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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2/27 23:25:28
Name 具臣
Subject [일반] 심심해서 쓰는 무협 뻘글 3 (수정됨)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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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천감정 이호는 퇴청을 서둘렀다. 늘 끼던 마작판에 오늘 호구가 온다지? 흐흐흐...
길을 서두르는데 웬 장한壯漢 서넛이 가로막는다. 견마잡던 하인이 나섰다.

ㅡ 뉘쇼? 이 분은 컥...
명치에 고권이 꽂힌 하인이 풀썩 주저 앉더니 장한들이 물러나고, 윗사람인 듯한 흑의인이 나선다.

ㅡ 흠천감정 나으리?
ㅡ 그, 그렇소만...
ㅡ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ㅡ 어디로...
ㅡ 가보시면 압니다.

흑의인과 수하들은 이호의 말을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한식경 쯤 갔을까? 커다란 장원이 눈에 들어오자 이호는 거품을 물고 쓰러질 지경이었다. 아무런 표식도 없었지만, 녹봉을 오래 먹은 사람은 모두 그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동창!

장원 안 작은 방에 들여보내진 이호는 안절부절 못했다. 작은 다탁에 차 한잔 따라준 걸 보니 아직 죄인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봐도 손님 대접은 아니었다.
마작판에 낀 것이 죄였던가? 아들 놈이 어디가서 동창 욕이라도 했나? 동생이 또 사고를 쳤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돼지 멱 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꾸웨에엑~!

동창에서 돼지도 잡나? 갸웃하고 있는데, 돼지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저, 쿨럭...저는, 크흐흑.. 아, 아니에요.

이호는 거의 기절할 뻔 했다.
사람도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귀한 지식을 알게 된 다음에도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이호는 채규 앞으로 불려갔다. 채규에게서 제독동창을 독대할테니 몸가짐을 각별히 하고 어디 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주의를 받고,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전달 앞에 섰다.

더할 나위없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 이호에게, 전달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ㅡ 며칠 전 요기妖氣가 자미紫微를 범했다는데, 흠천감에서는 무얼하고 있는 게요?
ㅡ 예?
무슨 말을 어째야 할 지 몰라 당황한 이호를 전달은 다그쳤다.

ㅡ 없는 소리라 이거요?
ㅡ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제서야 전달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반말이 섞인 안하무인의 말투.

ㅡ 흠천감정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런 일이 있긴 있었나보군. 하기사 살별이나 별똥별이 휙 지나가면 아무리 잘 살펴도 놓치기 쉽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호는 금원보가 담긴 작은 상자 하나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하라는 것인가. 상소를 올리라는 것이겠지.
왜? 그건 내가 건드려서는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상소를 올리되, 좋은 소리 두루뭉수리하게 하면 되겠지. 이 돈을 나 혼자 먹고 나 혼자 상소 올렸다가는 큰일 난다.

다음날, 흠천감에서 '요기가 자미를 범했으니 황상께서는 덕을 쌓으시고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만사에 대비하시라'는 상소가 올라갔다.


금의위 심현각의 원동현은 밤을 새웠지만 뿌듯했다. 천자에게 올라가는 상소를 분석하는 보고서를 막 마쳤는데, 자신이 봐도 잘 썼기 때문이었다.
스물 셋의 나이에 하룻밤을 새운 피로 쯤은, 일의 성취감으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다.

황상에게 올라가는 상소를 특무기관에서 먼저 검토하는 것은, 원칙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생물과 같아서, 기관을 처음 만든 사람이나 몸 담았던 사람들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뻗어나가기 마련. 금의위는 천자에게 올라가는 모든 상소를 요약분석한 보고서와 원문의 사본을 금의위 도독에게 올리고 있었다.

원동현은 호부상서의 비리를 고발하는 상소, 북막은 조용한다는 보고, 강소성에 왜구 70명 정도가 쳐들어왔다는 보고, 사천성에 홍수가 났다는 보고, 자미성에 요기가 끼었다는 상소를 정리했다. 그리고 호부상서의 비리 문제를 정밀 검토, 공범과 수하 및 추포가능성은 물론,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 차기 호부상서 후보군과 그 가운데 누구를 밀 것인지에 대한 정리까지 마쳤다.

그런데 금의위 도독 정우신은 엉뚱한 곳을 짚었다.
ㅡ 이거, 뭐야?
ㅡ 예? 아, 자미성에 요기가 끼었었답니다. 며칠 전에 살별이 자미성 쪽을 지나갔나봅니다.
ㅡ 파 봐.
ㅡ 예?
ㅡ 자세히 알아보라고.
ㅡ 예, 알겠습니다. 저...호부상서 건은 어떻게 할까요?
ㅡ 그대로 해.

원동현은 투덜거리며 돌아왔다. 사안의 중대성은 전혀 모르고, 황상과 관련된 건만 나오면 꺼뻑 죽는 무식한 상관 욕을 하며.
정우신은 외척이었다. 황상이 그를 무관으로 꽂은 이유는, 그가 무예와 병법을 익혀서가 아니라 학문이 얕았기 때문이다. 천자가 글이 모자란 사람을 키우고 싶을 때 군문으로 보내는 것은 꽤 오래된 전통 - 글을 모르니 문관은 안되고, 칼 쓰고 활 쏘는 거야 잘한다고 하면 잘 하는 거지 글월처럼 남는 게 아니지 않나. 그리고 전쟁만 나지 않는다면, 높은 장수만큼 좋은 자리가 어디 있으랴.
그런데 한무제가 곽거병과 위청으로 대박을 터뜨리더니, 이 웃기는 짓은 관행처럼 되어버렸다. 후한의 외척들이 줄줄이 대장군까지 올라간 것이 괜히 그랬겠나. 그런 전통 덕에 무관이 된 정우신은 결국 금의위 도독이 되었다. 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아무런 기반도 없는 정우신의 머리엔 황상에 대한 무한한 충성 뿐이었고, 천자는 그 걸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본 것이다.

원동현은 짜증을 내며 제일대주 안정익을 불렀다. 호부상서 건은 직접 챙기고, 귀찮고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 오는 요기 건은 부하에게 넘기려고.

ㅡ 흠천감에서 자미궁에 요기가 끼었다는 상소를 올렸네. 위에서 관심있는 건이니 자세하게 알아보게.
ㅡ 예, 알겠습니다. 내일까지 보고 올리겠습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수재 소리 들으며 젊은 나이에 중요보직을 꿰어찬 원동현과 달리, 안정익은 금의위 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이었다. 나이가 원동현보다 스무살은 많았지만 명문가 출신인 원동현은 그냥 부하로만 대했고, 안정익은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안정익을 벼른 것은 오히려 원동현이었다. 안정익이 자신에게 굽신거리지 않는 것을, 어리고 현장경험이 전혀 없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일도 특무기관답게 조용히 알아봐야 할 걸,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까지 보고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건 엇나가는거 맞지?

ㅡ 설마 금패 휘두르는 건 아니겠지?
원동현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도찰원이야 무슨 일이 터지면 그 관아로 쳐들어가 모든 기록을 내놓으라하고 사람들을 잡아들여 닥달하지만, 금의위는 달라야 하는 법. 금의위도 아무 자료도 없는데 일은 해결해야 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도찰원처럼 정문으로 걸어들어가 금패를 내보이고 닥치는대로 잡아들이긴 했다. 그걸 금패 휘두른다고 하는데, 금의위 안에서는 큰 망신으로 여겼다.

ㅡ 그럴리가요. 귀부인들이 사주나 점복占卜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내린 무당을 찾기도 하지만, 공신력있는 흠천감 관원들에게도 자주 오죠.
ㅡ 아! 그 집안의 속 사정을 다 들으니 훌륭한 정보원이겠군!
ㅡ 예, 그래서 흠천감에서 그런 뒷일 하는 사람은 모두 우리 끄나풀입니다.

다음날, 원동현은 호부상서 건은 집어치우고 정우신에게 달려갔다.

ㅡ 도독, 동창 짓입니다!
ㅡ 뭐가?
ㅡ 자미성의 요기 말입니다. 그게 있지도 않았는데, 흠천감정이 금원보를 나눠주며 상소를 올리라 강요했답니다. 상소는 꼭 다 같이 해야한다면서, 까닭은 묻지도 못하게 한답니다. 그 하인 말이 무서운 곳에 끌려갔다왔다고 한다는데, 우리 짓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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