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11/20 13:20:48
Name ProtossLady
Subject 옳은 것과 좋은 것...

제게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한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의 할아버지께서, 손녀는 학교 안 보내도 된다고 하시며,
학교가는 걸 반대했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막상 손녀가 비온 뒤 지렁이들 때문에 징그러워하거나 하면
빗자루를 들고 나와 쓸어주시고 하면서, 막상 학교 가는 것은 방해하긴 커녕 도와주셨죠.

처음에는 그 얘기 듣고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할아버님은 그럼 손녀가 학교 다니는 걸 사실은 반대 안하신 것인가??
아니면 내 손녀만은 예외라고 생각을 바꾸신 것인가?

...


할아버님은 손녀는 학교갈 필요가 없다고 진짜로 생각하시면서도,
막상 아끼는 손녀가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는데 못가면 속상해 할까봐 도와주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입각해 남을 저지하거나 강요하는게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머서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기뻐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인 거죠.


처음에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든 싫어하는 사람에게든 "옳은 건 옳은 거"
딱 구분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기준이 되는 게 가장 타당하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이 얘기를 곱씹던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에 사람이 희생된다면 그게 뭐가 타당하다는 말일까 하고요.
다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자고 그러는 것인데, 신념에 사람이 희생당하면,
그 신념이 왜 있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집단이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최저선"은 꼭 있어야 할테지요.
그렇지만, "교사든 학생이든 학교에 무단으로 결석하지 말기"라는 규칙이
있다 하더라도 아픈 학생을 위해 교사가 직접 수업을 째고 학생을 태워서 병원에 간
이야기는 훈훈한 미담으로 인구에 회자되듯,
규칙보다 앞서는 "좋은 것"이 있다는 걸 점점 이해하게 되더군요.


지금은 망설이지조차 않고 확고하게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의 규칙보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뻐할 방식으로 행동하는 게 진짜 사람살이라고요.

심지어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그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믿은 신념처럼,
남에게 충분히 옳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제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은 규칙을 무시하고 감정대로만 행동하는 것일수도 있는데,
그게 타당하다는 말이냐고 묻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 하지만 사람이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면,
자신이 지금 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기 권리만 찾기 위해 핑계를 대고 있는건지,
아니면 진정으로 모두를 위해 기쁘고자 그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 구별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피지알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옳고 그름을 규정한 규칙에 의해 운영한다는 건 필수적이고 유일한 방식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만큼은 "규칙을 안 어기겠다"라는 생각보다
"모두를 기분좋게, 혹은 생산적이게 해줄 일을 하고싶다"고 생각하며 움직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 사이트에서
< 규칙은 이렇다, 어긴 건 아니지 않느냐, 이건 내 권리다, 나는 옳은 말을 했다, 이런 것도 안 되느냐...... >
이런 종류의 논쟁을 보고나서 씁쓸함을 느끼고 - 또 그런 논쟁을 흔하게 보기 때문에 -,

규칙 지키기와 더불어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미"를 다시 좀 챙겨보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글을 남깁니다.



ps. 여기가 문제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_-;;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대학생은백수
03/11/20 13:49
수정 아이콘
옳고 그른것을 따지기 이전에 타인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말을 추스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것입니다.
옳은걸 추구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감정싸움만 되게 옳은 걸 추구하는것은 곤란하죠. 비판은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지는 않고 그것도 능력이겠죠-_-ㅋ 계속 갈고 닦아야 할...쩝쩝...

전 세상에 옳은 것이 아닌건 그른것이라는 생각은 안합니다
어떤 생각이 있으면, 무엇이든 단점이 있고 장점이 있겠죠
무언가의 단점이 있다면 그건 틀렸어 때려쳐-라고 할것이 아니라
니가 가진 생각의 근거가 뭐냐고 우선 들은뒤
그것은 이런 단점이 있으니 이렇게 보완하면 어떠냐 라고 해야죠
그래야 그것이 가진 장점까지 사라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외국계 기업(?)에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회의하면서 그건 안좋은 의견이야-라는 말만 하면, 'so what?' 이라는 대꾸가 나온답니다.
그 일을 도와주거나, 적어도 보완해줄 의견을 내지않고 비판만하는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뜻이지요.
lightkwang
03/11/20 14:05
수정 아이콘
두 분 말씀 정말 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특히 대학생은백수다님의 의견
공감합니다. 요새 정치인들 보면 정말 타당의 의견에 대안을 내놓진 못하고 타장이 하는건 무조건 안된다로 일관하고 있지요.. 흐음..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5163 지극히 주관적인 글.... [7] 게임의법칙3518 03/11/21 3518
15162 [잡담]Last Christmas.... [23] Zard4471 03/11/21 4471
15161 @@ 과거...현재...그리고 미래...최고의 기준은...무엇...?? [7] 메딕아빠3929 03/11/21 3929
15160 주제의 주관성? 댓글의 주관성.. [25] 저그우승!!3880 03/11/21 3880
15159 Chojja 그는 누구인가.. [22] Kimera6230 03/11/21 6230
15158 옐로...그는 다시 일어날겁니다...^^ [10] Dr.Trash^o^4771 03/11/21 4771
15157 로비 윌리암스(Robbie Williams)를 아시나요?? [26] 저녁달빛5482 03/11/21 5482
15156 난 아직 프로게이머 최연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91] 토이스토리8994 03/11/20 8994
15155 아 이제야 글쓰기가 되는군요. 혹시 트래커 노휠 구하시는 분 있으시면 보세요. [14] 최용호4086 03/11/20 4086
15153 킬빌 그 씁슬함.... [16] Love of Zergling5543 03/11/20 5543
15152 [문자중계]2003 MBC Game 1st 메이저 마이너 결정전 2R 1주차 [122] 카나타6175 03/11/20 6175
15151 옐로우에 대한 잡담... [14] 난폭토끼7277 03/11/20 7277
15150 MBCgame 차기 마이너 리그 예선 후기 [14] TheHavocWorld6197 03/11/20 6197
15149 [펌]굿데이의 만행. 굿데이 직원. 차두리 선수 홈피에 욕설 남겨... [34] 환상의테란~7646 03/11/20 7646
15148 틀리기 쉬운 말들을 정리해봤습니다. [26] 사랑의사막5150 03/11/20 5150
15147 네티켓 10계명(The Core Rules of Netiquette) [10] 삭제됨5084 03/11/20 5084
15146 꿈$$은 이루어졌다-_- [13] 온리진4707 03/11/20 4707
15145 프로게임계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개인 적인 생각들. [16] kimera4373 03/11/20 4373
15144 2003 3rd 챌린지리그 시드결정전[최종소식] [78] Altair~★8730 03/11/20 8730
15143 최연성선수의 막강함, 그리고 동양 [26] 석현7240 03/11/20 7240
15142 옳은 것과 좋은 것... [2] ProtossLady3440 03/11/20 3440
15141 챌린지 리그 시드 결정전... [27] 왕성준6282 03/11/20 6282
15139 홍진호선수.. [21] 난나야6923 03/11/20 692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