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gage) 부실대출에서 촉발되어 미국 최대 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2008년 미국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세계 금융시장과 채권시장,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나라가 1997년 IMF 구제금융 전후로 경제의 체질과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무려 3천만명이 해고되었고,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엄청난 사건의 원인과 과정,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다룬 여러 영화들도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이를 다룬 관심있는 분야의 영화들을 보고 볼 만한 몇 가지 영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보기 싫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하시면 됩니다.
1. 빅 쇼트 (Big short, 2016)
크리스천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들 중에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무엇인지, MBS(주택저당증권), CDO (부채 담보부 증권) 같은 파생상품의 개념에 대해 중간중간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적절한 비유를 통해 설명해 줍니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 거대한 버블이 끼어있다는 것을 눈치챈 서로 다른 4그룹의 사람들 (마이클 버리, 마크 바움, 자레드 베넷, 벤 리커트-핀 위트록-찰리 겔러) 이 미국의 부동산 시장의 하락에 배팅하는 공매도를 치고 그 작전이 성공하여 거대한 수익을 얻게 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 과정에서 은행들이 미국의 부동산 대출을 얼마나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해주었는지, 그것도 모자라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파생상품을 얼마나 위험하게 관리했는지 은행들과 신용평가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결말에는 결국 자산시장의 붕괴 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고통을 겪었지만 정작 그 부실을 일으킨 은행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처벌없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여운을 남깁니다.
이름만으로도 화려한 출연진들의 명연기와 해학적인 위트로 지루하지 않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2. 마진 콜 (Margin Call, 2013)
케빈 스페이시, 제레미 아이언스, 데미 무어, 재커리 퀸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하루 전날부터 당일 오전까지의 24시간동안 일어나는 일을 다룬 영화입니다.
예고없는 인원감축으로 당일 퇴직통보를 받은 리스크 팀장으로부터 USB를 건네받은 MIT 출신의 애널리스트 피터는 팀장으로부터 파생상품(CDO)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당일 저녁까지 남아 그 USB의 내용을 검토하다가 엄청난 위험을 알아채고 퇴근하고 클럽에 간 자신의 상사를 호출하게 됩니다.
이후 연달아서 상사의 상사, 또 그 상사의 상사가 연이어 호출되고 급기야 그룹의 회장까지 새벽에 호출되어 회의를 하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파생상품에 부도가 날 경우 그 손실액이 그룹의 시가총액보다 많으며, 그 위험은 이미 이전 주부터 발생하였다는 것이고, 그룹의 존망을 걸고 그 위험을 없애기 위해 다음날 그 CDO를 처리하기 위한 작전을 실행하는 것이 내용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의로 자신의 고객들에게 쓰레기나 다름없는 파생상품을 팔아넘기려는 회장과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샘 로저스의 불꽃튀는 설전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금융업계의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고 냉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비인간적인 미국의 해고 시스템과 그것이 불러온 역효과를 은연중에 비춥니다.
골드만 삭스를 배경으로 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빅 쇼트와는 달리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지만 화려한 출연진의 이름값답게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시종일관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3. 투 빅 투 페일 (Too big to fail, 2011)
영화 제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대마불사'입니다. 빅 쇼트에서 신랄하게 비난한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대형은행들의 임원진들이 처벌받기는 커녕 오히려 구제금융으로 살아나게 해 준 내막을 어느정도 알게 해 주는 영화입니다.
미국 5위의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가 파산하고 리먼 브러더스마저 부도의 위기에 처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정부와 연준에도 비상이 걸립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재무장관 헨리 폴슨과 연준의장 벤 버냉키, 그리고 미국 최대의 은행장들입니다.
이를 가만 두면 연쇄도산으로 미국, 나아가서 세계 경제의 시스템이 붕괴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외국에 리먼 브러더스를 매각하려고도 하고 (놀랍게도 여기에 한국의 산업은행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산은이 리먼브러더스를 매수할 뻔한 아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워렌 버핏에게 인수할 것을 요청해 보기도 하나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가고 이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기정사실화 된 상태입니다.
헨리 폴슨은 결국 미국 최대의 은행장들 (JP Morgan, Morgan stanley, Citi group, Goldmann Sachs, BOA, Wells Fargo)을 모두 소집하여 너희들의 탐욕으로 벌어진 일이니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ING 까지 여기에 엮여 있고, 영국과 일본의 은행이 이들 일부를 인수하려고 하지만 이미 신용이 없는 상태에서 확실한 보증 없이는 인수가 무산될 것이 확실시 된 상태여서 결국 미국의 은행이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통해 이들 은행들을 살리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무리한 경영과 위험한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로 경제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은행들이지만 이미 너무나도 거대해진 은행들을 망하게 내버려 둘 경우 그 파장이 너무 커서 망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는 씁쓸한 결말이 제목 그대로를 표현해 줍니다. 출연진들이 아주 유명한 배우들은 아니지만 현실인물들과 정말 비슷하게 생긴 배우들 (워렌 버핏은 진짜 워렌 버핏같음...)이 등장하여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좀 더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4. 인사이드 잡 (Inside Job, 2011)
글로벌 금융위기가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파헤친 다큐 영화입니다.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금융위기에 관련된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내용입니다.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월가의 개xx들, 정치인 개xx들입니다.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 단순한 예금과 대출업무 정도에만 국한되어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미국의 은행들이 레이건 시절 메릴린치의 CEO가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부터 각종 규제완화가 시작되었고, 고객들의 돈으로 투기를 하다가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오히려 월가의 로비로 인해 민주당과 공화당 할 것 없이 정치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클린턴 시절에 투자은행과 저축은행의 분리규제가 없어지며, 무리한 투자를 하다가 IT 버블의 충격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역시 규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냉전이 종식되고 물리학자, 수학자들이 월가로 진출하면서 CDO 같은 금융 파생상품이 만들어지고 천문학적이 규모로 불어나지만 이의 위험에 대해 어떠한 규제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최고 채권자였던 리먼 브라더스와 이를 보증하는 신용부도 스와프를 가지고 있던 최대의 보험사 AIG가 부도가 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됩니다.
레이건 - 클린턴 - 부시 행정부에 이르는 동안 월가의 엄청난 로비로 온갖 규제가 철폐되고 대출은행과 투자은행의 합병, 위험한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없어지는 과정, 그리고 이를 비판해야 하는 교수들이 월가의 지원을 받아 이를 옹호하는 논문을 써 줬던 사실, 정치권에서도 이들이 퇴임 후 자신이 규제해야 했던 월가의 은행으로 영전되어 갔던 사실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융위기를 불러온 부시행정부를 공격하여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조차 오히려 월가의 지원을 받고 위기를 일으켰던 장본인들을 자신의 행정부에 임명하였다는 사실을 공격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인터뷰에 응하지조차 않았다는 사실과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중 상당수도 오히려 뻔뻔하게 잘못이 없다는 식의 태도로 나와 영화를 보는 이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듭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지루하지 않고 감정이입을 하며 볼 수 있게 만든 훌륭한 영화입니다.
5. 더 컴퍼니 맨 (The Company Men, 2010)
밴 애플렉, 크리스 쿠퍼, 케빈 코스트너, 토미 리 존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수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나간 직후 미국의 한 회사를 배경으로 한 가장이 '실직을 당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그려낸 영화입니다.
어린 아이가 둘 있는 30대의 영업부장 바비 (밴 애플렉)
30년간 회사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딸을 사립대학에 보내야 하는 50대의 필 (크리스 쿠퍼)
회장과 함께 창립멤버이자 대주주이며 부사장을 지낸 진 (토미 리 존스)
이 3명이 구조조정으로 인해 모두 한순간에 실직을 하게 되며, 그것이 각자의 가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생생하게 담아냅니다.
애써 태연한 척 가족들에게 실직을 숨기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직장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점점 가진 돈이 떨어지면서 가족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똑같이 실직을 하더라도 젊은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의 처지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퇴직을 당해도 가진 자산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의 처지가 다르다는 점을 대비시켜 줍니다.
영화는 약간의 비극과 약간의 해피엔딩이 버무려져 있지만 현실에서는 해피엔딩보다는 오히려 비극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해 주는 영화입니다.
P.S. 이 외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직장을 잃고 파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라스트 홈 (99 homes, 2016)이 있습니다.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인데 아직 보지는 못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