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시안컵에서의 벤투호는 그야말로 졸전의 연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선수들의 역량 차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측면이 많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우리가 무려 4:0 대승을 거두었던 2개월 전의 우즈베키스탄전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때도 벤투호는 4-2-3-1의 전형적인 포메이션이었습니다.
다만 선수 구성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같은 전형에 같은 전술이었고, 우즈베키스탄은 키르기스스탄처럼 텐백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전은 1:0, 우즈베키스탄전은 4:0이라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현재 전술에 있어서 무언가 문제점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제가 벤투호 축구를 꾸준히 보면서 느꼈던 점이 벤투가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이 유럽 선진국형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그건 평가전 내내 잘 이어져왔던 점이고, 그로 인해 한국 축구가 바뀌겠구나를 들게 했었죠.

첫 번째 장면은 우즈베키스탄전의 모습입니다.
보면 알다시피 수비 쪽에 3명의 선수가 보입니다. 둘은 센터백이고, 하나는 3선의 선수가 내려앉는 모습입니다.
벤투호는 3선의 미드필더들이 중앙으로 내려와서 세 선수가 동시에 치고 올라가는 빌드업 축구를 꾸준히 추구해왔습니다.
3선이 내려오는 방향도 기존의 가운데만이 아니라 좌우 가리지 않고 공간이 나는대로 내려오는 축구였죠.
그리고 이 날 경기에서는 주세종, 황인범이 3선이었는데 두 선수가 번갈아가며 꾸준히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기본 전형은 4-2-3-1이 되겠지만 공격시에는 3-4-3의 전형이 되는 상황이었고
왼쪽와 오른쪽 풀백들이 윙백처럼 쭈욱 치고 올라가면서 좌우로 넓게 벌려주고 좌우 윙어들이 가운데로 치고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중앙에 선수가 4명이 되어서 상대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 공간싸움이 벌어지고 득점이 쉽게 되는 작전이었죠.

하지만 필리핀전과 키르기스스탄전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꾸준히 빌드업을 하기는 하는데 빌드업이 단 두 명의 센터백들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까
빌드업의 속도가 굉장히 느립니다. 왜냐하면 앞에 3선을 무조건 거치고 가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당연히 이 상황이라면 이미 상대는 선수들이 다 들어와 있는 상황이고, 공간이 전혀 나질 않죠.
또한 센터백 둘이 커버하는 공간이 너무나 광할하기 때문에 만약 상대 압박이 들어온다면 맥 없이 무너지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앞에서는 활발한 포지션 변경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그야말로 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만 보여줬습니다.
즉 무슨 컴퓨터 게임 하듯 선수들이 자기 위치에서만 공 잡기만을 바라고 공간이 나기만을 바라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죠.

진짜 의문이었습니다. 벤투호가 그렇게 평가전에서 어떤 선수를 쓰더라도 잘 보여줬던 그 빌드업이
왜 아시안컵 들어와서는 갑자기 사라졌을까? 선수의 문제일까? 감독의 문제일까?
둘 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선수들이 어느 순간 벤투 감독의 전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 한국 축구의 고질병으로 돌아갔거나
혹은 벤투가 어느 순간 본인이 추구하는 빠른 빌드업의 축구를 포기했거나 혹은 선수들의 전술 변화를 전혀 캐치하지 못했거나
뭐가 되든 간에 벤투 감독의 잘못도 이 점은 충분히 바라봐야 할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찌 되었든 이 문제가 꽤나 심각한 이유는 이렇게 해서 망해버린게 슈틸리케였기 때문이죠.
슈틸리케가 어느 순간부터 4-2-3-1의 고정적인 패턴이었고, 점유율 축구만 하다가 공격은 안 되고, 수비는 무너지는 모습이었죠.
그래도 벤투는 현재 센터백이 건강한 편이라 수비가 그럭저럭 받쳐준다고 하지만 이 센터백이 무너지면
슈틸리케처럼 무너질 가능성이 한 없이 높아 보인다는 점에 있죠.

결국 벤투호가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기존의 평가전에서 꾸준히 보여주던 빌드업을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고 봅니다.
즉 3선이 번갈아가며 센터백으로 내려가면서 셋이 같이 올라가줘야 빌드업에 있어서 속도가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그저 애무만 하는 점유율 축구로는 약팀도 못 뚫는데 강팀은 절대 못 뚫죠. 애초에 패스미스가 많이 나온 점에는
전술과 전혀 맞지 않는 축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 생각되거든요.

PS. 참고로 우즈벡전 라인업은 박주호-김영권-정승현-이용 / 황인범-주세종 / 이청용-남태희-나상호 / 황의조 였습니다.
PS2. 벤투 감독을 욕하고자 하는 것 보다는 현재 대표팀이 가진 문제점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물론 벤투 감독은 기존의 감독들과는 또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걸 빨리 캐치하는게 중요하겠죠.
PS3. 주세종-황인범이 당시 선발이었지만, 사실 벤투호의 빌드업은 기성용-정우영도 곧잘 해냈습니다. 두 선수가 주전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