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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09/09 13:07:44 |
Name |
candymo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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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썼습니다 |
Subject |
[스포츠] [US오픈] 즈베레프와 메드베데프의 선전을 바라보며 |
조금 전 US오픈 남자 단식 4강이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바텀에서는 노박 조코비치가 벤 쉘튼을 3:0으로 가볍게 제압하였고, 탑에서는 3번 시드 다닐 메드베데프가 1번 시드 카를로스 알카라즈를 3:1로 제압하면서 2021년 결승 매치업이 다시 성사되었습니다.
2021년 노박 조코비치의 캘린더 도전 이후 2022년 라파엘 나달은 멜버른과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며 메이저 22승을 달성했지만 윔블던 이후 부상으로 존재감을 잃어갔습니다. 그런 한편 카를로스 알카라즈가 2022년 3월 선샤인 더블을 달성하면서 화려하게 무대로 등장하게 됩니다. 특히 마드리드에서 라파엘 나달(8강), 노박 조코비치(4강), 알렉산더 즈베레프(결승)을 차례로 격파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압권이었고 BIG 3에 견줄만한 선수의 등장을 예감케 하였습니다.
한편 노박 조코비치는 2022년 초 백신 문제로 1월 호주와 3월 북미 일정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면서 컨디션을 되찾는데 고전하였지만 윔블던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이즈음부터로 생각이 됩니다. 라파엘 나달이 노화와 부상으로 사실상 전열에서 이탈된 상황에서 BIG 3의 마지막 주자 노박 조코비치와 떠오르는 신성 카를로서 알카라즈 둘 중 누가 남자 테니스의 정상에 있는 것일지가 최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테니스 팬 입장에서는 너무나 불편하게도 둘은 2022년 마드리드 이후 좀처럼 마주치지 않았고, 단순히 마주치지 않은 것을 넘어 같은 대회에 출전하는 것 조차 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노박 조코비치가 백신 미접종으로 2022년 9월 북미 시즌을 건너 뛰는 사이 카를로스 알카라즈는 뉴욕에서 메이저 첫승을 달성하였습니다. 노박 조코비치가 2022년 토리노에서 파이널 통산 6승, 2023년 멜버른에서 메이저 22승의 위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카를로서 알카라즈는 부상으로 대회를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부상에서 복귀한 카를로스 알카라즈가 2023년 3월 인디언 웰즈 2연패를 달성하는 동안 노박 조코비치는 또다시 백신 미접종으로 입국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차원이 다른 레벨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2명이 1년이 넘도록 마주치치 않으면서 한해 한해가 다를 노장 노박 조코비치의 입장에서는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테니스 팬들 입장에서는 어딘가 찜찜한 세월이 흘러가다가 드디어 두 선수는 2023년 롤랑가로스 4강, 윔블던 결승, 신시내티 결승에서 연달아 충돌하며 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보여주며 새로운 라이벌리의 탄생을 예고하였고, 이 흐름은 그대로 US오픈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노박 조코비치는 신시내티 우승 이후 온코트 인터뷰에서 US오픈 결승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즈를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고 이는 테니스를 위해 좋은 일이 될 것이라며 이러한 기대감을 증폭시켰습니다.
US오픈 드로 발표 이후 2번 시드 노박 조코비치의 경우 4번 시드 홀거 루네의 부상, 5번 시드 캐스퍼 루드의 양학력, 7번 시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와의 인간상성 등으로 비교적 손쉬운 결승 진출이 예상되었고, 1번 시드 카를로스 알카라즈 역시 노박 조코비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어려운 대진이 예상되었으나 절정의 경기력을 뽐내고 있었기에 결승 진출이 유력하게 예상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를로스 알카라즈가 8강에서 6번 시드 야닉 시너와 작년 US오픈 8강의 명경기를 재현하며 신성 라이벌리를 보여주고, 4강에서 다닐 메드베데프를 가볍게 제압하며 대망의 그랜드파일날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였고, 모든 서사는 전지적 카를로스 알카라즈 시점으로 쓰여지고 소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일어나는 일들은 구경꾼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2022년 롤랑가로스에서 절정의 경기력으로 카를로스 알카라즈를 '참교육'하며 진출한 4강에서 라파엘 나달과의 역대급 명승부 중 얻은 부상으로 장기간 투어에서 이탈해있던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서서히 자신의 랭킹을 회복하며 12번 시드로 US오픈에 참가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야닉 시너와 카를로스 알카라즈, 카를로스 알카라즈와 노박 조코비치의 라이벌리에 집중하였지만,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마치 '그동안 내가 없었잖아'라고 말하는 듯 혈전 끝에 야닉 시너를 3:2로 제압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BIG 3 이후 몇 세대를 건너뛰어 바로 카를로스 알카라즈, 야닉 시너의 세대로 넘어가는 것은 아닐 것이며, 그가 작년의 부상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카를로스 알카라즈는 8강에서 손쉽게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제압하였고,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경기 후 프레스 인터뷰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즈와 노박 조코비치는 다른 레벨에 있다'고 언급하며 또다시 카를로스 알카라즈와 노박 조코비치의 결전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었습니다.
2021년 US오픈 우승 이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탈장 수술 등으로 어딘가 우울하고 침체되어 있는 듯 했던 다닐 메드베데프는 2022년 호주 결승 진출 이후로는 메이저 대회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지만 서서히 폼을 회복하며 3번 시드로 이번 US오픈에 참가하였습니다. 4강까지 오는 과정에서 그리 강력한 상대를 만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4라운드 알렉스 드 미노와의 경기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등 큰 기대감을 갖기에는 어딘가 서사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모니터 넘어로 느껴지는 아서 애쉬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사실상 카를로스 알카라즈의 홈그라운드처럼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꿈의 결승 매치업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더욱이 다닐 메드베데프와 관중들 사이의 평소 불편한 관계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나 다닐 메드베데프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러한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때로는 관중들을 호응을 유도하고 때로는 관중들을 도발하면서 자신만의 페이스로 경기장에 적응하여 나갔습니다. 4세트 거듭된 매치포인트에서 퍼스트 서브와 세컨 서브 사이에 관중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오히려 퍼스트 같은 세컨을 때려버리면서 현장의 분위기에 굴하지 않는 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만나야 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다.'
이 말도 좋아하지만 저는 '너네들이 생각하는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탑드로 4강은 구경꾼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다닐 메드베데프는 비교적 손쉽게 3:1로 승리를 거두며 2021년 결승 매치업을 재현함과 동시에 노박 조코비치를 상대로 메이저 멀티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카를로스 알카라즈와 노박 조코비치는 언젠가 또 만날 것입니다(노박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하지만 그 둘만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며 스토리에 균열을 내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스토리를 써가고 있는 선수들도 존재합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결승 매치업이 성사되지 않은 아쉬움보다는 알렉산더 즈베레프, 다닐 메드메데프의 선전으로 인해 BIG 3 이후의 차세대 후보군이 더욱 풍성해졌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구도가 더욱 흥미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구경꾼들은 편의적으로 구도를 형성하고 다양한 변수를 차단하여 직관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스토리는 나름의 '형성력'도 있어서 스토리와 현실은 나름대로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를 강화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스토리는 힘이 없습니다. 현실의 개개인들은 만들어진 스토리와 무관하게 자신들 각자의 길을 갈 뿐이며, 복잡계는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나름의 도도한 흐름을 스스로 형성해나간다는 것을 이번 US오픈을 지켜보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 남은 경기는 여자 단식 코코 가우프와 아리나 사발렌카의 결승전과 다닐 메드베데프와 노박 조코비치의 결승전입니다.
사실 코코 가우프의 경우야말로 이번 시즌 신시내티 우승으로 언론에서 만들어낸 '스토리'의 진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결국 결승까지 왔습니다. 그녀가 우승으로 그 스토리를 완성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아리나 사발렌카가 메이저 2승을 달성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새롭게 써갈 수 있을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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