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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8/25 14:12:35
Name comet21
Subject [일반] [역사] 이북에 두고 온 인연, 이북에서 되찾아온 인연 (수정됨)


분단과 6.25 전쟁은 그동안 하나의 생활 공간이었던 한반도를 단절시켰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고, 분단과 전쟁 전 싹트고 있었던 사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옛 글들을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과거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생활권이었던 사람들의 기록에 이 분단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래는 이북에 두고 온 연인을 수십 년이 지나 회상하는 글입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주혁순 씨의 중학교(지금의 중고등학교) 동창회지 기고문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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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주머니의 주인공이 누구일 거라고 짐작은 하셨을 것이다. (함남중학) 31회 김진곤 군의 누나다. 함남고등여학교(함남고녀) 1년 아래의 여학생이다. 그러니까 8.15때 그녀는 졸업반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진 같은 학년이었다. 중학 입시에 한 번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이 실패와 우리 집과는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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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중학교(함흥고등보통학교)]


당시의 소학교엔 치맛바람이 없었다. 경제사정도 그랬지만 사회 풍습이 허용치 않았다. 그보다 우리들의 평균적 어머니들은 일본인 교사와의 의사소통이 여의치 않았다. 일어에 익숙치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소학교를 자주 찾는 3학년 반장의 어머니가 있었다. 집이 금정(함흥의 거리명) 소학교 근처인 도립 병원 뒷길 길가여서 그들 가족을 보게 되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동갑쯤 되어 보이는 누나도 있었다. 오늘 같으면 같은 학교의 급우일 수도 있지만 당시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남자 소학교와 여자 소학교가 따로 있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도 남녀 혼성 학급이 정서면에서 효율적이라는 오늘의 남녀공학 예찬자이기도 한 그 많은 교육학자들은 왜 그때엔 없었는지 원망스럽다. 그의 누나는 사까에마치(寧町) 소학교의 급장이었다.


6학년 3학기가 되면서 중학 입시 이야기가 입에 오르게 된다. 하루는 그녀 모녀가 어머니를 찾아왔다. 그녀의 입시 문제를 상의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님이 입시 전문가는 아니다. 아들의 입시 문제에도 천하태평인 어머님이었다.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당연히 붙겠지라는 당신의 아들에 대한 믿음에서인 것을 나는 잘 안다. 사실은 내 누나가 그때 경성여자사범학교 심상과에 다니고 있었다. 여자사범은 한국 땅엔 서울과 공주 단 두 곳에만 있는 한-일 공학의 제일 명문이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그녀를 경성여자사범에 보내볼까 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보기 좋게 낙방했다. 그래서 여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갔다. 북선전기(당시 한반도 이북의 배전 회사) 사택 촌이 우리 춘일정 후면의 충혼탑 근처에 세워졌고 몇 안 되는 한국인 직원 입주자 가운데 중 그녀의 부친이 뽑혀 그녀와의 지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동생 김진곤 군도 함남중학에 입학했다. 그녀의 부모와 형제의 양해 하에 그녀의 집에 자연스럽게 출입하게 되었다. 나의 부모도 너무 늦게 다니지 말라는 다짐을 할 뿐이었다.


그녀의 집은 북선전기 한국인 미혼 사원의 살롱이기도 했다. 한국인 직원 가운데 그녀의 아버지가 최상위직이었던데다 부하를 사랑했고 그녀의 모친도 사교적이어서 휴일엔 젊은 사원들이 모여 놓곤 했었다. 징용 면제를 위한 모임이었는지도 모른다. 북선전기는 국책 회사여서 직원은 형식상 현지 징용이었다. 그래서 다른 곳에 징용될 염려가 없었다. 광복 후 해군소장, 이란대사를 역임한 영생중학 현시학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현 대사는 우리가 자랑하는 병리학자인 현봉학(함남중학 23회. 흥남철수의 공로자) 선배의 동생이기도 하고, 국제 플레이보이임을 자랑하는 영생중학 출신 피터 현 군의 형이기도 하다.


중학교 동기(함남중학 28회)동창 중 지금은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묘지에 잠든 송수근 군이 있다. 이민 전 다른 동기생이 부러워할 만큼 친하게 지냈다. 작고한 송외과 송영명 군이 우정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물은 적이 있었지만 그땐 웃고 말았다. 우리는 아카시아 동산을 45년 3월에 떠났다. 단말마의 일제는 전력 동원에 미치고 있었다. 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한 덕택에 우선 한숨 돌린 나와는 달리, 송 군은 징병까지는 몇 년 여유가 있었으나 징용 걱정에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함께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당돌하게도 북선전기에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십사 하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예상대로 무위로 그친 부탁이었다. 그러나 그게 송 군에게는 나와의 우정을 더욱 돈독케 한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 집은 운흥리 예배당 앞 공지 끝에 있었다. 이 공지에 부지사 격인 함경남도 내무부장 관사와 북선전기 사장의 사택이 울타리를 접하며 나란히 신축된 것이 44년이다. 해방이 되었다. 일본인 내무부장도, 일본인 북선전기 사장도 집을 비웠다. 그 사택에 그녀의 가족이 이사왔다. 이제 우리 집과 그녀의 집 거리는 100미터의 지근거리다. 유행가 속 “100미터 앞에 두고”가 실현된 것이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한 달도 못돼 그녀 아버지는 평양 전기총국의 주료 자리로 전근한다. 이래서 100미터 앞에다 두고는 함흥과 평양의 거리로 다시 멀어졌다.


그후 나는 상경해서 입시를 치르고 귀향했다가, 다시 짐을 꾸려 배로 고향 함흥을 떠났다. 평양 간 뒤로 소식이 없는 그녀의 부모를 비롯한 전 가족에게 조금은 매정함을 나무라는 말과 짤막한 송별의 글을 써서 부쳤다. 어느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글도 곁들인 글이었다.


몇 년이 흘렀다. (1947~48년경) 남북 우편물 교환이 있었다. 청량리 학교(경성대학 예과)에 생각지도 않았던 그녀로부터 편지가 왔다. 결혼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글이었다. 상대는 그쪽(북한) 정부의 과장급 청년이라고 했다. 고향 떠난 백면서생이 무어라 회신할 수 있었겠는가.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라 답장을 보넀다. 한달쯤 있다가 다시 편지가 왔다. 변명이 섞인 “시집갔노라”라는 글이었다. 동생이 누나의 처사에 마지막까지 비난했었다는 구절이 어쩐지 마음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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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전 동산병원으로 전용된 경성대학 예과 교사(2015년 건물 철거)]


전쟁 때 외과 군의관인 몽양 여운형 선생의 조카와 친하게 지냈다. 어느날 저녁 술 한 잔 마신 뒤의 이야기 끝에 그의 중앙중학교 동창인 한 친구가 해방 후 고향 평양으로 귀향한 여자의학전문학교(고려대 의대 전신) 다니는 연인을 찾아 38선을 넘어 연인의 부친과 담판하고 데리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5공 때 한창 깃발을 날렸던 채 모 씨다. 그런데 나는 “유구무언입니다”였다.

(함남중학 동창회지 반룡 제7호,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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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채 모 씨는 5공 때 국회의장을 역임한 채문식입니다. 70년대까지는 야당인 신민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나, 80년대 당적을 민정당으로 갈아타 5공 시절 국회의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채문식의 인터뷰에서 결혼까지의 일화를 엿볼 수 있는데, 월남한 이북 출신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일화였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이북에 두고 온 연인, 가족들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고향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데려왔다면 어땠을까, 그리움과 아쉬움, 후회가 섞였을..


아래에는 채문식 전 국회의장의 인터뷰 중 일부를 따왔습니다. 해방 전후의 행적과 부인을 되찾아온 스토리가 실려 있습니다. (조선일보, 1983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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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23세에 군수도 하셨다는데 고등고시도 없던 당시에 어떻게 행정관리가 되셨나요.?

채문식 : 『문경 산골 촌놈이 경성제대 법과(당시는 문과 갑류)에 들어갔더니 장차 군수나 판검사 하라고 야단이었어요. 그러나 나는 고시 준비를 몹시 경멸하고 인류 문화사니 경제사 강의를 즐겨 듣는 등 삐딱하게 나갔고, 마침내 사상범으로 경찰서에 끌려다니고 함흥 형무소에 7개월 수감되었다가 해방 덕에 풀려나왔지요.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을 낙방시켰던 게요. 내 기분엔 일제의 관리 노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깔보던 군수를 나중에 하게 됐지요. 정부 수립 직후 고향 선배인 한성일보 주필 양재하 씨(2대 의원, 납북) 댁엘 놀러갔더니 문경 사람들이 모여 「고향의 군수 할 사람을 우리 유지가 추천하자」 고 해서 윤치영 내무부 장관에게 추천하며 군수가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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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문식 전 국회의장]


채 군수는 고시 출신 아닌 민선의 목민관이었음을 강조했다. 휘하의 면장 중엔 국민학교 졸업식때 상장을 주었던 당시의 면장이 그대로였고, 선친의 친구분들이 태반이어서 자네는 군수니까 우리 앞에서 담배를 태워도 괜찮네 할 정도의 분위기였단다. 새재 밑에 있던 군청을 한밤중에 트럭을 동원해, 더 교통중심지인 점촌으로 옮겨 말썽이 됐던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후 경상북도의 공보과로 좌천되었다가 그는 두 번째로 문경 군수가 됐다. 2대 국회의원에 출마할욕심으로 사전 공작을 위해서였다.


피선거권이 만25세인데 11월 13일생이어서 5윌 30일 총선에 맞추기 위해 호적의 생일을 10개월 앞당긴 1월 16일생으로 정정하는 절차를 밟았다. 의사 진단서와 증인 7명을 내세워 법원의 허가를 얻었으나 아무래도 선거 때 말썽이 될 것 같아 출마를 포기하고 도청으로 돌아왔다. 그때 당선된 분이 납북된 양재하 씨였다고 한다. 곧이어 6.25가 터지고 한때는 공보처의 과장직도 겸직하면서 12년 동안을 내무 공무원으로 있었다. 4.19때는 내무부 서기관으로 있으면서 방콕의 ECAFE(극동경제위원회) 주재관으로 파견되어 있었다.


기자 : 젊었을 때부터 학생 운동이며 옥살이를 하시는 등 정치 지향이 매우 강하셨군요.

채문식 : 『사람의 일생은 이상한데서 전기가 생겨요. 나는 중앙고보에서의 5년간 교육이 인생 행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어요. 북의 오산학교와 더불어 우리말로 민족교육을 했으니까요. 해방 이틀 후 함흥에서 오는 길로 현상윤(납북) 교장을 찾았지요. 현 교장께서 명함을 써주시면서 나가는 길로 원서동의 송진우 선생 댁에 인사를 드리고 가게 하셨습니다. 교장실을 나서니 서울대 철학 교수로 가신 신남철 선생이 그리로 가지 말고 며칠 후 풍문여고에서 공산당 재건 발기 대회가 있으니 자네가 젊은 사람을 많이 모아주게 하셔요. 일제 때는 그처럼 친하시던 두분이 벌써 입장이 달라지신 거예요. 그것이 내게도 갈림길이었어요, 며칠 후를 기다리기보다 당장 고하(송진우) 댁엘 갔지요. 그때부터 소위 우익학생으로서의 투쟁이 시작됐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정치하는 학생이 됐지요. 』


45년 8월부터 49년 9월 문경군수가 되기까지 20대 초반의 채문식 청년은 정력적인 인생의 개화기를 맞은 셈이다. 학생이면서 교사였고 또한 신문기자였다. 서울대학의 학생위원장으로서, 학련의 최고간부로서 학생 정치운동가였다. 부인 김성숙 (57·산부인과 의사) 여사와 연애하고 결혼한 것도 이때였으니, 하고 싶은 일은 모두 다하는 의지와 집념의 사나이였다.


기자 : 부인께 머리가 안 올라가는 분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채문식 : 『향설과는 달라요. 오히려 내가 「시집 잘온줄 알라」 고 되풀이 주입시켰더니 안사람도 「그런것 같다」 고 생각하는 듯 반복교육의 효과가 나는 듯 해요.


기자 : 정치 사교면에서 내조의 공이 크다 하던데요?

채문식 : 『난 안사람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지요. 내가 청렴한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요. 평생 내 자신이 수표나 예금통장 등 은행 거래를 해본 일이 없어요. 애들이 공납금을 내게 달라고해본 적도 없고 나를 보좌하는 사람들도 지구당 경비등 돈 문제는 나에게 얘기해본 적이 없머요. 집사람이 왜 정치에 뛰어들어 고생시키느냐고 투정할때마다 난 마누라 잘못 얻어서 그렇다라고 대꾸합니다. "당신이 (나 대신) 집안 걱정과 선거구 걱정하니 내가 정치하지 안 그랬으면 일찍 그만두고 다른 보람된 일들 했지 않겠느냐"고 역습합니다. 난 경상도 사람이라 물렁한데 안식구는 ‘평양 출생이라 그런지 생활력이 강해요.』


남남북녀가 결연된 사연을 들으면 광주 항일 학생운동과 필사의 탈출 같은 영화를 복합시켜 놓은 듯하다. 일본인 학생이 경성여의전(고려대 의대) 학생들을 운동장에서 희롱하는 것을 용감한 채문식 청년이 일갈하여 쫓았다. 이를 계기로 제대생과 여의전생은 사랑하게 됐다.


해방 후 김 양은 평양으로 돌아갔고 곧 38선이 그어졌다. 46년 1월 채 청년은 개성까지는 기차를 탔고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평양엘 갔다. 주소도 모른 채 천신만고 끝에 평양 기림리의 김 양의 집 문을 두들겼다. 마침 지나가다가 문패를 보고 들린 사람처럼 첫마디부터가 어색하게 둘러대는 것으로 회포를 풀었다. 고풍의 사랑 기법은 직설적이 아니라 간접 화법이게 마련이다. 그때만 해도 대학생이라고 하면 딸을 맡겨줄 만한 때여서 김 양을 데리고 20일 만에 돌아왔다. 처가 식구는 그 후 6. 25때 국군이 평양 입성할 때 모셔왔고 그전에 서울에 돌아온 직후 둘이 자취를 해가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학 중에 결혼식을 올렸단다.


채문식 : 『올해가 결혼 37년째입니다. 집사람이 선거 빚이나 집안일로 짜증을 낼때면, "내가 평양가서 데려 오지 않았느냐"고 일갈하여 입다물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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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5 15:11
수정 아이콘
평양 까방권..
빼사스
22/08/25 17:42
수정 아이콘
e-book으로 착각해서, 뭔가 책 모임에 얽힌 러브스토리인 줄..
o o (175.223)
22/08/26 01:37
수정 아이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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