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라미드(Pyramid)가 가지는 의미란 각별합니다.
고대 문명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이기도 하고, 좀처럼 재현하기 어려울 듯한 불가사의를 표상하기도 하며, 유럽중심주의가 횡행할 때에도 무시할 수 없었던 랜드마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나폴레옹이 라그랑주를 두고 [ “수리과학에 우뚝 솟은 피라미드” ]라고 말했던 것이겠지요.
(이것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아서 어떤 분야에 입지전적인 성취를 이루면 ‘금자탑을 쌓았다’고 평가하곤 합니다.)
제가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최소한 개인적으로 꼽기에는 바로 그런 소설입니다.
2.
물론 대체역사(代替歷史)는 (그때는 대체역사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한국 장르소설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분류이고 1990년대부터 꼽더라도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명작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그 대부분이 『한제국 건국사』와 『대한제국 연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 장르의 문법에서 직접적으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트립(trip)하든 빙의하든 환생하든, 혹은 회귀하든지에 관계없이,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시공간이 국내인지 국외인지에도 상관없이, 심지어 그 빙환트한 주인공이 현대의 인물인지 아니면 다른 역사적 인물인지에도 구애받지 않고, 소위 주류라고 할 법한 대체역사소설의 초점은 언제나 ‘국가’나 ‘세력’이었지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다시 말해, 개인보다 큰 단위의 변화를 조망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한국 대역물의 핵심이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뭔가 다르더라는 말이죠.
저도 처음 읽었을 때는 이걸 대체역사로 인식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3.
이 작품, 『갬블링 1945』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도박을 하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사실 거짓말은 하지 않은 수준의 설명일 뿐 본질이 아닙니다.
갬블링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룰을 모르는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루어지며, 도박은 수단일 뿐 목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945로 말할 것 같으면, 현재 459화를 연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대공황 시기(1929)까지밖에 안 왔기 때문에 어느 세월에 1945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럼 갬블링 1945의 본색이 무엇인가 하면······, 물론 대체역사소설입니다. 바로 위에 아닌 것처럼 썼으면서 무슨 소리인가 하시겠지만 그것은 기존에 보아왔던 대체역사소설들과 다르다는 뜻이었고, 중반쯤 읽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은 이게 대체역사가 아닐 수는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역사가 크게 바뀔 ‘예정’(아직 크게 달라진 건 없음 주의)이거든요.
4.
소설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909년 6월 8일 밤, 조선 제일의 도박사라고 불리던 ‘선우희도’라는 사람이 일본의 최고수 ‘스기우라 공작’과 포커를 칩니다. 자기에게는 [ 천하제일 도박사의 징표 ]가 있다고 슬쩍 흘리면서 말이죠.
그래서 결국 그 징표를 걸고 마지막 판을 벌이게 되는데, 승자는 선우희도였습니다.
그런데, 화가 난 스기우라가 데리고 다니던 장교를 시켜 선우희도를 죽여버립니다. 징표를 뺏어간 건 물론이고요.
그 결과 징표는 일그러지고, 행운의 신이 분노하여, 역사의 궤도가 틀어졌다는 것이 이 소설 2화에 대놓고 나오는 설정입니다.
그러니 역사가 개변된다는 것은 사실상 보증된 전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렇게 쉬운 것을, meson이라는 사람은 왜 대체역사라고 알아보지 못한 걸까요?
5.
제가 갬블링 1945를 읽으면서 처음 떠올렸던 작품은 『미스터 션샤인』이었고, 그 다음에 떠오른 것은 『뿌리깊은 나무』였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박씨전』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위 작품들은, 물론 전혀 대체역사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해 본다면 세력이나 국가가 아니라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더 결정적이게는 [ ‘일어날 일은 일어났기 때문’ ]이라고 할 것입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일본의 국권 침탈이,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가, 박씨전에서는 조선의 전쟁 패배가 어쨌든 일어납니다. 바뀌는 것은 그 중간 과정이나 세부사항이지, 큰 틀에서의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2화에서 운명의 격변을 예고한 것과는 상반되게, 갬블링 1945의 이후 전개는 위와 놀랄 정도로 흡사합니다.
을사오적 이지용이 유언으로 ‘속았다’라고 말한 것, 1928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루스벨트가 소수점 차이로 당선된 것, 장쭤린 폭사 사건 이후 장쉐량이 국민당에 합류한 것, 조선 총독 야마나시 한조가 부패 혐의로 결국 사임한 것 등,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은 거의 그대로 나옵니다. 대공황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단지 이 사건들 모두에 주인공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을 뿐이죠.
그러니까, 현재까지 전개된 내용으로는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6.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슬슬 의문이 들 법도 합니다.
역사 개변에 소극적이라면, 이 대체역사소설이 가지는 장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에게 묻는다면 우선 세 가지가 있다고 답하겠습니다.
인물, 사건, 그리고 배경입니다.
인물이 장점이라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주인공은 물론 그가 관계를 쌓아가며 한 편으로 끌어들이는 동료(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며 부딪히고 뒤엉키는 거물(들), 독립운동가와 제국주의자, 중국인과 서양인, 그리고 일본인에 이르기까지, 좀 중요하다 싶은 캐릭터는 하나같이 조형이 빼어납니다.
조선인 캐릭터들이 생동감 넘치고 빛나게 그려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인 장군은 물론 조선 총독(!)까지도 매력적으로 묘사되는 통에 이러다 친일파가 되어버리겠다고 호소하는 독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작품이죠.
사건이 장점이라는 것은 에피소드의 개연성과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위에 쓴 대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대부분 원역사를 따라가지만,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상대적으로 자잘한 사건들은 당연히 새로 창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심리전과, 치밀한 포석으로 암중에서 최대 이익을 얻어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상당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억지스럽다는 느낌 없이 꾸준히 기발한 아이디어로 일을 잘 풀어가는데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올 지경이에요.
그리고 역사적 사건의 경우에도, 사실 주인공이 개입해 원하는 방향으로 안배를 하는 모습이 밀도 있게 서술되기 때문에, 그 과정과 결과 모두에 원역사와는 사뭇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배경이 장점이라는 것은 역사에 대한 고증과 이해가 훌륭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점차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작금의 대체역사 장르에서 유독 이 소설만이 최고의 고증을 보여준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어쨌든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읽는 데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수준의 고증은 제공됩니다. ‘역사’와 ‘소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는 느낌으로요.
한편 배경에 대한 이해도로 말할 것 같으면, 가히 정상급이라 할 만합니다. 소설의 분위기와 인물의 대사, 행동에서 1920년대 경성을 고스란히 펼쳐낸 듯한 향취가 전해지거든요. 작가의 내공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것 하나만으로도 초반부의 흡입력은 보장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점들이 있기에, 갬블링 1945에는 하나의 장점이 더 더해집니다.
바로 장르가 대체역사라는 장점입니다.
만일 역사 개변을 억제했거나 혹은 팩션을 표방했다면 이 소설은 아마도 제2의 미스터 션샤인이 되었을 것이고, 그랬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 나왔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되지 않았기에 소설의 스케일과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이 이 정도로 커질 수 있었던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이 인물과 이 설정을 가지고 대체역사가 펼쳐진다면, 발상이나 소재 하나만으로 엮어낸 대체역사와는 당연히 무게감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7.
그래서, [ 대체역사에 치솟은 피라미드 ]입니다.
현재의 주류에서 벗어나 과거에서나 연원을 찾을 법한 인물 중심의 대역을 시도했고, 불가사의하리만치 무시무시한 필력으로 그것에 성공했으며, 결론적으로는 (최소한) 수작 이상의 작품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으니 이렇게 칭해도 과해 보이지만은 않겠죠.
혹시 이게 정말인지 궁금하시다면, 한번 무료분만 읽어보시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