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98년에 최기문을 롯데로 밀어낸 진갑용을 삼성으로 밀어내며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고 0.258/0.304/0.439 16HR의 성적으로 신인왕을 수상합니다(최기문은 롯데, 진갑용은 삼성의 주전 포수로 긴 시간 활약합니다).
01,04년 골든글러브 수상(04년 골든글러브 수상에는 논란이 있음*), 00년 두산 준우승, 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 그리고 무엇보다 2001년 두산의 기적적인 우승을 함꼐 하면서 최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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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은 2009년 지명타자 자리에 완전히 정착하여 0.371의 고타율을 기록하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LG전에서 0.372의 타율을 기록하던 박용택이 결장하고 홍성흔을 4연속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추태 끝에 또다시 타율 2위에 머뭅니다 (훗날 박용택은 2013년 페어플레이 수상 소감 발표 때 이 부분에 대해 사과합니다).
2010년, 33세 시즌 때 타격폼을 수정하며 홈런타자로 전향하겠다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를 보내거나 비웃었으나 준비 동작에서의 리듬감과 스윙의 교정이 큰 효과를 내면서 시즌 막판 부상에도 불구하고 0.350/0.427/0.601 26HR로 개인 최고의 타격 성적을 거둡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대호가 한국에서 손꼽히는 몬스터 시즌을 보내며 타격 7관왕에 오르고.. 홍성흔은 3연콩을 달성합니다.
11년 롯데의 감독 교체 이후 외야수 훈련으로 인한 체중 감량, 노쇠화, 교통사고 논란 등으로 기량이 감소하며
3할-10홈런 정도를 치던 홍성흔은 12년 시즌을 끝으로 친정팀 두산으로 복귀합니다.
13년, 14년 3할-20홈런-WAR 3 정도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나, 두산의 팀 사정상 홍성흔을 지명타자에 고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혼재했고 15년 햄스트링 부상을 겪으면서 1군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당시 두산 팬층의 홍성흔에 대한 냉대에는 1) 홍성흔보다도 팀에 중요한, 김동주를 지명타자에서 밀어냈고 2) 두산은 다른 팀과 달리 야수진이 튼튼해서 노장 전업 지명타자의 가치가 떨어졌으며 3) 후배를 폭행하거나 주장직을 후배에게 떠넘기는 등의 소스가 발굴되었고 4) FA이적시 협상과정에서 구단과의 마찰이 있었으며 5) 08~12년에 관객 수가 기존의 3배로 폭증하면서 홍성흔의 기존 두산 시절 활약을 모르는 팬이 다수가 된 점 등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홍성흔이 억울한 부분이 있었으나..
본인이 억울한 부분이 있고, 선수 간의 농담이라고 해도 프로가 해서는 안될 발언을 하면서 결국 16년 말 조용히 은퇴하고 17년 4월에야 은퇴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은퇴 기자회견과 카퍼레이드에서 나오듯 이 부분은 본인의 책임으로 끝까지 안고 가야할 문제겠지요.
역대 병살타 1위, 우타자 최초 2천안타, 6회 골든글러브 수상, (과도한/친근한) 쇼맨쉽, 아쉬운 말들과 뛰어난 열정.. 홍성흔은 KBO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타자였다-라고 생각합니다.
https://namu.wiki/w/%ED%99%8D%ED%99%94%EB%A6%AC 사실 이 분 때문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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