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 계속 보면 중독될 것 같아서 극장 관람의 마무리로 가장 호평 받는 남돌비를 왕복 3시간 동안 갔다왔는데, 괜히 남돌비 남돌비 하던 게 아니더군요. 정말 좋았습니다. 단차, 사운드, 화질까지 정말... 개인적으로 코돌비보다 몇 배는 좋더군요. 진짜 가깝기만 했으면 엄청 자주 갔을텐데 아쉽습니다.
[1회차 관람 후 적었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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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차 관람 후 마지막으로 적는 리뷰]
1. 마지막 관람이었던만큼, 이번 후기는 인상 깊었던 캐릭터, '소타'에 대해 중점적으로 얘기해볼까 합니다. 무나카타 소타 하면 뭐가 떠오르시죠? 잘생긴 이케멘.. 그리고 토지시. 교사가 되려는 대학생. 이 정도만 떠오르는군요. '스즈메의 문단속'은 내용만 보면 두 남녀가 짝을 이루어 나아가는 로드 무비 형식입니다만, 제목에서 나오듯이 이야기의 중심과 캐릭터의 서사는 철저히 스즈메에 맞춰져 있습니다. 소타의 캐릭터성은 떠오르는 게 적을 정도로 옅은 편이죠.
2. 왜 이럴까요? 그것도 로맨스물에서? 사실 이는 소타의 캐릭터성을 다르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영화는 여러분도 익히 아시겠지만 로맨스물 느낌이되, 로맨스에 중점을 맞췄다고 보기엔 묘사가 약한 편이긴 합니다. 그렇기에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도 볼멘 소리가 나오죠. 스즈메가 소타에게 첫 눈에 반했고, 몰래 키스도 하지만 그 뿐,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든가, 거기서 더 나아간 로맨스 묘사는 전무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타의 캐릭터성이 그 자체의 서사로 빛을 발하기 보다는, 다른 의미를 투영해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아직 소타가 의자가 되기 전, 소타는 스즈메의 방에서 유아용 의자를 발견하고 거기에 앉아 상처를 부여잡죠. 소타는 그 의자에 앉은 순간부터 소타 자체의 캐릭터성 보다는, 다른 곳에서 전달되어온 수많은 의미를 투영하는 도구적 의미의 캐릭터로 기능하게 된 것입니다.(도구적이라고 꼭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3. 작중 의자의 의미는 무엇이죠? 어머니가 만들어주었지만 다리가 하나 빠진 의자. 이는 지진의 참화를 겪은 스즈메의 쓰디쓴 결핍을 의미하고, 크게 보면 동일본 대지진의 상흔과 수많은 상처투성이 생존자들을 뜻하기도 하죠. 그런데 소타가 이런 의자에 재난이 야기한 상처를 부여잡으며 앉는다? 그냥 바닥에 앉아도 되는 걸? 이건 당연히 의도한 장면입니다. 즉, 이 의자에 앉은 그 초반부터 소타 역시 잊혀질 수 없는 재난의 피해자와 동일한 의미를 띠기 시작하며, 이는 소타가 의자가 되면서 확실해졌죠. 결핍 어린 의자에 갇힌 소타는 그 자체로 여전히 대지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기억으로 기능하기 시작합니다
4. 이는 곧 소타라는 캐릭터가 '소타=스즈메'로 연결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왜냐? 또 한 번 말하는 거지만 그 의자는 스즈메의 결핍, 그리움, 즉 스즈메를 상징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자연히 의자가 된 소타도 지진의 트라우마를 가진 스즈메를 상징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둘은 옅은 소타의 캐릭터성이 상관 없다는 듯이 마치 일심동체처럼 함께 움직이고 함께 모든 걸 해결해 나아갑니다. 마치 소타가 스즈메의 일부가 된 것처럼 모든 부분에서 함께 나아가죠. 당연합니다. 소타가 곧 스즈메고 스즈메가 곧 소타인 서사에서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소타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까요? 그러나 점점 소타의 마음은 요석화로 굳어가고, 종국에는 완전히 요석이 되어 저세상에 갇혀 버립니다.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재난에 갇힌 스즈메처럼 말이죠.
6. 스즈메는 죽음에 초연합니다. 이는 어쩌면 트라우마를 방어하려는 자기방어기제로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세상에 정말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그런 상황에 떠밀렸기에, 죽음밖에 생각할 수 없기에 죽게 되는 겁니다. 스즈메 역시 죽음에 초연할 뿐, 트라우마의 건너편에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한 조각이나마 깊게 숨어 있겠죠. 이건 생명체로써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 생명체로서의 본능을 애써 숨기고 부정할 정도로 스즈메는 이상해져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스즈메는 소타, 즉 스즈메 자신의 투영과 함께 여행하면서 재난의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동정 아닌 동질감을 느끼며 제 역할을 다 하고, 또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새깁니다.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의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소타와 스즈메는 일심동체. 이 여행에서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는 요석이 된 소타를 뽑으면서 본 소타의 기억을 통해 확고해집니다.
소타는 스즈메와 함께 한 기억을 떠올리며 마침내 너를 만났는데,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며 스즈메와의 추억과 세리자와, 할아버지를 떠올립니다. 대사의 주체는 소타지만 그 말은 전부 스즈메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보는 것은 소타의 1인칭 기억이지만, 중요한 건 이 기억을 읽는 주체가 스즈메라는 것이죠. 그러니 소타의 기억 속에서 스즈메가 소타에게 상냥하게 모자를 씌워준 장면은, 사실 스즈메가 스즈메 자신에게 모자를 씌워주는 것이기도 하죠. 즉 스즈메 자신이 살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여행길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아온 스스로의 모습을 소타의 기억으로 보면서 다시금 자각한 것이죠.
그렇기에 스즈메는 소타의 말에 긍정하며, 사실 자신 역시 살고 싶다고, 죽음은 두렵다는 숨겨진 마음을 드디어 고백하며 소타를 구해냅니다. 소타를 소타 뿐만이 아닌, 대지진의 트라우마에 갇힌 스즈메 자신으로 보기도 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할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렇기에 마지막에 소타를 문 밖으로 끌어내는 스즈메의 모습은 특별하고, 남돌비 마지막 관람을 하면서 더욱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소타를 끌어내는 것은 곧 소타 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끌어내 구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에 꼬마 스즈메를 치유할 수 있었던 게 스즈메 자신 뿐이었던 것처럼...
7. 이렇게 스즈메=소타로 보게 되면 스즈메의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도 다시 보입니다. 결국 소타를 잃어버린 스즈메는 비록 자신의 결핍일지언정, 자신의 남은 부분까지 저세상에 완전히 빼앗겨버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스즈메로서는 소타를 되찾지 않고서는 더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고, 소타 씨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소타를 잃는다는 건, 자기자신 역시 재난에 휩쓸린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재난에 휩쓸렸으면 살고 싶은 게 당연하듯이, 스즈메는 소타를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8. 논외지만 이렇게 보면 영화가 한 편의 훌륭한 반전 서사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처음 봤을 때 도입부에선 당연히 스즈메가 대지진의 피해자라거나 그런 건 이해 못했죠. 다만 설명에서 나오듯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 알았고, 간접적으로 계속 일기장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서 복선을 깔았고, 소타 할아버지랑 얘기할 때 어릴 때 저세상 왔다리갔다리 했다는 걸 알면서 뭔가 재난에 휩쓸렸었나 생각도 했고, 초반에도 나왔지만 죽음에 초연하거나 소타 씨 없다는 세상보고 얘 이상한 애인가 약간 알쏭달쏭하다가 나중에 일기장 팍 펼친 부분에서 쓰나미 경보가 나오면서 한 번에 다 이해되는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이후 상술한 소타의 의미까지 더해지니 더욱 즐거워졌죠.
9. 여러모로 오랜 기간동안 이렇게 빠져본 영화가 없을 정도로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영화입니다. 너무나 즐거웠고, 다음엔 더빙판으로 또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