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리그 개막전이고, 팀은 5회까지 5: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6회에 돌입합니다.

팀의 에이스는 무난한 피칭을 펼치다 6회 3번째 타석에 들어선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그 다음 타자를 큼지막한 플라이로 아웃 처리합니다.

그리고 상대팀의 핵심 타자를 맞이하죠.

-그 때까지 투구수는 68개 였습니다.
-지난 시즌 에이스의 첫 타순 상대 피 OPS는 .642인데, 두번 째 타순에서는 .548로 하락하나, 3번 째 타순에서는 .836이었습니다.

-상대 3번 타자(좌타)는 에이스를 상대로 통산 16타수 6안타, 2루타 2개, 홈런 1개의 호성적을 기록중입니다. 작년 좌완 상대 OPS는 .880, 우완 상대로는 1.032였습니다.
-팀의 불펜에는 좌완 스페셜리스트(좌타 상대 .159/.274/.190)가 대기중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계속 던지게 하겠죠. 그러나 필라델피아의 신임 감독 케플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5.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중이던 애런 놀라를 프리먼 앞에서 내리고, 좌완 스페셜리스트인 호비 밀너를 투입하죠.

결과는, 대실패였습니다. 프리먼에게 투런을 허용했고, 이어서 나온 불펜들이 연이어 방화를 저지르면서, 5:8로 역전패하죠.

판단 자체의 근거는 충분했습니다. 당장 위의 기록들만 봐도 놀라가 실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상대 타자와 3번 째 상대 할 때 투수를 바꾸는게 가장 효율이 좋다는건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내내 주장하던거죠. 올시즌 템파베이의 4선발+다수의 멀티-이닝 불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의 실험이구요.

이외에도 신임 감독은 오늘 팀의 붙박이 외야수이자 3년간 팀에서 가장 많은 war를 쌓은 오두벨 에레라가 상대 투수 상대로 성적이 좋지 않음을 근거로(27타수 5안타) 벤치에 앉히고, 신인 닉 윌리엄스를 기용했지만, 4타수 무안타 삼진 2개로 물러나죠.

케플러 감독은 오늘 참혹한 실패를 맛봤지만, 자신의 운영방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경기는 162경기 중 1경기일 뿐이고, 다른 경기에서 성공을 거둘 수도 있겠죠. 아직 리빌딩 중이라 성적에 큰 부담도 없구요. 필리스식 데이터 야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