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2/13 17:40:39
Name 계신다
Subject [일반] 슬램덩크 모르는 사람의 극장판 후기 (스포X) (수정됨)
자기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중반 개발자입니다.

저와 제 주변 친구들은 만화책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습니다.
만화방 자체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고, 몇 남지 않은 만화방들도 불량한 형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게 슬램덩크는 이름만 들어본 만화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보았나?

어느 날, 회사 동료에게 슬램덩크 극장판을 꼭 보라는 추천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상기 작성한 것처럼 슬램덩크를 잘 모르고, 천생 공부돌이로 살아오느라 평생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기에 농구 룰 또한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기에 영 재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 거절했었습니다.

허나 며칠간 세 명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고, 팀 주간회의에서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속는 셈 치고 한번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표를 예매했습니다.
(세상에 영화표가 만오천원이더군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영화관에 들어가 무려 10분간 진행하는 광고를 다 볼 때까지만 해도 이 선택이 과연 영화관까지 왔다갔다 하는 수고를 감수할 정도의 가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리가 풀리고 담까지 온 제가 청소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퇴장할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무난한 성장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을 몰라도 주요 이야기 흐름이 예상되는 왕도적인 스토리 말이죠.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스토리에 대한 생각 자체는 아주 무난한 흐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나 이 영화의 진가는 연출에 있었습니다. 작은 코트 속 열 명의 사람, 한 개의 공을 가지고 만든 기나긴 경기 씬이 여느 삼국지 영화 속 백만 대군의 충돌보다도 훨씬 더 긴장됩니다.

슬램덩크를 몰라도,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못 외워도, 일본 문화를 잘 몰라도, 심지어 농구를 모르는 관객까지도 경기장 속에 끌어당깁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회상들은 경기장 속에서 고조된 관객의 감정을 마구 쥐어 흔듭니다.


마침내 피날레를 찍는 경기의 종반에는
사람이 꽉꽉 들어찬 영화관이 소름끼치도록 고요했습니다.


영화 중반부부터 경기장에 빨려들어간 저는 몰입하고, 눈물 흘리고, 덜덜 떨고, 열광하며 근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폭풍같이 몰아치던 감정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에 비로소 경기장에서 풀려나온 저는 다리도 같이 풀렸고,
억지로 일어서다가 담도 같이 와 청소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고서야 무사히 상영관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총평

이렇게 사람을 쥐고 흔들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영화였습니다.

원작을 본 적은 없지만, 액션 만화책을 영화화했을 때 연출 부분에서 바이블에 가까운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를 마음 속 인생 영화 5위에 랭크시킨 저는 슬램덩크 극장판 전도사가 되어
오늘도 주변에 열심히 영업하고 있다는 후기 전해드리면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긴 소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하루 되셔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及時雨
23/02/13 17:42
수정 아이콘
이제 만화책 보세요 호호
계신다
23/02/13 17:55
수정 아이콘
판매량이 불티나게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계란말이매니아
23/02/13 17:51
수정 아이콘
더빙판으로 보셨나요 자막판으로 보셨나요
계신다
23/02/13 17:55
수정 아이콘
자막으로 보았습니다. 영상물에서 원본의 느낌을 흐리는 듯하여 더빙은 선호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김건희
23/02/13 18:26
수정 아이콘
더빙으로 한 번 더 보시고, 만화책 정주행 고고씽~
페스티
23/02/13 17:57
수정 아이콘
오우 재미있게 보셨군요. 좋은 경험담 훈훈하네요!
계신다
23/02/14 10:33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공노비
23/02/13 18:37
수정 아이콘
꼭 만화책보시길 중학교때 만화책감동때문에 용돈모아서 산 슬램덩크전권이 삼십대 중후반이되어서도 간직한상태로 아직도 간간히 읽고있습니다. 정말 인생만화입니다
계신다
23/02/14 10:34
수정 아이콘
꼭 보겠습니다. 만화카페 찾아보아야겠네요 …!
Janzisuka
23/02/13 20:27
수정 아이콘
저도 너무 좋았어요
이민들레
23/02/13 21:48
수정 아이콘
슬램덩크는 문방구에서 팔았는데..
외국어의 달인
23/02/13 22:02
수정 아이콘
저는 좀전에 보고 귀가했습니다. 더빙으로 보고 싶었는데 자막판만 있던터라 아쉬웠습니다. 막판에 휘몰아치는 사운드와 속사포같은 캐릭터의 움직임이 피를 끓게 하였습니다. 저도 농구 잘몰라요 하하하
허세왕최예나
23/02/13 22:28
수정 아이콘
제발 e북 좀 ㅜㅜ
EK포에버
23/02/13 23: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두번 이상 보면..왜 그 타이밍에 이 회상이 들어갔는지 이해되면서 몰입도가 더 커지는 걸 느끼실 겁니다.

예를 들면 과거 초딩 경기때 전반전은 잘 나갔지만 후반에 상대편 에이스들이 투입되면서 경기가 잘 안풀리고..큰 거 아닌 것 처럼 보이는 부상에 손목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서 결국 경기 빠지죠..전반은 잘 풀렸지만 시작하지 마자 막히는 산왕전 후반 시작과 함께 이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 신과 연결해서 나중에 엄마가 잡으러 갈려다가 그만 두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때 엄마는 태섭에게 농구를 포기하라고 말하려다 결국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또, 그 경기 끝내고 엄마는 준섭의 짐을 치우면서 태섭이의 유니폼도 치웁니다. 형제라고 같은 배번을 달 필요는 없다면서..엄마는 태섭이가 농구하는 걸 보면 준섭이가 생각나고, 태섭이가 준섭이만큼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픈 것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손목 붙잡으며 경기를 포기했던 장면 등은 산왕과의 경기 전날 로드웍하다가 혼자 하는 말과도 연결되죠..난 도망다니기만 했는데..이 때 한나가 나타나 아니라고 말해줍니다..그러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죠..말은 한나가 하고 있지만 엄마의 마음도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경기장에도 가고, 태섭에게 나도 가서 봤다는 말은 안하고 산왕은 어떻더냐고 물어보기만 하죠.더빙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나와 엄마의 배역을 맡은 성우가 1인 2역이죠. 원판도 엄마와 한나역이 1인 2역인지는 모르겠지만..엄마와 한나가 순차적으로 '뚫어'하고 결국 태섭이가 뚷어 내면서 '으아아~'할 때는 몇번을 봐도 전율이 옵니다..

그 외에도 감독이 의도한 장치들이 많이 있어 보이는데 여기 까지만 할께요.
서린언니
23/02/13 23:36
수정 아이콘
보다보면 슬램덩크를 관통하는 주제도 중꺾마죠... 전반전 이명헌에게 수많은 선수들이 마음이 꺾였다고 나오는거부터...
계신다
23/02/14 10:37
수정 아이콘
와 감사합니다. 장치들이 정말 많네요.
원작을 알고 보면 더더더 재미있겠습니다.
12년째도피중
23/02/14 15:19
수정 아이콘
해당 해석들은 원작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저도 3회차까지 하다보니 이것저것 보이더군요. 감독이 치밀하게 깔아놓은 것들이 많아서 반복해서 줏어먹는 맛이 쏠쏠 했습니다.
계신다
23/02/15 04:33
수정 아이콘
앗 그렇군요. 저도 한번 더 볼까 고민 중이었는데, 가야겠네요 :)
melody1020
23/02/14 10:43
수정 아이콘
뚫어 송태섭! 정말 올해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척추가 짜릿짜릿 해지더라구요!
네파리안
23/02/13 23:28
수정 아이콘
확실히 루즈한 부분들도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숨막히는 연출이죠.
23/02/13 23:30
수정 아이콘
산왕전만 해도 극장판에 없는 재밌는 장면이 원작에 더 있습니다. 만화책 꼭 보시길.... 1권부터 쭉 보면 감동이 두배
계신다
23/02/14 10:35
수정 아이콘
네엡 꼭 읽어보겠습니다!
아케르나르
23/02/14 05:5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엊그제 일요일 아침에 더빙판으로 봤는데, 재밌었습니다. 슬램덩크 연재 당시에 매주 찔끔찔끔 나오는 연재본도 봤고,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도 봤는데, 연재본의 아쉬움과 기다림, 단행본의 정주행, 영화의 박진감있는 게임 + 송태섭 에피소드... 전부 다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글쓰신 분도 단행본은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몇 권은 그림체도 내용도 어설프고 늘어지는 느낌인데 상양전 이후는 막 빠져들어서 보게 돼요. 영화에 그렇게 몰입하셨다면 만화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계신다
23/02/14 10:36
수정 아이콘
이렇게 많은 분들이 만화책을 추천해주실 줄은 몰랐는데, 당장 오늘 찾아보러 가야겠습니다.
헌데 민화는 전자책이 없네요 ..?
23/02/14 16:01
수정 아이콘
작가가 전자책을 싫어합니다....ㅠ
계신다
23/02/15 04:33
수정 아이콘
헉 ...
세이밥누님
23/02/14 09:23
수정 아이콘
저도 대충 내용이랑 명장면 명대사 정도만 알고 갔거든요
친구랑 같이 가서 오프닝에서 야 서태웅이 누구고 정대만이 누구냐? 라고 물어보는 정도? 크크

근데 작화 연출,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마지막 그 순간은 숨도 못쉬면서 봤습니다 크크

더빙도 거슬리지 않고 참 좋았고… 이래저래 요즘 본 극장 개봉 영화 애니 중에서 최고였습니다.

이제 개미맨 보러…
으촌스러
23/02/14 09:33
수정 아이콘
아니 다리 풀리고 담까지 오셨으면 최소 2~3위에는 놓으셔야 되는거 아닙니까?! 크크
계신다
23/02/14 10:35
수정 아이콘
인터스텔라 - 인셉션 - 인사이드아웃 으로 이어지는 3인 라인들이 인생 방향에 영향을 크게 미친지라 그렇습니다 크크
에바 그린
23/02/15 12:07
수정 아이콘
저도 극장가서 볼 때 제 옆에 가족이 누가봐도 아버지가 보자고 주장해서 어머니와 딸이 같이 온 가족이였는데

처음엔 강백호 바보짓에 그냥 피식피식 웃다가(부상장면에서도 심각한줄 모르니 막 웃었습니다) 나중에는 웃음기 싹 사라지시고 숨도못쉬고 보시더라구요.
그리고 딱 크레딧 올라가고 나니까 엄청 재밌었다고 막 난리피는거 보면서 제가 괜히 뿌듯했습니다 크크크크
나오는길에 급식들도 와 개재밌는데 뭐지 하면서 나오는것도 보고 크크크

역시 고인물 입장에서 뉴비구경이 제일 재밌고 흐뭇한듯 크크크크.

만화보고 영화보면 2배는 더 재밌습니다. 나중에 VOD 나오고 나서라도 기회되면 다시 한번 보세요!!

개인적으로 좋았던건 저도 농구알못인데 농구경기가 진짜 실감나게 묘사되서 몰입이 확 된듯.
산왕이 몰렸을때 이명헌의 압도적인 개인능력이 주는 공포와 좌절감, 송태섭이 더블팀에 막혔을때 보는 나도 답답한 느낌같은거.
쇼쇼리
23/02/20 14:29
수정 아이콘
더빙도 훌륭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 5분간은 관객들도 함께 숨쉬지 않고 꼼짝도 않는것 같았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7921 [정치]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 힘 명예대표 가능성 [136] 빼사스19757 23/02/15 19757 0
97920 [일반] 중학교 시절 절 따돌림 시킨 사람이 경찰이되어있었네요.. [77] 아노다이징16457 23/02/15 16457 29
97919 [일반] 기술발전으로 무색해진 초기화 [32] 판을흔들어라14833 23/02/14 14833 10
97918 [일반] 왜 예전에는 아이를 많이 낳았을까? [106] 인사걸16775 23/02/14 16775 18
97917 [일반] 울산 600가구모집에 1명 계약 뉴스를 보고 [36] 10214721 23/02/14 14721 3
97916 [일반] 난임지원의 현실. [65] 사업드래군14548 23/02/14 14548 37
97915 [일반] 업무중에 마주하게된 상식논란 (1kbyte 는?) [102] 겨울삼각형15448 23/02/14 15448 0
97914 [일반] TLS 보호 약화하기, 한국 스타일 [11] Regentag11231 23/02/14 11231 7
97913 [일반] 진짜로 소멸됩니다. Internet Explorer 11 [39] Tiny13561 23/02/14 13561 2
97912 [일반] 싱글세를 걷으려면 적어도 나라에서 그만한 책임을 보여야 하지 않나요 [225] sionatlasia19196 23/02/14 19196 25
97911 [일반] 일본, 사실상 싱글세 도입 확실시 [412] 아롱이다롱이17659 23/02/14 17659 1
97910 [일반] 조기 은퇴라니, 로또라도 된건가? [19] 타츠야12112 23/02/14 12112 21
97909 [일반] WBC 일본 대표팀 분석 - 내야수 편 2부 [13] 민머리요정23693 23/02/14 23693 10
97908 [일반] 슬램덩크 모르는 사람의 극장판 후기 (스포X) [31] 계신다9286 23/02/13 9286 18
97907 [일반] 그 나잇대에 소중한 것들 [32] 흰둥14826 23/02/13 14826 60
97906 [일반] WBC 일본 대표팀 분석 - 내야수 편 1부 [13] 민머리요정24191 23/02/13 24191 13
97905 [일반] <맨 프롬 어스> - 올드맨 아저씨의 믿거나 말거나. [87] aDayInTheLife12398 23/02/12 12398 4
97904 [일반] 애플 가로수길에 아이폰 배터리 교환 서비스 받으러 갔다 그냥 돌아온 이야기 [82] 웜뱃은귀여워16021 23/02/12 16021 13
97903 [일반] 가수 예민씨... 이런 분도 있었군요 [32] 흰둥18794 23/02/12 18794 7
97902 [일반] WBC 일본 대표팀 분석 - 포수 편 [16] 민머리요정27219 23/02/12 27219 11
97901 [일반] 사회에서 만난 친구에게 [2] matthew9342 23/02/12 9342 6
97900 [일반] (PIC) 기억에 남는 한국 노래가사 TOP 30 이미지로 만들어 봤습니다. [14] 요하네8097 23/02/12 8097 6
97899 [일반] 슬램덩크 흥행돌풍 신기하네요 [72] 꽃차14363 23/02/11 14363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