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11/11 15:37:11
Name 아난
Subject [일반] 재즈 기타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팻 마티노 별세하다 (수정됨)
1
현존하는 최고 재즈 기타리스트로 꼽혔던 팻 마티노가 지난 11월 2일 별세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연주자지만 그의 일부 연주들은 재즈를 처음 접하는 이들 귀에도 잘 들어옵니다. 번역한 뉴욕 타임스 부고 기사 중간에 링크되어 있는 연주 외에 다음 연주도 추천합니다:


-
-
재즈 기타에 어느 정도 친숙한 분들은 다음 라이브도 추천합니다:


-
-
팻 마티노에 관한 한글 자료로는

팻 마티노 소개


팻 마티노 인터뷰 / 엘범 리뷰 셋
http://www.jazzspace.net/2018/02/formidable-pat-martino-high-note-2017/
-
-
2
팻 마티노, 기억 상실증을 극복했던 재즈 기타리스트, 77세로 별세하다 (닐 겐즈링거)

그는 뇌수술로 인해 기억을 상실했을 때 그 장르의 극찬받는 연주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회복했고 그후 30년 동안 음악을 만들었다.

--
닐 겐즈링거 Neil Genzlinger는 부고 기사 담당 작가이다. 이전에 그는 텔레비전, 영화 및 연극 평론가였다.
--
-
-
* 출처: 뉴욕 타임스 / 2021년 11월 2일
https://www.nytimes.com/2021/11/02/arts/music/pat-martino-jazz-guitarist-who-overcame-amnesia-dies-at-77.html
-
-
재즈 기타리스트로서의 선구적인 경력이 1980년 뇌 수술로 기억이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조기에 끝이 날것처럼 보였지만 힘들게 악기와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배우고 30여 년 동안 혁신적인 음악 활동을 이어갔던 Pat Martino가 세상을 떠났다. 월요일에 사우스 필라델피아에 있는 그의 집에서. 그는 77세였다.

그의 오랜 매니저인 Joseph Donofrio는 Martino가 2018년 11월 이탈리아 투어 후 공연을 중단하게 만든 만성 호흡기 질환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Mr. Martino의 연주는 그가 아직 십대였을 때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0학년 때 로마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나와 그곳의 한 사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라고 몇 년 후 썼다. "내 기억이 맞다면 풍선껌과 관련이 있었다."), 그는 가수 Lloyd Price의 빅 밴드에 합류했고 그 다음은 1962년에 색소폰 연주자 Willis Jackson의 콤보에 합류하여 전문 음악가가 되었다.

20대 초반인 1967년 프레스티지 Prestige 레이블에서 첫 번째 앨범 "El Hombre"를 발매했고 호평을 받은 일련의 음반들이 이어졌다. 경력 초기에 그는 종종 Wes Montgomery와 같은 초기 재즈 기타리스트와 비교되었지만 1970년대에 그는 자신의 사운드를 단조했다. "Pat Martino: 록과 재즈 사이의 장벽을 부수다", 1975년 The San Francisco Examiner의 기사 제목이다.

워너 브러더스 Warner Bros.를 위한 그의 첫 번째 앨범들인 "Starbright" (1976)와 "Joyous Lake" (1977)을 지원하는 투어에서, Mr. Martino는 어린 시절부터 가끔 겪었던 잦은 두통과 발작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1976년 프랑스 무대에 섰을 때 발작이 한 번 발생했다.

그는 자서전 "이곳과 지금 Here and Now !" (2011년, Bill Milkowski와 함께) 에서 "나는 연주를 멈추고 약 30초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발작의 순간에는 마치 블랙홀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빠져 달아나는 것 같다."

그 책에서, 그는 일련의 오진과 전기 충격을 포함한 잘못된 치료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연을 그만두고 할리우드의 Guitar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지만 그의 문제들은 더 악화되었다. 그는 어느 시점에 의사가 그에게 2시간이 남았다고 말했다고 썼다.

동맥과 정맥이 엉켜 있는 동정맥 기형이라는 상태가 진단되었다. 동맥류로 인해 큰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응급 수술이 필요했다. 깨어났을 때 그는 기억이 없었다.

"당신이 무언가를 기억하지 못할 때, 당신은 그것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그는 썼다. "그리고 수술 후 깨어났을 때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향 감각이 흐트러진 것은 아니었다"고 그는 계속 썼다. "내가 기타리스트인 줄 알았더라면, 병원 침대 옆에 서 있는 두 분이 실은 내 부모님이셨다는 걸 알았더라면, 나는 그 사건들에 수반되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겪었던 일과 그들이 거기 서서 나를보고 있었던 이유는 나에게 매우 고통 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들은 그저 낯선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가족 사진을 보여주고 그 자신의 앨범을 들려주면서 그가 과거를 다시 배우도록 도왔다. 기타를 다시 치는 것은 기억 회복의 또 다른 형태였다.

그는 2004년 캐나다의 앨버타주 에드먼턴 저널 The Edmonton Journal of Alberta 에 "나는 스퀘어 Square 1 부터 시작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단 시도하기로 결정하고 나자 마치 몇 년 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은 아이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자전거를 타려고 할 때처럼 내적 직관적인 친숙함이 활성화되었다. 불균형한 순간들도 있지만 그것은 잠재의식 속에 살아 있고 subliminal, 몇 번의 실수 후에 출현하고, 그 다음은 강해진다."

--
스퀘어 원 - 트위스티 퍼즐의 일종이다. 1990년경 카렐 허셀과 보체크 코프스키에 의해서 발명된 직육면체 모양의 큐브이다. 1층과 3층에는 4개의 30도 조각과 4개의 60도 조각이 있고, 2층에는 큰 조각 두개가 있다. 현재 정식 큐브대회 종목 중 하나이다. 회전제약이 상당히 많아 초심자들이 상당히 고전하는 큐브이다. 회전기호도 루빅스 큐브와는 다르게 순서쌍을 써서 읽기 힘들다.
--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그는 다시 공연을 시작했다. 1986년 맨해튼의 Fat Tuesday's에서 한 공연을 리뷰한 Jon Pareles는 Mr. Martino가 그 어느 때보다 기교가 넘치고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Mr. Pareles는 "그는 자신의 곡 tunes의 반음계 하모니들 사이로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비밥 라인의 계속되는 후렴구 chorus를 연주할 수 있 있다"라고 썼다. "그러나 종종 그는 비밥 관습들을 옆으로 치운다. 그는 예상치 못한 비트로 라인을 시작하고, 단일 음 note이나 리프 riff를 고집하기 위해 런 run을 중단하고, 표준적 즉흥 연주 licks에 홀수 길이의 도약 odd-length leaps을 삽입하고 비트 주위의 악센트를 이동한다. 그의 연주는 분명하게 제멋대로이고 기묘한 각도에서 곡에 접근하고 보람있는 샛길들을 간다; 그는 곡 song 형식들을 미끄럽고 신비롭게 보이게 한다."

1987년에, Mr. Martino 는 "The Return"이라는 새 앨범을 발매했다.

Patrick Azzara (그의 아버지도 예명으로 사용했던 Martino를 예명으로 사용)는 1944년 8월 25일 필라델피아에서 Carmen과 Jean (Orlando) Azzara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키로 알려진 그의 아버지는 기타리스트이자 가수로도 활동한 재단사였다. 그는 그의 기타를 어린 Pat에게 숨겼지만, 자서전에서 Mr. Martino는 이것이 "그의 역심리학"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소년이 악기를 잡자 그의 아버지는 그의 경력을 격려하고 그를 다양한 음악가들에게 소개했다.

Mr. Martino는 근처에 살았던 미래의 팝 스타 Bobby Rydell과 함께 밴드를 하는 것을 포함하여 소년 시절에 밴드에 있었다. 아버지는 애틀랜틱 시티에서의 콘서트 후 무대 뒤에 있던 당시 기타 거장들 중 하나인 Les Paul에게 아들을 데려 갔는데, 그는 어린 pat에게 아무 곡이나 잠시 연주해 볼것을 요구했다.  

Mr. Paul은 Martino의 1970년 앨범 "Desperado"의 라이너 노트에 "그 기타에서 나온 소리는 믿을 수 없었다"고 썼다. "그의 손재주와 피킹 스타일은 절대적으로 독특했다. 그는 작은 커피잔을 들고 있는 것처럼 피크를 쥐었다 … 새끼손가락은 매우 정중하게 뻗어 있었다. 픽이 기타줄을 치자 그 공손함이 사라졌다."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재즈에 대한 Mr. Martino 견해는 크게 아시아 철학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는 1975년 Examiner에 자신을 재즈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는 "재즈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음악의 한 관용구가 아니다. 재즈는 자발적 즉흥 연주이다. 갈 곳 없이 집을 나서서 그저 즐거움을 위해  관찰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걸으면 당신은 자신이 즉흥적으로 행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기타 연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때는 그랬지만 말이다.

"나는 내 악기에 의해 비인격화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더는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기타를 포함한 내 환경의 관찰자이다; 나는 모든 것에서 기타를 본다."

자서전에서, 그는 연주 능력을 회복한 과정을 기술했다.

"악기를 가지고 계속 이것 저것 해보자 기억의 섬광과 근육 기억이 점점 내게 쏟아져 되돌아 왔다 - 지판의 모양들, 집의 서로 다른 방들로 가는 서로 다른 계단들.  그 집에는 너만이 아는 비밀 출입구들이 있다, 즐거울테니 거기 가자."

수술 후 그가 만든 음반에는 블루 노트 Blue Note 레이블의 "All Sides Now" (1997)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앨범에서 그는 Mr. Paul을 비롯한 다른 유명한 기타리스트들과 트랙들을 공유했다. 역시 블루 노트에서 발매된, 그의 두 앨범 "Live at Yoshi's" (2001)와 "Think Tank" (2003)는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Mr. Martino는 수술과 회복 기간이 자신이 음악에서 추구하는 바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내 기술 craft과 경력에서 더 성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곤 했다”라고 그는 Edmonton 신문에 말했다. "오늘날, 내 의도는 순간과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완전히 즐기는 것이다."

Mr. Martino의 유족으로는 26년을 같이 산 아내 Ayako Asahi가 있다.

Mr. Martino는 수년 동안 다른 건강 문제가 있었지만 그의 오랜 매니저인 Mr. Donofrio는 그의 회복력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가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예전보다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Jeff Roth가 리서치에 도움을 주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1/11/11 16:37
수정 아이콘
재즈기타리스트 아는 분이 별로 없어서 제목만 보고, 팻 메스니인줄 알았습니다..
기타 잘 모르지만 뇌수술과 기억상실을 겪었다고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빠르면서도 정확한 리듬과 섬세한 연주가 인상적이네요.
(제가 재즈기타리스트들에게서 많이 들었던 솔로 릭들이 이분 연주에서 많이 들리는걸 보면 아마도 많은 영향을 끼치신듯)
70대면 요즘 세상에 이른 나이인데, 좀 더 장수하셔서 연주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하늘나라 가셔도 기타 연주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RIP
정 주지 마!
21/11/11 17:48
수정 아이콘
아쉽네요. 중국인인줄 알았는데.
21/11/11 18:0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요새 장량잉 張靚穎이라는 중국 여가수 노래들을 즐겨 듣고 있는데, 거의 디바급입니다. 조만간 올리게 될 지도..
21/11/11 18:26
수정 아이콘
팻 마티노 정말 인간 역전의 연주자죠. 과거 연주야 말할 것도 없고, 회복한 이후 연주나 앨범들도 좋습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서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요 몇 년 사이 재즈 연주자 할배들이 꽤 많이 돌아가셨는데, 웨인 쇼터나 기타 다른 나이 차신 할배들 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음악들 하면 좋겠어요. 부고가 너무 많네요.
멍멍이개
21/11/12 02:32
수정 아이콘
제가 느낀 바로 한국이 꼭 코끼리 무덤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밴드들 해체 직전이나 할배들 죽기 직전에 꼭 한번 들르는 것 같음..
웨인쇼터는 꽤 예전에 내한때 사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감격이긴 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4042 [정치] 토지공개념 정책. 서울시가 먼저 시동을 걸었습니다 [68] 도방16657 21/11/13 16657 0
94040 [일반] 무술이야기 03 한국의 일본무술 [9] 제3지대9038 21/11/13 9038 15
94039 [일반] 한국에 리메이크, 번안된 일본 가요들 [77] 라쇼21806 21/11/12 21806 11
94038 [일반] 나의 면심(麵心) - 냉면만 두 번째 이야기 [24] singularian12459 21/11/12 12459 13
94037 [정치] 한일 병합이 미국 때문인가 [131] LunaseA21249 21/11/12 21249 0
94036 [일반] [역사] 몽골의 유럽 참교육에 대한 소고 [91] 이븐할둔13308 21/11/12 13308 23
94034 [정치] 윤석열 "남북한 관계, 제자리로 돌려 놓을 것" [178] 이찌미찌20523 21/11/12 20523 0
94032 [일반] 주변국 국가지도자 호감도 대결 [42] 맥스훼인16394 21/11/12 16394 1
94031 [정치]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후보별 득표율 [42] Leeka12126 21/11/12 12126 0
94029 [일반] 안녕하세요 가입인사 드립니다. [22] Nacht9774 21/11/12 9774 9
94028 [정치] ‘백브리핑’ 봉쇄한 이재명에… 윤석열 “대통령이 돼도 하겠다” [39] 미생16866 21/11/12 16866 0
94027 수정잠금 댓글잠금 [정치] "경 1만뷰기념!! 그들의 행보는?? 축" [33] 염천교의_시선17797 21/11/11 17797 0
94026 [정치] "전국민에 암호화폐 지급"···이재명 파격, 통화질서도 흔드나 [140] 박세웅19417 21/11/11 19417 0
94025 [정치] 이건 이준석 대표가 연구를 많이 했네요 [64] 구텐베르크19372 21/11/11 19372 0
94024 [일반] 일본 코로나 신규 확진 214 명 (11.11) [138] 어서오고18654 21/11/11 18654 5
94023 [일반] 아그들아 이제 밤늦게 게임해도 된다. 셧다운제 폐지 [46] 오곡물티슈13401 21/11/11 13401 16
94022 [일반] 재즈 기타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팻 마티노 별세하다 [5] 아난9473 21/11/11 9473 3
94021 [일반] 김밥 먹고 싶다는데 고구마 사온 남편 [69] 담담17384 21/11/11 17384 95
94018 [일반] 헝다그룹은 파산한걸까요? [22] 롤링씬더킥17922 21/11/10 17922 1
94017 [정치] 국회의원이 대선 후보 배우자실장을 한다는데 [28] 만수르14090 21/11/10 14090 0
94016 [일반]  22세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2심도 존속살해 징역 4년 [84] 삭제됨19532 21/11/10 19532 3
94015 [정치] 이재명 "음주운전 경력자보다 초보운전 경력자가 더 위험하다" [126] 판을흔들어라21313 21/11/10 21313 0
94014 [정치] 시민단체 + 평화는 믿고 거르는 조합? 그래도 이야기는 들어는 봐야하나 [22] 오곡물티슈10582 21/11/10 1058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