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8/09/20 18:00:26
Name The xian
Subject 살아있는 전설에 대한 독백
* 오늘 클럽데이 온라인 경기 한 시간 전에 썼던 독백체의 글입니다. 그래서 평어입니다.



팬들을 열광시켰던 선수들이 혹은 군으로 혹은 해설자로 혹은 코치로 혹은 자연인으로 하나 둘 떠나간다.
그렇게 21세기의 첫 10년을 보내왔던 프로게이머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과거 팬들이 이윤열이라는 선수에게 했던 말들을 기억한다
'사람같지 않다' '너무 이기기만 해서 싫다'
그리고 거기에 이어졌던 말 '(이윤열 때문에) 이젠 전략과 낭만이 사라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낭만이 사라져 가고 '누가 더 실수를 하지 않느냐'가 승리 조건인 시대인 바로 지금.
과거에 이윤열이라는 선수를 보며 '사람같지 않다', '스타판에 낭만이 없어져 간다'고 말하던 이들은
이제 이윤열이라는 선수에게 마지막 남은 낭만과 마지막 남은 올드의 자존심을 원하고 있다.

이게 생각해 보면 얄궂은 일이지만, 황제도 없고 폭풍도 없고 영웅도 없고 몽상가도 없고 괴물도 없는 이 곳에서.
살아있는 올드이자 살아있는 레전드는 천재 이윤열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도 얄궂은 일인데. 상대성이라고 볼 수도 있고, 관객이라는 이들은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해야지 뭐.


이쯤에서 말하지만,

만일 이윤열이라는 선수가 머신이라는 별명처럼 정말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선수였다면
내 영혼이 공명한다는 말을 나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겉은 강철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금속성의, 기계적인 냄새가 풍기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의 교감을.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다 해도 좋지만 나는 이윤열의 경기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교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기기만 하는 때가 지나자 그 감정의 공명은 더욱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골든마우스가 만들어지고 나서 그 주인으로 누구도 이윤열을 떠올리지 않았던 예상을 비웃듯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시 일어나 당당하게 골든마우스를 낚아채 버린 그 때.

나는 내가 가졌던 생각과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지금은 설령 그런 일이 다시 없다 해도 이윤열이라는 선수에 대한 기대를 절대 꺾지 않는다.
(승패에까지 초연하고 싶긴 하지만 그건 솔직히 말해 불가능한 이야기고. 나도 욕심이란 게 있으니 말이지......)


나는 약간, 아니, 많이 어색한 이윤열이란 선수의 말과 행동에 오늘도 웃는다.
나는 빈 틈이 보이는 아쉬운 경기에 무력해지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이기는 모습을 보며 기운을 얻는다.

원한다면 원하는 데까지 올라가면 되는 것이고, 못 올라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하지만 못 올라갈 것 같다고 해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서는 안 되고.
우승 욕심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배고프면 배고픈 만큼 죽어라 해서 욕심을 이루면 되는 것이고.
하지만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자기를 망치는 미련한 행동을 하면 안 되고.

뭐 그렇게 사는 거지.


올드이면서도 올드의 여유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윤열이란 선수를 보면 참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거야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자신이 깨우쳐야 할 일이니.
혹 내가 모르는 여유가 있고 내가 모르는 자유로움이 있다면 내 충고인지 잡담인지 이런 건 필요 없을 수도 있고......


조지명식때 '실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1000번이 넘는 승부를 거쳐 왔으니 이제 힘들어할 때도 되었을 수도 있고
자기의 모습을 되돌아보았을 때 실력이 안 좋다는 식으로 자기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세월에 쓸려가면 새로 들어오는 물결에 휩쓸려 밀려 내려가는 법이기도 하고
새로 태어나 이 판에 들어오는 이들은 과거에 그대가 가지고 있지 못한 유산들을 많이도 가지고 들어오는 법이니까.

하지만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윤열이란 선수는 '올드'가 아니라 지든 이기든 언제나 '현역'이고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박제된 전설'이 아니라 마우스를 쥐고 있는 그 순간까지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러니, 마음은 여유롭게 가지되 '올드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현역의 마음가짐'으로 싸워주었으면.

과거에 '다도와 함께 한 백의공자의 추억'을 쓸 때와는 달리. 마제는 그 때의 마제가 아니고 천재도 그 때의 천재는 아닌 세상이 왔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16강에 올라가면 누구든 부활 운운하는 소리를 하겠지. 그게 사람들의 마음이고 언론의 생리니까.

둘 다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그리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해 보지만) 만일 둘 중 하나만 올라가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왕이면 '천재의 부활', '불사조 이윤열. 16강 진출' 쪽이 멋지지 않겠어?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물론, 결과가 어찌되든,

나는 그대가 마우스를 놓는 그 날까지 '살아있는 전설' 이윤열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 The xian -


P.S. 이윤열 선수의 오늘 경기를 보고 손 끝부터 심장까지 떨리는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최종전에서 보여준 그대의 승리로 인해, 한 몇 분 동안 키보드가 제대로 쳐지지 않을 정도로 떨렸습니다.

설령 지난날 보여준 모습처럼 모든 게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대의 행보는 그 자체로 이미 전설입니다. 살아남아주어.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머씨형제의힘
08/09/20 18:03
수정 아이콘
같은 이윤열 선수의 팬으로써... ㅠㅠ

설령 지난날 보여준 모습처럼 모든 게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대의 행보는 그 자체로 이미 전설입니다. 살아남아주어. 감사합니다. 2
김다호
08/09/20 18:10
수정 아이콘
이윤열 진짜 또 살아남았군요..................

결승? 4강?? 그런것은 이제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메이저에서 남아있는것, 그러다가 8강정도는 한두번만 찍어주는것....

이윤열이기떄문에 기대를 해봅니다.
NaS.KiJuK
08/09/20 18:17
수정 아이콘
이윤열이기에.. 한번더 믿게되는거 같네요 하나 둘 셋 이윤열파이팅!
릴리러쉬
08/09/20 18:27
수정 아이콘
진짜 이윤열 선수 전성기때 이기기만 해서 싫어했었는데...ㅠ.ㅠ
앞마당 먹고 토할듯 나오는 물량에...정말 토할정도였는데...
제가 좋아하는 박성준 박정석선수 윤열선수때문에 피눈물 많이 흘렸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별로 좋아하는 선수는 아니지만...아직도 경기를 볼때 그를 응원하는 적은 없지만...
그가 살아있는 전설이고....누구도 부정못할 최고였다는 것은 확실한거 같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당신을 응원해 봅니다...이윤열 화이팅..
(정석아 너도 좀 어떻게 안되겠니?)
METALLICA
08/09/20 18:39
수정 아이콘
나다 화이팅입니다
08/09/20 19:18
수정 아이콘
이윤열 선수는 미완의 전설입니다. 왜냐면 지금도 스타판을 이끄는 장본인이니까요. 그가 은퇴하는 날이 바로 완벽한 완결된 전설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지나간 일을 회상하듯 오늘의 플레이는 아쉽기도 했지만 감동이었습니다.

'올드'라는 단어는 이윤열 선수에게는 그다지 특별한 의미로 와닿지 않아요.

왜냐면 지금도 그는 우승을 향해 앞으로 달려가는 진취적인 모습으로 현역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죠.

끝까지 살아남아주어 계속 우리 스파팬들을 감동시켜 줄 수 있길 기원하고 또 바랍니다.

이윤열 선수에게도 '희망고문'이란 단어가 생각났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골든 마우스를 첫번째로 수립한 장본인이며

더이상의 희망고문은 제 가슴에도 와닿지 않네요. 이윤열 선수 ㅠㅠ 저그전은 그렇다 쳐도 플토전에 대한 감을 다시 찾길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승을 다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지금보다 2%만 더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무일한 선수가 되길 바랍니다.
홍차소녀
08/09/20 21:24
수정 아이콘
정말...... 약속대로 살아남아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나다 ㅜ.ㅠ
Legend0fProToss
08/09/20 23:45
수정 아이콘
저도 이윤열이 낭만킬러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낭만인 시대군요
뭐 사실 최연성은 진짜 스타판의 문을 닫으러온 존재로 생각했으니까요
새벽오빠
08/09/21 02:30
수정 아이콘
오늘 이윤열 선수의 이겼을 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나오는 어색한 표정;;; 이 선수 베테랑 맞나요=_=;;

이겼을 때, 그리고 또 질 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표정이 아직 살아있는 한 당분간은 계속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오늘 나다는 진정 멋졌습니다
PT트레이너
08/09/21 04:23
수정 아이콘
최연성코치 ...
자극받고 다시 돌아오면 안되나요?

부럽습니다 나다팬들이말이죠
08/09/23 06:05
수정 아이콘
새벽오빠님// 그게 이윤열의 강점이라면 강점일 겁니다. 늘 한 경기, 한 경기...승리에 목마른 이윤열.

스타 경기가 있는 한, 이윤열은 항상 경기할 거 같습니다. 30대 프로게이머 기대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5644 2008 클럽데이 온라인 MSL 공식맵이 업로드되었습니다. [11] 송기범5849 08/09/21 5849 1
35642 김성제 선수 아프리카 방송하시네요 [29] 좌절금지10265 08/09/21 10265 0
35640 강민선수 축하합니다.. [35] Indigo8240 08/09/20 8240 0
35639 최연성과 이윤열, 마재윤과 이제동 [29] luminary9755 08/09/20 9755 3
35638 다시한번 암운을 드리우는 MSL의 저그. [31] SKY925354 08/09/20 5354 0
35637 살아있는 전설에 대한 독백 [11] The xian5519 08/09/20 5519 7
35635 라이벌 매치! 에이스 결정전!! [15] Ascaron4811 08/09/20 4811 0
35633 손 느린 마에스트로의 눈물 [23] 라울리스타8086 08/09/20 8086 1
35632 2008. 09. 20. (土) 24주차 pp랭킹 [5] 택용스칸3937 08/09/20 3937 0
35631 클럽데이 온라인 MSL 32강 G조 현재 최종전입니다. [198] SKY924042 08/09/20 4042 0
35628 클럽데이 온라인 MSL 32강 G조~ [388] SKY924249 08/09/20 4249 0
35627 김동준 해설의 빈자리와 임성춘 해설은 어디로 가나? 그리고 강민 해설 [13] 점쟁이9741 08/09/20 9741 0
35625 스타리그 퀴이이이이이이즈~ 해답편 [8] 信主NISSI4081 08/09/19 4081 0
35623 다시한번....... 전장을 지휘해보자. [19] SKY924628 08/09/19 4628 0
35622 인크루트 스타리그 16강 4회차~ [184] SKY924962 08/09/19 4962 0
35621 스타리그 퀴이이이이이이즈~ [24] 信主NISSI4515 08/09/19 4515 0
35620 이윤열 선수 인크루트 36강 선수입니다. [18] Mars6552 08/09/19 6552 1
35619 저그는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46] 이리7250 08/09/18 7250 1
35618 클럽데이 온라인 MSL 개막전 A조(박지수vs신상문 VS 변형태vs김명운) [287] SKY925724 08/09/18 5724 0
35617 앞으로 프로리그의 전망은? [11] 다레니안4314 08/09/18 4314 0
35615 어째 신맵 공개가 이상한 방법으로 되네요... [58] Carpe Diem10035 08/09/17 10035 0
35614 안타까운 김택용 선수의 저그전. [48] swflying9177 08/09/17 9177 0
35613 인크루트 16강 3회차~ [281] SKY925378 08/09/17 537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