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6/05 15:03:14
Name 비온날흙비린내
File #1 20220510213751_hcolicwm.jpeg (434.6 KB), Download : 41
Subject [일반] (스포) 영화 카시오페아 관람 후기


6월 1일자로 개봉한 서현진, 안성기, 그리고 아역 배우 주예림을 주연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유일한 딸 지나(주예림 분)을 꽤나 가혹한 사교육을 시키다가 결국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아버지와 살아가는 30대 변호사 수진(서현진 분)이 어느 날 초로기 치매를 진단받으며 살아가는 내용을 그린 영화입니다.

꽤나 기대가 컸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신의학, 치매 관련해서 관심이 생기던 차에 굉장히 독특하게 젊은 층의 치매를 그려냈으니까요. 그렇지만 A+급 재료를 가지고 기껏해야 B+ 수준으로 요리해낸 것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스포입니다.

우선 치매 환자가 겪는 혼란, 공포를 꽤나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아침에 딸을 공항에서 배웅해주려다가 잠시 집에 들러 이메일을 보내고 왔을 뿐인데, 다시 주차장에 내려와 보니 시간은 이미 오후가 되어 있고, 차에 타고 있던 아버지와 딸이 사라져 대체 어디 갔느냐고 성을 내어 보지만 이미 아버지는 딸을 공항에 데려다 주고 온 상황이라든지, 자동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데 자꾸만 같은 길이 나와 공포감에 차를 세워버린다든지.. 하는 묘사가 꽤 괜찮더군요. 특히 공항 신은 실제로 관객조차 속여버리는 서술 트릭스러운 면모가 참 맘에 들었습니다. 딸과 화상통화를 하다 어느 순간 딸의 얼굴조차 까먹고 너는 누구냐고 묻는 모습에 아버지가 노트북을 황급히 덮어버린다든지 하는 것도 좋구요.

특히 주차장 신에서는 원래 전방 주차가 되어 있던 차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후방 주차가 되어 있다든지, 길을 헤매는 묘사에서는 반복적으로 우회전을 하면서 관객의 초조함을 돋구는 건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굉장히 젊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자부심이 넘치는 주인공이 환우회에서 만난 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늙은 환자들의 모습에 경악하며 자신 또한 그 처지로 굴러 떨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묘사 같은 것도 괜찮더군요.


다만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선 완급 조절이 좀 안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첫 신부터 깜빡깜빡하는 모습으로 치매 초기의 증상을 보이던 주인공은, 극중 초로기 치매의 진행이 극히 빠르다는 묘사대로 정말 빠른 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치마를 입는 걸 까먹질 않나, 종이를 씹어먹질 않나, 지남력이 거의 완전히 상실되었다고 하질 않나. 작품 초중반의 묘사도 이러한 악화되는 모습을 사실적이고 고통스럽게 묘사하는 데 집중해 관객에게 상당히 불쾌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의도한 부분이겠죠.

문제는 초반에 이러한 묘사가 너무 강하게 묘사되다보니 중후반부 부터는 병세의 진행이 딱히 느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법정에서 실금을 할 정도면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로는 오히려 그다지.. 악화된 모습이 부각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의사는 아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중반부에 관객을 마구 몰입하던 병증들에 대한 묘사가 중후반부 부터는 많이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완급 조절의 문제 뿐만 아니라, 사실 치매 문제를 다룰 때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가족이고 나발이고 환자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 치매 환자 수발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까지 진행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부성애와 치매 간병의 고통 사이의 갈등 같이 매력적이고 중요한 소재를 지나쳐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젊어서는 외국에서 일하면서 자식을 챙기지 못하다가 늦은 육아를 하게 된 무뚝뚝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작위적으로 딸과 아버지를 미국으로 치워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딸에게 자신의 치매 사실을 숨기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남편에게 전혀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듯한 모습은 조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작중 내내 남편을 철저히 병풍취급 하는데, 아내가 길어야 1년밖에 못 산다는 상황에서, 심지어 재판까지 받는 상황에서 남편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묘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이런 중요한 문제를 배우자한테 알리지 않는다구요?

작중의 성폭행 미수 신도 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환우회에서 만난 사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아버지가 젊은 여성의 몸에 자기 방어 능력은 유치원생만도 못한 딸을 다른 외간 남자에게 맡길 지 좀 이해가 안 갔습니다. 만일 그대로 성폭행이 일어났다면 정말 과도하게 불행을 주입한 면이 있었겠지만, 딸을 걱정한 아버지가 미리 외우게 시킨 거부 의사를 밝히는 법 덕에 딸을 구할 수 있었다, 즉 무뚝뚝한 아버지의 부성애가 딸을 지켰다 이런 메시지가 들어간 덕에 조금 괜찮은 신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외엔 소소하게 유치원생 내지는 초등학생 저학년(다니는 곳이 영어 유치원인지 아님 학원인지 잘 모르겠네요)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딸의 대사가 아무리 조숙한 아이일 지언정 너무 어른스럽다는 느낌, 작중 반복해서 나오긴 하지만 대체 주제 의식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를 카시오페아와 북극성, "엄마는 내 앞에서는 울었으면 좋겠어"같은 대사도 좀 사족이란 느낌이었구요,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동안 산악회를 뭣 모르고 따라갔다가 산에서 헤매고, 그러다가 별자리를 보고 도착한 곳이 과거 아버지, 딸과 함께 캠핑을 했던 장소였더라.. 는 부분도 좀 늘어지고 주제 의식이 불분명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뜬금없이 나오는 딸의 영어 나레이션은 진짜 뭐지 싶었구요.

게다가 마지막 신에서 수진이 산을 한참 헤매다가 살던 아파트에 어찌어찌 돌아와 우연히 마주친 게 딸이었다라.. 아니 아빠랑 딸은 대체 또 언제 한국에 돌아왔단 말입니까? 장인어른이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어찌어찌 듣고 한국에 급히 돌아왔다 치면 당연히 수진이 실종된 것을 알고 있어야 할 텐데 너무 느긋하게 단지 내를 돌아다니다 마주친다라.. 어... 이건 좀...


젊은 층에 발병한 치매라는 훌륭한 소재를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매력적으로 다뤄내는 데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던 영화 같습니다. B0~B+ 정도가 적당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살려야한다
22/06/05 15:43
수정 아이콘
혹시 [더 파더] 안 보셨으면 추천드립니다 흐흐
비온날흙비린내
22/06/05 15:51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합니다!
비온날흙비린내
22/06/06 00:27
수정 아이콘
보고 왔습니다! 제가 원하던 관객조차 뭐가 뭔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돈, 그리고 환자가 겪는 공포와 고통, 부양자들이 겪는 갈등을 굉장히 잘 그려낸 수작이네요. 추천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살려야한다
22/06/06 09:11
수정 아이콘
치매 환자가 겪는 혼란 묘사가 마음에 드셨다길래 추천해봤습니다 흐흐 대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가 더해지니 드라마 영화가 공포 스릴러 영화로 느껴질 만큼 잘 표현됐더라구요.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
웃어른공격
22/06/05 16:11
수정 아이콘
가시오가피들과 키배를 뜨던 지난날이 떠오르는 제목이군요...
22/06/05 19: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리뷰를 한번 적어볼까 했는데, 먼저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영화의 소재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치매 영화들과 다르게 초로기 치매를 다뤘다는 차별점 외에 사실 스토리와 전개는 뻔하거든요.
다만, 배우들 연기가 좋습니다. 어려운 연기이니만큼 어색한 점이 느껴지면 몰입감이 깨질텐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영화 내내 가슴 먹먹함과 마지막에 안도감, 그리고 눈물 약간 흘릴 정도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2회차를 해보고 싶긴 한데, 상영관이 많이 없어서 아쉽네요.
비온날흙비린내
22/06/05 19:25
수정 아이콘
연기는 확실히 다들 호평이더라구요.

서현진씨의 연기는 말해봐야 입만 아픈 수준이겠죠. 치매가 진행되며 의식이 불분명해져 공허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텅 빈 눈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눈물이 흐르는 장면은 정말 대단하다 싶었고..

안성기씨도 처음에는 너무 무뚝뚝하고 감정 변화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또 감정 표현을 잘 할줄 모르지만서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인 아버지가 고뇌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 거 같습니다.
22/06/05 19:35
수정 아이콘
처음에 안성기 배우와 서현진 배우 연기톤이 달라서 좀 이질적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합이 훌륭해지더군요. 근데 분위기가 너무 답답해서 연기를 제대로 못봐서 아쉬웠습니다. 하하...
무적LG오지환
22/06/06 09:38
수정 아이콘
각본이나 연출 군데군데 엉성한 곳도 좋은 연기로 떼우고, 감독이 관객을 울려야겠다고 맘 먹은 곳에서도 배우들의 힘으로 확실히 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역배우도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요새는 아역 배우들도 연기 참 잘하네 싶었습니다.
본문에 적어주신 미국에서 돌아온 딸이 수진의 팔목을 낚아챌 때만 해도 '여기서 이렇게 만난다고?'라고 생각했는데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하니 금방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나스닥
22/06/06 12:06
수정 아이콘
리니지 땡기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779 [일반] [디플]미즈 마블 1화 리뷰(스포) [14] 타카이7485 22/06/09 7485 1
95777 [일반] 남성이 과한 대우를 받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 [112] Gottfried16641 22/06/09 16641 22
95775 [일반] 덕후들의 희망이 될 수도 있었던 게임....[프로젝트 세카이]에 수록된 뮤지션들의 곡을 소개해봅니다 [35] 요한나13729 22/06/08 13729 8
95773 [일반] 싸이의 흠뻑쇼와 물 이야기 [83] 오곡물티슈15118 22/06/08 15118 5
95771 [일반] <브로커> - 날카롭지만 무딘 칼날. (결말스포) [15] aDayInTheLife7771 22/06/08 7771 5
95770 [일반] 베르세르크, 연재 재개 결정 [22] 소서리스9345 22/06/08 9345 6
95764 [일반] 국민MC송해님이 별세하셨습니다. [31] 강문계8038 22/06/08 8038 7
95763 [일반] 창문을 열고 자다 [14] League of Legend6977 22/06/08 6977 6
95762 [일반] 개인적 경험, 그리고 개개인의 세계관 [65] 烏鳳14738 22/06/07 14738 76
95761 [일반] 뱅크샐러드 유전자검사 결과수령 [29] League of Legend15117 22/06/07 15117 1
95760 [일반] 쿠팡플렉스 후기(하면 안되는 이유 리뷰) [36] 미네르바39219 22/06/07 39219 23
95759 [일반] 우리는 일본의 무엇을 경계해야하나 [125] 노익장14872 22/06/07 14872 30
95757 [일반]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어요 [12] 及時雨7474 22/06/06 7474 26
95756 [일반] 컴퓨터 견적 봐드리다 뵙는 특이한 케이스 (빌런 X) [45] SAS Tony Parker 12262 22/06/06 12262 16
95755 [일반] [우크라이나 전쟁] 세베르도네츠크 공성계 [104] 된장까스14884 22/06/06 14884 35
95754 [일반] [스포없음] 탑건: 매버릭 감상평 [22] Nacht9931 22/06/06 9931 9
95752 댓글잠금 [일반] 전라도가 싫다. 조선족이 싫다 [425] 노익장31379 22/06/05 31379 122
95751 [일반] (스포) 영화 카시오페아 관람 후기 [10] 비온날흙비린내7307 22/06/05 7307 1
95750 [일반] 몇 년 전 오늘 [17] 제3지대9139 22/06/05 9139 27
95749 [일반]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100일 [85] VictoryFood16818 22/06/05 16818 5
95748 [일반] 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 특별기획 - 배캠이 사랑한 음악 100(7) [6] 김치찌개5682 22/06/05 5682 7
95747 [일반] 웹소설 후기 - 킬 더 드래곤 - ( 약간의 스포주의! ) [20] 가브라멜렉7888 22/06/04 7888 2
95745 [일반] 요즘 본 애니 후기 [20] 그때가언제라도8693 22/06/04 8693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