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자로 개봉한 서현진, 안성기, 그리고 아역 배우 주예림을 주연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유일한 딸 지나(주예림 분)을 꽤나 가혹한 사교육을 시키다가 결국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아버지와 살아가는 30대 변호사 수진(서현진 분)이 어느 날 초로기 치매를 진단받으며 살아가는 내용을 그린 영화입니다.
꽤나 기대가 컸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신의학, 치매 관련해서 관심이 생기던 차에 굉장히 독특하게 젊은 층의 치매를 그려냈으니까요. 그렇지만 A+급 재료를 가지고 기껏해야 B+ 수준으로 요리해낸 것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스포입니다.
우선 치매 환자가 겪는 혼란, 공포를 꽤나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아침에 딸을 공항에서 배웅해주려다가 잠시 집에 들러 이메일을 보내고 왔을 뿐인데, 다시 주차장에 내려와 보니 시간은 이미 오후가 되어 있고, 차에 타고 있던 아버지와 딸이 사라져 대체 어디 갔느냐고 성을 내어 보지만 이미 아버지는 딸을 공항에 데려다 주고 온 상황이라든지, 자동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데 자꾸만 같은 길이 나와 공포감에 차를 세워버린다든지.. 하는 묘사가 꽤 괜찮더군요. 특히 공항 신은 실제로 관객조차 속여버리는 서술 트릭스러운 면모가 참 맘에 들었습니다. 딸과 화상통화를 하다 어느 순간 딸의 얼굴조차 까먹고 너는 누구냐고 묻는 모습에 아버지가 노트북을 황급히 덮어버린다든지 하는 것도 좋구요.
특히 주차장 신에서는 원래 전방 주차가 되어 있던 차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후방 주차가 되어 있다든지, 길을 헤매는 묘사에서는 반복적으로 우회전을 하면서 관객의 초조함을 돋구는 건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굉장히 젊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자부심이 넘치는 주인공이 환우회에서 만난 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늙은 환자들의 모습에 경악하며 자신 또한 그 처지로 굴러 떨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묘사 같은 것도 괜찮더군요.
다만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선 완급 조절이 좀 안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첫 신부터 깜빡깜빡하는 모습으로 치매 초기의 증상을 보이던 주인공은, 극중 초로기 치매의 진행이 극히 빠르다는 묘사대로 정말 빠른 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치마를 입는 걸 까먹질 않나, 종이를 씹어먹질 않나, 지남력이 거의 완전히 상실되었다고 하질 않나. 작품 초중반의 묘사도 이러한 악화되는 모습을 사실적이고 고통스럽게 묘사하는 데 집중해 관객에게 상당히 불쾌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의도한 부분이겠죠.
문제는 초반에 이러한 묘사가 너무 강하게 묘사되다보니 중후반부 부터는 병세의 진행이 딱히 느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법정에서 실금을 할 정도면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로는 오히려 그다지.. 악화된 모습이 부각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의사는 아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중반부에 관객을 마구 몰입하던 병증들에 대한 묘사가 중후반부 부터는 많이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완급 조절의 문제 뿐만 아니라, 사실 치매 문제를 다룰 때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가족이고 나발이고 환자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 치매 환자 수발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까지 진행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부성애와 치매 간병의 고통 사이의 갈등 같이 매력적이고 중요한 소재를 지나쳐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젊어서는 외국에서 일하면서 자식을 챙기지 못하다가 늦은 육아를 하게 된 무뚝뚝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작위적으로 딸과 아버지를 미국으로 치워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딸에게 자신의 치매 사실을 숨기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남편에게 전혀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듯한 모습은 조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작중 내내 남편을 철저히 병풍취급 하는데, 아내가 길어야 1년밖에 못 산다는 상황에서, 심지어 재판까지 받는 상황에서 남편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묘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이런 중요한 문제를 배우자한테 알리지 않는다구요?
작중의 성폭행 미수 신도 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환우회에서 만난 사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아버지가 젊은 여성의 몸에 자기 방어 능력은 유치원생만도 못한 딸을 다른 외간 남자에게 맡길 지 좀 이해가 안 갔습니다. 만일 그대로 성폭행이 일어났다면 정말 과도하게 불행을 주입한 면이 있었겠지만, 딸을 걱정한 아버지가 미리 외우게 시킨 거부 의사를 밝히는 법 덕에 딸을 구할 수 있었다, 즉 무뚝뚝한 아버지의 부성애가 딸을 지켰다 이런 메시지가 들어간 덕에 조금 괜찮은 신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외엔 소소하게 유치원생 내지는 초등학생 저학년(다니는 곳이 영어 유치원인지 아님 학원인지 잘 모르겠네요)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딸의 대사가 아무리 조숙한 아이일 지언정 너무 어른스럽다는 느낌, 작중 반복해서 나오긴 하지만 대체 주제 의식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를 카시오페아와 북극성, "엄마는 내 앞에서는 울었으면 좋겠어"같은 대사도 좀 사족이란 느낌이었구요,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동안 산악회를 뭣 모르고 따라갔다가 산에서 헤매고, 그러다가 별자리를 보고 도착한 곳이 과거 아버지, 딸과 함께 캠핑을 했던 장소였더라.. 는 부분도 좀 늘어지고 주제 의식이 불분명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뜬금없이 나오는 딸의 영어 나레이션은 진짜 뭐지 싶었구요.
게다가 마지막 신에서 수진이 산을 한참 헤매다가 살던 아파트에 어찌어찌 돌아와 우연히 마주친 게 딸이었다라.. 아니 아빠랑 딸은 대체 또 언제 한국에 돌아왔단 말입니까? 장인어른이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어찌어찌 듣고 한국에 급히 돌아왔다 치면 당연히 수진이 실종된 것을 알고 있어야 할 텐데 너무 느긋하게 단지 내를 돌아다니다 마주친다라.. 어... 이건 좀...
젊은 층에 발병한 치매라는 훌륭한 소재를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매력적으로 다뤄내는 데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던 영화 같습니다. B0~B+ 정도가 적당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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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도 리뷰를 한번 적어볼까 했는데, 먼저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영화의 소재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치매 영화들과 다르게 초로기 치매를 다뤘다는 차별점 외에 사실 스토리와 전개는 뻔하거든요.
다만, 배우들 연기가 좋습니다. 어려운 연기이니만큼 어색한 점이 느껴지면 몰입감이 깨질텐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영화 내내 가슴 먹먹함과 마지막에 안도감, 그리고 눈물 약간 흘릴 정도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2회차를 해보고 싶긴 한데, 상영관이 많이 없어서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