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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3 15:48
예전부터 들었던 생각이지만, 혹사 당하기전 최동원 선수와 일본에서 할때 처럼 열심히 하는 선동열 선수가 미국갔으면 어땠을런지 참 궁금합니다.
22/06/23 16:25
본인의 우상이었던 최동원과 같이 갔더라면 분명 잘했을 겁니다.
최동원도 선동열을 보며 더욱 분발했을테니 둘 다 잘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22/06/23 15:53
전성기 선동렬은 진짜... 몸푸는 모습 보이면 그냥 한숨만 나왔죠.
당시 베어스에 임형석이라는 타자가 선동렬 선수에게 그나마 좋은 상대 전적을 보유하고 있어서 임형석 선수를 열렬히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김경원이라는 선수가 신인으로 1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으로 클로저로 안착할 때 드디어 베어스에도 선동렬급 마무리가라며 감동했으나... 그 해가 마지막이었죠...
22/06/23 15:57
저때 선동열을 마무리라고 하면 안 됩니다.
아니 리드하면 5회부터 몸 풀어 상대 팀에 디버프 걸고 6회에 나와서 끝까지 던지는 선수가 무슨 마무리에요. 크크크
22/06/23 16:03
기자가 선동열이나 김응용에게 들은 이야기를 재연한 것 같습니다. 저 시절에는 저런 식의 기사들이 꽤 있었거든요. 스포츠서울에 글을 기고하다 생긴 일이니 스포츠서울일 것 같고 그렇다면 이종남 대기자가 아닐까 싶은데, 검색에 걸리는 게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22/06/23 16:32
상대팀에선 많아야 3,4일에 한번, 한 시리즈에 못 나오는 경우도 있었을 선동열을 매일 또는 한경기 걸러 봐야 하는(이러면 3연전 때 반드시 만남) 상황을 맞이해야 했으니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김응용 감독도 처음엔 선동열 부상으로 크게 충격 받고 팀 꾸려나갈 걱정했을텐데, 이듬해 중무리로 굴리면서 재기에 성공하니 비기거나 이길 때마다 내보낼 수 있어 '아싸 개이득, 꿀잼' 이런 상황이 된...
22/06/23 16:46
오죽하면 96년에 일본에서 부진할때 '이게 다 선동열이 몸만 풀어도 벌벌 떨면서 제대로 승부할 생각도 못한 우리나라 타자들 때문이다. 타자들이 알아서 헛스윙 해주는데 선동열이 향상심이 생기겠냐.'는 칼럼이 뜰 정도였죠.
22/06/23 20:59
근데 96년도 세이버 보면 수치가 굉장히 좋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본인 동기부여 해서 다음해에 커리어 하이가 되긴 했는데 운이 좀 안좋았어요.
22/06/23 17:53
93년부터 해태팬으로 야구 보기시작해서..
유격수는 제일 공격력 높은 야수 선발들은 다 10승씩하고, 마무리는 나오면 점수 안주고 2-3이닝씩 먹는 투수 인줄 알았죠. 크크 근데 갑자기 동열이도 없고..종범이도 없게되면서..
22/06/23 18:19
전 평자가3넘어가면 수준이하 선수라고 생각했었어요
3점대도 수준급인거데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문희수 송유석 이대진 정말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않되는 투수진 지금 기아엔 양현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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