몽골제국도 스탭기병이 자유롭게 활동할수있는 지점+알파 정도에서 그칠 공산이 크지 싶습니다.
심장소리
21/11/12 22:55
수정 아이콘
'몽골 본대가 왔으면 이겼다'라는 말은 사실 의미가 없는 게,

몽골 제국이 남송을 공략했을 때는 당시 지구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지역이었던 중원지역에서 보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서유럽을 치기 위해 근거지를 차려야 하는 동유럽은 애시당초에 그 많은 '몽골 본대'를 먹여살릴 수 있는 부유한 지역 자체가 없었습니다. 남송을 쳤을 때만큼 대군을 동원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어요.
깃털달린뱀
21/11/12 23:17
수정 아이콘
오 궁금해서 그런데 당시 중원이 지구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지역이었으면 첫 번째는 어디죠? 당연히 당시라면 첫 번째라 생각해서요.
당장 떠오르는 건 이집트나 인도 정도네요. 동로마는 한창 4차 십자국 맞고 헤롱댈 때고...
심장소리
21/11/12 23:18
수정 아이콘
당시 가장 부유했던 곳은 남송의 근거지였던 강남 지방입니다.
깃털달린뱀
21/11/12 23:20
수정 아이콘
아 그 단순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네요 흐흐흐흐. 자주 중국을 하나의 덩어리로 착각하곤 하는데 사실 개간 이후엔 강남이 짱이죠 흐흐.
심장소리
21/11/12 23:2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대운하가 건설되지 않아서 중국 경제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북중국과 남중국의 2극 체계로 갔다면 역사가 꽤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중국이 분열되어 있는 기간이 훨씬 길어졌을 수도 있겠죠.
깃털달린뱀
21/11/12 23:34
수정 아이콘
전 그랬으면 꽤나 진지하게 현재의 통일된 '중국'이라는 정체성이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뭐 후대에야 원래 당연히 하나니까 분열됐다 합쳐졌다라고 생각한다지만 사실 위진남북조만 해도 400년 가까이 됐었으니.
대운하가 없었으면 당이 그렇게 위세를 떨치진 못했을 것이고, 그 많던 유목민족도 한족에 완전히 녹아들기보단 로마화된 게르만족 꼴 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나라는 말 그대로 고대 로마가 되는 거고요.
아구스티너헬
21/11/13 09:06
수정 아이콘
지금의 우크라이나 대흑토지역이면 몽골본대를 먹여살리고도 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럽의 빵바구니였죠
심장소리
21/11/13 12:46
수정 아이콘
단순히 곡물 생산량을 따질 게 아니라, 인구 밀집 지역의 유무가 더 중요한데, 송나라 정벌 때처럼 대군의 보급 기지로 삼기에는 동유럽의 인구가 북중국에 비해 너무 적었습니다.
깃털달린뱀
21/11/12 23:03
수정 아이콘
폴란드 헝가리 이런 쪽은 크킹 해보면 알지만 옛날에 다 우리는 처음 듣는 유목민들 날뛰던 공간이라... 아니 헝가리 자체가 그런 유목민이 정착한 국가기도 하고요. 거기까진 대평원이라 괜찮았겠지만 그 이후는 역시 호락호락할 것 같진 않습니다. 아예 본진을 그쪽에 두고 남송 밀 때처럼 전략적으로 수십 년 간 갈았으면 엄청난 출혈과 함께 정복할 수 있었을진 모르지만 별 의미는 없죠. 애초에 몽골제국의 중심부하고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

전 사실 이쪽은 유럽보다 일 칸국, 차가타이 칸국을 위시한 이란, 중앙아시아, 인도 쪽이 더 재밌어보이더라고요. 근대 들어서야 세상의 중심이 유럽이 됐으니 당연히 그쪽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만, 당시엔 그다지 특출나지도 않고 멀기만 한 변방이었죠. 굳이 그 힘을 들여서 정복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그런 땅. 오히려 진짜 알짜는 서아시아 쪽이었고. 이후에도 스노우볼 계속 굴러서 자기네들끼리 싸워대고, 혼란한 와중에 부마를 자처하는 티무르가 대제국을 세우고, 교역로를 장악하고, 사후에는 또 티무르의 후손이 털려서 쫓겨났다가 결국 본진 못찾고 인도 찔러서 무굴제국으로 진화하고... 한국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쪽이지만 참 재밌어요 여기도. 무굴 제국의 말 수요가 줄어들자 저 멀리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망해버린다니 참 얼마나 연결된 세상인가요 크크크크크.
판을흔들어라
21/11/13 00:06
수정 아이콘
저도 몽골이 남송 정복할 정성으로 다른 곳을 공략했다면 몽골이 공략하지 못한 지역들을 공략했을 거라는 입장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른 지역엔 그렇게 정성을 들이지 않았고, 왜 또 하필 남송엔 그런 정성을 들였냐 치면 당시 중국 송나라가 가장 꿀땅이자 알파이자 오메가라 생각했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로 진짜로 송나라는 잘나갔으니까요.

이런 관점을 가지된 건 일본 공략할 때 막상 투입된 몽골 병사들은 싸우기 싫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였습니다.(토전사) 생각해보니 그 꿀땅인 남송 강남땅을 정복했는데 뭐 대단한거 같지도 않은 곳을 목숨 걸고 배타고 넘어가 공략하라니 저 같아도 안 가고 싶었겠죠. 이건 마치 최근 '카불 점령했으면 땡 아님? 저 거지같은 판지시르 계곡에 가라구요?'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은 탈레반 병사 같지요. 베트남 그 정글 땅에 뭐가 있다고 가야하죠? 이집트 그 저거 사막 아님? 우리쪽 사막도 거지같은데 저길 왜가요? 지금이라면 모를까 말이죠.

아이러니하게 몽골 때문에 이득본 게 유럽이다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특히 이슬람권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가 원래 유럽보다 훨씬 발전하고 잘나갔는데 갑자기 몽골놈들이 들어와 쑥대밭 만들어 놓고 갔다라고 생각을 하나봐요.
이븐할둔
21/11/13 00: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말씀하신 부분에 동감합니다. 몽골인들도 돈 좋아하고 가진거 많아지면 고된일 하기싫어하고 파이싸움하는건 똑같은 인간들인데 환경전사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자주 간과되는것같습니다. 테무친과 사준사구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한 까닭이 아닐까싶네요. 그리고 사실 해당글에서 주로말하려는건 말씀하신 부분, 즉 다른 문명권은 몽골의 파괴와 세계교역망의 이점을 둘다받았는데 유럽은 장점만 체리피킹해갔다는 점이었어요. 근데 일때문에 그만(...)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21/11/13 00:51
수정 아이콘
예전에 유게에 이 비슷한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근거있는 토론이라 재미있네요. 저도 판을 흔들어라 님 말에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당장 제가 캐나다 유목민인데 뉴욕 먹었으면 되었지 굳이 쿠바를 먹어야 해? 라는 생각이 안들리가 없는 건데요 크크. 거기에 만약 굳이 억지로 먹는다고 생각해도 당시 보급력으로 남송에 투입할 수 있는 본대(발판이 북송급 꿀땅)급의 병력을 유럽(발판이 동유럽 똥땅) 으로 투사할 수 있을리도 없구요. 결국 신롬 국경 어디쯤 공격하다 갔을 겁니다.

진짜 진짜 잘 쳐줘도 오스만 투르크가 빈 공방전 쯤에서 공세 종말한 것 생각했을 때, 그 엇비슷하게 갔을 거라 생각해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21/11/13 03:09
수정 아이콘
음 저는 폴란드 헝가리 같은 나라도 지금 산업혁명 이후의 서유럽 중심 사관에서 약간 평가절하된 국가 라고 생각해요. 폴란드 헝가리는 곡창지대가 큰 나라고 평원위주의 국가라는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강대국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폴란드-헝가리 가 유럽 2군이라는 시각에 일방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어요. 서유럽이 앞서나가기 시작한것은 역설적이게도 중동이나 몽고에 동유럽이 막고 털리면서 그 힘을 대항해시대나 산업혁명에 집중할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고기반찬
21/11/13 03:5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위키백과에서는 10세기 기준으로 신롬 인구를 약 1,200만, 프랑스 720만, 헝가리와 폴란드는 약 100만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opulation_in_1000)

몽골침입을 기준으로 하는 13세기 중반을 기준으로 독일 지방(1914년 독일제국 기준) 인구는 약 800만(소위 말하는 '동프로이센'은 이제 막 개척이 개시되던 시기였으므로, 대부분은 현 독일지방으로 봐도 무방할거에요), 프랑스 인구는 1,500만으로 추산됩니다(https://en.wikipedia.org/wiki/Medieval_demography). (위 링크에 따르면 헝가리는 1914년 오-헝 제국 전체로 봐서 800만 수준, 폴란드는 아예 러시아를 비롯한 북동부 유럽이랑 다 묶어서 1,100만으로 추산되죠)

반면 동시기(몽골 침입 직전) 헝가리 인구는 적극적으로 추산해도 200만 수준이고, 최근은 그보다 더 낮춰잡는 추세로 알고 있습니다.(https://en.wikipedia.org/wiki/Demographics_of_Hungary#900%E2%80%931910)
폴란드의 경우 1370년에도 200만명 수준으로 추산합니다(https://en.wikipedia.org/wiki/Demographic_history_of_Poland).

정리하면 몽골 침입시기를 기준으로 신롬, 프랑스는 못해도 1,0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국가였고, 헝가리, 폴란드는 잘 쳐봐야 200만 수준입니다. 차이가 크죠.
율리우스 카이사르
21/11/13 09:34
수정 아이콘
아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드라고 싶은 말씀은 폴란드 헝가리가 당시 프랑스보다 미개한 나라냐 .. 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서유럽 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제보다 (현대의 국력 때문에) 뻥튀기가 어느정도 되어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시 인구가 그정도 된다쳐도 루이14세 이전의 프랑스나 신롬은 중앙집권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서.. (그리고 몽골이 워낙 외교와 갈라치기도 잘하는 나라라) .. 오고타이만 안죽었어도 신롬이나 프랑스의 정복까지는 힘들어도 역사를 바꿀정도의 임팩트는 충분히 줬을거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이븐할둔
21/11/13 10:0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나머지 부분은 개인마다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담백하게 사실만 적자면 서유럽은 샤를마뉴 등장 이후부터 현대까지 쭉 유럽문명권의 핵심이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오히려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거치면서 위상이 내려간 편에 해당하구요. 동유럽 군주들은 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지역 문물을 수입하고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기위해 머리를 쥐어짜낸편이고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21/11/13 12:29
수정 아이콘
네 잘 알겠습니다. 전 그래도 서유럽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봐요. 제가 폴란드 헝가리가 군사적으로 쩌리라고 보는 시각이 좀 불편할 뿐이고… 뭐 그렇습니다. 당연히 말씀대로 서유럽이 더 잘나가긴했겠죠.
서류조당
21/11/13 09:58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근현대에 잘나가는 서유럽에 대한 반대 논리로 당시 중서유럽이 너무 저평가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신롬과 비교하면 헝가리 폴란드는 유럽 2군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라죠.
그 드넓은 땅에 인구가 고려만도 안되는 나라였고 인구밀도가 낮다는 건 밀도있는 방어가 가능하냐와도 연관되는거니까요.
인구가 최소 대여섯배씩 많았던 신롬 프랑스는 병력 동원규모와 방어력의 밀도 자체가 다릅니다.

이런 거 다 제끼고 헝가리 폴란드가 깨졌으니까 같은 유럽인 신롬 프랑스도 못막아낼 거라는 건 너무 나이브한 주장입니다.
sionatlasia
21/11/13 03: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전 그런 의미에서 송나라가 대중적인 이미지가 너무 평가절하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하게 송나라 시기때 송나라보다 더 오래 몽골상대로 버텼을 나라가 있을까 싶어요. 송나라가 역사적으로 졸전을 거듭한것도 사실이지만 보통 대부분의 나라는 졸전 한두번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근데 송나라는 이걸 막대한 금력과 회전력으로 버텨냈는데 사실 이게 말도 안되는거거든요. 결국 몽골도 정면승부로는 답이 없어서 토번으로 우회했고요.
그럴이유도 그러지도 않았겠지만 몽골이 금나라만 먹은후에 서유럽으로 총력을 다했다면 영국빼고는 다 망했을꺼라고 봅니다. 타타르의 멍에가 전 유럽에 지속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산악지대나 숲 지대에서 몽골의 전술적 장점이 나오지 않는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기에 몽골군만큼이나 다양한 전장에서 싸운 군대는 없었을것이기 때문에.. 아마 적응력도 뛰어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수부타이가 나폴레옹 보다도 위대한 장군이라고 생각해서 수부타이 만으로도 충분히 몽골이 이겼을꺼같긴합니다. 쓰고보니 수부타이 뽕 맞은거 같네요
사실 이런류 얘기 나올때마다 하는 말이 몽골 그까이꺼 제대로된 제국 하나 부신거 없고 호라즘도 사실상 왕조 초창기였고 아바스도 무너져내려가고 있었고 러시아는 공국연합체에 다 2군들 부순건데 뭐 대단한거냐 하는데 그런분들이 송나라 금나라 깨부순건 까먹으시더라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송나라 멸망전 당시 단일국가로 송나라보다 강한나라는 몽골제외하곤 없었을꺼라 단언합니다
임전즉퇴
21/11/13 06:4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수부타이가 대서양을 볼 수 있었을까, 보고 싶었을까 문제와는 별개로 송의 파이팅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최씨정권의 무지성스러운 항몽이 가진 대중적인 이미지는 그나마 송한테 줘야죠. 스타트부터 연운16주로 좀 망겜이었고 계속 여건이 좋지 않았으며 그 대응도 헛발이 많았지만 꾸역꾸역 오래 유지하면서 개발도 기록 찍고 마지막 전투까지 놓지 않았던 플레이에 경의를 느낍니다. 가장 유교적이었는데 정작 실덕해서 망했다고 평하기도 어려운 왕조..
mudvayne
21/11/13 08:51
수정 아이콘
수부타이 캐리가 계속 이어지기엔 이미 서방원정때 노환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눈도 안보이던 상태라... 서방 원정 당시 68세고 말도 못탈 지경이었다는데 (4년뒤 사망) 서방 원정이 길어져서 수부타이 물러나고 바투가 컨트롤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역으로 털릴 걱정도 해야 됬을거 같습니다. 바투 군재는 별볼일 없다는게 요즘 중론이니까요.
서류조당
21/11/13 09:33
수정 아이콘
이게 다 북송이 너무 한심해서 그런거죠. 송나라 스스로도 자기들이 그정도로 센 줄 몰랐던 거 같습니다.
몽고한테 버티던 때처럼 필사적으로 요나라 서하 금나라 상대했으면 다 박살냈을 듯(....)
이븐할둔
21/11/13 11:3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긴데 송나라는 문치주의 왕조답게 늘 국방전략을 방어적으로 짜는 입장에 있기도했지요. 군마 산지를 잃은 것도 치명적이었고. 개인적으론 통치이념과 지배층의 정권유지를 위해 전문 군인 계층 육성을 꺼린게 송나라의 진짜 패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기에 송의 경제적 번영이 가능했던것도 사실입니다만...)
이븐할둔
21/11/13 09:56
수정 아이콘
13~14세기가 칭기스의 제국이 가장 거대하고 부유하고, 강력한 정치체제였다는데는 사실 이견의 여지조차 없습니다. 문제는 초강대국이라 한들 정치적 의지, 지리적 조건, 경제적 사정이 얽히면 능력이 제한될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탈레반이 미국보다 국력이 세서 이긴게 아니듯이요
번개맞은씨앗
21/11/13 10:47
수정 아이콘
탈레반이라 하시니, 고려의 대몽항쟁이 떠오르는데요. 고려의 경우에는 왜 몽골에 망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서유럽과 비교할 때, 인구규모 외에 다른 원인들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븐할둔
21/11/13 11: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짧게 말해 몽골제국의 중심과 너무 가까운데, 그걸 상쇄할 수준의 자연방벽이나 규모도 없었습니다. 한반도도 산지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아 유목 기병에게 굉장히 까다로운 공간이고 실제로 몽골군도 제법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몽골제국 중심부인 북중국의 코앞이라 그냥 될때까지 공격을 반복할 수 있는 보급여건/정치적 의지가 성립 가능했던것이죠. 요약하면 금이 멸망한 순간 고려는 복속을 피하기 대단히 어려운 여건에 처하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소련앞의 핀란드, 미국앞의 쿠바같은 꼴이라 자력으론 뭘 어떻게해도 힘듭니다.
번개맞은씨앗
21/11/13 11:35
수정 아이콘
성의 방어력은 어떤가요? 성벽의 높이라든지, 해자라든지 하는 것들요. 그리고 고려 국경의 성들과 안쪽 깊숙한 곳 성들의 방어력의 차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고려가 삼면이 바다이고 통일국가다보니, 위쪽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에, 국경에 비해서 안쪽이 부실했을 수 있지 않나 싶거든요.
이븐할둔
21/11/13 11: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한반도는 국토가 죄다 산이라 산성에 보급물자만 쌓아두고 청야하면 공격자 입장에선 텅빈 평야나 불태우고 돌아가야합니다. 거기에 정복전쟁할 생각도 없으니 일반적인 축성술은 그리 발달하지 않은 편입니다.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북방성들은 좀 심혈을 기울여만들긴 했지만, 타 문화권에 비해 그리 발달했다고 보긴 어렵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실제로 알려면 유적답사나 고고학적 발굴이 필요한데 이건 못하고있으니 알기가 어렵긴하죠.) 이게 몽골 상대로 안통한건 만주에 몽골인들이 뿌리박고 매해 약탈 러쉬를 왔어서 그렇습니다. 원래 일반적인 유목민들은 저렇게 못하거든요.
번개맞은씨앗
21/11/13 12:05
수정 아이콘
축성 의지가 약했던 것 아닐까 싶었는데, 축성술에도 부실함이 있었나보군요. 그런데 예전에 고려였는지 고구려였는지 기억이 불확실한데요. 우리나라의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성벽이 투석기 방어에 유리한 구조로 돌이 쌓여져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잘 허물어지지 않는다고요. 그것은 과대평가인 것일까요? 아니면 그건 북방의 일부 성만 그런 것일까요? 그리고 성벽의 구조적 문제 말고, 특별히 방어에 중요한 축성술이라면 어떤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윗글에 유럽의 산을 말씀하진 않으신 걸로 아는데요. 몽골을 상대로 숲과 언덕이 많은 것과, 산이 많은 것은 어느 쪽이 방어에 더 유리하다 생각하시나요? 방어측에 성들도 있고, 야전용 기마병도 있다는 조건에서요.
이븐할둔
21/11/13 12:07
수정 아이콘
고구려야 정치적 중심지가 평양ㅡ 만주인데다가 군사적 패권을 추구하던
이븐할둔
21/11/13 12:13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고구려는 정치적 중심지가 전쟁이 잦은 만주 ㅡ 한반도 북부인데다가 군사적 패권을 추구한 국가였기에 전쟁 문화가 발달하는게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니 고구려 도읍인 평양성 같은곳이야 당대에 사용될수있는 최고수준의 기술이 사용됐을 공산이 높겠죠. 그런데 전근대에 기술은 발달했다가 실전되기도하고, 알아도 필요없어서 안쓰기도 하거든요. 가령 조선의 경우 한양성곽은 아예 수비용도가 아니었습니다. 유사시엔 그냥 백성 다 피난시키고 정부는 이동하거나, 남한 산성에 틀어박히는게 작계였습니다. 산이건 구릉지건 숲이건 유목민 군대의 장기를 살리기 힘들게 만들고, 일반적으로 방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겠지요?
번개맞은씨앗
21/11/13 12:23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도움이 됐네요. 감사합니다!
고기반찬
21/11/13 11:23
수정 아이콘
(수정됨) 1. 고려는 유목민들이 활동하기에 쉬운 땅이 아니고, 종심방어를 구성하기 좋은 땅은 맞습니다. 그러나 몽골 침입 당시 2군 6위로 대표되던 고려 중앙군은 무신정변의 영향으로 붕괴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안북성 전투로 패배한 이후 무신정권은 야전에서 몽골과 싸울 의지를 포기합니다.

2. 이는 당연한게, 그 무렵 고려의 군제는 야별초를 비롯한 무신정권의 사병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고, 야별초의 손실은 안 그래도 무력에 의존해야했던 무신정권의 기반을 뒤흔들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최씨정권은 야별초를 동원해 야전을 벌이는데 매우 소극적으로 나섰고, 특히 종심 요새를 통한 방어전을 수행할 수 있는 북계 지방(대표적으로 1차 여몽전쟁 때 귀주성은 몇달 동안이나 1만 이상의 몽골군을 묶어버립니다)을 방기해버립니다.

3. 이와 같이 야전군을 구성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종심 요새라고 해도 고립당해서 각지만 지킬 수 있을 뿐입니다. 반대로 야전군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종심요새와 야전군의 조합으로 요새를 회피하며 중심지로 돌진해온 유목군대를 박살내버린게 3차 여요전쟁이구요(2차 여요전쟁 때도 통주 전투에서 사실상 중앙군이 와해되어 버렸음에도 한줌밖에 안되는 양규의 야전군이 전황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봅시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은 고려군의 저항을 분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막장 상황에서조차 몽골이 고려에서 고전한 사례는 야전군이 건재했던 당시 신롬, 프랑스를 상대로는 몽골도 고전할 가능성을 제시하며, 동시에 단기간의 캠페인으로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게 쉽지 않다는걸 보여주는 사례로 보입니다.
번개맞은씨앗
21/11/13 11:53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유럽이 고려보다 특별히 방어력이 뛰어난 원인은 없고, 고려가 몽골 상대로 애를 먹인 여러 원인이, 유럽에도 적용되어 몽골의 고전이 예상된다는 말씀이로군요. 저는 유럽의 성이, 고려보다 더 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결국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나는 고려의 내부 정치적 문제로 인해서, 중앙군이 약화되어 있는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지 않나 싶거든요. 유럽도 유럽의 정치적 취약점이 군사력에 반영되어, 그로인해 방어력이 떨어지는 결과가 될 수 있을 텐데, 그점에 대한 고려가 누락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그래서 방어력이 더 좋을 것이다는 식의 설명이 필요할 텐데요.

다른 하나는 유럽도 성만으로는 곤란하고, 성의 이점을 이용하여 원할 때 싸우는 식으로 야전군을 운영할 때, 야전에서의 대규모 전투를 잘못 판단하여, 병력을 잔뜩 잃게 된다면, 방어에 큰 어려움이 생길 텐데요. 야전에서의 대규모 전투를 의욕하는 것은 불확실한 요소로, 지휘관의 오판에 의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같거든요. 만약 투르크를 상대하던 역사적 자신감으로, 오만에 빠져 있다면 더욱 그럴 테고요.
이븐할둔
21/11/13 11:5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몽골 서방 침공 당시 기준으로 신성로마제국은 정치적 반목이 있긴해도 제국 체제에 대한 믿음은 여전했고, 방어 체제는 정상작동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대몽골 방어군 조직에 성공하지요 (몽골군이 물러가면서 매치는 실패합니다.) 프랑스 왕국은 존엄왕 이후에 포텐터져서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인구성장, 경제적 팽창, 영향력 확대가 동시에 이뤄지던 시점입니다. 사실 고려랑은 둘다 체급 자체가 두단계는 차이나고 정치적/지리적 환경이 판이한 나라들이어서 고려 사례로 분석하긴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번개맞은씨앗
21/11/13 12:10
수정 아이콘
전쟁을 하기에 정치적으로는 강건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방어에 성공할 가능성을 더 높게 봐야겠군요. 유럽이 소국들로 찢어져 있지 않고, 제국이란 점도 중요한 변수가 되겠네요.
이븐할둔
21/11/13 12:23
수정 아이콘
저도 몽골 서방원정군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정복을 해야되는데, 이 부분이 심각하게 물음표인것이지요. 좋은 논의였습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심장소리
21/11/13 12:53
수정 아이콘
당시 신성로마 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벽 뒤에 숨는 걸로 일관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컸을 테고, 회전을 벌였다면 아마 몽골군이 이겼을 겁니다. 그게 완전 정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요.
번개맞은씨앗
21/11/13 13:27
수정 아이콘
뒤에 숨는다면 정치적 부담 때문에,
회전을 벌였다면 대규모 패배 때문에,

몽골이 정복을 포기하고 철군하고 난 후,
제국이 분열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종교개혁이 더 빠르게 일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21/11/13 09:29
수정 아이콘
비운의 송나라 ㅠㅠ
몽골의 존재는 유럽에겐 오히려 행운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몽골이 없었으면 만에하나 송나라에서 산업혁명 터지거나, 이슬람 세력도 타격없이 더 빨리 발전했을 것 같고요.
다른 지역에게는 뭐든 나중에 벌어진 유럽 독무대보다는 나은 결과였을 것 같아요
Quantum21
21/11/13 10:58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사소한 단어 질문있습니다.
마지막에 "최적의 메타를 유지.."라는 말은 쓰셨는데 여기서 [메타]는 무엇을 뜻하나요? 요즘들어 이런식의 용례를 간혹 만나는데 잘 이해가 안가서 물어봅니다.
초코타르트
21/11/13 11:0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럴때는 꺼무위키로..
https://namu.wiki/w/%EB%A9%94%ED%83%80(%EA%B2%8C%EC%9E%84%20%EC%9A%A9%EC%96%B4)
이런 용법으로 많이 쓰이고 있죠
괄호 때문에 링크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데 뭘 건들어야할지 모르겠네요.
Quantum21
21/11/13 11:26
수정 아이콘
오.. 감사합니다. Meta (Most Effective Tactic Available) 라는 뜻이군요.

나무위키도 메타 항목을 찾아봤었는데 메타(게임용어) 에 해당하는 내용일지는 짐작못해서 확인안해봤던것 같습니다.
이선화
21/11/13 11:13
수정 아이콘
이상하다... 크루세이더 킹즈에서는 그야말로 신의 재앙 그 자체던데 ㅠㅠㅠ

크크크 농담이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서류조당
21/11/13 11:31
수정 아이콘
뭐 그렇다고 신롬 잡고 몽고한테 망하지는 않잖습니까?
간만에 크킹하러 가야겠네요 주말 또 순삭이겠네 크크크크
AaronJudge99
21/11/13 12:27
수정 아이콘
유럽의 진정한 공포는 역시 아틸라가 차지하는게 맞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크크 잘 읽었습니다
이븐할둔
21/11/13 12:31
수정 아이콘
아틸라는 서로마의 쇠퇴를 되돌릴수없게 만든 진짜배기죠. 크크. 다른 진정한 유럽의공포로는 오스만이 있을테고요.
antidote
21/11/14 13:08
수정 아이콘
몽골제국의 전투사례를 봤을 때 서유럽의 중기병이라고 해서 딱히 몽골이 야전에서 계속 참패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서유럽의 견고한 석조성 역시도 보호할 수 있는 인민의 숫자가 한정적인 방식이라 몽골이 주요 사용하는 역청야전술에 딱히 대단한 이점이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몽골은 잘 조직된 경기병 중심의 척후로 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석조성에 웅거한 영주가 치고 나올 때 빠지거나 역기습을 가하고 아닐때는 마을을 불태우고 물자를 약탈하는 것으로 초토화가 가능하며 그것이 이뤄졌던 것이 한반도입니다. 이러면 영주 개인의 목숨이야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역의 생산력은 박살이 나고 몽골이 물러간 후 영주가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곳곳에는 도적이 창궐하고 정규군도 부족한 자원을 두고 주민 대상으로 약탈에 가까운 세금을 징수하면서 딱히 주민 보호에 하는 건 없는 인세지옥을 찍는거죠. 서유럽을 지탱하고 인류의 미래을 열게했던 기독교적 신앙심도 회의적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결국 고려같은 경우도 무신정권이 몽골의 침입기가 끝나고 나서 밀려났거든요.
저는 그래서 한국 인터넷계에서 흔히 퍼진 중기병과 석조성은 몽골이 언터쳐블하다 이건 수십년 뒤의 노가이 칸 때에나 유효한 말이지 바투원정군 시절에는 유효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유럽 원정이 수십년 텀을 두고 재개되는게 아니라 송나라 / 금나라를 정복할 때처럼 수년간 계속 수시로 몰아치는 상태였다면 유럽의 권력자들도 지역을 수습하고 성을 축조하며 방어선을 만들 여유가 없었을겁니다.

문제는 동유럽 원정 자체가 몽골 제국의 공세종말점에 가까운 지점이었고 이후의 노가이 칸 시절의 재원정까지의 기간이 수십년 텀이 있었는데
아무리 기동력이 대단한 유목민이라지만 그들의 원래 근거지인 몽골고원 근방(중원, 강남) 근거가 될만한 유목민 배후지가 있는 지역(중앙아시아)과 달리 그것이 애매한 유럽지역에서 장기간 원정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웠을 겁니다. 그것이 증명되는 것이 노가이 칸 이전까지 바투와 수부타이 원정군의 철군 이후 동유럽에 원정을 오지 않았다는 것이고요. 한번 해보니까 그 뒤로 이걸 더 하는 것은 수지타산이 안맞거나 정치적으로 어려운 결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거든요.
몽골이 송에 투입한 전력이 몽골 유목민 기준으로 10개 투멘, 동유럽 원정군에 투입한 전력이 2개 투멘 수준이었을겁니다. 동유럽 원정군의 2개 투멘을 초과하는 병력은 중앙아시아를 원정하면서 추가적으로 규합된 기타지역 유목민 병력 / 그때그때 급조된 현지 징발병력 등등을 다 합친 인원이었을거에요. 고려를 초토화시키며 지속적으로 괴롭힌 병력이 1개인가 2개 투멘이었을겁니다. 몽골이 중원과 강남의 정벌에 진심이었기도 했지만 몽골 고원의 코어 병력이 아닌 중앙아시아 스텝의 유목민을 추가로 규합해서 동유럽같은 초장거리 원정을 마치 송나라 정벌같이 수십년의 아주 장기간동안 여러차례 뛰면서 정치적으로 규합된 세력을 유지한다? 이게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바투 원정군의 규모가 그정도밖에 될 수 없었고 1회의 원정으로 끝난 것이죠.

그리고 마자르 족에 유럽이 대응을 잘했다고 해서 몽골에도 대응을 잘했다고 보기는 좀 어려운게 군사적 역량이 전쟁없이 수십년만 지나면 쇠퇴하고 100년 200년 지나면 거의 흔적도 없어지는게 전근대의 실정이었을텐데 마자르를 잘 다룬 경험이 있다고 그 한참 뒤의 전쟁경험조차 마자르와 비교할 수 없는 몽골의 부대를 잘 상대한다는 것은 좀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현대에 와서 연구된 바로는 실전경험이나 잘 짜여진 훈련으로 조직된 장교단 / 부사관단이 유지되느냐 마냐에 따라서 전쟁역량이 크게 쇠퇴하느냐 아니냐가 결정된다는게 대세라고 알고 있는데 전쟁 없이 구술로 전해지는게 끝이었을 전근대에 대규모 전쟁이 한 100년만 없어도 이런 인적 전통은 상당부분 소실됩니다. 조선만 하더라도 일관된 국체가 유지되었지만 태조가 자신의 사병과 복속시켜 동원한 한반도 북쪽 원나라 변방 토호들의 세력 + 고려 군대로 구성했던 조선 군대는 (현실성이 없다고 결국 쿠테타가 나기는 했지만)요동정벌을 언급할 정도로 오합지졸은 아니었지만 200년 후에는 요동정벌은 커녕 아주 형편없는 군대가 되어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과거 훈족이나 마자르 등을 상대했었다고 서유럽이 몽골에 대처를 잘했을 것이라는 것은 딱히 신뢰가 가질 않습니다. 물론 이쪽은 중앙정권이 약해서 영주들의 싸움과 비기독교와의 싸움은 지속되었지만 유목민과의 싸움이 지속된 곳은 없습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21/11/14 17:41
수정 아이콘
유럽에 닿을 무렵의 몽골군은 공성능력도 엄청났습니다. 야전에만 강하다, 라는 식으로 잘못 알려졌는데, 그건 초기 몽골군이고, 나중가면 어지간한 요새 일주일 한달만에들 다 따고 다녔죠. 이래저래 몽골군이란게 신화화되는 바람에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은데, 어차피 붙어보지 못한거니 누구도 단언을 못함에도 이야기가 많을 수 밖에 없긴 하죠 후후
승희사랑
21/11/15 01:34
수정 아이콘
몽골은 철수하기 전에도 헝가리하나 끝내 완벽하게 점령 못했는데 철수 안했으면 무슨 신롬을 작살냈을꺼라고 단언하는지 이해할수가 없군요;;

그리고 그 당시 몽골에게 완전 점령단한 키예프공국 사후 분열된 조각난 루스 지역은 유럽에서 완전 3류 공국들이었고 그나마 폴란드 헝가리조차도 2류 수준이었습니다. 위에 인구수 보시면 알겠지만 신롬 프랑스 이런 나라의 국력의 몇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나라들이에요.

몽골군이 무슨 무적인줄 아시나 본데 이집트에서도 개박살나고 베트남에서도 개박살 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당시 가장 문명적으로 앞서 있던 서유럽이 몽골에 짓밟힐꺼라고 또는 어찌 될지 모른다고 막연하게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군요;;

서유럽 어쩌고 하기 전에 이미 헝가리 조차 제대로 완벽하게 점령 못한게 몽골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우리는 먼저 인지 부터 했으면 좋겠군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4048 [일반] 토막글)미국의 수학 전쟁 [23] kien.15061 21/11/14 15061 4
94047 [일반] 얀센 > 모더나 추가접종 14시간후 후기 [54] Croove15648 21/11/14 15648 5
94045 [일반] [팝송] 에드 시런 새 앨범 "=" [4] 김치찌개7485 21/11/14 7485 6
94044 [일반] 가슴이 두근거리는 굉장한 활력의 구슬. 찾아라 드래곤볼! [17] 라쇼19732 21/11/13 19732 3
94040 [일반] 무술이야기 03 한국의 일본무술 [9] 제3지대9165 21/11/13 9165 15
94039 [일반] 한국에 리메이크, 번안된 일본 가요들 [77] 라쇼22149 21/11/12 22149 11
94038 [일반] 나의 면심(麵心) - 냉면만 두 번째 이야기 [24] singularian12598 21/11/12 12598 13
94036 [일반] [역사] 몽골의 유럽 참교육에 대한 소고 [91] 이븐할둔13449 21/11/12 13449 23
94032 [일반] 주변국 국가지도자 호감도 대결 [42] 맥스훼인16497 21/11/12 16497 1
94029 [일반] 안녕하세요 가입인사 드립니다. [22] Nacht9832 21/11/12 9832 9
94024 [일반] 일본 코로나 신규 확진 214 명 (11.11) [138] 어서오고18751 21/11/11 18751 5
94023 [일반] 아그들아 이제 밤늦게 게임해도 된다. 셧다운제 폐지 [46] 오곡물티슈13483 21/11/11 13483 16
94022 [일반] 재즈 기타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팻 마티노 별세하다 [5] 아난9562 21/11/11 9562 3
94021 [일반] 김밥 먹고 싶다는데 고구마 사온 남편 [69] 담담17466 21/11/11 17466 95
94018 [일반] 헝다그룹은 파산한걸까요? [22] 롤링씬더킥18047 21/11/10 18047 1
94016 [일반]  22세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2심도 존속살해 징역 4년 [84] 삭제됨19643 21/11/10 19643 3
94013 [일반] 영화 자체보다 OST가 더 좋은 '007 No Time To Die' (스포일러 주의) [4] 아난9614 21/11/10 9614 1
94012 [일반] [스포] "남부군" (1990), 당황스럽고 처절한 영화 [52] Farce12435 21/11/10 12435 21
94011 [일반] 노키즈존이란 상품은 허용되어야 할까요? [106] 노익장13946 21/11/10 13946 15
94010 [일반] 부동산 중개수수료 협의 언제 할 것인가 [56] 밤공기14716 21/11/10 14716 4
94009 [일반] 넷플릭스 - 아케인 재미있네요(노스포) [32] This-Plus13236 21/11/10 13236 6
94008 [일반] [도로 여행기(혹은 탐험기?)] 59번 국도 부연동길 [4] giants11086 21/11/10 11086 14
94007 [일반] [책이야기] 제로 투 원(Zero To One) [12] 라울리스타8538 21/11/10 8538 1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