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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02/21 19:16:42 |
Name |
JokeR_ |
Subject |
악마가 아닌 인간 박용욱. |
사실 악마라는 별명이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독교 신자(-_-;)라서 그런건지 박용욱 선수에 대한 첫 이미지는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제가 처음으로 응원하게 된 프로토스 유저가 강민 선수였으니만큼 마이큐브 때 강민 선수를 꺾고 우승한 박용욱 선수에 대한 인상이 좋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얼마나 게임을 야비하게 하면 악마라는 별명을 붙여줬나 싶은 생각도 들었더랬죠.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박용욱 선수의 경기력에 감탄한 것은 에버2005 박성준 선수와의 레퀴엠에서의 경기였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패한 경기라는 것입니다. 당시 박성준 선수의 골수팬이었던 저는 평소에 달가워하지 않았던 박용욱 선수이니만큼 박성준 선수를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왜 박용욱 선수에게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느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견제력' 과 '컨트롤'. 비록 그 경기는 박성준 선수의 한방병력 진출로 끝났지만 박용욱 선수에게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된 경기였습니다.
그 경기 이후에 저는 박용욱 선수의 옛 경기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리그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어느 저그 게이머와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때 그 저그 게이머분이 박용욱 선수의 앞마당 앞에 해처리와 성큰을 건설하여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상대방의 멀티를 견제하고 방해하면서 자신은 섬멀티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쏟아지는 리버들은 저를 멍하게 만들어놓기에 충분했습니다. 섬멀티를 파악한 상대방이 대규모의 히드라 드랍을 감행했지만 8, 9기 정도의 셔틀에서 쏟아지는 리버에 녹아나고 결국 박용욱 선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너무 옛 이야기인지라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이후에 저는 박용욱 선수의 경기들을 꼼꼼히 챙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보는 경기들마다 박용욱 선수는 패잔의 쓴맛을 볼 뿐이었습니다. 때로는 아깝게, 때로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지는 박용욱 선수의 경기를 볼 때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뒤늦게 815 에서 박정석 선수와의 명경기를 보고 그의 부활을 믿었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돌아올 수 있는게 아니더군요. 마무리 박이라고 칭해질 정도로 에이스 결정전에 능한 그도 패배에 고개를 떨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리얼스토리-프로게이머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박용욱 선수가 T1 소속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프로게이머들 중에 T1 에 소속된 선수들도 많아서 SKT1 편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사람들과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박용욱 선수의 모습에 사뭇 기대가 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기대에 보답하듯 인간적인 박용욱 선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임요환 선수와 장난도 치고, 후배들에게도 잘해주려고 노력하며, 말수가 많은 박용욱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저와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여러 사람들과 낯을 가리지 않고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선배들과 마치 친구처럼 장난치기도 하면서 지내는 성격이라고 주위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런 박용욱 선수의 모습을 몇몇 사람들은 눈꼴이 사나웠는지 그가 경기에서 패할 때면 방송에서 그렇게 나불대더니 꼴 좋다고 비난하더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비난은, 임요환 선수의 골수팬이었던 것 같은데 리얼스토리에서 임요환 선수와의 내기에서 이긴걸로 비난하덥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스타리그를 위해 피씨방 예선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박용욱 선수의 이름도 있더군요. 나름대로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그의 탈락소식을 전해들었고 저를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스타리그 우승자인데' 하고 믿었지만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에 의해 스타리그에서의 그의 모습은 다음으로 미루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임요환 선수의 군입대 후에 팀의 주장을 맡게 된 박용욱 선수. 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시련이었습니다. 프로리그에서의 부진으로 감행한 T1 의 정책으로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는 온통 논쟁으로 가득했고, 주장인 박용욱 선수에게도 자연히 불똥이 튀었습니다.
프로리그에서 T1 의 부진이 단순히 임요환 선수의 입대 후에 박용욱 선수가 주장을 맡았기 '때문'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당시에 저는 선택과 집중에 대해 백지였기 때문에 그런 비난하는 사람들로부터 박용욱 선수를 옹호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그의 책임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팀의 주장으로서 자신 뿐만이 아니라 팀원들을, 후배들을 가르치고 이끄려는 노력을 막 시작하려는 선수에게 그런 비난이 쏟아졌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방송에서 보여준 박용욱 선수의 모습이 그가 가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방송에서 보여준 명랑한 모습과는 달리 우울증에 시달리는 연예인들도 많습니다. 또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연예인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행여 박용욱 선수가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 주위사람들 모르게 마음고생이 심하진 않았을까 많이 걱정했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이 있더라도 숨기고 싶은게 있지 않았겠습니까?
곧 전기리그가 시작되는데 또다시 T1 의 경기력이 화제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공백기간동안 얼마나 준비했는지 T1 의 팬으로서 나름대로 기대가 무척 큽니다. 더욱이 오랫동안 팀의 기둥이었던 임요환 선수의 뒤를 이어 주장이 된 박용욱 선수가 어떤 달라진 모습으로 팬들에게 보답할지 사뭇 궁금합니다. 꼭 경기로서 팬들에게 보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박용욱 선수를 오래 전부터 응원했던 팬들은 여전히 당신을 응원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응원할 것이라는 것만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더이상 악마토스라고 불리지 않아도 좋습니다.
당신의 팬들은 인간으로서의 당신의 모습을 더 좋아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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